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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부여간 도로확장 및 포장구간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약보고서

2001-06-08 12: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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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부여간 도로확장 및 포장구간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약보고서 1.조사개요 대전지방국토관리청에서 시행하는 구룡―부여간 도로확장 및 포장공 사 구간 중 扶餘郡 九龍面 九鳳里 일대 2,025평에 대해 우리 백제연구 소에서는 2000년 9월부터 2001년 5월까지 총 8개월간 발굴조사를 실시 하였다. 이 지역은 1999년 국립부여박물관에 의해 문화재 확인을 위한 사전 지표조사가 이루어진 바 있으며, 2000년 2월 현재의 발굴지역에 대해 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2. 조사내용 ⑴층 위 기본적으로 조사범위내에서 확인된 기반토는 고토양층이며, 그 위에 녹회색점토층이 전반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녹회색점토층에 대한 토양 분석이 진행 중이어서 확언할 수는 없지만, 토양내에 있는 구리성분 (Cu)의 영향으로 녹회색 내지는 옥색을 띠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 상부 에 제1경작층이 형성되어 있는데, 전반적으로 암회색점토층의 단일 층 위로 파악되나, 조사범위의 동쪽지역에서 회색사질토를 중심으로 하부 에 회색점토층과 황회색점토층으로 구분되어 경작시점의 차이를 나타 내고 있다. 회색사질토는 범람에 의한 단기간내의 부분적인 퇴적 결과 로써 판단된다. 제1경작층과 제2경작층 사이에는 국지적으로 복잡한 퇴적양상이 확인되며, 제2경작층은 명회색사질점토층과 암회색점토층 의 양상으로 조사범위 전반에 걸쳐 형성되어 있다. 제2경작층 상부에 는 암갈색점질토와 녹청색점토로 구성된 제3경작층이 부분적으로 확인 되며, 전반적으로 제2경작층과 제3경작층은 범람에 의한 사질토의 퇴 적으로 인해 폐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국지적으로 밭경작 유 구와 관련된 암갈색사질점토층이 확인되며, 암갈색사질토와 표토가 그 상부에형성되어 있다. ⑵ 밭경작 유구 ①A지구 밭경작 유구는 조사 범위 내의 북편과 동편에서 확인되었으며, 밭고랑 이 모두 동서방향으로 설치되었다. 고랑의 폭은 약 50㎝ 내외이며, 이 랑의 깊이는 대략 10~20㎝이다. 동편에서 확인된 유구의 경우 이랑 내 에서 직경 15㎝ 내외의 소형 수혈들이 관찰되었으며, 백제토기편이 수 습되었다. ②B지구 중앙 기준토층 북측 상단부 지표하 100cm 정도에서 확인되었다. 전체 면적 50㎡로 잔존한 고랑과 이랑의 길이는 1500cm이다. 밭은 수로에 의해 둘러싸여 있으며 수로 우측, 밭의 서측부분은 후대의 교란에 의 해 대부분이 파괴된 상태로 확인되었다. 잔존한 밭의 형태는 남측의 수 로와 접하는 부분은 짧은 편이며 북으로 갈수록 이랑과 고랑의 길이가 길어지고 있다. 밭의 평면형태는 직선적으로 충대지역까지 이어져 확인된다. 고랑과 이랑은 파상형을 이루고 있으나 고랑내부는 유수에 의한 침식이 일부 이루어져 있는 상태였다. 고랑과 고랑의 간격은 대부분 일정한 편이 다. 이랑에서는 식재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점상열이 확인되는데 대부분 이 원형과 부정형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유수에 의한 사질토가 대부분 퇴적되어 있다. 일부 열상의 흔적이 확인되나 홍수범람 퇴적시 쓸린 흔 적으로 추정되며 식재와 관련된 것으로는 판단되지 않는다. 밭을 둘러싸고 흐르고 있는 수로는 조사구역 중앙부에서 반원형으로 완만하게 굴곡지어 충대조사구로 이어져 확인되었다. 