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방
개성청사진에 유적이 없다
2001-05-18 00:00:00
조회 393
글쓴이 송기호(조선일보 9월 10일자 신문칼럼에서)
[시론] 개성청사진에 유적이 없다......송기호
현대가 추진하고 있는 개성공단 조감도가 공개되었다. 개성 인
근 평화리에 800만평 공단과 1200만평 배후 신도시가 들어선다
고 한다. 구미공단보다 조금 더 큰 공단이 들어서고, 분당의 두
배가 되는 신도시가 들어서는 셈이다. 실로 엄청난 규모만큼이
나 남북 경협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부풀게 한다.
며칠 전에는 대통령이 개성공단에서 1년 내에 생산품이 나올 것
이라 말하였다. 아직 기반 공사도 시작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현대의 평소 이미지처럼 불도저식으로
강력히 밀어붙일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경의선 철도 연결과도
맞물려 있으니 앞으로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이 청사진에는 역사 유적에 대한 배려가 전혀 보이지 않
는다. 고려시대 500년간 수도였던 개성이 지척에 있으니 이 일대
에 그 유적이 없을 리가 없다. 그뿐 아니라, 드넓은 부지에는 선
사 유적도 분명히 숨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 유적의 조
사 계획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4년 전 함경남도 신포시에 경수로 발전소를 세운다고 하기에 고
민 끝에 경수로 사업단장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그 일대
에 중요한 발해시대 유적이 있으니 유적 조사를 먼저 실시해야
할 것이고, 또한 가능하다면 첨단의 발전소 안에 과거의 문화 유
산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따로 전시공간을 마련했으면 좋겠다는
요지의 건의문이었다. 세계가 주시하고 있는 사업인 만큼 우리
가 문화 국민이라는 사실을 외국에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그렇지만 그곳에는 유적이 없다는
답신만 곧바로 돌아오고 말았다.
지금 국내에서 진행되는 발굴을 보면,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던
곳에서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현재의 논 아래에서 과거의 논이
모습을 드러내고, 저습지에서 유기물질로 된 유물들이 썩지 않
고 고스란히 발굴되고 있다. 지상에 드러난 것만 유적이 아니며
직접 파보지 않고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발전소 부지도 발굴을 했어야 했다. 그것이 남북경협에
서 단추를 잘못 끼운 첫번째 사례이다. 이제 두번째 단추도 자
칫 잘못 끼울 위험에 처해 있다. 발표된 계획서에는 유서 깊은
개성 지역에 걸맞게 문화관광 시설도 갖춘다고 하였지만, 개성
시가지만 염두에 두고 있을 뿐이다.
사실 지난 20~30년 동안 경제개발의 논리에 밀려 보호받지 못한
유적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주택과 아파트가 가득 들어차
문제가 되었던 백제의 고도 서울 풍납토성, 경마장을 건설하겠다
고 파헤쳐진 경주의 신라 유적지, 그깟 벌금 몇 푼 물면 된다고
발굴 현장을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지은 대구 시지동 유적 등,
그 동안 우리의 반문화적 행태를 보면 북한의 공단 조성에 대해
서도 할 말은 없다.
그렇다고 이제 경제개발이 시작될 북한에도 우리의 전철을 밟도
록 그대로 둘 것인가. 북한의 개성과 평양이 자랑스럽고, 우리
의 경주와 서울이 자랑스러운 것은 역사 유적이 있기 때문이다.
관광 입국을 내세우지만 외국인이 보러 오는 것은 첨단 산업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인 것이다.
그러기에 북한에서 유적을 발굴할 시간적 여유를 주어야 할 것이
고, 이와 함께 경제적 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혹시 남·북
한 고고학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발굴이 되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
다. 남·북한 모두 급한 마음에 불과 몇 달 아끼려다 몇 천년 유
적이 흔적 없이 사라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창원공단 한가운데에 작은 박물관이 하나 언덕에 세워져 있다.
1974년 공단을 조성할 때에 발굴된 유적을 전시하고 있는 성산패
총 유물전시관이다. 마침 2000년 전에 철을 생산하던 유적도 전
시되어 있어서 이 공단의 품격을 더해주고 있다. 개성공단도 바
로 이런 방식을 활용하면서 더 멋있게 꾸밀 수 있을 것이다. 그
렇게 되면 기업의 이미지 개선에 보탬이 될 것은 물론이요, 이제
라도 단추를 제대로 끼워나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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