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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삼양리유적

2002-08-26 11:42:00
조회 2257
옥천 삼양리유적 지도위원회 개최 Ⅰ. 調査槪要 1. 조 사 명:경부선 대전-옥천간 선로개량공사구간내 옥천 삼양리유 적 2. 유적위치:충북 옥천군 옥천읍 삼양리 20외 3. 조사면적:약 5,940㎡ 4. 조사기간:2002. 6. 10∼2002. 8. 27 현재 조사진행중 5. 유적성격:고려∼조선시대 건물지 6. 조사기관:중앙문화재연구원 7. 조사의뢰기관:철도청 고속철도건설사업소 Ⅱ. 調査地域의 考古·歷史的 背景 옥천군 지역은 금강 줄기를 따라 일찍부터 인류가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금강변의 강안과 구릉지는 선사시대 사람이 살기에 적 합한 자연조건을 이루어 비교적 많은 유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 으나, 대청댐의 건설로 인하여 많은 지역이 수몰되고 학술적인 발굴조 사가 거의 실시되지 않아 정확한 선사유적의 실태는 아직 파악되지 않 고 있다.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 보고된 선사시대 유적으로는 郡北面 龍湖里遺蹟 과 莫只里遺蹟, 용방리유적 등이 있다. 용호리유적에서는 타제석기인 긁개 1점과 물고기모양의 형체조각품 1점 등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확 인되었으며, 막지리유적에서는 빗살무늬토기편과 타제석기 1점이 수습 되기도 하였다. 한편 용방리에서는 신석기시대의 불탄자리와 함께 어 골문이 시문된 빗살무늬토기편이 발견되어 내륙의 신석기문화연구에 새로운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한편 청동기시대의 유적은 비교적 여러 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동이면 石灘里, 赤下里, 沃川邑 三靑里, 安南面 道農里 등지에서 고인돌 및 석 기유물이 확인되는데, 특히 석탄리 안터에서 발견된 고인돌은 북방식 과 남방식의 고인돌이 혼재되어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의 연 구가 기대된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로서, 양국의 싸움이 치열하여 교 대로 점령하던 격전지였다. 486년(소지왕 8)에는 신라가 이곳에 屈山城 을 개축하여 국경선을 다지기도 하였다. 三陽里土城, 環山城, 관산성 을 비롯하여 지금의 옥천읍을 중심으로 분포된 여러 산성은 이 지역이 삼국시대의 요충지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환산·월이산·덕 의산에는 각기 봉수대가 있다. 삼국시대 고분도 여러 지역에서 확인·보고되었다. 서산성일대의 고분 군을 비롯하여 석탄리 고분, 오덕리 고분군 등이 그것으로 주로 석곽 묘 계통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의 고분군은 도굴되거나 대청 댐 건설로 인해 수몰된 상태이다. 옥천군은 본래 옥천·청산·이원·안읍을 합한 곳으로서, 옥천은 신라때 古 尸山郡, 청산은 屈山縣, 이원은 所利山縣, 안읍은 阿冬兮縣이었다가 757년(경덕왕 16) 管城郡·耆山縣·利山縣·安貞縣으로 각각 개칭되었고 뒤에 기산현은 三年郡의 領縣이 되었다. 고려초 기산현은 靑山縣으로 개칭되었고 상주에 속하였으며, 안정현 은 안읍현으로 개칭되었다. 1018년(현종 9) 관성군·이산현·안읍현이 경 산부의 관할이 되었으며, 1143년(인종 21) 관성군이 현으로 강등되어 현령이 파견되었다. 1182년(명종 12) 吏民이 현령 洪彦을 잡아 옥에 가 두고 민란을 일으킨 사건으로 폐현되었다가 1313년(충선왕 5) 知沃州 事로 승격되었고 경산부 관할인 이산·안읍·양산 등 3현이 이곳에 분속 되었으며, 지금의 군서면 금천성에 있는 관청을 지금의 옥천읍 죽향리 로 이전하였다. 1390년(공양왕 2) 청산현에 監務를 두었다. 조선 태조 13년(1413)에는 옥천군으로 개칭되고 청산현과 함께 경상도 에서 충청도로 이관되었다. 태종 14년(1414)에 청산이 黃澗에 합쳐져 서 황청현이라 하였다가 다시 분리되어 청산현으로 복구되었다. 근대 인 고종 32년(1895)에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공주부 옥천군·청산군 을 개편되었다가, 다음해인 고종 33년(1896)에 충청북도 옥천군·청산군 이 되었다. 일제때인 1914년에 청산군이 옥천군에 통합되었고, 학산면·양산면·용화 면이 영동군으로 이속되었다. 1929년 이내면과 이남면을 합하여 이원 면으로 고치고, 청서면과 청남면을 합하여 청성면으로 고쳐서 모두 9면 으로 개편하였다. 해방후인 1949년에는 옥천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현재는 옥천읍·안남 면·안내면·청성면·이원면·군서면·군북면 등 1읍 8면 215리의 행정구역 을 이룬다. Ⅲ. 