확인된 수로의 형태는 단면 U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바닥은 굴곡지게 확인되었다. 수 로는 중층 삼국시대추정 수전의 수로에서 계속되어 사용된 것이 토층 상 확인되었다. 수로와 밭과의 관계는 불명확하나 동일한 층위상에서 중복없이 확인되는 점을 통해 동시기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⑶제3경작면 ①A지구 층위상으로 밭경작층 아래 약 10㎝ 두께로 제3경작면이 형성되어있으 며, 평면상으로는 조사 범위의 남한계로부터 약 15m 정도까지 분포하 고 있다. 제3경작면에서는 둑 시설과 발자국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둑 은 폭 30~50㎝, 높이 약 5㎝ 정도로 확인되었고, 둑 사이의 간격은 대 략 6m이다. 전체적으로 동서방향으로 형성된 2개의 둑과 남북방향으 로 형성된 1개의 둑이 조사되었으며, 현재로선 남북방향으로 설치된 둑 이 조사범위 내에서 확인된 제3경작면의 서한계인 듯 하다. 또한 평면 형태에서 부분적으로 약간의 굴곡이 형성되어 있어 밭으로써의 기능 또는 밭과 논으로써의 복합적인 기능도 상정해 볼 수 있다. 조사과정에 서 소량의 백제토기편이 확인되었다. ⑷제2경작면 ①A지구 수로와 함께 조사범위 전지역에서 유구가 확인되며, 경작층 상부에 10㎝ 내외의 사질층이 광범위하게 퇴적되어 있어 범람에 의해 단번에 폐기되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수로는 동서방향으로 설치되어 있으며, 지형상 물의 흐름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추정되고, 전반적으로 폭은 약 1m, 깊이는 약 20㎝이다. 수로 내에서는 2개의 웅덩이가 확인되었는데, 이는 물을 일정 정도 저장하 는 동시에 유속을 감소시켜 수온상승의 효과를 위한 시설로 판단된다. 웅덩이의 깊이는 중앙 balk를 중심으로 서쪽의 것과 동쪽의 것이 수로 의 바닥면 보다 약 40㎝ 정도 낮으나, 동쪽 것의 면적이 상대적으로 크 게 형성되어 있다. 내부에서는 말뚝 등과 같은 특별한 부속시설은 확인 되지 않았으나, 웅덩이의 상부에서 경작면에 물을 직접적으로 공급했 던 입수 시설의 흔적을 미약하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수로는 경작면 보다 평균적으로 20~30㎝ 정도 낮게 설치되었으나, 수로와 경작면 사 이에 폭 1m 가량의 둑을 경작면보다 25~40㎝ 정도로 높게 설치하여 수 위를 경작면 보다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경작면과 관련하여 둑과 발자국이 확인되었는데, 둑은 폭이 약 30㎝, 높이가 3~5㎝로 둑을 기준으로 한 논의 단위 구획은 대략 8×6m을 나 타내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발자국은 전반적으로 남북방향으로 열 을 지어 나타난다. 또한 각각의 단위구획에 대한 입수구와 배수구가 약 50㎝의 폭으로 수로와 평행한 동서방향의 둑에 설치되어 있다. 제2 경작면에 대한 추가적인 하강과정에서 지름 1m 가량의 원형수혈이 확 인되었는데, 암회색점토가 퇴적되어 있었으며, 내부에서 토기편이 출 토되었다. ②B지구 상층 밭유구 조사완료 후 삼국시대로 추정되는 논유구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중층수전은 2개의 논유구층이 확인되었으나 하층 수전은 상층 수전의 경작으로 인해 논둑의 검출이 어려울 것이 예상되어, 홍수 범람 퇴적사에 의해 상태가 양호한 상층부 수전을 조사하였다. 조사결 과 중앙 기준 토층 주위 13m범위에서 모래가 확인되었으며 서측과 남 측으로 갈수록 모래의 양은 현저하게 감소하여 수전 상단의 토층과의 구분이 불명확해졌다. 수전은 조사구역 전 범위에서 확인되는데 수로와 수구, 둑과 수전면 내 족적 및 우족적등이 상태가 양호하게 보존되었다. 수로는 조사구역 북측에서 2기가 확인되었다. 1호수로는 상층 밭유구 에서 확인된 수로와 동일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는 중층에서 확인 된 수로가 후대의 밭유구까지 계속적으로 사용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 었다. 