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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 신화리유적

2003-02-07 15:27:00
조회 2330
京釜高速鐵道 彦陽補修基地 文化遺蹟 發掘調査 槪要 1. 위 치: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삼남면 신화리 3-2번지 일대 2. 조사기간: 2002년 5월 1일~2003년 4월 15일 3. 조사기관: 동아대학교 박물관 (단장 심봉근) 4. 조사경위 1997년 경부고속철도 경남,부산 구간에 대한 정밀 지표조사가 실시되 면서 당시 차량 보수기지 예정지역으로 계획된 이 일대에서 청동기시 대 무문토기 및 삼국,통일신라시대 각종 토기 편들이 확인된 바 있다. 그리고 2001년 6월 15일 ~ 동년 9월 12일까지 약 3개월에 걸쳐 이 지역 에 대한 시굴조사가 실시되었으며, 그 결과 구릉 정상부를 중심으로 청 동기시대 주거지와 조선시대의 민묘, 그리고 구석기로 추정되는 박편 석기편들이 일부 확인되어 본격적인 구제발굴 조사를 실시하게 되었 다. 5. 조사지역의 현황 조사지역은 언양 시가지 남쪽으로 넓게 형성된 독립된 대지상의 구릉 지대 동쪽 끝 부분에 해당하며, 구릉 서쪽을 제외한 삼면은 태화강으 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둘러싸여 있다. 청동기시대 유적이 형성되어 있 는 구릉 정상부는 일부 돼지나 개와 같은 가축을 사육하고 있지만 대부 분 밀이나 陸稻, 고추, 옥수수 등의 밭작물을 재배하는 경작지로 이용 되고 있었다. 이 구릉의 서쪽 끝 부분에는 몇 해 전에 경부고속도로 삼 남 인터체인지 개설과정에서 삼국시대의 대규모 고분군과 함께 청동기 시대 주거유적이 본교 박물관에 의하여 조사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조사지역까지 이어지는 구릉 전역이 청동기시대의 聚落遺蹟으로 판단 된다. 조사지역 북쪽으로 태화강의 상류에 해당하는 언양천이 동류하면서 급격한 경사면을 이루는 하안단구 지형을 이루며 2개의 낮은 골짜기를 형성하면서 구릉지역을 3분하고 있어서 북쪽으로부터 Ⅰ,Ⅱ,Ⅲ지구로 우선 3분하였다. 그리고 구릉 남쪽 하단의 논으로 경작되는 평야지대 와 그 맞은 편록 부분까지를 다시 Ⅳ,Ⅴ지구로 설정 모두 5개의 지역으 로 구분하였다. 그 중 Ⅱ,Ⅲ지구 사이의 골짜기는 수량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현재도 논으로 경작되고 있어 고대 수전의 존재 가능성이 예상 되는 곳이며, Ⅰ지구는 공동묘지로 사용되던 곳으로 과거 지표조사과 정에서 무문토기가 토층에 박혀있는 것이 확인되기도 하였지만 현재까 지 민묘 이장이 완료되지 않아 조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6. 조사내용 가. 층위 현재 노출된 Ⅰ~Ⅲ지구의 구릉 상부 토층은 대체로 동일한 편이라 할 수 있다. 黑褐色 耕作 腐蝕土 아래에 적갈색을 띠는 粘土層이 있고, 그 아래에는 生土層인 밝은 赤色조의 風化 粘土가 암반 상부에 퇴적되 어 있다. 지역에 따라 경작토 아래에 곧바로 생토층이 나타나는 경우 나 그 사이에 부식토가 포함된 적갈색 점토층이 포함되어 4개의 층으 로 구분되어 지는 곳도 있다. 유구는 대부분 적갈색 점토층이나 생토면 을 파서 조성되었으며 상부 어깨선은 경작토 아래에서 곧바로 나타나 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아 경작과정에서 이미 상당부분 파괴되었음 을 알 수 있다. Ⅲ지구의 경우 생토층으로 추정되는 적갈색 점토층에 서 제4기에 형성된 력석층이 부분적으로 확인되기도 한다. 나. 유구 조사지역은 언양읍 남쪽의 구릉상 대지 정상부에 형성된 대규모 청동 기시대 취락유적의 동쪽 일부분이라고 추정된다. 현재까지 무문토기 를 공반하는 수혈 주거지 100여기 정도가 확인되어 조사를 진행 중이 며, 제2지구에서 51기, 제3지구에서 45기의 주거지가 확인되었다. Ⅰ지 구는 민묘가 조성되지 않은 구릉 사면에서 3기가 확인되었고, 앞으로 정상부의 공동묘지 민묘 이장이 완료된다면 그 수는 늘어날 것으로 추 정된다. 그 밖에도 조선시대 민묘들이 수기가 확인되었다. ① 住居址: 제2지구에서 확인된 주거지를 중심으로 그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주거지의 평면 형태는 대부분 장방형으로 등고선 방향을 따라 배치되 어 있으며 그 중 2기는 방형이다. 