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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 발굴책임자로서

2001-05-18 00:00:00
조회 578
작년 9월 이후 풍납동 유적발굴조사를 현장 지휘해온 사람으로 서 이번 유적 훼손행위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도의적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발굴 초기부터 엄청나게 출토되는 유물과 복잡다양한 유구의 출 현에 흥분하면서 관심은 오로지 유적의 성격규명, 그리고 앞으 로 이 유적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주민 들의 고통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발굴을 진행시키면서 부딪치는 발굴외적인 문제는 산 넘어 산이었다. 시공사의 자금난 으로 인한 조사 경비 고갈과 비협조로 발굴단은 계속 곤경에 처 했고 작업은 연장되어 동절기에 접어들었다. 조사단은 땅이 얼 어 정상적인 작업이 불가능해짐을 우려하면서 철수를 고려했으 나 조사지연으로 인한 주민들의 피해를 감안하여 동절기 조사를 강행할 수 밖에 없었다. 몇 달씩 현장에 머물다 보니 주민들의 억울하고 참혹한 사정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영하 10도 가 넘는 추위에 고전하는 발굴단원들을 독려하며 작업을 강행하 면서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됐는지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연이어 출현하는 중요 유구와 유물에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하지만 발굴단의 이런 사정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고 마침내 주 민들의 불만이 발굴단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조사경비 를 부담하는 시공사는 극심한 자금난으로 경비의 지급을 차일피 일 미루었고 마침내 4천만원 이상의 적자상태에 빠지게 됐다. 이 때부터 발굴단은 한편으로는 조사를 진행하면서 조사비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해야만 하였다. 하지만 발굴조사경비는 사업자 부 담이 원칙이라는 냉정한 현행 법규로 인해 단돈 100원 한푼 지원 해주는 기관이 없었다. 1월 중순 시공사는 마침내 부도처리되었고 발굴도 중지될 수밖 에 없었다. 이때부터 재건축을 통해 아파트 한 채 가져보려고 몇 년간을 참고 견딘 주민들과 이들을 위해 온갖 고충을 감내하 고 조사를 강행하던 발굴단은 아무런 완충장치 없이 정면 충돌하 게 되었다. 발굴조사의 완료 없이 건축행위는 있을 수 없다는 당 위로 인해 재건축조합은 발굴단에 조사의 속개를 끊임없이 요구 했고 추가 발굴비용은 주민들이 갹출해서 지급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부터 사태는 악화일로를 치달았다. 발굴조사로 인해 공사 가 지연되면서 생긴 모든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해야만 하던 주민 들에게 발굴 경비의 부담은 납득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마침 내 4월 25일 3차 현장설명회가 개최되는 날 주민들의 불만은 폭 발했다. 영문도 모르고 참가했던 학계의 원로들은 당황했고 8개 월째 현장에 거주하면서 얼굴이 알려진 필자는 아주머니들에게 포위당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자 그 분들은 온순 하게 경청했다. 봉변을 각오하고 있던 필자에게 그들이 보인 반 응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울면서 살려달라고 절규한 것이다. 누 가 이들을 이렇게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간 것인가. 그러나 주민 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발굴단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 가면서 발굴단은 5월 8일 작업을 일시 중지할 수 밖에 없었고 마 침내 13일 유적훼손 행위가 자행된 것이다. 맹자는 위정자들이 절대로 해서는 안될 행위로 백성을 그물질하 는 짓, 즉 강민을 경계했다. 법을 어긴 백성을 처벌하는 것은 정 당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되도록 몰고간 책임은 위정자에게 있다 는 뜻이다. 문화재를 훼손한 행위는 중대한 범죄행위임이 틀림없고 이러한 사태는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발상의 대전환이 없이는 앞으로도 제 2, 제 3의 유적 훼손사태는 불을 보듯 뻔하 고 강민되는 백성들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풍납동의 현 사태는 유적보존과 학술연구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만명의 생존권이 걸 려 있는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대책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몰락해가는 우리의 이웃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루 빨리 주민대표, 정부당국자와 지자체의 관련자, 학 계인사, 시민단체 등이 주축이 된 「풍납동 종합대책위원회의」 를 결성하고 더 이상의 주민 희생 없이 신속하게 당면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기를 제언한다. (한신대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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