조사범위에서 확인된 1호수로는 폭 1m 정도, 길이 18m로 충대조 사구까지 연속되어 이어져 있다. 이 수로는 수전면에 물을 대기 위한 주 수로로 추정된다. 2호수로는 1호수로 아래측에서 동일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며, 수전 시작부 둑상에서 확인된다. 이 수로는 수전에 직접적인 용수를 공급하 는 역할을 하였으며, 홍수 범람시 상당한 토사의 유입으로 인해 수전 의 일부를 파괴한 원인이었다. 2호수로에서 확인된 수전면내 용수 유입 장소는 2군데이며 서측과 수전중앙부에서 확인된다. 수로와 관련된 수 전의 용수유입의 증거로 북측 수전파괴면에서 110cm떨어져 물이 떨어 져 땅이 파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돌이 확인되었다. 둑은 수전을 둘러싼 주요 시설물로써 주둑과 수전면내 구획 시설물인 소둑으로 나눌수 있다. 주둑은 수전면내 북측에서 확인되며 수전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수 로시설의 역할과 농로로서의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주둑은 수로의 방향과 동일하며 서북측 일부에서 주둑의 일부로 추정되는 것 이 확인되나 정확한 성격은 알 수 없다. 소둑은 수전면내 전 지역에서 확인되며, 지형을 고려하여 등고선 방향 과 일치하여 설치되어 있다. 둑의 규모는 높이 8cm, 폭 30cm 내외로 대 부분이 수전면을 구획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둑 에서는 둑을 절개하여 아래 수전면 또는 옆 수전면으로 용수의 입・배 수구 역할을 하였던 수구가 확인되었다. 수구는 논둑을 완전히 절개하 지 않고 둑 높이의 1/2를 절개하였다. 용수를 받기 위한 수구 아래면에 서는 물에 의해 파인 흔적이 확인되기도 한다. 수전면은 전체 조사지역에서 확인되며 여러 형태를 지닌 수전면이 조 사되었다. 조사구 동측과 남측 일부를 제외한 지역은 홍수퇴적시 점토 의 퇴적에 의해 상당부분 둑과 수전면의 검출상황이 용이하지 않았다. 수전면은 논둑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일부 홍수범람에 의해 파괴된 흔 적도 확인된다. 수전면내에서는 수로와 족적(사람, 동물), 도구흔, 고랑 과 이랑 등이 확인되었다. 수전면내 수로는 둑 곁을 흐르는 것과 수전 면내를 절단하고 흐르는 것이 확인되었다. 족적은 홍수사에 의해 보존 상태가 양호하게 확인되었으며 규칙적인 현상이 관찰되기도 하였다. 주로 둑 근처에서 집중되어 불규칙하게 확인되었는데 이는 홍수시 파 괴되는 둑을 보강하기 위한 일련의 행동으로 추정된다. 족적 유구내에 는 굵은 사립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내부토 제거후 확인된 족적은 길이 25cm. 폭 10cm의 크기로 발자국의 흔적또한 뚜렷히 확인되었다. 이는 당시인의 형질학적 모습을 복원하는데 기여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또 한 족적은 사람의 족적외에 우족적도 확인되었다. 이번 조사에서 특이한 점으로 수전면내 고랑과 이랑의 형태가 확인되 었다. 이는 논밭의 전환 이용의 흔적으로도 추정할 수 있으나 좀 더 신 중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고랑과 이랑은 둑과 직교하여 설 치되었으며 폭 100cm 내외로 정연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수전면내 도구흔은 동측수전면에서 확인되었다. 동-서를 장축으로 하 여 길게 형성되어 있으며 정확한 도구의 흔적은 알 수 없다. 쟁기의 끝 부분일 것으로 추정되나 좀 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수전에서 출토된 토기는 연・경질의 토기편이 출토되었으며 조성연대 에 대한 추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삼국시대 수전층은 유기물이 다량 포함된 수전으로 경작도중 홍수에 의해 급작스레 매몰되었으며 수전면에 대한 토양 분석이 실시되어 앞 으로 이에 대한 결과를 통해 이 당시의 생활상을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 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분석결과는 추후 보고서에 게재할 예정이다 ⑸제1경작면 ①A지구 제1경작면은 출토된 유물의 양상으로 미루어 청동기시대의 수전면으 로 이해된다. 