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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보물선의 마지막 대항해

2014-04-16 00:00:00
조회 496

신안 보물선의 마지막 대항해

바다를 누빈 중세 최고의 상인들

바다에서 건진 타임캡슐 ‘신안 보물선’

 

실크로드와 육로를 따라 오간 사람들에 의해 이미 중국 서북의 진(秦) 나라가 그리스・로마에 친(Chin) 또는 지나(China)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뒤로 1천여 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중국의 동남해안에서 바다로도 서양의 여러 나라들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로 말미암아 드디어 사람들의 세계관은 달라졌다. 무역선을 타고 나가 물건을 바꾼 상인들에 의해 동양과 서양은 한결 가까워졌고, 교역의 규모는 크게 확대되었다. 바다를 통해서 서로 다른 나라를 확인하고, 서로 다르기에 교환과 무역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안 사람들은 다름 아닌 ‘바다를 누빈 상인들’이었다. 이 시기를 세계사적 안목에서 ‘중세 해양실크로드시대’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해양실크로드는 서역과 육로로 교류하던 실크로드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더욱이 1279년 남송(南宋)을 멸망시키고 인류사에서 가장 큰 원 제국이 완성된 뒤로 중국인과 몽고인・고려인의 세계관은 크게 확대되었다. ‘높은 코에 푸른 눈, 노랑머리’ 서역인들이 중국에 쏟아져 들어왔고, 서아시아와 아랍 지역의 색목인(色目人) 중에는 개경과 서경 그리고 제주도를 비롯해 고려의 여러 곳에 들어와 장사를 하며 산 사람도 꽤 있었다. 11~13세기 개경에서 서해의 여러 섬을 무대로 활약한 고려의 송도상인들은 천주(泉州)와 경원(慶元) 등 중국 동남부 지역을 끊임없이 오가며 많은 물자와 사람을 실어 날랐다. 그리고 중국의 갖가지 정보를 고려에 전했으며 고려의 일들을 수시로 중국에 건넸다. 서역의 진귀한 물건들이며 이상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 관한 이야기도 고려 사람들에게 알렸다. 이렇게 동서양 문화 교류의 중심에는 누구보다도 먼저 세상 밖으로 나아간 중세 상인들이 있었다.

원 제국이 완성된 뒤로 40여 년이 지난 1323년 여름 어느 날, 전남 신안군 지도읍 서남쪽의 신안군 증도와 도덕도 사이에 한・중・일을 오가던 대형 무역선이 침몰하였다. 신안군에 난파한 배여서 그 배에는 신안선이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배는 고가의 진귀한 상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신안 보물선이라고도 부른다. 배의 주돛은 사라지고 선수 우현 상부가 깨진 상태로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신안선은 항해 중에 태풍이나 폭풍을 만나 가라앉았다.

신안선에 실은 상품은 그 당시로서는 가히 천문학적인 수였을 것이다. 도자기만 20,661점이나 된다. 이것은 깨진 도자기편을 제외한 숫자이다. 이 많은 중국 도자기와 더불어 고려청자 7점이 더 있었다. 그것은 2만여 점이 넘는 중국 도자기의 품질을 뛰어넘는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물론 이 외에도 14세기 초, 중국과 고려・일본의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이라든가 1천 개가 넘는 동남아시아산 자단목 원목, 8백만 개의 중국 동전이 쏟아져 나와 세계 수중 발굴 사상 그 유례가 없는 기록을 남겼다.

신안선에 실린 물건들은 14세기 시장에서 거래되던 주요 교역품이었다. 그 중에는 교토(京都)와 후쿠오카의 사찰에서 특별히 주문한 물건도 많았다. 그 당시의 생활용품도 실려 있었다. 14세기 최대의 도자기 무역선 신안선은 후추를 비롯한 향료 무역도 겸하였다. 한 마디로 신안선은 ‘1323년의 타임캡슐’이다. 이 배에서 쏟아져 나온 정보는 참으로 다양했다.

