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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본 우리역사

2005-03-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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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학자들이 연구 정리한 한국 고대사 기록. Korea was once the Roman Empire of Asia. Koreans today claim that they are pure-blooded race. However, the root of Koreans come from Northeast Mongolia and Manchuria, and from the Siberians. The Kaoli tribes, one of the Mongol"s horse-riding tribes moved to the Korean peninsula and were intimidated by the Natives living in Mahahn, Byunhahn, Jinhahn. They shared almost the same culture and language. 한국은 고대에는 동양의 로마 제국과도 같았다. 오늘날의 한국인들 은 자신들이 단일민족이라 주장하지만 한국인의 기원은 동북아의 몽골고원과 만주, 시베리아 일대에서 시작된다. 몽골계 기마민족 중 하나인 카올리(고을리) 부족은 한반도의 마 한, 진한, 변한의 원주민과 교류가 잦았다. 그들은 비슷한 언어와 문화를 구사해 공통점이 많았다. Later on Koreans built the mighty Koguryo Empire which was a big threat to the Chinese and the Huns and even Japan was once under Korea"s dominance. This strong Empire lasted for 907 years followed by three native Korean kingdoms (Baekjae, Shilla, and Kaya). 후에 한국인들은 거대한 고구려 제국을 건설하는데, 이 나라는 지 나인들과 훈족에게 크나큰 위협의 대상이 되었고 일본조차도 고대 한국인들의 영향 아래 있었다 한다. 907년동안 지속된 이 강대한 제국은 고대 한국의 또다른 세 왕국(백제, 신라, 가야)과 함께 어 울렸다고 한다. These days the Chinese insist that Koguryo was one of their ancient countries but the way historians and archaeologists see it, there are so many evidence that Koguryo was a Korean Empire. The following lists are the Ancient history of Korea. 최근에 지나는 고구려가 자신들의 고대국가 중 하나였다고 주장하 나 역사학자들과 고고학자이 보기엔 고구려가 한국 제국이었다는 증거가 무수히 많다고 한다. 다음은 한국의 고대사를 연별로 나열한 것이다. *Ancient Chosun (BD 2333) - Dangoon becomes the first king of Korea. *고조선 (기원전 2333년) -한국의 첫 고대국가로 단군왕검이 세웠다. *Buyeo (BD 453) - Dangoon"s dynasty is over. Ancient Chosun"s territory is taken by the Han forces of China and Koreans build Buyeo in Manchuria. *부여 (기원전 453) - 단군왕조는 무너진다. 고조선의 영토는 기원전 108년에 지나의 한사군에게 상당수 빼앗기고 한국인들은 만주에 자리잡아 부여를 세운다. *The Rise of Koguryo (BD 277) - At BD 37, Gho Ju Mong of Buyeo leads many Yemek people from Kaoli to Guryo(Jolbon Buyeo, BD 277) and succeeds the throne. Guryo is upgraded to "Koguryo(The great Guryo)". *고구려의 건국 (기원전 277년) - 기원전 37년에, 부여의 고주몽이 카올리의 예맥족을 상당수 이끌 고 기원전 277년에 세워진 졸본 부여에 자리잡은 구려국으로 가 왕 위를 이어받는다. 구려는 "고구려(위대한 구려)"로 새롭게 시작된 다. *The growth of Baekjae federal Kingdom. (AD 268) -At BD 18, the son of Ju Mong moves down with his supporting forces to Korean peninsula and founds Baekjae. Baekjae colonizes Japan and Shandung peninsula in AD 268. *백제 연방국의 성장 (서기 268년) -주몽의 아들이 그의 추종세력과 함께 한반도 쪽으로 남진하여 백 제를 건국한다. 