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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나 유적(La Quina)에서의 중기 구석기 후기와 말기의 석기생산체계와 돌감의 순환

2008-05-14 00:00:00
조회 3456

  끼나(La Quina) 유적은 무스떼리앙의 한 표식유적으로서 이미 19세기말부터 서유럽에서 중기구석기에서 후기구석기로의 이행과정을 구체적으로 알려 줄 수 있는 유적으로 주목 받았다. 이 유적에 대한 최근의 프랑스-미국 공동 재발굴(1985-1994년)에서 얻어진 여러 가지 자료들은 층서학, 계측연대측정, 동물뼈 분석, 사람뼈 분석, 잔존물분석 등을 통해서 많은 성과를 얻었지만 석기연구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그 성과가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석기연구에 가장 기본적인 분석인 돌감에 대한 판별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연구에서는 무엇보다 먼저 석기를 제작하기 위해 반입되었던 돌감들을 확인하는 것에 일차적으로 주목하였다. 동정방법으로는 지화학방법과 같이 파괴적이고 고비용에 저효율적인 방법들을 지양하고 간단하고 신속한 방법인 육안관찰과 실물현미경관찰을 통해서 여러 가지 플린트에서 관찰된 고생물학적 지질학적 특징들 (micro-faciès)에 주목하여 돌감분류를 하였다. 동시에 유적에서 반경 50킬로미터 이내의 공간에 대한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조사를 통해서 가용광물자원 산지분포도를 작성하여 유적을 점유했던 네안데르탈들의 광물자원확보영역을 가늠하고 석기제작기술학상의 특성과 돌감의 이용의 상관관계를 추론하고자 하였다.

  이 유적의 광물자원순환 양식에서 드러난 특성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중기구석기말기의 유적점유인들이 후기구석기 현생인류와 거의 유사한 광물자원 공급소비전략을 보인다는 점이다. 즉 유적을 점유했던 네안데르탈들은 돌감을 무계획적이고 즉흥적인 방식으로 공급하기보다는 보다 넓은 지역에서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방식으로 먼 거리에서 가장 양질의 돌감을 선택적이며 집약적인 방식으로 대량 공급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기구석기에서 후기구석기의 이행과정은 단절적이라기보다는 연속적이었다는 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고도의 광물공급선택전략은 유적의 점유의 근본적인 동기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실마리를 줄 수 있다. 유적의 상부층들의 점유종(약 70%)인 들소(bison)의 어금니들에 대한 cémento-chronologie 분석결과들을 참고할 때 끼나 유적을 점유하였던 네안데르탈사람들은 들소나 순록같이 계절성 이동동물들을 늦은 여름 또는 가을에 집단사냥을 하였던 것으로 보여 진다. 그러나 끼나 유적은 샤랑뜨나 도르도뉴분지의 다른 중기 구석기유적들이 몰려 있는 지구들과 멀리 떨어져 있으며 또한 이 유적을 둘러싼 주변 환경도 다른 유적군이 자리 잡은 환경에 비해 그다지 큰 이점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끼나 유적은 중기구석기 최말기의 가장 규모가 크고 막대한 양의 석기들과 동물 뼈들이 퇴적된 유적들 중의 하나라는 사실에 주목하여야 한다. 그러면 이러한 불리하고 격리된 유적의 입지조건에도 불구하고 네안데르탈 사람들이 이렇게 대규모유적을 점유한 까닭이 무엇 때문인가라는 질문을 자연히 제기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의 견해로는 유적이 자리 잡은 주변 지역이 계절성 이동동물인 들소나 순록 등이 특정시기에 무리지어 지나가는 통과지점으로서 집단사냥에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하였다. 이러한 점은 끼나를 점유했던 네안데르탈사람들이 계절적으로 이동하는 동물들의 이동경로와 자연환경에 대해서 구체적인 지식을 사전에 이미 갖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이들이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예측하고 그들의 생존활동을 계획화 할 수 있던 능력을 갖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마지막 간빙기에 서유럽의 세끌랭, 쌩 제르망 데 보 그리고 리앙 꾸 레 밥봄 등과 같은 이른 시기 무스떼리앙 유적들에서 보는 바와 같이 네안데르탈사람들이 이미 돌날을 체계적이고 반복적인 방식으로 생산할 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중기구석기시대=격지생산체계 그리고 후기구석기시대=돌날생산체계의 등식이 성립될 수 없다는 점은 이미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지적되었다. 문제는 마지막 간빙기에 특정지역에서 등장했던 이러한 돌날떼기체계가 오랫동안 사라졌다가 왜 멸종직전의 네안데르탈의 마지막 석기갖춤새(outillage)인 샤뗄뻬로니앙에 갑자기 재등장하였는가라는 점이다. 그 동안 이 문제를 둘러싸고 현재 학계는 근본적으로 두 가지 상반되는 견해가 대립된다. 즉 어떤 학자들은 현생인류의 유럽으로의 이동, 네안데르탈사람과의 접촉 그리고 문화적 ‘모방(imitation)’ 또는 ‘동화(acculturation)'가 이러한 샤뗄뻬로니앙 돌날생산체계를 등장시켰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다른 학자들은 현생인류의 유럽도달이전에 이미 중기 구석기의 내적 기술적인 축적이 이러한 돌날생산을 가능하게 하였다고 주장한다. 끼나 유적은 도르도뉴의 꽁브 그르날 그리고 샤랑뜨의 셰 삐노, 쌩 세재르와 함께 마지막 빙하기동안에 형성된 고고학적인 층이 십여 차례 누적된 매우 드문 유적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실마리를 줄 수 있었다. 이번의 끼나 유적의 석기들에 대한 통시적인(diachronologique) 관찰결과에 따르면 적어도 이 유적에서는 중기구석기시대에 돌날 또는 좀돌날 생산체계가 내재적으로 발전하였다는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기술-형식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중기구석기와 후기 구석기시대의 밑감(support)생산체계는 연속적(continu)이였다기보다는 단절적(rupture)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중기구석기후기와 말기에서 후기구석기 초기의 이행기는 과거에 생각했던 것보다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초반에 발견되어 현재 발굴중인 샤랑뜨해안지대의 셰 삐노유적은 내륙의 끼나유적과 매우 유사한 양상을 보여주어 주목된다. 앞으로 이들 두 유적의 석기분석결과에 대한 비교연구를 통해서 중기구석기말기의 대서양연안과 내륙을 점유했던 멸종직전의 네안데르탈 이동양식과 경제활동 그리고 그들의 생존전략에 대해 구체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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