대체로 대형 주거지를 중심으로 소형 주거지들이 주변에 배치되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주거지는 대부분 적갈색 점토층이나 생토면을 파서 조성한 장방형 수 혈 주거지로 상부는 전체적으로 상당히 삭평된 상태이다. 따라서 부분 적으로 바닥이 파괴되어 형태가 부정확한 것들도 상당수 있다. 주거지 의 규모는 가장 큰 것이 길이 12m, 폭 5m이며, 대부분 5m 내외의 것들 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화재로 인하여 폐기된 것도 6기 정도 확인되 었다. 주거지 내부에서는 탄화된 板狀의 목재와 단면 圓形의 목재가 나 타나고 있는데 床面 바닥에 마루시설을 설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도 확인되고 있다. 주거지 내부 시설로는 壁溝, 爐址, 柱穴, 바닥시설 등이 있고 壁溝의 경우 주거지 바깥에 溝狀施設이 연결되어 나타나며, 주변에서 저장시 설로 추정되는 竪穴 등이 확인되고 있다. ․壁溝 대부분의 주거지에서는 가장자리를 따라 壁溝施設이 나타나고 있다. 벽체를 따라 원형의 탄화된 목재 흔적이 나타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판 재로 추정되는 것들도 주거지 내부로 넘어진 상태로 확인된다. 20기 주거지에서는 壁溝가 주거지 4벽에서 모두 확인되고, 3기의 주 거지에서는 부분적으로 확인된다. 벽구의 깊이는 주거지에 따라 차이 가 있지만 단면형태는 대부분이 “U”자형이고 몇 개의 주거지만이 “V” 자형으로 나타난다. 그 중에는 벽구만 확인되는 경우와 주혈이 확인되 는 경우가 있다. 29호 주거지의 경우는 벽구 내에서 주혈이 촘촘하게 확인되었는데 주 혈의 형태가 장방형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어 주목되었다. 그런데, 내부에서 출토된 주혈의 목탄이 장방형을 띠고 있어 목재를 어느 정도 가공하여 기둥으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5호 주거지의 경우 는 벽구와 주혈 상부 벽체에 기둥이 그대로 탄화되어 나타나고 있어 당 시 주거지의 구조가 보다 명확히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19호 주거지의 경우는 다른 주거지와는 달리 주거지 벽에서 20cm 정도 안쪽에서 壁溝가 확인되었는데, 그 바깥에는 주혈이 일정 한 간격으로 나타나고 있어 어느 정도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 된다. ․排水施設 주거지의 낮은 지역의 모서리 부분에서 壁溝와 연결되어 구릉 아래쪽 으로 이어지는 溝狀施設이 대부분 확인되고 있다. 그 중 가장 긴 것은 6m 가량인데, 제17호 주거지의 경우에는 주거지 모서리 壁溝施設과 바 깥 溝狀施設로 이어지는 지점에 석재 2점이 놓여 있는 경우도 있다. 동일 구릉 서쪽 고속도로 인근에서 울산문화재연구원에서 조사한 주 거지의 경우에는 판상석재를 조립하여 暗渠와 같은 구조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확인된 바 있어 주목된다. ․柱穴 壁溝 내에서 확인되는 柱穴 이외에 주거지 바닥에서 확인되는 주혈 의 배치는 약간의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주혈의 배치가 정형성을 띄 는 6柱式, 그렇지 않고 바닥에서 많은 주혈이 보이는 多柱式, 그리고 주 혈이 확인되지 않는 無柱式의 세가지 형태가 확인되며, 그 중 중소형 주거지의 경우는 전체적으로 6柱式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구조의 차 이는 시기성을 반영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향후 조사가 완료되면 공 반유물과의 관계를 검토하여 그 성격이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질 것으 로 판단된다. ․爐址 爐址는 주거지내 중앙에서 한쪽으로 치우쳐서 1개씩 나타나고 있다. 중․대형 주거지의 경우에는 2개의 爐址를 갖춘 것도 있으며 대부분이 아무런 시설 없이 원형이나 타원형으로 확인된다. 노지의 크기는 Ⅱ지 구 내에서도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폭 30cm- 50cm 정도이 고 깊이 10cm 정도이다. 