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로고

현장소식

나주영산강 고선박(나주선) 선체 수습 지도위원회

2004-06-29 17:58:00
조회 1627
남도문화재연구원에서 영산강 유역 일대에서 수습한 고선박(나주선) 선체에 대한 지도위원회를 아래와 같이 개최한다. ▣ 일 시 : 2004. 6. 4(금) 10:30 ▣ 장 소 : 전남 나주시 중앙동 구 소방서터 ▣ 조사기관 : 남도문화재연구원(단장 최인선) ▣ 유물수습기간 : 2004. 5. 22 ~ 5. 28 붙임 보도자료(사진포함) 1부 -------------------------------------------------------------- 나주 영산강 고선박(나주선) 긴급정밀장비(지표)탐사 지도위원회 회의자료 1. 조사개요 ○ 조 사 명 : 영산강 고선박(나주선) 긴급정밀장비(지표)탐사 ○ 조사위치 : 나주시 성북동, 토계동, 영강동 영산강 일원 ○ 조사범위 : 영산강 나주대교- 영산대교 구간 총 10km ○ 유물성격 : 고려시대 선박(나주선) ○ 조사기간 : 2004년 5월 22일 - 5월 28일 ○ 조사기관 : 남도문화재연구원(수중문화재조사단 - 지마텍, 오션 ENG) ○조사단 구성 조사 단장 : 최인선(순천대 교수, 남도문화재연구원장) 지도 위원 : 지건길(전 국립중앙박물관장) 조유전(문화재위원) 최성락(목포대 교수, 전남문화재연구원장) 윤덕향(전북대 교수, 호남문화재연구원장) 김대철(부경대 교수) 김용한(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실장) 심정보(한밭대 교수, 문화재위원) 조사 위원 : 김익주(국립해양유물전시관 보존과학팀장) 이정호(동신대 교수) 책임조사원 : 조근우(남도문화재연구원 연구실장) 조 사 원 : 박철원(동신대박물관 학예연구사) 안재철(남도문화재연구원 수중문화재조사팀장) 박광석(남도문화재연구원 역사민속조사팀장) 서영교(지마텍 수중탐사 책임연구원) 박종수(오션ENG 수중탐사 책임엔지니어) 김준혁(나주시 문화원 사무국장) 조사보조원 : 김종일(남도문화재연구원 연구원) 임문수(지마텍 수중탐사 책임엔지니어) 정자헌(지마텍 수중탐사 선임엔지니어) 박영균(오션ENG 수중탐사 선임엔지니어) 김지은(나주시 문화원 연구원) ○ 조사방법 : 긴급 수중장비탐사 및 학술지표조사 2. 조사경과 가. 조사목적 영산강 유역에 노출된 고선박 만곡부재, 저판재를 수습하고 고선박의 매몰위치를 파악하여 향후 보존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시행되었다. 나. 조사경위 지난 3월 31일 영강동 주민 윤재술(62세/나주시문화원회원)에 의해 영산강변에 노출된 고대선박(이하 나주선) 좌현 고물(선미)부 만곡부 재와 외판편이 신고됨에 따라 나주시가 문화재청에 이를 신고하고, 1 차 지표조사를 실시하였다. 1차 지표조사는 삼각주와 강안에 대한 육 안 관찰를 실시하였으나 나주선편을 확인하지 못하였다. 1차 조사 후 지난 5월 17일 영산강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첫 번째 나주선편이 노출 된 지점으로부터 상류 500지점과 1km 지점에서 이물(선수)부 우현 만 곡부재와 저판편이 노출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장마 이전에 긴급 장비탐사와 보존대책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나주시청의 조사 협조요청을 받은 남도문화재연구원이 수중문화재 조사팀(지마텍, 오션 ENG)으로 조사단을 구성하고 자체적인 조사재원을 확보하여 긴급장비 탐사와 나주선편 수습 인양을 시행하였다. 그 결과 수습된 나주선 선재 유물은 고려시대 초기 또는 그 이전의 선박임이 확인되었다. 다. 나주선 선체편 및 매몰선편 조사 유역 현황 ▷ 나주선이 조사된 나주시 송월동, 영강동의 영산강 유역은 담양 용 면 용연리 가마골 용추봉 남쪽 골짜기 용소에서 발원한 극락강과 담양 병풍산·입암산성에서 흘러온 물줄기가 합쳐져 형성된 황룡강 그리고 화순 이양 쌍봉사 계곡 천리난골에서 발원한 지석강이 나주 노안면 학 산리와 금천면 원곡리에서 합류하여 영산강의 큰 본류를 이루면서 나 주의 중심부를 남서진하여 관통하는 유역이다. ▷ 나주선 저판(밑판)재 매몰지점(북위 35°00'21.9″ 동경 126° 43' 59.8″) 삼각지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영산천이 합류하고 옛 포구인 노항 포가 위치한다. 