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구석기시대 석기군 연구

한국의 전-중기 구석기시대 석기군들은 후기에 비해 넓은 시간폭을 갖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단순한 구성을 갖고 있다. 뚜렷한 기술적 변화나 지역적인 다양성이 한 눈에 드러나지 않으므로 관련 연구 성과의 축적은 더딘 편이다. 이 글은 시간상으로 후기구석기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유적들을 분석대상으로 삼아 주로 석기군의 구성과, 특히 특정 석기군과 석재와의 관련성에 주목하고 있다.

전국의 구석기시대 유적을 효과적으로 검토하기 위하여 임진‧한탄강권, 한강권, 동해중부해안권, 금강권, 낙동강권, 영산‧섬진강권 등 크게 6개의 지역 권역으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개별 유적에 대한 검토는 층위별로 석기군의 구성과 석재 이용 현황에 집중하였다.

석재면에서 그간 석영류(석영‧규암)가 한국 구석기의 주요 석재로 인식되어 온 것과는 달리, 대형석기군의 석재는 지역별로 상당히 다양한 변이상을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소형석기류는 모든 권역에서 거의 예외없이 석영을 사용해 제작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대형석기군의 재료로 사용된 석재들은 다양한 종류지만 물리적인 면에서는 중요한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결정구조가 느슨해 석기 제작자의 의도가 반영되기 용이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현대의 분류 체계로는 서로 다른 암석으로 이해되지만, 구석기인들의 시각에서는 ‘주먹도끼를 만들기에 적절한 암석’으로 이해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전‧중기 구석기시대의 석기군에서 확인된 이와 같은 석재의 선택적 이용 양상은 그동안 특별히 주목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석재의 선별 행위는 후기구석기시대에 이르러 비롯된 것으로 이해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기구석기시대의 선별적 석재 선택이나 원거리 반입 행위 등은 이미 그 이전 시기부터 존재해왔던 석기제작의 기술적 전통이 보다 진화된 형태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한편 우리나라 구석기시대 전체 석기군은 네 종의 석기군이 다중적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크게 인류의 적응과 진화에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석기군들과 보수적 성격이 짙은 석기군들로 구분된다. 전자는 ‘양면가공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주먹도끼류’와 ‘돌날과 좀돌날기술 관련 석기류’ 등이며, 후자는 ‘찍개와 여러면석기’, ‘ 석영제 부정형 소형석기군’이다. 한국의 구석기시대는 이상 네 종의 석기군이 각기 종적, 횡적 관계를 맺으며 변화 발전하여 온 것으로 파악된다.

기존에 전-중기로 편년된 석기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4만년 이전까지는 새로운 문화단계를 상정할만한 뚜렷한 변화가 석기군 내에서 감지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우리나라의 구석기시대에서 기술적, 혹은 문화적 의미에서의 ‘중기구석기’ 단계를 획기하는 것은 신중히 검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시기구분에 있어서 ‘전기구석기시대-후기구석기시대’와 같은 2시기 구분법의 채택 등 새로운 대안의 모색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국 구석기 자료에 대해 2시기 구분을 적용하게 된다면, 여러 가지 고고학적 증거에 따라 후기구석기시대의 개시기를 그 경계로 삼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