爐址의 위치는 대부분 한쪽으로 치우쳐서 확 인되고, 10m 전후의 대형 주거지의 경우는 爐址가 2개가 확인되는 것 으로 보아 칸막이 설치와 같은 공간분할이 예측된다. 노지 내에는 집중적으로 불을 맞은 흔적이 나타나고 그 주변으로는 목탄이 섞인 흑갈색 부식토가 확인되는데, 15호, 29호, 34호 주거지와 같은 경우는 爐址 가장자리를 따라 燒土 덩이가 띠처럼 둘러진 예도 확 인된다. ․ 바닥시설 Ⅱ지구 내에서 확인된 주거지 바닥 다짐은 크게 3종류로 불다짐과 진 흙다짐, 그리고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구분된다. 대 형 주거지의 경우에는 불다짐한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 반면, 소형 주거 지의 경우에는 불다짐이나 점토다짐한 흔적이 대부분 확인되고 있다 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불다짐 바닥은 일반적으로 청동시기대 수혈 주거지에서 많이 확인되 는 것으로 밑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방지할 목적으로 판단되며, 전체적 으로 붉은 색을 띄며 매우 단단한 편이다. 바닥의 두께는 2cm~4cm 정 도로 매우 얇은 편이며, 생토층까지 간접적으로 열을 받아 생토의 색깔 이 붉게 변한 곳과 여러 번 불다짐한 흔적도 확인된다. 이 외 점토로 다져진 바닥과 풍화암반 알갱이와 황갈색을 띠는 사질 토를 바닥에 깐 경우가 있으며, 생토 바닥을 그대로 사용한 주거지는 그 수는 적지만 대부분 풍화암반을 굴착하고 만들어진 주거지의 경우 에서 확인된다. ② 溝狀遺構 주거지 주변에서 6기의 溝狀遺構가 확인되었다. 대부분 청동기시대 이후에 조성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 중 제12호 주거지 4m 아래 지 점에 등고선 방향을 따라 길게 나타나는 제4호 구상유구의 경우에는 내 부에서 무문토기편들과 함께 일정한 간격으로 주혈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에 목책이나 울타리와 같은 어떠한 시설이 조성되었던 것으로도 추정해 볼 수 있다. ③ 水田 수전 유구는 아직까지 노출된 것은 없지만 제2지구와 제3지구 사이 의 골짜기에 설치한 트렌치 토층 단면에서 그 가능성이 확인되고 있 다. 이 일대는 현재 골짜기의 양쪽 끝 부분으로 水路를 조성하고 상부에 서 내려오는 풍부한 수량을 바탕으로 전체적으로 논으로 경작되고 있 다. 그런데 4 방향으로 각각 2개씩의 트렌치를 설치하여 조사한 결과 현재 논으로 경작되는 골짜기 중앙 부분에서 水中沈澱物로 구성된 溝 가 확인되어 先史 및 古代의 수전 유적들은 이 곳을 중심으로 형성되었 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트렌치 토층 단면에서는 많은 水田層이 나타났다. 그 중 하층에서는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편들과 함께 비교적 양호한 상태의 水田層이 확 인되어 이 일대는 청동기시대 이래로 지속적인 수전 농경이 영위되었 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水田層 아래의 生土層은 황백색에 가까운 밝은 점토층으로 구 성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얼음쇄기(Ice wedge)현상이 나타나고 있 을 뿐만 아니라 구석기시대 후기 단계의 것으로 추정되는 박편석기 1점 이 출토되어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도 인정되고 있다. 라. 출토유물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유물들은 주로 청동기시대의 각종 무문토기류 와 마제석기류, 그리고 장신구로 구분할 수 있다. 토기의 器形은 주로 鉢形土器를 중심으로 壺形土器가 공반되며, 그 중에는 컵에 가까운 소형 鉢形土器와 平底 壺形의 丹塗磨硏土器, 그리 고 저부에 둥근 구멍이 뚫린 토기류 등이 있다. 이 외 문양적 특징으로 이른 단계로 편년되는 孔列文土器와 口脣刻目文土器, 短斜線文土器 등 이 있다. 석기류는 각종 마제석기류를 비롯하여 미완성 석기로 추정되는 타제 석기류로 크게 대별할 수있다. 