또한 상류(북쪽) 6.4km에 나주대교, 하류(서쪽) 4.7km 지점에 영산대교가 놓여있다. ▷ 유역의 강안 양쪽에는 일제강점기인 1937~1945년까지 9년에 걸쳐 쌓여진 제방이 500~900m 간격으로 축조되어 있다. ▷ 영산대교로부터 700m 지점에 옛 나주목의 관문인 둥구나루터가 위 치한다. 둥구나루터가 위치한 지점은1989년 이전에는 'S'자 형태의 곡 류지점이었으나 그해 영산강수해이후 직강화 공사가 이루어지면서 현 재 못으로 남아있다. ▷ 나주선편이 조사된 영산강 유역의 고대수역은 현재수역과 비교해 6 배 이상의 범위에 해당될 것으로 여겨진다. 즉 나주시 토계동, 삼향동, 그리고 영강동과 금천면 고동리 방목들의 충적지는 고대 영산강 유역 범주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라. 조사 수습된 나주선편 현황 ▷ 조사 수습된 나주선편은 총 7점으로 만곡부재 2점, 저판부재 2점, 외판재 1점, 나무못(피삭) 1점, 기타 1점이다. ▷ 만곡부재는 고대 한선의 저판(밑판)과 외판을 연결하는 부재로서 1983-84년 완도군 약산면 어두리 앞바다에서 고려청자(녹청자)와 함 께 발굴된 완도선과 2003년 전북 군산 십이동파 앞바다에서 역시 고려 청자와 함께 조사된 고선박에서 확인된 후 이번이 4번째이다. ▷ 나주선 만곡부재 2점은 각각 좌현 고물(선미)부와 우현 이물(선수) 부에 해당된다. ▷ 좌현 고물(선미)부 만곡부재는 뒤쪽 내면에 고물판(선미재)을 조립 하기 위한 'ㄷ'자 형태의『주목』구조가 너비 5cm의 크기로 뚜렷하게 남아 있고 측면 앞쪽과 뒤쪽에는 우현 만곡부재와 연결해주는 횡강력 부재인 개롱(가룡)구멍이 직사각형태로 2개소에 가공되어 있다. 또한 앞쪽에는 이물(선수)쪽으로 연결되는 만곡부재와 조립하기 위해 가공 된 반턱맞춤 흔적이 남아 있다. 구조와 크기는 전체길이가 580cm이며 저판에 연결되는 밑변은 두께 10cm, 너비 40-50cm이고 1단외판에 연 결되는 현측은 두께 15cm, 높이(너비) 90-100cm이다. 현측 상단 외면 에는 윗단 외판과 연결하기 위한 역'L'자형의 홈이 파져 있는데 그 크 기는 너비 7cm 내외, 깊이 5-6cm이며 외판과 결구하기 위한 10×4cm 크기의 피삭(나무못)구멍 6개가 확인되었다. 저판과 연결하기 위한 밑 변에도 저판과 만곡부재를 결구하기 위한 나무못구멍(고정못)이 5곳 이 확인되는데 그 크기는 6×5cm이며 5개가 있다. 우현 만곡부재와 연 결되는 횡강력부재인 개롱 구멍은 전후에 가공되어 있는데 크기는 10× 6cm이다. 선미판을 끼우기 위한 주목 홈은 너비 4-5cm이다. (나주선 만곡부재의 계측 결과는 선편이 가지고 있는 수분이 완전히 건조되어 목질 자체가 수축 및 건조된 상태이므로 크기가 감소하였을 가능성도 있음) ▷ 우현 이물(선수)부 만곡부재는 앞쪽 내면에 이물판(선수재)을 조립 하기 위한 반 타원형의 이물홈 흔적이 보이고 좌현 이물(선수)만곡부재 와 연결하는 개롱(가룡) 구멍이 측면 앞·뒤쪽에 직사각형으로 가공되 어 있다. 구조와 크기는전체길이가 560cm이며 저판에 연결되는 밑변 은 두께 15cm, 너비 10-35cm이고 1단 외판에 연결되는 현측은 두께 10cm, 높이(너비) 60-90cm이다. 현측 상단 외면에는 윗단 외판과 연결 하기 위한 역'L'자형의 홈이 파져 있는데 그 크기는 너비 8cm 내외, 깊 이 7-8cm이며 외판과 결구하기 위한 10×4cm 크기의 피삭(나무못)구 멍 9개가 확인되었다. 저판과 연결하기 위한 밑변에도 저판과 만곡부재 를 결구하기 위한 피삭공(고정못)이6곳이 확인되는데 그 크기는 6× 5cm이다. 우현 만곡부재와 연결되는 횡강력부재인 개롱 구멍은 전후 에 가공되어 있는데 크기는 15×10cm이며 선현의 경사각을 따라 높낮 이를 달리하고 있다. 선수판을 끼우기 위한 주목홈은 너비 17cm이며 타원형의 홈을 취하고 있다. ▷ 저판재1은 나주선 이물(선수)우현 첫 번째 저판재로서 우현 이물 (선수)부 만곡부재와 연결되는 저판재이다. 우측 측면에는 만곡부재 를 조립하기 위한 'L'자형 홈과 이를 결구하기 위한 못구멍이 만들어 져 있으며 측면에는 다른 저판재와 결구하기 위한 장삭공이 보인다. 구 조와 크기는 전체길이가 920cm, 너비 20-60cm, 두께 25cm로 전체적 인 측면 형상은 이물(선수)쪽으로 치솟아 오르는 활처럼 배부른 모양 을 취하고 있다. 