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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내흥동 유적(Ⅲ지점)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2004-08-20 09:00:00
조회 1509
1. 조 사 명 칭 : 장항~군산간 철도연결사업 구간내 Ⅲ지점 보완발굴조 사 2. 조 사 지 역 : 전라북도 군산시 내흥동 일원 3. 조 사 면 적 : 1,634㎡(약 495평) 4. 조 사 기 간 : 1차 보완조사 : 2003. 9. 5 ~ 12. 23(착수일로부터 103 일간) 2차 보완조사 : 2004. 5. 3 ~ 8. 17(착수일로부터 83일간) 5. 의 뢰 기 관 : 한국철도시설공단 충청지역본부(구 철도청 중부건설 사업소) 6. 조 사 기 관 : (재)충청문화재연구원 7. 조사단 구성 : 조 사 단 장 박순발(충청매장문화재연구원장) 자 문 위 원 이강승(문화재위원, 충남대학교 교수) 한창균(한남대학교 교수) 이홍종(고려대학교 교수) 성정용(충북대학교 교수) 성춘택(충남대학교 교수) 이종신(충남대학교 교수) 박원규(충북대학교 교수) 김주용(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책임조사원 이호형(충청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부장) 조 사 원 류기정(충청문화재연구원 선임연구원) 조사보조원 류창선(충청문화재연구원 연구원) 박대순(충청문화재연구원 연구원) 양미옥(충청문화재연구원 연구원) 장유미(충청문화재연구원 연구원) 김광희(충청문화재연구원 연구원) 보 조 원 이병철(충청문화재연구원 보조원)외 2인 8. 조사경위 및 경과 : 본 조사는 鐵道廳中部建設事業所에서 시행중인 長項~群山間 鐵道連 結事業 區間內에 위치한 群山 內興洞 遺蹟에 대한 보완 발굴조사이다. 장항~군산간 철도연결사업은 서해안 개발계획에 따른 철도시설 확 충의 일환으로 長項線과 群山線을 연결하여 장항·군산간의 수송체계 망 구축 및 균형적인 지역발전을 위한 대규모 기간사업 중 하나이다. 1998년 당시 본 연구원에서는 철도건설본부의 의뢰로 장항선 전구간 에 걸쳐 약 3개월의 일정으로 지표조사를 실시하여, 27개 지점에서 유 적의 징후를 확인한 바 있다. 이 중 군산지역 내에서는 군산시 내흥동 과 구암동 일대의 4개 지점에서 유적이 확인되었다. 이에 2001년도부터 위 장항~군산간 철도연결사업 구간 중 전북 군산 지역에 대해 우선적으로 사업이 시행됨으로서 위 4개 지점에 대해 문화 유적의 존재여부를 명확히 파악하여 향후 사업 진행 방향을 수립하고, 발굴조사가 진행될 경우 이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하여 2001년 11월 13일부터 12월 29일까지 본 연구원에서 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당시 시굴조사 면적은 총 146,887㎡(약 44,000평)이었으며, 구석기시대 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성격의 유적·유물이 존재하는 것이 확 인되었다. 이러한 지표 및 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2002년 4월 2일부터 10월 28 일까지의 일정으로 군산 내흥동 유적 전반에 대한 발굴조사가 진행되 었다. 발굴조사 당시 조사의 편의를 위하여 7개 지점으로 세분하여 조 사를 진행하였으며, 각 지점별 조사면적 및 조사결과는 아래의 【표 1】과 같다. 이 중에서 내흥동 유적 Ⅲ지점에서 확인된 신생대 제4기 갱신세의 유 기물포함층은 방사성탄소연대측정결과 B.P. 35,000년 이전부터 형성되 었으며, 내부에는 당시의 자연환경을 반영하는 목재편과 씨앗류 등이 잘 남아있어 우리나라 후기 구석기시대 이전의 자연 환경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또한 이 층의 상부에 조성된 신석기시대의 원형수혈은 내부 바닥에 도토리로 추정되 는 유기물이 일정하게 깔려 있어 신석기인들의 식생활과 관련 있을 것 으로 추정되었다. Ⅲ지점 일대 곡간부에 밀집 조성된 원삼국시대의 원 형수혈은 그 형태뿐만 아니라 내부에서 토기를 비롯하여 인위적인 행 위가 가미된 목재와 초본류 등 다양한 유기물이 일정한 결구의 형태를 보이고 있어 마한의 생활문화와 관련된 대단히 유용한 자료로 평가되 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구석기시대 유기물층 상 부에 조성된 신석기시대와 원삼국시대 원형수혈들이 중첩 또는 밀집 된 상태로 노출되고, 또한 하계 우기가 장기화 됨에 따라 충분한 조사 진행이 어려워 이들 유구에 대해서는 극히 부분적인 조사만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 하부에 존재하는 구석기문화층과 유기물포 함층 등에 대한 조사 역시 진전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였다. 