마제석기류는 각종 蛤刃石斧를 비롯하 여 二段柄式 磨製石劍이나 扁平片刃石斧, 곤봉두로 판단되는 環狀形石 斧와 같이 이른 단계로 편년되는 것들로부터 단면 菱形의 細長形 兩翼 磨製石鏃, 有溝石斧 등 후기 단계의 것들이 있으며, 이 외에도 石刀나 각종 마제석촉, 碾石, 농경구인 半月形石刀 등이 출토되어 청동기시대 문화내용을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 된다. 장신구로는 曲玉 1점과 용도미상의 마제석검 파편을 재가공하여 만 든 것 1점이 출토되었다. 이 중 곡옥 제품은 43호 주거지에서 출토된 것 으로 납작한 타원상의 흑색질 硅岩을 절단하고 중앙에는 홈을 새긴 후 상단에 구멍을 뚫은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二段柄式으로 추정되는 頁 岩製 磨製石劍의 把手部片 상단에 구멍을 뚫고 홈을 낸 것으로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 그 외 철기류나 청동기, 백자는 조선시대 민묘 조사과정에서 수습된 것들이 있으며, 시굴조사 당시에는 포개진 채 출토된 靑銅盒이나 鐵釘 도 출토된 바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 전기 단계의 묘제를 이해할 수 있 는 자료가 되고 있다. 7. 조사자 의견 가. 경부고속철도 보수 기지가 들어설 신화리유적은 평야지대와 하 안 단구상의 구릉지역으로 크게 구분되며 구릉지대는 골짜기를 따라 모두 5개의 지역으로 구분하였다. 나. 그 중 구릉지역인 Ⅰ,Ⅱ,Ⅲ지구는 현재까지 100여기의 주거지가 확인되어 조사 중에 있지만, Ⅰ지구의 경우는 공동묘지내의 민묘 이장 이 현재까지 완료되지 않아 미조사된 점을 감안한다면 향후 그 수는 더 욱 늘어날 것으로 판단된다. 다. 신화리유적은 유물의 내용과 주거지 중복 관계를 통하여 크게 2시 기 정도의 구분이 가능하다. 이른 단계의 것은 대부분 중․대형급에 속 하는 장방형 구조를 나타내며 내면에서 바깥으로 半貫通한 孔列文土器 를 중심으로 구연부 주변에 短斜線이 새겨진 것과, 구연부에 孔列文과 口脣刻目文이 함께 나타나고 있는 것, 孔列文과 短斜線文이 結合된 것 들이 있다. 공반 석기로는 二段柄式 磨製石劍, 扁平片刃石斧, 짧은 兩 翼磨製石鏃, 蛤刃石斧, 環狀形石斧(달도끼) 등이 있다. 늦은 단계의 것은 주로 규모가 적고 방형에 가까운 구조를 보이지만 그 수는 많지 않은 편이다. 주로 무문양의 발형토기가 중심을 이루지 만 그 중에는 短斜線이 施文된 壺形土器와 把手部가 부착된 토기도 있 다. 공반 유물로는 단면 菱形의 細長形 磨製石鏃, 有溝石斧 등이 있다. 라. 주거지가 위치하는 구릉지역 삼면이 하천으로 둘러싸인 지형 구 조를 보이지만 현재까지 어망추가 1점도 출토되지 않았다는 점이 주목 되며, 농경 용구인 반월형석도의 출토양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에서 이 지역 사람들은 어업보다는 농경생활이 중심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 다. 마. Ⅱ,Ⅲ지구 사이의 골짜기지역 내에서는 트렌치 토층 단면에서 청 동기시대의 수전유적으로 추정되는 흔적들이 무문토기편들과 함께 확 인되고 있으며, 그 아래의 생토면에서는 구석기시대로 추정되는 박편 석기가 출토되었다. 바. 이곳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유물의 특징을 감안하면 기원전 7세기 전후가 중심 사용 시기로 추정된다. 사. 구릉 남쪽 아래에 위치하는 Ⅳ,Ⅴ지구의 경우, 지표조사 당시 유 적이 위치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 시굴조사에 포함된 곳이 다. 그러나 시굴조사 당시까지 보상이 완료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주 변의 논으로 인하여 물이 채워져 조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발굴과정에서 이 일대에 대한 시굴조사를 포함하기로 협의한 바 있다. 그러나 구릉 상부인 Ⅰ,Ⅱ,Ⅲ지구 유적의 규모가 당초 예상보다 클 뿐 만 아니라 수전유적의 확인이나 구석기유적의 존재 가능성, 그리고 공 동묘지내 민묘 이장이 완료되지 않은 점 등에서 현재의 조사기간으로 는 완료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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