백제는 서기 268년에 당시 미개하던 일본과 산둥반 도를 식민지로 삼는다. *Shilla"s birth(BD 57) and Kaya"s submission to Shilla(AD 532). -The herds in Mongolia search for a fertile land and move to the Korean peninsula and establish a multitude-like nation called Seorabal. Few centuries later the Korean Indian Kingdom Kaya is submitted to Shilla. *신라의 건국(기원전 57년)과 가야의 신라 귀순(서기 532년) -몽골에서 떠돌던 유목민족은 비옥한 땅을 찾아다니다 한반도로 이 주하여 서라벌이라는 서민적인 국가를 세운다. 몇 백년 후에는 한 국과 인도 혼혈국가(이상하군요;)인 가야가 신라와 병합된다. *Han"s colony Lolang is destroyed by Koguryo.(AD 313) -Lolang has been the bridge of culture trade between China and Korea. However, when Koguryo has finally restored most of the lost lands of Ancient Chosun(AD 125), Lolang becomes useless and gets overtaken by Koguryo. *한사군의 낙랑군이 고구려에게 멸망됨.(서기 313년) -낙랑은 지나와 한국의 문화교류를 잇는 다리역할을 해왔다. 그러 나 고구려가 서기 125년에 고조선의 고토를 회복했을 때(93년동안 왕위에 있던 태조왕이시죠^~"b) 낙랑을 지키던 지나 관할병의 역할 은 쓸모없어져 고구려에게 넘어갔다. *Koguryo Empire, the primary nation of East Asia. (AD 412) -Koguryo becomes the strongest nation of East Asia and the emperor Gwang Geto extends Koguryo"s territory to its climax and helps Shilla defeat Baekjae. Koguryo conquers Baekjae and takes over its federal colonies. *고구려 제국, 동아시아 최강국이 되다. (서기 412년) -고구려는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쥐게 되고 광개토태왕은 고구려의 영토를 절정으로 넓히고 신라의 부탁으로 백제를 격파한다. 고구려 는 백제를 점령하며 백제의 모든 식민지를 강탈한다.(이 때 일본열 도의 북부의 실효권이 고구려에 넘어갔다죠) *The war between Sui Empire and Koguryo. (AD 600~622) -This uncovered history would probably be one of the the most massive war in mankind history. Over 1 million Chinese were killed by the Koreans in this war, and Sui Empire of China has fallen by continuous attacks from Koguryo Empire of Korea. *수나라와 고구려와의 전쟁 (서기 600~622) -이 풀리지 않는 역사는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대규모의 전 쟁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전쟁에서 100만명 이상의 지나인이 고구려인들에게 사살당했으 며, 지나의 수나라는 결국 한국의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해 멸망 했다. *The fall of Baekjae federal kingdom and Shilla"s betrayal. (AD 660) -Shilla shakes hands with the new Chinese empire Tang and destroys Baekjae. After taking over Baekjae, Shilla betrays Koguryo and become allies with Tang and wage a war against Koguryo. *백제 연방국의 멸망과 신라의 배신. (서기 660년) -신라는 새롭게 일어난 지나 제국 당나라와 손잡고 백제를 멸망시 킨다. 백제를 정벌한 뒤에 신라는 고구려를 배신하고 당나라와 손 잡아 고구려를 쳐부수려 한다. *The fall of Koguryo Empire. (AD 668) -Due to General Yeon Gae Sho Moon"s autocracy, Koguryo"s inner conflict becomes worse and worse. And Tang, Shilla alliance finally destroys Koguryo Empire. *고구려 제국의 멸망. (서기 668년) -연개소문 장군의 독재로 인해, 고구려의 내정은 날로 쇠해갔고 이 틈을 타서 나, 당 연합군은 마침내 고구려 제국을 무너뜨린다. *Great Shilla and Balhae"s establishment. (AD 698) -Shilla takes total control of the Korean peninsula. After Koguryo"s fall, people of Koguryo have been fighting against Tang"s imperialism for 30 years not to lose Koguryo"s territory from China. With the help of Malgal clans, Tae Cho young, the general of Koguryo defeat the forces of Tang and establishes Balhae. *통일신라와 발해의 건국. (서기 698년) -신라는 한반도의 대부분 영토를 소유하게 된다. 