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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월평산성(月坪山城) 발굴조사

2001-06-08 11:53:00
조회 2376
대전 월평산성(月坪山城) 발굴조사 Ⅰ. 조사개요 금번조사는 대전광역시 서구 월평동 산20-1번지 일대에 축조되어 있 는 월평산성의 고대지주변에 대한 발굴조사이다. 이 월평산성에 대하여는 1974년 지표조사를 통하여 백제산성으로 알 려지기 시작하였으며, 1989년 대전시 기념물 제 7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그리고 조사지역의 남쪽에 위치한 월평정수장 확장사업부지(이 하 월평동유적이라고 칭함)에 대하여 국립공주박물관과 충남대학교박 물관이 공동으로 1994년 8월부터 1995년 6월까지 실시한 발굴조사에 서 목곽고, 저장공과 함께 방어시설(목책+구, 목주석성벽+구, 석성벽) 이 조사되어 백제시대 유적임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월평산성이 정수 장 부지 밖에 있어 이들간의 관계를 조사하지 못하였다. 금번조사는 문화유산의 정비계획의 일환으로 월평산성과 백제시대 유 적으로 밝혀진 월평동유적에서 조사된 방어시설과의 관계를 밝히고, 월평산성의 성벽 및 고대지 축조기법 그리고 산성과 고대지와의 관계 를 밝히는데 목적을 두고 실시하였다. Ⅱ. 유적의 입지 대전은 분지상의 지형으로 계족산, 식장산, 보문산, 계룡산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북으로는 금강이 흐른다. 이 분지 안에는 갑천, 유등천, 대전천등 하천이 흐르고 있으며, 이들 하천변에는 선사시대이래 유적 이 분포하고 있으며, 산지에는 많은 관방유적이 분포되어 있다. 이들 관방유적은 대부분 지표조사를 통하여 연구되어 왔으며, 발굴조 사가 이루어진유적은 대전의 남쪽과 동쪽의 보문산성, 계족산성에 불 과하다. 대전의 서쪽에는 위치하는 대표적인 산성은 월평산성과 구성동산성 을 들 수 있는데, 역시 지표조사만이 되어 있으며, 모두 백제산성으로 알려져 왔다. 월평산성은 대전분지의 서쪽으로 치우쳐 위치하는데,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갑천변의 동쪽을 따라 형성된 해발 100m 내외의 능선의 북단 에 위치하며, 북단에서 짧게 가지능선이 형성되는데 이 가지능선의 능 선과 계곡을 감싸는 소위 포곡식산성이다. 한편, 유성의 옛지명은 백제시대에 奴斯只縣이었으며, 新羅 景德王 때 儒城縣으로 개명되었다. 그리고 월평산성의 옛이름은 儒城山城으 로 불리웠다. Ⅲ. 조사내용 금번 발굴조사는 성벽 및 고대지의 축조상태조사, 성벽조사, 성벽 외 부조사로 나누어 진행하였으며, 월평산성의 전체 성벽 평면 측량과 산 성내 구조물에 대한 지표조사도 병행하였다. 1. 성벽 성벽조사는 성의 축조상태를 파악하기 위하여 토층조사를 중심으로 설치하였는데, 고대지의 중앙에서 서쪽으로 35m 떨어진 부분의 성벽 을 성벽이 진행하는 방향과 직교하게 2m 폭의 트렌치를 설치하여 실시 하였다. 조사결과 성벽은 후술될 선행 유구 위에 크게 2차에 걸쳐 회갈색 소형 할석+점질토층과 대형할석+갈색점질토를 각각 폭 14m, 두께 0.3~0.9m 와 폭 15m, 두께 0.4~0.7m로 다짐을 하고, 그 다짐토 위에 성벽의 중심 부는 조성하기 위하여 대형할석+암적갈색 점질토층을 폭 15m, 두께 1.0~1.2m 다짐하였는데, 이 토층부터 판축하였다. 그리고 성벽 중심부 는 1~3cm 두께의 회백색 사질토와 황갈색 점질토를 교대로 높이 2.5m, 확인된 너비 4.0m로 쌓은 소위 판축기법으로 조성하였다. 성의 외벽에 벽돌모양으로 다듬을 돌을 횡적하여 쌓았으며, 경사면을 따라 기반석을 계단상으로 쌓아 조성하였다. 성벽 기반토 아래에는 성 밖쪽에 생토면을 정지하고 할석+황갈색점질 토의 다짐층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 다짐층이 성벽축조 이전에 조성된 것임에는 분명하나, 어떠한 성격인지는 파악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성 벽의 토층둑 아래의 바닥(생토)면에서 굴광선이 확인되었는데, 더 이 상 조사를 진행하지 못하여 성격을 파악할 수 없었다. 다만 유구 위에 형성된 흑색의 유기물층에서 고구려 토기 수점이 출토되었다. 또한 성 안쪽의 바닥에서는 플라스크형 구덩이 1기와 성격을 알 수 없는 다수 의 주공이 조사되었는데 모두 성벽 축조이전에 조성된 것이다. 한편 성의 외면인 석축 성벽 노출조사도 실시하였는데, 현존 상태는 7 ~15단(최고 높이 306cm)이 남아 있다. 출토유물은 백제시대의 토기와 기와편들이 출토되었으며, 표토층에 서는 통일신라시대의 기와편들도 함께 출토되었다. 2. 고대지 고대지는 월평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전체적인 형태는 위가 좁 고 아래가 넓은 장방형의 형태를 띠고 있다. 