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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댐 수몰지구내 문화유적

2001-05-04 00:00:00
조회 2202
진안 갈머리 신석기시대 유적                               호남문화재연구원 I. 조사경위 및 방법 1995년부터 시작된 용담댐수몰지구내 3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하여 금강 상류지역인 진안고원내에서의 신석기시대 유적 존재 가능성은 간 헐적으로 확인되어 왔다. 금강의 지류인 정자천이 금강본류와 합류하 는 지점인 상전면 용평리, 여의곡유적과 안천면 승금리, 안자동에서도 지석묘 조사과정에서 즐문토기편이 확인된 바 있다. 한편 남북방향으 로 흐르는 정자천변의 충적대지상인 정천면 농산유적에서도 즐문토기 편과 함께 집석유구가 조사되었다. 조사지역인 갈머리유적과는 직선거 리 약 1㎞ 떨어진 지점이다. 갈머리유적이 알려지게 된 것은 2000년 5월 용담댐수몰지구내 3차 발 굴조사를 실시하고 있던 전북대학교 박물관팀에 의해서이다. 현지민 의 작물재배를 막기 위해 수자원공사에서 경작지의 일부를 파낸 구덩 이에서 다량의 즐문토기편과 굴지구, 석촉을 비롯한 석기 등이 수습되 었으며, 토취장으로 사용되었던 갈두마을 입구쪽의 도로 동측 단애면 에서는 주거지 단면으로 판단되는 토층과 함께 태선침선문계열의 전면 시문토기편, 호형토기편, 이중구연토기편등과 함께 갈돌, 석촉, 굴지 구 등의 석기류와 탄화된 도토리가 수습되었다. 따라서 유물이 수습된 지점 및 지표상 관찰을 통한 유적의 범위는 795번 지방도를 따라 남측 갈두교에서부터 북측 끝은 갈두마을 입구까지이며, 정자천이 곡류하 는 충적대지상이다. 금번 조사는 용담댐수몰지구내 4차 발굴조사로 2000년 8월 1일 진안군 과 주관교인 전북대학교 박물관이 계약을 체결함에 따라 8월 3일부터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사기간 중 3회에 걸친 태 풍의 북상과 잦은 게릴라성 폭우로 인하여 조사 진행은 더딜 수밖에 없 었으며, 조사지역에 심어져 있던 콩, 깨 등의 경작물 문제를 현지민과 협의해 나가면서 조사지역을 확장해 나갈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었 다. 또한 유물포함층이 느타리버섯장 하부로 연장됨에도 불구하고 버 섯장의 보상문제가 경작민과 수자원공사간에 해결되지 않아 이 지역 에 대한 조사는 진행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유적 전체가 동일한 지형조 건을 갖추고 있지만 조사순서에 따라 느타리버섯장 남측을 Ⅰ지구로 하였으며, 10월 들어서야 조사가 진행된 북측을 Ⅱ지구로 명명하였다. Ⅱ지구에 대한 것은 아직 제토 작업중에 있으므로 이번 현장설명회 자 료에 싣지 않았다. 발굴조사는 전체지형과 층위파악을 한 후에 현재 경작층과 교란된 층 을 포크레인으로 전면 제토하였다. 그리고 수자원공사에서 깊게 굴토 한 지점을 이용해서 유적 하부 층위파악을 위한 Trench를 2개소 설치 하였다. II. 조사내용 갈머리유적은 해발 241m의 충적대지상에 위치한다. 동측으로는 정자 천을 사이에 두고 聖主峰(해발 466m)을 중심으로 가파른 산악지형이 남북으로 뻗어있으며, 서남측은 해발 260∼290m 내외의 비교적 완만 한 구릉지대이다. 신석기시대 단일유적이며, 현재까지 확인된 유구는 주거지(?) 3기와(추정 2기 포함) 집석유구 46기, 성격미상유구 3기 등 이 있다. 이들 유구 중 성격파악이 모호한 것은 현재 내부조사를 진행 하지 못하였거나 진행중에 있다. 유적이 형성된 면은 현재의 강 바닥면 에서부터 4회 이상의 범람이 있었으며, 마지막 범람으로 형성된 모래층 으로 밝은 갈색이며 지점에 따라 약간의 고저차는 있다 1. 