고구려가 망한 뒤에, 고구려 사람들은 30여년동안을 고구려의 남 은 영토를 뺏기지 않기 위해 당나라의 영토 제국주의에 맞서 싸워 왔다. 고구려의 장군 대조영은 말갈족의 도움으로 당을 격파하고 발해를 세운다. *Balhae"s revenge and Tang"s destruction. (AD 908) -Balhae continues to restore the lost territory of Koguryo and keeps on facing Tang. This leads Tang dynasty to its end due to continuous battles and weakened Internal affairs. *발해의 복수와 당의 멸망. (서기 908년) -발해는 계속해서 당나라와 싸워가며 고구려의 고토를 회복하려 한 다. 이것은 당나라의 국력을 극도로 소모하여 계속된 전쟁과 내정 의 불안으로 당나라는 멸망한다. *The fall of Balhae and Koryo"s establishment. (AD 920) -Balhae too lost pretty much most of its strenght for fighting Tang and while Balhae got weakened, the Georan tribe from Western Manchuria invaded Balhae and took over its territory. Balhae people immigrated to Great Shilla. Later on, Wang Geon won the throne of Shilla and establishes Koryo, the first united nation of Korea since ancient Chosun. *발해의 멸망과 고려의 건국. (서기 920년) -당나라와 싸우느라 발해 역시 싸울 힘이 전혀 남아있지 않게 되었 다. 발해가 약해진 틈을 타 서만주에 있던 거란족이 쳐들어와 발해 를 정벌한다. 후에 발해 사람들은 통일신라로 귀순하였다. 후에 왕 건이 신라의 왕위를 찬탈하여 고려 왕조를 세우는데, 이것은 고조 선 이래로 한국 최초의 통일국가이다. ※출처: Rise of Nations [Memorable Ancient Kingdoms and their history] 부록 (참고로 부록에 고대사가 실린 국가들로는 이탈리아, 터키, 그리 스, 한국, 파키스탄, 포르투칼이 있습니다.) 팔만대장경은 발해대장경 계승한 것 ” ‘북방 문화’는 중원이 아닌 고려로 계승됐다. 발해대장경은 거란대장경의 근본 북방불교문화 발해→ 거란 →고려 로 이어져 최근 발견된 8~9세기의 ‘발해(渤海) 대장경’〈본지 8월 7일자 A2 면〉이 11세기에 제작된 ‘거란 대장경’의 모본(母本 - 근본)이었 음이 확인됐다. 이로써 거란이 발해 것을 그대로 옮긴 대장경을 만들었으며, 거란 대장경을 상당 부분 참고한 13세기의 고려 대장경(팔만대장 경)이 사실은 ‘발해 대장경’을 계승했을 가능성이 높아져 발해와 고려의 문화적 계승관계 를 밝히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지학자 조병순(趙炳舜) 성암고서박물관장은 “거란 대장경인 ‘대방광불(大方廣佛) 화엄경 (華嚴經)’의 함차 (函次)번호가 발해 불경으로 여겨지는 ‘대방광불 화엄경’ 권 제38 ‘대화령국 장(大和寧國藏)’과 동일한 것을 확인했다”고 27일 밝혔다. 함차번호란 대장경의 여러 권(卷)을 묶어 천자문 순서대로 매긴 번 호로, 이 순서가 동일하다는 것은 곧 같은 계통의 불경 임을 의미 한다. 화엄경의 31~40권에 해당하는 현존 ‘대화령국장’의 함차번호는 ‘육(育)’이다. 그 앞에 존재했을 21~30장은 앞 글자인 ‘애(愛)’가 되지만 송나라에서 청나라까지의 중국 불경은 이 부분이 ‘장(章)’으로 돼 있는 반면, 거란 대장경은 똑같은 ‘애’자였다. 고려 팔만대장경(1251년 완성)을 만든 결정적 공로자인 승려 수기 (守其)는 1087년 완성된 고려의 ‘초조 대장경’과 북송(北宋)의 대장경, ‘거란 대장경’을 모두 비교·교감(校勘) 했다는 내용이 ‘고려국 신조대장(新雕大藏) 교정별록(校正別錄)’에 기록돼 있 다. 많은 학자들은 지금까지 이 내용을 근거로 “거란 대장경은 중원과 는 계통이 전혀 다른 대장경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지만, 1991년 중국 산시성(山西省) 잉셴안(應縣)에서 거란본의 일부가 발 견된 뒤에도 그와 같은 대장경이 없어 ‘북방 불교문화’의 실체 는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일본의 저명한 불교학자 오노 겐묘(小野玄妙)는 “ 고려 대장경이 참고한 거란본은 거란에 앞선 세력(발해)이 만들 었을 것 ”이라고 추정했지만 아직까지 그 근거는 없었다. ‘동일한 함차번호’라는 것은 거란본이 발해본을 사실상 그대로 베꼈다 는 얘기가 된다. 