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한국 고대 와당과 제와술의 교류
한국 고대 와당과 제와술의 교류
문헌번호 : 978-89-6062-049-0
쪽수 : 250쪽
가격 : 17,000원
발행년도 : 2010.01
이 책은 삼국의 고대 와당과 각국의 제와술이 삼국 및 일본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이를 위해 고구려, 백제, 신라 와당의 문양을 중심으로 그 특성을 파악하고 이의 제와술이 각국의 장인들에 의해 전파되었음을 알아보았다. 아울러 백제의 지하식 평요가 중국의 마제요와 축조기법면에서 친연성을 보여 이의 기술이 중국으로부터 유입되었음을 판단해 보았다.
백제는 한성기 이후 중국 남북조 및 고구려 등으로부터 제와술을 전수받아 다양한 형식의 와당을 제작케 되었다. 특히 제와술은 6세기 중반 무렵과 588년 이후, 각각 신라와 일본에 전파되어 이들 국가에 백제계 와당(판단원형돌기식 및 삼각돌기식 와당)과 가마가 제작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신라는 6세기 전반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판단첨형식의 협판와당을 제작하였다. 아울러 6세기 중반 무렵에는 백제로부터 새로운 제와술을 전수받아 판단원형돌기식 와당을 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진흥왕대 이후 6세기 4/4분기에 이르면 중국 남조로부터 연화돌대문와당의 제작술이 전래되어 황룡사 중건가람의 창건와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와례는 짧은 시기에 사지를 비롯한 관아지 및 성곽 등 경주지역 이외의 주변지역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따라서 신라는 백제 및 남조와의 교섭을 통해 획기적인 제와술을 소유하게 되었고 이는 자체 발전하여 통일신라기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고구려와당은 백제나 신라와당에 비해 그 연구성과가 미미하다. 이는 고구려와당에 대한 실견 및 자료부족, 그리고 편년을 도출할 수 있는 있는 공반유물의 부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여기에서는 부분적이나마 그 동안 백제와당으로 인식된 몽촌토성내 와당을 주요 대상으로 삼아 이를 백제 및 고구려의 와례와 상대 비교하여 이의 국적을 백제로 판단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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