전반적인 구조는 제2경작면과 유사한 수로 및 둑으로 구 성되어 있으나, 수로를 중심으로 한 수전면의 확장양상을 비교적 명확 히 확인할 수 있다. 수로는 7개가 확인되었는데, 모두 내부에서 모래퇴 적 양상을 보이며, 약간의 시간차를 상정할 수 있으나, 이는 수전면의 사용 동시성 내에서 수전면의 확장과정과 관련된 활동의 결과로써 이 해된다. 제1수로는 폭이 약 80㎝, 깊이는 약 5㎝ 내외로 동서방향으로 진행하 다가 남동쪽으로 전향하는 것이 특징이다. 수로의 내부에는 전반적으 로 굵은 모래가 퇴적되어 있으며, 이 수로를 중심으로 현재의 조사범위 내에서 초기 수전면이 조성된 듯 하다. 제2수로는 전반적으로 제1수로와 동일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으나, 제1 수로가 남동쪽으로 전향했던 지점에서 분기되어 남서쪽으로 진행한 다. 이는 수전면의 확장을 위해 수로의 방향을 바꿨던 결과로 상정할 수 있다. 즉 제2수로를 설치하면서 수전면은 조사범위내의 중앙 trench 동쪽지역으로까지 확장되었으며, 다시 제3수로를 설치함으로 써 수전면이 다시 북으로 어느정도 확장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제3수로는 구조적으로 깊이가 낮아 수로의 기능에 있어 취약한 양상 을 나타내고 있는데, 후퇴적과정에 기인한 결과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 만 이와 같은 양상을 통해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사용되었던 것이며, 이 를 극복하고 수전면의 본격적인 확장을 위해 제4수로 및 제5수로가 설 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4수로 역시 폭이 50㎝ 미만으로 선행하는 수로들에 비해 상대적으 로 좁으며, 비교적 단기간에 활용된 것으로 이해되나, 제5수로로 확대 되면서 수전면의 주된 수로로서의 기능을 갖추게 되는 것으로 판단된 다. 제5수로는 폭이 약 1m 내외이며, 깊이는 약 7~10㎝로 수로 중 가장 대 형화된 것으로 동서방향으로 진행하다가 동남쪽으로 휘어져 다시 동남 방향과 서남방향으로 갈라진다. 특히 갈라지는 부분의 수로 바닥에 직 경 10㎝ 내외의 주공이 설치되어 있는데, 총 32개로 2개가 연접해서 하 나의 단위를 이루는 듯 하다. 이는 수로가 갈라지는 부분의 구조적 취 약성을 극복하기 위해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수전면으로의 입 수시설이 확인되었는데, 입수시설이 설치된 수로 바닥에 웅덩이를 조 성하였다. 웅덩이와 입수시설에서는 총 8개의 주공이 조사되었는데, 이 역시 수로 및 입수시설간의 보강을 위한 시설로써 판단된다. 입수시 설이 설치된 부분은 부분적으로 후대의 활동에 의해 교란이 되어있다. 입수시설과 수전면이 연결되는 부분에서는 물에 유입에 의한 사질토 의 부분적 퇴적양상이 비교적 명확하게 확인되고 있다 제6수로는 제5수로와 거의 나란하게 조성된 것으로, 반월형석도 1점 과 석기 반제품 1점, 타제석부 1점, 마제석촉 1점 및 소량의 무문토기편 이 출토되었다.. 제7수로는 제6수로의 폐기 후에 설치되면서 제6수로 의 굴광선을 파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둑 시설은 제5수로의 방향이 동남쪽으로 휘어져 진행하는 지역에서 확 인되었으며, 평균적으로 폭은 10㎝ 내외이고 높이는 3~5㎝이다. 부분 적으로 확인되어 구획의 정확한 양상을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단위 구 획의 남북방향은 대략 3m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쪽지역의 제1경작층은 부분적으로 사질층에 의해 다시 2개의 경작 층으로 세분되는데, 이중 상부의 경작면이 조사범위내에 전반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제1경작면과 관련되며, 하부의 경작면은 그 이전단계의 국지적 농경활동의 결과로 이해된다. 