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의 인사 말씀

송구영신의 인사 말씀

    2020년, 이제 새해에 자리를 내줘야 할 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시작할 때 희망을 품지 않은 새해가 없듯 또한 끝자락에 이르면 ‘다사다난’이란 형용이 어울리지 않은 한 해도 없습니다. 더욱이 2020년은 하루가 더 긴 해였습니다. ‘경자(庚子)년’은 전 지구인들 뇌리에 하나의 단어로 능히 기억될 듯합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아직 그와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마스크 속에서만 오가는 숨결에는 고단함이 흠뻑 젖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희망은 인내의 토양에서 자라나는 것이 아닐까요. 지난 한 해의 일상을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하면 인내(忍耐)의 연속이었으니, 이제 희망은 더욱 분명해지고 있겠지요. ‘언택트’·‘비대면’이라는 낯선 단어들이 일상의 키워드가 되었던 사이, 우리의 사는 모습은 어느덧 익숙한 습관과는 이제 상당한 거리가 두어져 있습니다. 덕분에 의문의 여지없던 관행에 대해서도 근본적 되돌아봄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불행 중에서만 만날 수 있는 다행이 아닐까 합니다.

    올해 우리 한국고고학회도 그러한 낯선 환경에 부대끼면서 몸을 가누어 가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연 초에 드린 학회 28대 운영진의 출범에 즈음한 인사말씀에서 3가지의 운영 목표를 밝혀 드린 바 있었습니다. 학회 재정의 자립기반 구축을 위한 학보 발간 방식 및 학회 개최 방식 개선, 고고학 학문 후속세대 교육 개선, 그리고 고고학과 사회가 만나는 새로운 플랫폼의 모색 등이 그것이었습니다.

    학보 발간 방식은 디지털 환경에 적합한 정보접근성 제고와 더불어 인쇄비 및 재고 관리 부담 경감 등도 얻을 수 있는 온라인 출판으로 전환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정보의 안정성 및 보관성 측면에서 분명한 장점을 가진 인쇄본 형태의 출간도 부분적으로 유지하였습니다. 연 4회 발행 온라인판을 연말에 1권으로 묶어 출간하기로 하였습니다. 인쇄비 및 재고 관리의 부담 경감 취지를 유지하기 위해 사전 수요조사를 통해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만 실비부담 방식으로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학보 발간 개편 사업에는 김범철 편집위원장 이하 편집위원님 여러분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학회의 학술행사는 그간 심포지움 방식이 주종이었습니다. 특정 학술 담론에 대한 신속한 확산과 연구 활성화 촉진 등에는 분명 장점을 가진 방식으로서 그간 학회 발전에 기여한 바도 컸습니다. 그러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참가 기회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뿐 아니라 고비용을 수반하는 단점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학회는 전국대회를 비롯한 몇 차례의 학술발표회의 개최 방식을 개편하였습니다. 학술적 견해를 천명하는 기회는 원칙적으로 발표자의 참가 신청에 기반으로 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었습니다. 아직 그 결과를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지속 실천을 어렵게 하는 정도의 부작용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학술회의 방식 변경은 결코 용이하지 않습니다. 그 이면에는 유용욱·김규운 기획연구위원회장이하 여러 위원님들의 열정과 높은 기획력이 있었습니다. 노고에 감사합니다.

    고고학 학문 후속세대 교육 개선 사업은 대학 단독으로는 실행이 어려운 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고고학자의 필수 기량인 발굴조사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서는 많은 재원이 요구되지만, 인문학 분야로 편제되어 있는 교육체계에서 그를 위한 실습 교육비 현실화는 불가능합니다. 이를 위한 현실적 방안 모색 및 제도화 노력은 지속가능한 고고학 학문 후속세대 양성의 핵심이 됩니다. 학회는 원칙적으로 현장실습교육의 국가 주도 체제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김장석 위원장 이하 교육개선위원회의 여러 위원들이 헌신적으로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특히 바람직한 제도적 기반 마련을 위해 문화재청과의 원활한 협조 방안을 지속적으로 강구하는 가운데, 지난 10월에는 학회와 문화재청이 공동 주최하고 교육개선위원회와 경주문화재연구소가 공동 주관한 워크숍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였습니다. 교육개선위의 노고에 감사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정보 전달의 방식의 총아로 떠오르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유튜브일 겁니다. 학술정보 역시 종전의 방식으로만 유통될 필요는 없으므로 유튜브와 같은 매체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공교롭게 코로나 19의 창궐로 인해 종전의 각종 대면 학회활동이 비대면으로 대체되는 상황을 맞이하면서 그러한 매체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습니다. 이에 유튜브를 각종 학술정보 전달의 플랫폼으로 지속 활용하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그 첫 걸음은 지난 6월에 개최된 고고학 신예학술논단 온라인 회의였습니다. “2020 한국고고학회” 계정으로 학술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이렇게 돌이켜 보니 2020년 한해는 ‘다사다난’보다는 ‘단사다난(單事多難)’이었습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일으킨 문명사적 사회변동의 격랑. 그를 헤쳐 나가는 최종 기량은 오로지 자신으로부터만 비롯되는 건강이겠지요. 학회 회원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2020년 12월 30일

한국고고학회 회장 박순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