신안선은 중국 복건성 천주와 경원에서 선적을 마치고 일본 후쿠오카의 하카다항(博多港)을 찾아 떠났다. 경원항을 벗어나 고려를 거쳐 일본으로 가던 이 무역선에는 그득하게 채운 화물 외에도 많은 상인과 승려들이 타고 있었다.

그러나 항해는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진귀한 물건을 선창 가득 실은 대형 보물선 신안선은 거세게 몰아치는 광풍에 휘말려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선수 우현의 깨어진 틈으로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사이에도 배는 쏜살같이 미끄러지듯 물위를 내달았다. 갑판에 실은 물건이 여기저기 물에 떨어지고 선실에 있던 사람들도 갑판에 나뒹굴거나 바다로 떨어졌다. 쉬지 않고 불어대는 바람에 찢어진 돛은 이리저리 나부꼈다. 돛대는 절반이나 부러졌으며, 누구도 배를 제어할 수 없었다. 서서히 물이 차면서 선수 우측부터 가라앉으며 갑판으로 물이 넘는가 싶더니 배는 순식간에 물밑으로 사라져 버렸다. 안타깝게도 이상향 불국토를 그리며 무사귀환을 바랐던 승려와 일확천금의 꿈을 이루고자 했던 상인들은 이렇게 신안 앞바다에서 이지러졌다.

그로부터 650여 년이 지난 1976년, 우리는 바로 이 배에서 송~원 시대의 유물 수만 점을 물 밖으로 건져내 새로운 세계를 보았다. 비록 갑판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지만 앙상한 잔해와 함께 거기서 나온 유물들은 13~14세기 중세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을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배에서 쏟아져 나온 정보는 참으로 다양했다. ‘1323년의 타임캡슐 신안선’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실려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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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신안선이 운행되던 무렵 역시 빠르게 변화하던 시대였다. 12세기의 십자군 전쟁 이후 유럽과 서아시아는 한결 가까워졌고, 13세기엔 원 제국이 이라크와 시리아까지 진출하여 사람과 정보가 빠르게 움직였다. 몽고 말은 30리마다 역참 사이를 뛰어 서역과 중국을 이어 주었고, 무역선은 바다를 누비며 아라비아 반도와 아프리카 동북단까지 활동범위를 넓혔다. 그리하여 중국과 고려는 유럽과 아프리카의 정보까지 자세히 알게 되었다. 세상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고, 사람과 물자와 정보는 바다로 오고 갔다. 한 마디로 세상은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었다.

이 무렵 고려인들은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1231년부터 몽고와 30년 가까운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면서 고려의 백성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게다가 금·은·철·구리·수은과 같은 광산물과 각종 공물은 물론 몽골 군대의 식량이나 인삼과 사냥에 필요한 매까지 잡아서 원 제국에 바쳐야 했다. 원 제국은 심지어 고려 왕실과 지배층의 딸들을 바치도록 요구하였다. 그래서 결혼도감을 설치하고 처녀들을 징발하였으며 처녀와 과부를 가려 바치기 위해 ‘처녀과부추고별감’과 같은 기발한 부서까지 생겼으며 거기에 파견된 원의 관리들까지 수탈과 착취를 일삼았다. 그뿐 아니라 고려 관리들의 수탈과 착취를 저질러 사람들은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고려 정부와 지배층은 뇌물과 부패로 썩어갔고, 사찰과 승려들마저 백성을 대상으로 고리대금업까지 손을 대어 고혈을 빨아먹었다. 장리를 놓아 농민의 삶은 피폐해졌으며, 결국 고리대에 못 이겨 농토를 사찰에 바치고 제 몸을 투탁하는 농민이 늘어났다. 이렇게 해서 농민의 수는 줄어들고, 그로 말미암아 농민의 세금 부담은 점점 늘어가는 늪에 빠져버렸다. 결국 13~14세기 고려의 국가재정은 비고, 고려 사회는 멍들었으며 군역을 부과할 장정이 없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물가는 높이 뛰어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허덕였고, 고려의 백성은 굶주림으로 시달려야 했다. 바로 이것이 고려 말기 사회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이나 상인 그리고 일부 지식층은 좌절하지 않고 자신들의 미래를 바다 밖에서 찾았다. 그들은 이 땅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개척하였다. 시대를 앞서 바다로 나가 높은 파도를 헤치고 장삿길을 떠난 이들은 세상의 변화에 주목하였다.