현재 확인된 시설로는 둑이 유일 하며, 폭은 약 25~30㎝로 상부의 경작면에서 확인되는 둑에 비해 넓다 ②B지구 중층 삼국시대 수전下 30cm에서 확인되었다. 수전은 수로와 둑, 수전 면등과 수전면내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부정형의 흔적등이 확인되었 다. 수전은 최소 3회의 경작(상, 중, 하층)이 이루어져 있는 것이 층위조 사 결과 확인되었다. 조사는 상층 수전을 덮고 있는 사립토를 제거하면 서 수전면내 둑과 그 외 제반시설들의 검출을 시도하였다. 조사결과 중 앙 기준토층 내 일부 주위에서 사립토가 확인되었으나, 대부분은 상층 삼국시대 수전면 조성과 퇴적상 점토질의 퇴적이 이루어진 상태였다. 따라서 단면상 확인되는 둑의 흔적이 미비하였으며, 평면조사시 둑 검 출의 어려움이 예상되어 중층 수전을 조사하기로 결정하였다. 중층수전은 북측면의 수로 방향에 주의하며 제토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중층수전에서는 상, 중, 하층 수전과 관련된 수로들과 후대에 유 입된 수로들이 중첩되어 확인되었다. 수로는 조사구 동측에서 확인된 수로를 1호로, 서측에서 확인된 수로 를 2호로 명명하였으며 1호 수로와 접해 일직선상의 지선수로들이 확 인되었다. 1호수로는 조사구 동측에서 확인되었으며 상층 수전의 용수 유입원으로 추정된다. 수로내에서는 직경2m의 두 군데의 부정형의 구 덩이가 확인되며, 2호수로에서 확인된 구덩이들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구덩이 내부에서는 무문토기편과 석도편등이 출토되 었다. 구덩이 우측으로는 지선수로들이 확인되었으며 충대조사구 북측 에서 일직선으로 연장되어 확인되었다. 2호수로는 길이 11m, 폭 50cm로 북측에서 남측으로 흐르고 있다. 평 면은 약한 S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중층수전내 직접적인 용수유입 수로 이다. 수로에서 확인된 시설로는 북측벽에서 5m떨어져 직경 80cm의 원형의 구덩이가 확인되었으며, 이곳에서는 반원형 형태의 갈판과 무 문토기편등이 출토되었다. 갈판은 우측 지선수로를 막고 세워져 확인 되었으며 용수유입을 유도하는 수문의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 다. 구덩이에서 남측으로 2cm떨어져 직경 1m의 또 하나의 구덩이가 확 인되었는데 이곳에서는 무문토기편과 나무를 종으로 박은 흔적이 확인 되어 작은 보시설의 일종으로 추정된다. 2호수로는 하층 수전이 매몰 된 후 중층수전을 개전하면서 방향을 바꾸어 재사용한 것으로 추정된 다. 수전면은 총 14면이 확인되었으나 잔존한 상태와 수전면의 둑 검출상 황으로 보아 유적 전체내에 상당부분의 수전면이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전의 구획은 3×4m(가로×세로)로 소구획이며 북측에서 남측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형태를 띠고 있다. 수전으로 유입되는 용수 는 두군데에서 확인되는데 2호수로에서 직접적으로 유입되는 서측부분 과 동측으로 용수의 유입을 유도한 부분이 있다. 수전면내에서는 부정 형의 사질토가 매토된 부분이 확인되는데 족적의 일부로 추정된다. 둑은 폭 60cm, 높이 3cm로 농로로서의 기능을 가진 것이라기 보다는 구획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둑 일부에서는 원추형의 말뚝을 박아 보강한 흔적도 확인된다. 둑은 일자형으로 둑의 일부를 절개하고 아래층으로 용수를 유도한 수구의 흔적도 확인되었다. 일부 수전면내 에서는 굴곡이 심하게 형성된 부분도 확인되나 정확한 성격은 알 수 없 다. ⑹환상집수유구 환상집수유구는 제1경작면 하부에서 확인되며, 내부퇴적이 완료된 이 후에 제1경작면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층위상 직접적인 관계를 설정하 는데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폭은 약 3m 내외이며, 깊이는 대략 50~60㎝ 정도로 내부에 다양한 크기의 목재들이 불규칙적으로 퇴적되 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유구 내부에서 확인된 목재들은 대부분 자연 목인 것으로 관찰되나, 일부에서 1차적인 가공의 흔적이 보이는 듯 하 다. 