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방
일본의 구석기 유물 발굴 조작 사건을 보고
2001-05-18 00:00:00
조회 1207
도하 각 신문에 보도된 일본열도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이라 불리
는 카미타카모리 유적 조작사건은 다만 일본 고고학에만 충격적
인 일이 아니라, 세계 구석기고고학계에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
다. 일본의 도하 매체는 이 사건을 5일 톱뉴스로 다루었고, 특종
을 한 마이니치는 계속해서 관련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BBC는 기자회견 직후 긴급뉴스로 이 소식을 전했으며, 여
러 고고학 관련 인터넷사이트에도 관계기사가 즉각 실렸으며, 구
석기전공자들 사이에서도 부산히 이메일이 오고가고 있다.
이렇게 충격이 큰 것은 단지 이 유적이 오래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유적에서 발견된 저장공이나 구조물의 흔
적 및 정교한 눌러떼기 가공의 석기와도 같은 증거는 종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단계에서나 등장했을 것으로 여겨지던
일련의 행위가 그보다 훨씬 앞선 단계에 이미 등장했을 것임을
시사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하여 그간 이
유적 및 다른 유적에서 발견된 증거의 신빙성에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으며, 심지어 30,000년전 이전의 모든 증거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이 유적이 인류문화사의 이해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더해,
개인적으로 이 유적을 1995년과 1999년 두 차례 방문해 그 조사
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사건의 당사자를 비롯한
여러 관계인사와 면식이 있는 처지이기 때문에, 사건을 접한 다
음의 놀라움은 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건의 경위는 국내 언
론에 보도된 대로이지만, 각종 보도자료와 개인적으로 수집한
정보에 입각해 약간의 세부사항을 보태자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마이니치신문이 사건의 당사자인 후지무라신이치(藤村新一)
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된 경위는 분명치 않으나, 마이니치는 이
미 9월 5일 20만년전의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주장한 홋카이도의
소신후도자카(總進不動坂) 구석기 유적 발굴시에 그가 모종의 수
상쩍은 행위를 하는 장면을 촬영해 두었다. 이곳에서의 유물 수
습 발표 직후, 현지의 한 고고학자는 퇴적학적 관점에서 유물
이 면을 이루며 출토할 가능성이 없음을 지적하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곧바로 게재하였다. 10월 20일 카미타카모리
유적의 발굴이 시작되며, 마이니치신문은 그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조작행위를 촬영한 것은 22일이었다. 놀랍게
도 다음날인 23일 유적발표회에서 마이니치는 시치미를 뚝 뗀
채 취재를 하였으며, 29일 발굴종료와 더불어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였다. 이에 후지무라는 잠적하였으나 11월 4일 밤 인터뷰
에 응하였고, 다음날 공동발굴책임자 두 사람과 더불어 공식기자
회견을 하고 두 유적에서의 조작 사실을 시인하였다. 조작의 이
유로서 사이타마 현에서 발견된 증거보다 더 기막힌 증거를 찾아
내야 한다는 압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으며, 일
본에서 그와 가까운 관계자가 보내온 이메일에 따르자면 지난
두 달 동안 그는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고 한다.
후지무라는 고졸학력의 아마츄어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동북
지방 전중기 구석기유적의 거의대부분을 포함해 모두 180개의 유
적을 발견했고 또 지난 20년 동안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
을 발견했다고 주장된 유적의 발굴에 깊숙하게 개입해 왔다. 이
사건의 충격이 얼마나 큰 지는 그가 은사로 섬기고 있는 동북대
명예교수인 세리자와씨마저도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너무 좋
은 유물이라서 (그간의 모든 발견에 대해) 의심이 들었다"는 말
을 할 정도이며, 문화청은 모든 전중기 구석기유적에 대한 즉각
적인 재검토에 착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관련된 각급 지방
자치단체마다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 교과서 업체들
은 이 유적과 관계된 내용을 수정할 차비에 들어갔으며, 일본고
고학협의회를 비롯한 각종 학술단체들 역시 대응책 마련에 부
심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공동굴책임자 중 한 사람은 즉각 전
세계 각지의 지인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
고 있다.
앞으로 이 사건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좀더 지켜보아
야 하겠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고고학, 특히 구석기고고학
연구에 약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다. 비록 그가 찾았거나 발견
한 모든 유적이 조작된 것이라는 현실성 없는 가정을 취한다 해
도, 틀림없는 전기 혹은 중기 구석기 유적이 아직 상당수 있기
때문에, 일본 구석기 고고학의 근본이 뒤집히는 일은 없으리
라 보인다. 또한 카미타카모리의 경우, 발굴자들은 전년도까지
의 자료는 전혀 조작된 것이 아님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
운 조사진에 의한 재조사 결과 그 진위여부는 판명될 것이다. 필
자는 개인적으로 그러한 검증을 통해 많은 자료들이 오히려 그
입지를 더욱 다지게 되리라 보고 있다. 다만, 그와 직간접적으
로 관련된 여러 사람들은 앞으로 활동에서 많은 제약을 받거나
활동을 그만 두어야 할 것은 틀림없어 보이며, 1980년대 이래 일
본 구석기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던 일본 동북지
방의 구석기연구는 장기간의 침체국면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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