주거지 주거지로 판단되는 유구는 총 3기이다. 1호는 수혈윤곽선과 내부 Test Trench 조사만 진행된 상태이다. 남아 있는 서벽의 윤곽선으로 보아 남북방향이 13.6m의 대형주거지로 생각 되나 윤곽선의 중간부분이 약간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어 중복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동측에는 자갈층이 노출되어 퇴적토의 윤곽선이 가장 잘 남아있는 곳의 폭이 1.9m 밖에 되지 않는다. Test Trench상에서 관찰된 바닥면은 불다짐 처리를 하였으나 내부퇴 적토는 5㎝ 내외로 얇다. 상면 퇴적토 제거와 정리작업시에 다른 지역 에 비해 다량의 토기편이 수습되었으며, 일부는 개체 군집을 이룬 상태 에서 노출되었다. 북서측 수혈윤곽선에서 동측으로 약 5m 떨어진 지점에는 지름 60㎝의 소토면이 확인되었으나 수혈윤곽선이 연결되지 않고 주변에 자갈층이 노출되고 있어 유구 내부 노지 시설이었는지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어 렵다. 2호는 29∼37호 집석유구와 연접한 주거지로 노출 당시 내부에는 흑갈 색부식토가 충진된 상태였다. 그러나 부식토의 윤곽이 정형성이 없었 으며, 수혈 시설의 윤곽선으로 판단되지 않았다. 내부에 +자 Trench 조사를 선행하였으나 역시 굴광선은 확인할 수 없었으며, 중앙으로 가 면서 깊어지는 자연 경사면만이 확인되었다. 유구 중앙 바닥면은 주변 에 비해 약 30㎝ 정도 깊다. 중앙에는 지름 약 60㎝내외의 소토면이 확인되었고 강돌과 함께 다수 의 토기편이 개체 군집으로 출토되었다. 토기편은 구연에 삼각집선문 을 시문하고 그 아래에 횡주어골문이 시문된 것, 구연과 동체에 능형집 선문이나 격자문이 시문된 것, 금강식토기와 갈판, 갈돌, 석촉, 지석 등 의 석기가 출토되었다. 또한 소토면(노지) 주변에서는 소량의 목탄과 함께 탄화된 씨앗 1점이 수습되었다. 유구 남측에는 5기의 주공이 확인되었으며, 주거지 중앙을 기점으로 弧 狀으로 돌아가고 있다. 주공의 잔존깊이는 약 15㎝이다. 3호는 도로에 연접한 유구로 유적의 남측에 위치한다. 경작토와 퇴적토 인 흑갈색부식토를 제거하자마자 토기편과 함께 강돌이 정형성 없이 노출되었다. 토기편은 개체 군집을 이루고 있으며, 주변에는 소량의 목 탄이 혼입된 재층이 남북 5.5m, 동서 5m 정도 확인되었다. 하지만 2호 주거지와 마찬가지로 윤곽선은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 내부조사는 진 행하지 않은 상태이다. 2. 집석유구 46기가 확인되었다. 유적의 동측 즉 정자천 방향에서만 확인되는 것으 로 일부 집석유구는 정자천 방향으로 열을지어 시설된 듯한 인상을 주 기도 한다. 조사된 집석유구를 크기별로 구분하면 폭 1m가 넘는 대형이 17기, 80 ∼100㎝의 중형이 21기, 80㎝ 미만의 소형이 8기이며, 나머지는 유실 이 심하여 규모 파악이 어렵다. 대형으로 분류된 것은 대부분 유적의 남측에 위치하며, 중형과 소형은 유적의 중간과 북측에 위치한다. 평면 형태는 방형과 원형으로 나뉘어지며 방형이 8기인 반면 원형은 25 기이다. 축조 석재는 대부분 강돌을 이용하였으나 29호∼37호는 불에 의해 깨어진 강돌을 재 사용한 것도 있다. 29호∼37호는 각 집석간의 범위 파악이 모호할 정도로 중복되었다. 내부에서 재가 검출되는 유구는 1호, 3∼7호, 9호, 11호, 16호, 23호, 40 호, 41호로 주로 규모가 대형이다. 그리고 1호, 8호, 42호 집석유구는 내부 중앙에 면이 넓은 편평한 강돌이 열을 지고 있다. 14호는 유물의 출토가 빈약한 다른 집석유구와 달리 4∼5개체분의 이 중구연토기편과 갈돌 1점이 강돌사이에서 노출되었다. 