즉 자연상태의 목재는 그 단면형태를 어느정도 유지하며 부식화가 진행되는데, 일부 목재들의 단면형태가 장방형 내지는 세장방형을 보 이며, 절단면 역시 매우 정연한 형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출토 목 재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는 BC 1450±40(1σ)이며, 현재 추가적인 목 재 시료의 분석이 진행중이다. 출토 유물로는 반월형석도 1점이 유일한 데, 렌즈형 단면과 外彎刃의 양상이 특징적이다. 환상집수유구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제1경 작면을 조성하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저습지의 구조적 취약성을 극복하 기 위한 매립행위의 결과로 해석될 수 있는데, 굴곡이 있는 지점을 매 립함으로써 지형의 평탄화를 기대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수전면 과 관련된 물 공급시설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현재의 조사범위 내에 서 환상집수유구와 관련된 직접적인 수전면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위 치를 고려해 볼 때 조사범위의 남쪽에 그와 관련된 수전면이 있었을 가 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환상집수유구의 퇴적양상에서는 물에 의한 사질토의 퇴적이 전혀 확인되지 않고 목재를 포함한 암회색점토층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는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물을 이용하기 위한 것이 라기보다는 지하수를 활용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유구 내에서는 미 약하나마 湧出水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유구를 구성하고 있는 녹회색 점토가 용출수에 의해 회색으로 변화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이는 녹회 색점토내에 포함되어 있는 구리성분이 산화되는 것으로 판단되며, 내 부퇴적토와도 어느정도 상관성이 있을 듯 하다. 또한 내부에서 출토된 반월형석도의 존재 역시 농경활동에 대한 환상집수유구의 역할을 추정 하는데 하나의 단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4.조사성과 및 의의 이 지역은 청동기시대 이후 현대까지 농경지로 활용되고 있으며, 주변 에 여러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어 농경사회의 형성 및 전개과정을 이해 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번의 조사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최초로 수전경작 행위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점은 제1경 작면 하부에서 확인된 환상집수유구 및 그 곳에서 출토된 반월형석도 로 보아 대략 기원전 1400년경으로서, 이는 남한지역에서 청동기문화 의 시작시점 및 논농사의 개시시기에 대한 새로운 자료가 된다. 2.제1경작면은 출토 유물로 보아 송국리유형 단계의 논으로 판단되는 데, 이 무렵의 논농사 기술은 환상집수유구의 존재로 시사되는 습전 농 경으로부터 더욱 발달된 관개농경으로 진전되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즉 북쪽 구릉의 계곡부에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보다 안정된 수 원으로부터 물을 공급받기 위해 관개수로를 설치함으로써 넓은 면적 의 논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무렵의 구체적인 시점은 출토 유물만으 로는 확정하기 어려우나, 현재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위한 시료를 분 석 중에 있어 그 결과에 따라 특정이 가능할 것이다. 3.