고대지도 축조상태를 파악 하기 위하여 중앙에 폭 4m의 트렌치를 설치하여 토층조사를 중심으로 조사를 진행하였다. 바닥은 성 안쪽을 약간 경사지게 정지한 다음 밑에서부터 0.8~1.0m 두께의 황갈색 점질토층과 2.3~2.8m 두께의 할석+흑갈색 점질토층을 남-북 너비 24.2m로 크게 2차에 걸쳐 기초 다짐하였다. 그 위에 중심부 와 성 밖쪽은 판축으로 다짐하였으며, 성 안쪽은 할석을 경사지게 약 8m 높이로 석축하였다. 이 성 안쪽의 판축은 1.8~2.8m두께로 전체적 으로 회백색 사질토와 명갈색 점질토를 교대로 판축하고 상면에 석비 례 암반 덩어리와 할석을 깔아 다졌으며, 그 위로는 중심부는 회백색 사질토+명갈색 점질토를, 동남쪽 외부는 황갈색 점질토를 약 5m 두께 로 판축하였다. 그리고 석축부분 상부에 경사면을 따라 길이 5.3m, 높 이 1.1m, 너비 1.0m 크기의 시설(석굴?)이 조사되었다. 즉 고대지는 약간 성 밖쪽에서 성 안쪽으로 경사지게 정지한 후 아래 너비 24.2m, 높이 9.8~10.8m를 쌓아 조성한 것이다. 고대지 남쪽으로 약 5m 간격을 두고 외호으로 추정되는 너비 4.7m, 깊이 0.9m의 단면 U자상의 도랑이 약 18m 조사되었다. 출토유물은 백제시대의 토기와 기와편들이 다수 출토되었으며, 표토 층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기와편들도 함께 출토되었다. 한편 성벽과 고대지의 선후관계를 파악하기 위하여 고대지 서단부분 을 조사하였는데, 성벽을 중앙에 두고 덮어 고대지를 조성한 것으로 조 사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축조하였는지, 아니면 시기를 달리하여 조성 되었는지는 조사가 좀 더 진행되면 밝혀질 것으로 판단된다. 3. 고대지 남쪽 능선지역조사 이 지역은 성 밖시설이 존재하는지의 여부와 함께 조사지역의 남쪽에 접해 있는 월평동유적 조사에서 플라스크형의 구덩이가 조사되었는 데, 이 유구들이 조사지역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 조사를 계획하였 다. 유구는 능선상을 따라 플라스크형 구덩이가 14기 조사되었으며, 성격 미상의 도랑유구 1기가 조사되었다. 플라스크형 구덩이는 2기 또는 3기 가 중복되어 있는 예도 있으며, 크기에 따라 대형과 소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바닥에 소형의 주공이 있는 경우도 있다. 도랑 유구는 서쪽 경 사면에서 내부에 할석이 채워져 있는 성격을 알 수 없는 너비 0.8m, 깊 이 0,5m의 단단면 U자상 도랑 약 4m 조사되었다. 그리고 월평산성의 시설물로는 문지 3개소, 건물지 3개소, 연지 1개소 와 금번에 발굴조사하고 있는 고대지 1개소가 있으며, 이 성의 GPS측 량 결과 총길이가 680m, 내부 면적이 30,622㎡로 계측되었다. Ⅳ. 조사성과 이번 월평산성 발굴조사를 통하여 얻은 성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월평산성의 축조시기는 출토유물로 보아 삼국시대 백제 사비도읍 기에 축성된 것으로 판단되며, 통일신라시대까지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성벽 기초 다짐층 아래의 성벽 외부에 조성된 토축유구 의 상층에서 고구려 토기가 출토되어 이 성벽 축조의 상한연대를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성벽 축조방법은 전체적으로 할석+점토층으로 다짐하여 기초를 만 들고→ 이 기초 위에 중심부는 판축하여 조성하였는데 하부는 할석+점 토층으로 상부는 마사토+점토를 시루떡 같이 다져 쌓았으며→성벽의 외면에 장방형으로 다듬은 돌을 안으로 들여 쌓아 축조하였다. 즉 성 벽 외면에 돌로 조성된 석축은 최후까지 사용된 성벽이다. ▣ 고대지 축조 방법은 전체적으로 할석+점토층으로 다짐하여 기초를 만들고→이 기초 위에 중심부는 마사토+점토층으로 동쪽 외면쪽은 점 질토로 판축하였으며, 북쪽 즉 성안 쪽은 할석으로 석축되었다. ▣ 성벽과 고대지의 축조는 성벽을 먼저 쌓은 다음 성벽을 일부 덮으 면서 조성되었는데, 이러한 선후관계가 축성시 순서 차이에 의하여 나 타난 현상인지 아니면 후에 고대지의 필요에 의하여 후에 보축한 것인 지는 확실하지 않다. ▣. 유물은 앞으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지만 대체로 백제의 웅진도읍 기에서 나말여초까지의 토기편, 기와편, 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 성벽 토층조사에서 성벽 조성을 위한 기초다짐 아래에서도 2시기 의 문화층이 조사되었다. 즉 생토면에서 조성된 유구층→성벽의 외부 에 조성된 토축유구와 관련된 층→성벽과 관련된 층 순으로 유적이 조 성되어 성벽 축조 이전에 문화층이 존재하였음이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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