이에 본 유적의 조사를 마무리하고 정확한 성격을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추가 조사기간 확보와 지속적이고 정밀한 현장조사 가 필요하며, 이를 토대로 유적의 향후 처리문제를 결정하기로 문화재 위원회의에서 심의됨에 따라 2003년도에 Ⅲ지점 일대에 대한 보완발굴 조사가 진행되게 되었다. 보완 발굴조사는 2002년도 Ⅲ지점 발굴조사 면적 중 유구가 밀집 조 성된 1,634㎡(약 495평)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조사 일정은 현장조 사 180일간의 일정으로 2003년도에 모두 완료할 계획이었으나, 현장 착 수가 2003년 9월 5일에 이루어짐에 따라 일단 동년 12월 20일까지 107 일간에 걸쳐 1차 조사를 진행한 후 일시 조사를 중지하게 되었다. 이후 2004년 5월 3일에 재착수하여 7월 18일까지 2차 조사를 진행하던 중, 하계 장마가 집중되면서 조사 진행이 어려워져 다시 8월 17일까지 조사 기간을 30일 연장하여 발굴조사를 진행 중에 있다. 9. 조사성과 : 1) 구석기시대 가)유기물포함층 금번 조사에서는 구획된 면적 내에서 전면적인 발굴조사를 진행하여 각 층별 평․단면 조사와 유기물 수습 및 분석작업 등의 구체적인 조사 가 진행되었다. 조사과정에서는 유기물포함층의 형성과정과 단계적인 세부 층위조사, 층별 자연유기물의 변화양상, 출토 목재의 인위적 가 공 여부 등에 중점을 두어 조사를 진행하였다. 유기물포함층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을 실 시하였는데, 시굴조사시 채취한 시료를 통해 아래에서부터 B.P.36060 ±2410, B.P.35430±2180, B.P.33950±2160년 등 B.P.33000~36000년경 을 중심으로 한 연대들이 확인되었다. 2002년도 조사시에는 시료의 채취 범위를 층의 상하부와 주변으로 좀 더 확대하여 보았는데, B.P.40800년이전, B.P.33570+3110․-2240, B.P. 23930±12000년을 전후한 연대를 얻게 되었다. 각 연대값들이 유 기물포함층내 각 세부 퇴적층의 형성시기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것인 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대략 B.P.33000~36000년경을 중심으로 형성되 었을 것으로 보는 데에 큰 무리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조사 진행 초기단계부터 유기물포함층 출토 자연목재 중 인위적 가공흔적이 있는지의 여부가 주목되었다. 이는 유기물포함층의 바로 상면에서 구석기시대의 문화층이 확인되었고, 유기물포함층 상면의 자 연목재와 거의 동일한 높이에서 석기들이 일부 노출됨으로 인해 상호 관련성이 면밀히 검토된 것이다. 유기물포함층 출토 목재의 석기 사용 흔적 확인은 유기물포함층이 단순한 자연퇴적물로서의 의미를 넘어서 인류의 석기 사용흔적을 고고학적 실물자료로 확보하게 되는 것이기 에 반드시 검토되어야할 중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인공적 가공흔 여부에 대한 일련의 검토 결과 현재로선 층서적 으로 구석기문화층 하부 출토 석기와 유기물층과의 관련성이 높지 않 고, 자연목재에서 가공흔으로 확신할 만한 것을 발견하기 어려운 상황 이다. 다만, 아직 유기물층 출토 목재에 대한 가공흔 분석이 전반적으 로 면밀하게 완료된 상태가 아니므로 추후의 분석 결과를 좀 더 지켜보 아야 하겠다. 어찌 되었든 유기물포함층 상부에 형성된 갱신세 쐐기층이 우리나라 후기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되는 문화층임을 고려하면 이 층의 하 부에 존재하는 각종의 유기물들은 후기 구석기시대 이전의 자연환경 을 이해하고, 상부에 구석기시대 문화층이 존재하게 되는 배경을 이해 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자료임은 분명하다. 나)문화층 및 석기 구석기시대 문화층에 대한 조사는 유적의 사면부에서 전반적으로 확 인된 갱신세의 토양쐐기층인 황갈색사질점토층의 분포 범위를 따라 남 쪽과 북쪽사면부의 총 5개소를 선정하여 진행하였다. 총 5개소의 조사 구역 중 유기물포함층 상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구석기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었다. 구석기시대 문화층이 조사된 지점은 유기물포함층 북쪽 능선사면이 곡간부로 이어지는 완만한 경사면으로 이 부근에서 쐐기층이 매우 깊게 잘 남아 있었다. 석기는 토양쐐기 구조가 뚜렷한 황갈색사질점토층의 아래쪽에서부 터 유기물층의 상부 사이에서 노출되었다. 이 부근에는 옅은 보라색으 로 탈색된 점토층이 위·아래층 사이의 간층으로 얇게 형성되어 있는 데, 석기는 이 층까지에서만 노출되었다. 