신분의 차별, 빈부의 갈등, 전제 왕권 하에서의 정치적 압제라든가 부정과 비리, 불합리한 규제 등 개인의 발전과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가 많은 시대였지만, 세상은 이미 달라지고 있었다. 나라 사이의 교류와 교역은 늘고, 수공업 생산력은 점차 증대되었다. 이런 변화의 바람을 타고 상인들은 과감하게 나라 밖으로 나가 자신들의 삶을 찾았다. 그들의 치열한 삶과 중세시대 여러 나라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하나의 창구가 바로 신안선인 것이다.

신안선에 가득 실은 갖가지 진귀한 물건들은 그저 단순한 유물이 아니다. 중세시대 상인들의 활동과 문화를 담은 하나의 타임캡슐이며, 그렇기에 신안선은 중세의 문화를 읽을 수 있는 소중한 코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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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소개

▪지은이 : 김병근

저서로『수중고고학에 의한 동아시아 무역관계 연구』가 있다. 현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 근무 중이며, 목포대학교 고고학과 강사로 출강하고 있다.

▪지은이 : 서동인

『흉노인 김씨의 나라 가야』(2011) 외에 2014년 간행 예정인『미완의 제국 가야』․『영원한 제국 가야』 등 두 권의 역사 관련 저서가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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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PROLOGUE 7

제1부난파선에서 건져 올린 보물들 13

- 신안선 발견에서 유물 인양까지

제2부천주항을 떠나 경원으로 향하다 41

- 신안 증도 앞바다에 묻은 꿈의 여정

제3부신안선은 어떤 배인가? 71

- 중세시대 최첨단의 대형 무역선

제4부불국토를 위하여 대불大佛을 꿈꾸다 87

- 바다에 묻은 승려들의 대찰・대불에의 염원

제5부분향반명으로 시작되는 불가 의례 101

- “부처님, 연기를 밟고 내려오소서”

제6부월주요의 본향이자 색향 명주를 떠나 115

- 명주는 유서 깊은 세계 최대의 교역항

제7부인삼과 차, 그 이름 뒤에 숨은 착취의 역사 127

- 전매제가 키워낸 고려와 중국의 상징물

제8부이야기로 남은 동서 교류의 흔적들 141

- 서양으로 건너간 종이와 부기 그리고 신데렐라

제9부중국 송나라와 고려의 상인들 183

- 개성과 경원・천주를 무대로 바다를 누비다

제10부중세 시대 무역 상품의 바코드 ‘목패’ 211

- 목패에 들어있는 다양한 상품 정보들

제11부신안선에서 나온 또 다른 보물들 231

- 난파선이 뱉어놓은 중세시대 한・중・일의 문화상

제12부부처님 예불과 공양을 위하여 257

- 불전 공양을 위한 여러 가지 의례용구들

제13부다선일여를 추구한 승려들 281

- 차의 시작은 항주 경산, 천목 다완의 시원지는 항주 천목산

제14부질병의 고통이 없는 세상을 위하여 303

- 승려들, 불교의학으로 중생 구제를 꿈꾸다

제15부바다를 오간 상품과 문화 그리고 사람들 333

- 중국 동남부의 교역항과 세계 여러 나라들

권말부록바다에서 건진 침몰선들 361

- 신안선 인양 과정과 고대 선박에 관하여

EPILOGUE 379

각주 찾아보기 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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