제2경작면은 굴토 중 드러난 수혈에서 채집된 토기로 보아 대략 3C 후반~4C 전반경 이후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수로의 분포는 앞의 제1경작면과 크게 다르지 않아 대체로 청동기시대 송국리유형 이 후의 관개 및 배수 등 논농사의 기본적인 수리기술은 거의 완비된 채 큰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4.제3경작면에 해당되는 부분은 발굴지역의 남동부에서 주로 확인된 것으로 이 무렵의 수로 퇴적층 출토 유물로 보아 대략 웅진기에 해당하 는 것으로 판단된다. 수로의 배치는 앞선 제2경작면과 차이가 없다. 이번 조사를 통해 밝혀진 이상의 사실들이 가지는 의의는 무엇보다 청 동기시대이래 생계경제의 근간이 되었던 본격적인 논농사의 출현시점 에 대한 단서를 확보한 점으로서, 그 시기는 기원전 15세기 무렵까지 소급될 가능성이 극히 높다는 점이다. 다음은 그러한 논농사의 전개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근거를 얻은 점으 로, 최초 저습지의 높은 지하수면을 이용해 이루어지던 습전 농경단계 로부터 점차 미고지 주변부의 건전으로 경작면이 확대되고 있음을 확 인할 수 있었다. 그러한 경작지 확대과정에서 보다 수량이 풍부하고 안 정된 계곡상부의 수원을 개발하고, 그것을 끌어들이기 위한 긴 관개수 로를 개착하였음을 알 수 있었는데, 그 시점은 송국리유형 단계였다. 마지막으로 이처럼 청동기시대 후기(송국리유형단계)에 이미 확립된 관개를 이용한 논농사 기술은 이후 큰 변화 없이 백제시대에 까지 지속 되고 있는 점에서 청동기시대 논농사 기술의 발달된 수준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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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2001년도 부소산성 발굴조사 현장설명회의자료 운영자 2583 2001.07.06
116 경주 황성동 537-1번지 발굴조사 운영자 2175 2001.07.04
115 부여 부소산성 현장설명회 (7/3) 운영자 798 2001.07.04
114 포항시 남구 원동 토지구획정리 제3지구내 문화유적 운영자 2033 2001.06.26
113 포항 흥해읍청사 주변도로확장공사구간내 문화유적 운영자 2096 2001.06.26
112 대구 상동 우방아파트건설부지 현장설명회( 6/23) 운영자 904 2001.06.25
111 무안 국제공항 건설지역내 문화유적 현장설명회(6/20) 운영자 733 2001.06.25
110 용인 죽전 유적 현장 설명회 (6/14) 운영자 798 2001.06.15
109 용인 죽전 유적 운영자 2390 2001.06.14
108 사적 259호 강화 선원사지 운영자 2093 2001.06.13
107 선원사지(禪源寺址, 사적 제259호) 현장설명회(6/12) 운영자 720 2001.06.13
106 울산 柏川유적 운영자 1769 2001.06.12
105 대전 석봉정수장 건설사업 지역의 구석기유적(용호동) 3차 발굴조사 운영자 2091 2001.06.11
104 석봉정수장 건설구간내 구석기유적 현장설명회(6/11) 운영자 777 2001.06.11
103 기흥읍 구갈리 백제시대 대규모 유적 발굴 운영자 2433 2001.06.11
102 기흥 구갈리(器興 舊葛里) 유적 현장설명회 (6/9) 운영자 760 2001.06.10
>> 구룡―부여간 도로확장 및 포장구간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약보고서 운영자 2316 2001.06.08
100 양주 관아지(楊洲 官衙址) 제2차 발굴조사 운영자 2207 2001.06.08
99 수도권광역 상수도 6단계 구간내 문화유적 시굴조사 운영자 2105 2001.06.08
98 대전 월평산성(月坪山城) 발굴조사 운영자 2374 2001.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