석기의 출토위치는 현 곡간부 지표면 아래의 해발고도 약 3.9m~ 4.5m 사이에서 확인되는데, 층위조사 결과 대체로 조사층이 완만한 자 연경사면을 따라 형성된 것을 고려하면 유물 출토지점의 높이 차이는 큰 의미는 없으며, 거의 동일한 경사면상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석기들은 다량의 자연석재들과 함께 노출되었는데, 이 석재들은 경사 면 위에서부터 곡간 아래쪽으로 흘러내리면서 퇴적된 양상을 보였다. 이 자연석재들 사이에서 타격흔적이 확연하고, 일부는 석재 자체가 주 변 맥암이나 자연석들과는 차이가 있는 여러면석기, 자갈돌격지, 망치 돌 등의 석기들이 함께 퇴적된 양상으로 노출되었다. 조사과정에서 이 부근에 석기 제작 행위가 있었는지를 파악하여 보았으나 그러한 흔적 은 발견되지 않았고, 사면 위에서 아래로 이동되어 현재의 위치에 놓여 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외에 Ⅲ지점 전반의 조사과정에서 유문암제와 석영반암제의 격지 와 몸돌 등이 쐐기층보다 후대의 퇴적층에서 수습되었으나, 쐐기층 내 에서 일정한 분포 범위를 갖고 안정된 상태로 노출된 것은 유기물포함 층 주변에서만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이들 후대 퇴적층 출토 석기들 의 존재로 보아 이 일대의 석기들은 다양한 돌감을 이용해 제작되었으 며, 현재 노출된 구석기문화층 외에도 선·후시기의 석기들이 집중된 분 포지가 이 일대에 존재할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볼 수 있다. 2)신석기시대 가)유기물포함층 신석기시대로 추정되는 유기물포함층은 곡간부 남쪽부분에서 토양쐐 기 구조의 갱신세층이 형성된 이후에 침식과 재퇴적이 반복되는 과정 을 거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는 모래층과 점질토층이 교차퇴 적되어 있으며, 곡간 상부의 습지성 소하천을 따라 하천유수 작용에 의 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층 내부에는 자연 목재와 지엽류 등의 유 기물이 다량포함되어 있는데 BP6390±90 ~ BP5340±110년 사이에 형 성된 것으로 측정되었다. 화분분석결과 해발 3m부터 5.4m까지의 구간 은 서해안 일대에서 약 6천년전에서 그 이후에 나타나는 화분대인 “오 리나무-참나무-소나무”화분대가 우세하게 분포하는 것으로 분석되었 다. 나)수혈유구 연대측정 결과 B.P.5210±80년에 형성된 층위에서는 유기물이 포함된 점질토가 충진되어 있는 성격미상의 수혈유구가 확인되었다. 이 층은 식물유체가 포함되어 있는 유기물포함층으로 당시 국지적인 저습지 환 경에서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원형수혈유구는 모두 3기가 확인되었다. 평면형태는 모두 원형으로스 크형으로 내부에는 유기물이 포함된 사질점토가 퇴적되어 있거나 굵 은 모래질이 퇴적되어 있었다. 유구 내부 바닥면에서는 도토리로 추정되는 유기물이 수평적인 하나 의 층을 이루며 깔려 있었다. 이는 최근까지 우리나라에서 신석기시대 까지 소급되는 수혈유구의 예가 많지 않아 비교자료가 많지 않으나 당 시 신석기인들의 식생활 중 도토리의 타닌을 제거하는 것과 관련있는 일종의 저장구덩이일 가능성이 클 것으로 판단된다. 원형수혈의 성격과 관련하여 2002년 조사시 2지점의 남사면에서 신석 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편과 갈돌, 보습 등의 석기가 확인된 바 있으며 원형수혈이 당시 곡간부내의 저습지 주변에 조성되었다고 가정하면 당 시 이 일대 전반에서 신석기인들의 생활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 다. 3) 청동기시대 경작층에 대한 조사는 토층단면 상에서 수로로 판단되는 부분이 확인 되어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경작면에 대한 평면조사에서는 논둑 이나 관계시설, 계단상의 단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북쪽과 남쪽 에 동에서 서로 이어지는 수로 3개소가 확인되었으며, 흑갈색 점질토 층 위에서는 갈대의 줄기와 같은 흔적들이 확인되었다. 확인된 수로를 살펴보면북쪽에서 확인된 수로는 너비 100cm 내외로 곡 선을 그리며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북쪽과 서쪽으로 나뉘어 졌다. 서쪽 으로 흐르는 지류는 다시 북쪽에서 들어오는 소형 수로와 합류하여 서 쪽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수로의 동쪽 부분에는 수로의 내외에 나무 가 확인되었는데, 수로 내부에 위치한 나무의 단면조사 결과 줄기와 뿌 리가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자연적인 수목으로 판단되며, 수로의 내부 에 위치한 수목의 경우 수로의 바닥보다 약 10cm 아래에 뿌리가 형성 되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수로가 형성되기 이전에 이미 자리하고 있 었던 것으로 판단되었다. 