만곡부재를 조립하기 위한 'L'자형 홈은 너비 10cm내 외 깊이 5cm이며 만곡부재를 결구하기 위한 피삭공은 11개가 있다. 간 격은 최소 38cm에서 최대 165cm이다. 다른 저판재와 조립하여 결구하 기 위한 장삭공은 총 6개로 크기는 15×10cm이다. 장삭공의 간격은 최 소 50cm, 최대 210cm로 불규칙하다. 마. 장비탐사 ▷ 양방향 음파 탐지기(Side Scan Sonar)조사 나주선 조사유역의 수중문화재를 포함한 이상체에 대한 매몰 또는 분 포 가능성에 대한 해저면 조사를 위하여 양방향 음파 탐지기(side scan sonar)를 이용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번 조사에 사용된 양방 향 음파 탐지기의 사용주파수는 325 kHz이며 조사범위(range)는 강안 의 전체범위를 포함하였다. 획득된 자료는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자료 처리 프로그램(data acquisition and processing program)를 이용하 여 모니터상에서 이상체 분포유무를 확인하였으며, 실시간으로 저장 된 자료의 후처리를 통하여 이상체의 위치 및 크기에 대한 정보를 획득 하였다. 양방향 음파 탐지기는 넓은 해저 표면을 영상화 하기에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에 수중에서 특정한 목표물을 찾거나, 해저면 상태조 사, 준설 및 최근 들어선 환경이나 어업분야 등에 널리 이용되고 있는 장비이다. 장비조사를 통해 확인된 이상체는 총3곳이 확인되었다. 3. 나주선 구조 ▷ 현재까지 조사된 고선박 자료로는 1975년 안압지에서 발굴된 안압 지선, 1984년에 발굴된 완도선, 1995년에 발굴된 달리도선, 2003년에 조사되어 현재 발굴이 진행중인 십이동파선이 있다. 안압지선은 통일 신라시대 선박으로 우리나라 고선박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이 른시기의 선박이며 완도선은 11세기 후반 달리도선은 13세기 후반~14 세기 후반경의 고려시대 선박이다. ▷ 이중 나주선과 동일한 구조와 형태를 가지는 선박으로는 완도선과 달리도선을 들 수 있다. 나주선의 가장 큰 특징인 만곡부재는 고려시 대 이전 또는초기 선박에 보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그 구조적인 특 징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 바로 완도선이다. ▷ 완도선은1983-4년까지 문화재청에 의해 완도군 약산면 어두리 앞바 다에서 발굴되어 현재 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 복원되어 전시되고 있 다. 완도선은 3만여점의 고려청자와 함께 인양 발굴된 고려시대 선박으 로 청자의 년대를 근간으로 그 시기를 11세기 중후반으로 비정하고 있 다. ▷ 완도선의 복원된 주요크기를 보면 전체복원 길이는 734cm이며 허리 부분을 기준으로 최대 폭은 335cm, 최대깊이 130cm이다. 이는 잔존하 는 선편을 보존처리 하여 복원한 크기이고, 잔존크기를 기준으로 실제 적인 크기를 산출하면 대략 9-10m일 것으로 추정되며 10톤 정도의 선 박으로 파악하고 있다. ▷ 완도선의 중앙단면 구조를 보면 저판과 외판 사이에 이 두 구조를 연결하는 만곡부재를 취하고 있다. 완도선 만곡부재에서 볼 수 있듯이 나주선 역시 규모에서 차이가 있을 뿐 구조는 완도선과 같다고 하겠 다 완도선 만곡부재의 구조는 고물과 중앙, 이물부의 3재를 연결하여 조립한 것으로 이물(선수)쪽은 잔존하지 않는다. 크기는 길이가 선미 (고물)쪽 만곡부재 230cm, 중앙부 400cm이다. 저판에 붙는 밑변은 두 께 7cm, 너비 38cm이고 외판에 연결되는 윗변은 두께 15cm, 너비 28- 30cm이다. ▷ 완도선과 나주선 만곡부재 크기를 비교하면 다음 표와 같다. (단위 cm) ▷ 위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완도선과 나주선 고물(선미)좌현 만곡재 의 규모는 길이에서 2.5배, 높이에서 3.3배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 한 완도선 고물(선미)좌현 만곡재와 중앙부 만곡재의 길이 비율은 두배 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 완도선 만곡재의 비율을 나주선에 반영하면 중앙 만곡재는 고물(선 미)좌현 만곡재의 2배 길이인 약 11m 내외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 저판구조를 살펴보면 완도선은 1열의 저판에 3재의 저판재를 조립 하여 총 5열로 저판을 구조하고 있으며 달리도선은 1열의 저판에 3재 조립하여 총 3열로 저판을 구조하고 있다. 