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소식
國立慶州博物館 共同溝敷地 發掘調査
2001-06-05 10:06:00
조회 1935
1. 調査目的 및 經過
국립경주박물관은 관내에 新館을 건축중이며 2001년 완공예정으로 신
관주변에 그 부대시설인 共同溝 설치를 계획하고 있다. 공사시 파괴될
지 모르는 매장문화재의 존재여부를 사전에 확인하고자 2000. 7. 5자
로 발굴조사에 착수(발굴허가기간 : 90일간)하였으며, 현재 유구 내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2. 調査團의 構成
조 사 단 장: 朴 永 福(국립경주박물관장)
지 도 위 원: 韓 炳 三(문화재위원,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池 健 吉(국립중앙박물관장)
鄭 澄 元(문화재위원, 한국고고학회장)
조 사 위 원: 洪 性 彬(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 ·安 在 晧(동국대학
교 교수)
책임 조사원: 高 敬 姬(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조 사 원: 朴 方 龍(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관)
鄭 聖 喜(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관)
李 漢 祥(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
朴 文 洙(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원)
3. 調査內容
1) 層位
발굴조사대상지는 조사전까지 박물관 내를 통행할 수 있는 시멘트도로
와 석조물을 전시하는 정원으로 꾸며져 있었다. 표토를 제거하고 약 30
~50cm 하강했을 때 부분적 으로 生土面이 노출되기도 하고 서쪽으로
가면서는 盛土層이 확인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남북으로 설정한 트
렌치에서는 약 3~4m가량 하강했을 때 생토면이 노출되었 으며, 그 상
부의 흙은 1970년대 초반경 국립경주박물관 신축공사를 하면서 중장비
로 쌓은 것이었다. 이 유적의 地形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면서 낮아지
는 완만한 東高西低를 이룬다. 서쪽의 낮은 지대는 粘土를 다져 쌓아
平坦面을 만들었는데 이 점토에는 다량의 木炭과 燒土 알갱이를 섞어
넣었다.
2) 遺構
(1) 靑銅器時代 住居址: 1基 통일신라 우물지 주변에서 확인되었다. 主
軸을 南北으로 하였고 바닥은 단단하게 불다짐하였다. 바닥에서 무문
토기 2개체분이 출토되었다. 토기의 저부는 지름 13.5cm 정도로 큰 편
인데, 바닥에는 成形時 생긴 나뭇잎 흔적이 뚜렸하게 남아 있다. 통일
신라 1호 竪穴에 의하여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
(2) 統一新羅時代 竪穴: 3基 1호 수혈은 평면형이 方形이며(1.7 X
1.8m) 약 30cm 아래부터 할석이 가득차 있다. 내부에서는 단각고배편
1점과 어망추 2점이 출토되었다. (현재 조사중) 2호 수혈은 평면형이
長方形(3 X 1.7m)이며 바닥에는 柱孔이 1개 확인되었다. 바닥면은 생
토를 수평으로 깎아 만들었고 바닥을 다진 흔적은 없다. 바닥면에서 출
토된 細頸甁에는 馬蹄形紋이 施紋되어 있어 7세기 후반대 이후로 편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수혈 埋沒土 위에 우물의 상부 敷石이 깔려 있
는 점으로 본다면 우물지 나 담장보다 先築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따라
서 우물지와 담장 등의 왕경유적의 연대 는 8세기대의 어느 시점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3호수혈은 청동기시대 주거지를 파괴하고 만들어
졌는데, 주축은 북서-남동향이다. 매우 일부만 남아 있고 남동쪽 바닥
이 북서쪽보다 조금 높다. 바닥면은 울퉁불퉁하며 지름 7~8cm 내외
의 柱孔이 몇 개 남아 있다.
(3) 統一新羅時代 王京遺蹟 建物址 기초 積心, 우물지, 담장과 道路遺
構로 구성되어 있다.
□ 王京遺蹟의 築造過程 建物이 들어선 곳의 舊地表는 道路를 비롯한
주변보다 지형이 꽤 낮기 때문에 건물을 세우려면 盛土하여 地盤을 높
히는 작업이 필요했던 것 같다. 盛土層의 평면조사에서 積心 이외의 遺
構는 확인되지 않으나, 원래의 지형을 노출하자 매우 많은 수의 크고
작은(직경 10~40cm, 깊이 10~30cm) 柱孔이 확인되었다. 이 주공은
열을 이루는 것도 일부 있으나 현재까지의 조사상황에서 보면 매우 무
질서한 분포를 보이고 있다. 주공의 내부 흙은 성토에 사용된 흙과 같
고 굳기가 단단하며, 토층단면상 주공은 생토면을 파고만들어졌기 때
문에 이 주공이 만들어진 시점은 盛土作業時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 담장: 10여m 생토면을 정지하여 만든 부분과 성토층의 일부를 절개
하고 만든 부분이 있다. 담장의 너비는 너비 130~140cm로 넓은 편이
다. 담장 기저부의 생토면은 약간의 요철이 있으나 흙을 메워 수평을
유지하면서 판석에 가까운 할석으로 쌓았다. 먼저 조금 넓게 최하단석
을 쌓고 그 다음 조금 들여서 내외로 2段에 걸쳐 들여 쌓아 기초부를 만
들었고 그 속은 흙을 다져 넣었다. 중간에 돌로 만든 排水用 暗渠施設
이 남아 있다. 처음 조사할 때 상부에서 많은 양의 割石이 불규칙하게
무너진채 검출되었는데 담장의 상부를 구성하였던 돌 가운데 일부였
던 것 같다. 담장은 南北向으로 곧게 약 10여m 가량 진행되다가 더 이
상 흔적이 확인되지 않는다. 아마도 담장은 여기서 서쪽으로 꺾여 현재
의 雁鴨池館쪽으로 西走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담장은 1974년에 안압
지관 북쪽의 대지에서 확인된 담장과 연결될 것으로 보이는데 안압지
쪽의 담장은 길이 20여m , 너비 1m 규모로 이번에 조사된 담장보다 너
비가 조금 좁다.