하지만 수로가 중간부분에서 나뉘어지며 다 시 소형 수로와 합류하는 것으로 미루어 인위적인 것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또한 서쪽부분은 넓게 퍼지고 있으며, 퍼져 있는 부분에는 수피층이 분포하고 있었다. 남쪽의 수로는 능선의 말단부와 접하는 부분에 형성되었으며, 대부분 유실되어 일부분만이 확인되었다.너비는 60cm 내외로 동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서쪽 부분에서는 북쪽 수로와 마찬가지로 수피층이 넓게 분포하고 있었는데 일부에서는 불에 탄 흔적들이 확인 되었다. 조사지역의 서쪽 부분에는 폭 50cm의 작은 수로가 더 확인되었으나 일 부분만의 노출되어 정확한 형상은 알 수 없었다. 출토된 유물은 무문토기 편과 능선의 말단부와 접하는 부분에서 보습 으로 추정되는 석기가 1점 출토되었다. 4) 원삼국시대 가)원형수혈 원형수혈은 조사지역내 북쪽능선의 완만한 경사면 하단부에 약 60여 기가 밀집되어 분포하고 있다. 이 지역은 당시 환경하에서 저습지 주변 부 추정되는데 유구들은 제한된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중복·조성되어 분포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원형수혈은 단단한 쐐기구조의 토양을 굴광하여 조성하였으며 바닥면 은 대체로 쐐기구조층 하부에 존재하는 회색사질점토층에 조성하였 다.. 평면형태는 원형이 가장 많으나 장타원형이 소수 확인되며. 규모 는 깊이 1.2m-2m, 입구지름 1.7m-3.5m, 바닥직경이 0.8m-3m로 다양하 며 단면형태는 복주머니형과, 하부로 갈수록 밋밋하게 좁아지는 역제 형, 입구가 좁아지는 둥근 플라스스크형, 벽면을 2단으로 굴광한 것 등 조성방법과 단면형태, 규모 등에서 다양한 형식이 확인되고 있다. 원형수혈 내부에서는 인위적으로 가공한 목재들과 짚신, 초본류 등의 유기물, 토기편들이 확인되었다. 이 중 가공목재들은 굵기나 길이 등 크기가 다양한데 대부분 끝부분을 다듬은 것이 대부분이지만 각재로 가공한 것들도 일부 확인되며, 또한 확실한 결구구조는 보이지 않지만 방사상의 형태로 폐기된 형태를 보이는 예도 보이고 있어 상부의 목재 구조 붕괴와 관련성도 배제할 수 없다. 초본류는 몇몇 개별유구에서만 확인되나 일정량이 다발형태로 바닥면에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엮 거나 결구한 흔적은 보이지 않으나 몇몇 개별유구에서 거의 일정한 단 위량으로 확인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짚신은 유구의 바닥에서 총 3켤레(4개체)가 확인되었는데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하여 당시 제 작기법의 검토까지도 충분할 것으로 판단된다. 토기는 전면에 격자타날 된 장란형토기와 난형호, 완, 시루, 주구형토 기, 삼각거치문이 시문된 원저호 등 일반적으로 대형저장용기보다는 취사용으로 이해되는 생활토기가 대부분으로 가공목재의 하부 및 바닥 면, 내부퇴적토에서 주로 출토되었다. 이러한 토기들의 출토양상은 공 주 장선리유적, 서천 송내리유적, 여의동유적, 대곡리유적, 교운리유 적 등과 많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어 원형수혈의 조성시기는 대략 3세 기 후반경으로 추정된다. 원형수혈유구의 성격 및 축조목적 등과 관련하여 현재로선 명확한 성 격을 단정짓기 어려우나, 생활토기, 건축부재로 추정되는 가공목재 및 짚신 등의 유기물 등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한시적인 주거시설로 사용되기에 부족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지며, 최소한 토기와 식량 저장 등의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접한 사면에서 동시기의 사주식 주거지가 조성되어 있음을 고려하면 원형수 혈이 주거시설로 이용되기에는 곡간부의 입지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 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구 원형수혈이 동일공간내에서 동일방법으로 중복조성되었다는 것은 이 지역을 지속적으로 점유해야 만 위한 필연적인 요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정확한 성격 등을 규 명하기 위해서는 재차 심도 깊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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