완도선과 달리도선 모두 같 은 구조방식으로 횡단면상 활처럼 배부른 모양으로 이물과 고물부가 치솟은 형태이다. 이처험 볼록한 형태의 저판은 고려시대 선박의 가장 큰 특징이다. ▷ 나주선 저판재는 2재가 조사되었다. 이중 1재는 전체길이가 920cm 로 최대너비 60cm 두께 25cm 로 이물(선수)부 우현 첫번째 저판재로 확인되었다. 횡단면상 선수쪽으로 치솟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 완도선에 비해 완전한 형태로 조사된 달리도선의 저판재와 나주선 저판재를 비교하여 규모와 구조를 확인해보면 달리도선의 이물(선수) 우현 저판재는 길이가 200cm, 중앙재는 510cm, 고물(선미)우현 저판재 는 200cm로 총 910cm이다. 이물과 고물 저판재와 중앙저판재의 비율 은 약 2.5배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완도선도 마찬가지이다. ▷ 나주선의 이물(선수) 우현 저판재의 크기는920cm로 달리도선과 비 교해 약 4.5배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달리도선의 저판재 비율에 나주 선 이물(선수)우현 저판재의 크기를 비교하고 달리도선과 동일한 저판 구조방식과 수치를 대입하여 나주선의 저판크기를 수치상 복원하면 - 나주선 이물(선수)우현 첫번째 저판재 920cm을 기준으로 - 달리도선의 중앙저판재(그림 12)와 첫번째 저판재의 비율이 2. 5배임 을 감안 이를 나주선에 적용하면 대략 23m .내외의 중앙저판재 수치가 나온다. - 고물(선미)우현 세번째 저판재 역시 달리도선의 구조방식과 나주선 만곡재에서 보듯이 첫번째와 비슷한 크기의 저판재를 사용하였을 것으 로 여겨진다. ▷ 현재까지 발굴조사된 고려시대 선박의 구조방식과 부재별 수치에 나주선의 만곡재와 저판재의 수치를 부재별로 대비하여 전체적인 나주 선 규모를 유추해보면 수치상 최소 32m 최대 42m 길이의 초대형 선박 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 위의 복원 치수를 통해 남아있는 만곡부재 2재를 기준으로 중앙부 만곡재를 추정해 보면 이물(선수)우현560cm, 고물(선미)좌현 580cm 를 제외하고 최소 10m에서 최대 15m 크기의 중앙 만곡재 2재가 더 조 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나주선 만곡부재와 저판재의 부재별 크기를 통해 전체적인 나주선 의 규모를 추정한다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소형 또는 대형의 구조선을 만드는 방법은 동일하였으며 배를 만드는기술적인 수준은 매 우 보수적인 점을 감안한다면 수치상의 크기 복원은 일정부분 가능하 다고 여겨진다. 4. 고려시대 대선기록 ▷ 문헌에 보이는 고려초기의 선박자료로는 태조 왕건의 대선과 병선, 동여진족을 방비하기 위한과선, 조운선인 초마선, 그리고 여몽 연합군 의 일본 원정선을 들 수 있다 가. 태조왕건의 대선 ▷ 고려 태조 왕건이 나주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신라 효공왕7년 서기903년으로 나주와 부근 10여군현을 공략하고 군대를 남겨두고 돌 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효공왕 13년 (909), 14년(910), 신덕왕3 년(914), 신덕왕4년(915)에 각각 나주와 진도에 이르는 남서부지역에 원정한다. 태조 왕건이 나주에 원정할 때 마다대규모의 수군을 이용하 였는데 4차 원정의 경우 군선 70여척에 병사 2천명이었으며 군선 100척 과 병사 3천을 거느리고 원정오는 경우도 있었다. [고려사] 기록을 보 면 "태조는 군선 백여 척을더 건조하였는데 그 중 대선은 10여척으로 각각 사방이 16보요 그 위에 다락을 세웠고 거기서 가히 말을 달릴만하 였다. 태조는 군사 3천명을 거느리고 군량을 싣고 나주로 같다"(고려 사 세가 1권 태조) .위의 16보를 척으로 환산하면 96척이되고 m로 환산하면 약 32m가 되 는 대선이다. 