□ 建物址 積心은 5~6개 남아 있으나 원형을 유지한 것은 1개에 불과
하다. 외형은 方形을 이루며 대체로 가장자리의 선이 南北軸과 비슷하
다. 적심은 성토층 상면에 위치한다. 적심 주변에서 합 1점이 定置된채
출토되었는데 건물 축조시 埋納한 地鎭具일 가능성 이 있다. 이 토기
의 표면에는 圓紋이 連珠狀으로 연결된 縱長連續紋과 연속된 菱形紋
이 시문되어 있어 8세기의 전반경으로 편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건물
지는 현재 원형을 추정하기 어려을 정도로 파괴되어 있지만 적심의 위
치로 보면 몇차례에 걸쳐 건물이 축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月城의 외
곽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의 안쪽에 위치한 점을 고려한다면 궁궐의 부
속건물일 가능성이 있다.
□ 우물지 조사대상지의 맨 남서쪽에 위치한다. 원래의 지형이 조금 경
사져 있는데 우물지의 상부를 구성하는 석축시설도 자연지형에 맞게
조금 경사져 있다. 다른 우물지에 비하여 유존상태가 양호하여 상부의
方形石築과 그 주변의 排水路가 정연하게 남아 있다. 이 우물지는 내부
의 지름이 70cm에 불과한데 아래로 내려가면서 조금 넓어져 80~
85cm 정도의 넓이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약 7.5m 깊이까지 하강하면
서 우물내 뻘층에 대한 조사를 진행중이다. 내부에는 우물의 상부시설
로 보이는 다듬은 석재와 할석들이 가득차 있는 점으로 본다면 인위적
으로 매몰한 듯 하다. 내부에서는 지그재그상의 點列紋이 시문된 土器
片, 中國磁器片, 蓮花紋 및 忍冬紋 圓瓦當, 다수의 平瓦片이 출토되고
있다.
□ 道路遺構 담장이나 건물지에서 동쪽으로 약 40여m 떨어진 지점에
서 너비 5m 내외의 도로가 확인되었다. 주축은 거의 남북향이며, 주변
지형보다 약 10cm가량 오목하게 들어가 있다. 도로 바닥은 지름 5cm
내외의 밤자갈[栗石]로 가지런하게 깔았으며 南北向으로 여러 줄의 수
레바퀴흔이 남아 있다. 도로의 동쪽 가장자리에는 많은 양의 평와편이
도로를 따라가면서 깔려 있다. 이 도로는 1998년에 신관부지를 발굴하
면서 노출된 동서 및 남북도로에 비하면 그 규모가 1/3 이하 정도로 적
기 때문에 新館敷地 東西道路에서 派出된 소규모의 南北道路로 추정된
다.
4. 調査成果
1) 이번 조사에서 검출된 유구 중 담장과 건물지, 우물지, 도로유구는
신라 월성의 남쪽 일부분에 해당할 것으로 보여 신라왕경연구에 귀중
한 자료가 될 것으로 예상된 다. 특히 1974년에 발굴조사된 담장유구
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2) 특히 우물지의 경우 遺構의 상부를 구성하는 方形石築이나 排水施
設이 잘 남아 있어 신라우물지에 대한 연구에 좋은 자료를 추가할 수
있게 되었다.
3) 최근 慶州市內에서 新石器와 靑銅器時代 유적이 속속 조사되고 있
다. 지근거리에 위치한 財買井址 下層에서 청동기시대 住居址가 확인
된 바 있었는데, 南川邊의 청동기시대문화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계
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5. 會議時 檢討事項
1) 遺蹟의 性格에 대하여 - 이 유적에서 검출된 통일신라 유구를 月城
과 관련지울 수 있을지에 대한 검토 - 유적의 연대에 대한 검토
2) 遺蹟의 保存과 工事의 施行與否 - 도로유구, 우물지, 담장시설을 보
존하는 방법에 대한 자문
① 도로 ■ 현재 노출된 도로유구 10m 중 4m는 보존조치하고, 공동구
가 통과하는 6m에 한하여 도로유구를 밑으로 터널을 뚫어 통과하는 방
안 ■ 기록보존하는 방안
② 우물지와 담장시설: 현 위치에 보존하고 공동구는 유구가 없는 쪽으
로 옮기는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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