조 관장은 “거란이 발해의 궁중 서고(책 창고)를 고스란히 넘겨받 았다 는 기록이 있다”며 “여기서 고구려-발해-거란으로 이어지는 고대 북방 문화의 계통 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고려 팔만대장경은 이 ‘북방 문화계통’과 당-송으로 이어지는 ‘남방(중원) 문화계통’을 모두 계승·종합한 ‘완정본’ 이라는 의미이며, ‘북방 문화’는 중원이 아닌 고려로 계승됐다 는 것이다. 조 관장은 또 “ 당시 대장경은 황제의 칙령(명령)이 없이는 번역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대장경을 발간한 세력은 중원의 통치범위 바깥에 있었던 것이 된다 ”며 발해가 당나라의 지방정권이었다는 중국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불경 전문가인 박상국(朴相國)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연구실장 은 이에 대해 “불경사(史)를 다시 써야 할 큰 발견”이라며 “그동안 잃어버렸던 북방 문화의 실체를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라고 평가했다. (유석재기자 [ karma.chosun.com]) [조선일보 2004-12-27 ]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조선실록에서 보이듯 대장경의 불경은 단순한 자료가 아니라 일본과의 외교적 부분에서도 귀중한 소스로 거래 되곤 함을 알수 있습니다. 또한 지금의 중국이 블랙홀 처럼- 그들의 중국25사에서는 끊임없이 미개한 오랑캐로 평하하는 거란이나 여진, 이후 요와 금 , 후금,청 을 지금은 버젓히 자신의 역사로 당연하듯이 편입시키고 있지요. 우리는 만주에서 수천년 동안 살아온 그들이- 전라도, 경상도처 럼- 바로 우리의 민족구성원이고 우리의 역사임을 알아야 할것이며 다 시금 오늘날 지나의 동북 공정에 맞서 새삼 재조명과 함께 학자들의 많 은 연구가 있어야 할것입니다. <청나라는 신라계가 이었다 했다> 金史 ] " 金의 시조는 함보(函普)이며, 본래 고려에서 나왔고, 그 때 나 이 60세였다 " [松漠紀聞 ] " 金나라가 건국되기 이전에 여진족이 部族의 형태일 때 그 추장 은 신라인이었다 " [ 滿州源流考 ] " 신라王의 姓을 따라 국호를 금(金)이라 했다 " [ 高麗史 ] " 평주의 승려 김행의 아들 김극수가 金나라의 조상(祖上)이다 " 위의 여러 역사서를 종합(綜合)하여 살펴보면 "금나라"는 신라의 김씨족이 가서 세운 나라이고 " 금(金) " 이라는 국호는 신라왕姓 김(金)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을 알 수 있다. 다만 역사서에 따라 金나라 태조 아골타가 고려인 金극수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 고 , 金函普의 8代孫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나 신라계 김씨 출신인 것만은 분명하다. 누루하치는 金太祖 아골타의 16代孫입니다. 고려 시대 때 윤관이 변경의 여진족을 내쫓고 동북 9성을 쌓는다. 그 때 여진족 사신이 고려의 王에게 이런 말을 한다. " 예전에 우리 태사영가가 말하기를 우리 조상은 귀국에서 나왔다 고 했습니다 " 금(金)나라는 나중에 후금(後金)이 되고 이 후금(後金)이 중원을 정복하여 세운 왕조가 바로 청나라이다. [ 만주원류考 ]라는 청나라 사서는 삼한(三韓) 즉 마한, 변한, 진한을 한반도 남쪽이 아닌 만주 땅에 배정하고 고대에 신라가 만주땅을 점령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淸나라가 신라를 계승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기록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청태조 누르하치(奴兒哈赤)가 중원을 정복하고 淸을 세우면서 성을 " 애신각라(愛新覺羅) " 로 바꾸는데 그 뜻은 " 신라를 사모하고 기억한다 " 입니다. 누르하치(奴兒哈赤)는 조선을 멸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 한수이북은 자신의 선조가 태어난 땅 " 이라 말하였고 삼전도 항복 때는 " 본래 우리는 고려의 후손으로 그대들과 같은 나라였거늘 어찌하 여 동족을 따르지 않고 명나라를 돕는가? " 하였으며 우리 나라가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을 때 누루하치(奴兒哈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조선왕에게 보냈 다. " 부모의 나라를 침략한 쥐같은 왜구들을 ...수장시키겠습니다 " 출처: http://cafe.daum.net/hanryu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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