나. 초마선 ▷ 초마선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정종(946-949년)대로 각 조 창에 조운선의 수요를 제정하는 기록부터이다. 전국 12조창 중 해안에 위치한 10개창에 초마선 6척을 배치하였는데 그 규모가 세곡1000석 (800톤)을 싣을 수 있는 매우 큰 배이다. 초마선은 조선 태종때까지 조 운에 활용되었다. 5. 조사성과 ▷ 문헌에 보이는 고려시대 대선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음. ▷ 조선시대 이전 우리민족의 해양역사를 조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 확보 ▷ 한선의 기원이 통나무배로부터 시작되었음을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 한선의 구조와 변천의 과정을 재조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확보 ▷ 영산강의 수운의 중요성 그리고 고려시대 나주가 차지하는 정치, 경 제적인 중요성을 밝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6. 협의 내용 가. 나주선의 성격 나. 향후 조사계획 다. 나주선 발견 유역의 보존문제 라. 나주선의 관리 문제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617개(12/31페이지)
 
현장소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수
등록일
397 청양 분향리 유적 2차 발굴조사 지도위원회 및 현장설명회 개최 운영자 781 2004.08.23
396 경주 불국사 성보박물관 건립부지내 유적발굴조사 지도위원회 개최 운영자 1604 2004.08.20
395 경주 불국사 성보박물관 건립부지내 유적발굴조사 지도위원회 개최 운영자 785 2004.08.20
394 광양 마로산성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개최 운영자 1444 2004.08.20
393 서천 추동리 유적(Ⅱ지역)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운영자 1459 2004.08.20
392 군산 내흥동 유적(Ⅲ지점)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운영자 1526 2004.08.20
391 광양 마로산성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개최 운영자 762 2004.08.20
390 서천 추동리 유적(Ⅱ지역)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운영자 723 2004.08.20
389 군산 내흥동 유적(Ⅲ지점)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운영자 702 2004.08.20
388 창녕 비봉리 정수장 조성부지내 유적 발굴(시굴)조사 지도위원회 개최 운영자 1419 2004.08.03
387 창녕 비봉리 정수장 조성부지내 유적 발굴(시굴)조사 지도위원회 개최(8/... 운영자 759 2004.08.03
386 창원문화재연구소 창녕 송현동 6·7호분 발굴조사 2차 자문회의 운영자 1379 2004.07.29
385 창원문화재연구소 창녕 송현동 6·7호분 발굴조사 2차 자문회의 운영자 742 2004.07.29
384 영월 연당리 피난굴 발굴조사 지도위원회의 개최 운영자 1666 2004.07.20
383 영월 연당리 피난굴 발굴조사 지도위원회의 개최 운영자 670 2004.07.20
382 대구 월성동 LG자이 아파트 문화재 발굴조사 지도위원회 및 현장설명회 영남대학교박물관 1627 2004.07.11
381 대구 봉무지방산업단지 진입도로 확장구간내 유적 지도위원회 운영자 1500 2004.07.01
380 대덕 테크노밸리 조성부지 내 용산동 유적 지도위원회 및 주민 설명회 운영자 1482 2004.06.30
>> 나주영산강 고선박(나주선) 선체 수습 지도위원회 운영자 1628 2004.06.29
378 사천 선진리성 주변 정비사업부지내 유적 발굴 조사 지도위원회 개최 운영자 779 2004.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