집석유구 주변에서 갈판으로 사용되어 한쪽면이 마모된 큰 강돌이 보 이는데 37호 북측 약 80㎝지점에 1점이 놓여있고, 43호 주변에는 갈판 2점과 이중구연토기 1개체분이 노출되었다. 3. 성격미상유구 인두대의 강돌을 사용해 시설한 것으로 3기가 조사되었다. 1호와 2호 는 남북방향이 장축이나 3호는 동서방향이다. 노출된 상면에서 석곽처 럼 강돌을 열을 맞춰 시설한 것이나 주변에 넓게 재가 남아있고 불의 영향으로 돌이 갈라터진 점 등에서 공통점이 있다. 1호는 유적의 동측에 위치하며, 40호, 41호 집석유구와는 연접해 있다. 30×50㎝ 내외의 강돌로 시설을 한 것으로 강돌의 일부는 불의 영향으 로 갈라터지거나 깨어진 상태이다. 유구의 북서측에는 동서 3m, 남북 3.5m내외의 범위에서 재가 노출되었으며, 능형집선문토기편이 수습되 었다. 유구는 남북 430㎝, 동서 110㎝로 남북 방향이 긴 형태이다. 북 측 강돌 아래에서 굴지구 1점이 박혀 있었으며, 남측에는 파손된 갈돌 1점과 금강식토기편이 노출되었다. 유구의 내부는 마치 석곽처럼 강돌을 열을 맞춰 놓았는데 그 안쪽에는 약간 작은돌이 놓여있다. 현재 내부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상태이다. 2호이형유구도 1호와 동일한 양상이나 규모면에서 약간 작다. 남북 240㎝, 동서 90㎝로 남북방향이 긴 형태이다. 북측 강돌 사이에서 금강 식토기편이 출토되었고, 유구의 내부는 석곽처럼 열을 맞추었다. 3호와 의 사이에는 1호에서 나타난 것처럼 동서 4.2m, 남북 3.3m의 타원형상 의 재가 노출되었다. 현재 내부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상태이다. 2호이형유구 북서측 약 1m 지점에서 확인된 3호는 북서측 석재가 유실 되었으나 전체 평면형태는 석곽처럼 돌을 돌렸다. 남북방향의 Test Trench상에서 관찰된 유구내부 퇴적토는 흑갈색을 띠는 것으로 유구 바깥쪽의 명갈색사질토와는 차이가 있다. 내부조사는 진행하지 않은 상태이다. 4. 출토유물 1) 토기 토기는 유적 전반에 걸쳐 출토되었으며, 2호주거지와 14호집석유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파편으로 수습되었다. 출토된 토기의 종류도 다양 하며, 가장 많은 빈도를 보이는 것은 능형·삼각집선문과 이중구연, 봉 계리 3기의 격자문토기, 금강식토기 등이며, 일부 마연토기나 구순 안 쪽이 각목된 토기 등이 있다. 2) 석기 석기는 가장 많은 양이 출토된 굴지구를 비롯하여, 갈돌, 갈판이 주를 이루며, 석촉, 석부, 지석, 환형석기 등이 있다. 3) 기타 방추차 2점이 수습되었다. 이 중 1점은 전면에 자돌기법의 점열이 시문 되었다. III. 조사성과 1. 진안 갈머리 신석기시대 유적은 금강의 지류인 정자천변의 충적대지 상에 형성된 생활유적이다. 2.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정자천변에 3기의 주거지(?)와 46기의 집석유 구, 3기의 이형유구가 현재까지 조사되었다. 향후 조사의 진전에 따라 성격이 밝혀지겠지만 3기의 이형유구는 집석유구와는 다른 양상으로 평면형태나 구조상에서 매장유구일 가능성이 높다. 2. 갈머리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기존 금강유역의 신석기시대 유적조 사에서 출토된 토기나 석기조합상에서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남강, 섬진강수계의 거창 임불리, 합천 봉계리, 산청 강루리유적 등과 도 비교될 수 있는 자료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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