調査內容 옥천 삼양리유적에서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건물지 6동 이 확인되었으며, 건물지의 부속시설들도 일부 확인되었다. 또한 가마 유구도 2기가 확인되었다. 1. 遺構 1) 建物址 (1) 제1건물지 조사지역의 중심부에서 확인된 제1건물지는 서쪽과 남쪽의 기단이 비 교적 정연하게 잔존한 상태로 조사되었으나, 건물의 북쪽과 동쪽의 기 단은 결실되었다. 건물의 기단은 크기 40∼50㎝가량의 할석을 이용하 여 가로와 세로쌓기를 혼용하여 2∼3단으로 축조하였다. 잔존한 기단 의 규모는 서쪽 기단부가 30m, 남쪽 기단부가 19m 정도이며, 기단의 높 이는 바닥면에서 약 40㎝가량이다. 기단석은 바깥쪽으로 면을 맞추고 있으며, 안쪽으로는 10∼20㎝가량의 소형할석을 이용하여 채움하였 다. 제1건물지내의 적심시설 서쪽과 남쪽의 기단에 인접해서 6개소의 적심 석이 확인되나 확실하지는 않다. 한편 이 건물지 내부에는 복잡하게 구 획된 형태를 보인다. 이는 크기가 다양한 할석을 사용해 면을 맞추어 설치함으로써 건물의 내부를 구획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제1 건물지 중심부에는 20∼30㎝가량의 할석을 사용하여 250×350㎝의 규 모로 구획된 시설이 확인되었는데, 이 내부에는 일정한 범위로 소토흔 등의 불뗀흔적이 관찰된다. 따라서 이 곳은 건물지의 난방 혹은 취사 와 관련된 시설로 추정된다. 또한 서쪽기단에 인접해서 서쪽기단과 나 란하게 구획된 시설도 확인된다. 복도시설로 추정되는 이 시설의 규모 는 너비 1m, 길이 10m 가량으로, 이 시설은 건물내 또다른 구획으로 인 해 마무리된다. 제1건물지와 관련된 부속시설로는 서쪽 기단에서 서쪽으로 약 3m가량 떨어진 곳에 1건물지의 담장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확인되었다. 담장지 는 30∼50㎝가량의 할석을 2열로 해서 바깥면 양쪽을 맞춘 형태이며, 너비는 50㎝가량이다. 이외에도 서쪽 기단에서는 암거형의 배수시설 로 추정되는 유구도 2곳에서 확인되었다. (2) 제2건물지 제2건물지는 제1건물지의 서쪽기단에서 서쪽으로 약 10m 가량 떨어져 위치하는 측면 1칸의 행각지로 추정된다. 건물의 가로축선은 제1건물 지의 가로축선과 나란한 남북(N-18°-E)축선으로 자리한다. 건물의 서쪽 기단은 40∼50㎝ 정도 크기의 할석을 가로·세로쌓기를 혼 용하여 1∼2단의 높이로 축조하였으며, 기단석의 안쪽에는 20∼30㎝ 가량의 소형 할석을 뒷채움한 형태이다. 서쪽기단의 잔존길이는 부분 적으로 결실된 곳이 확인되지만 약 30m 정도로 비교적 큰 규모를 보인 다. 건물의 동쪽 기단은 40∼50㎝ 정도의 할석을 1단으로 가로쌓기하 여 열을 맞춰 놓은 구조로, 기단과 기단사이의 너비는 350㎝ 가량이다. 건물지 내부에는 적심시설과 초석이 확인되었다. 적심석은 지름 100㎝ 의 규모로 20∼30㎝ 가량의 할석을 원형으로 채움한 형태이며, 초석은 상면이 반듯한 50∼60㎝ 가량의 자연석을 사용하여 축조하였다. 건물 의 정면 주칸거리는 350㎝, 측면의 주칸거리는 200㎝ 정도이다. (3) 제3건물지 제3건물지는 제1건물지와 제2건물지 사이에 위치하는 정면 6칸, 측면 3 칸의 건물지이다. 건물의 축선은 제1건물지와 나란한 방향을 보이나, 건물의 동쪽 적심석은 제1건물지 서쪽 기단 위에 설치되어 있어 제1건 물지보다 후대의 건물지로 추정된다. 또한 제3건물지의 중심부로는 제 1건물지의 담장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설치되어 있으며, 이 시설 위에 제3건물지의 적심석이 올려져 있는 상태이다. 적심석의 규모는 지름 120㎝ 가량으로, 30∼50㎝ 정도의 비교적 큰 할 석을 원형으로 설치한 후, 할석 사이에는 소형의 할석과 기와편 등을 채움한 구조이다. 건물의 정면 주칸거리는 250㎝, 측면 주칸거리는 200 ㎝이며, 추정되는 건물의 규모는 정면 17m, 측면 7m 가량이다. 제3건물 지와 관련한 기단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제3건물지가 제1건물지와 중복됨과 동시에 제3건물지 하부에는 또다 른 건물지의 적심석이 중복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4) 제4건물지 조사지역의 남쪽부에 위치하는 제4건물지는 기단 일부와 적심석, 초석 등의 건물 기초시설이 확인되었다. 기단은 동서방향(N-86°-W)으로 길 게 놓여있는 상태이며, 기단의 서쪽부는 약간 안쪽으로 내어져 있으며 축선을 달리하여 설치된 양상을 보인다. 기단석은 50∼60㎝ 가량의 할 석을 사용하여 1단 높이로 설치하였으며, 축조양상은 주로 세로쌓기하 였다. 기단의 기초는 소형의 납작한 할석과 기와편을 이용하여 시설하 였다. 초석은 기단에서 안쪽으로 약 70∼80㎝가량 들여서 설치하였다. 초석 은 3매가 확인되었으며, 크기는 60㎝ 가량으로 방형에 가까운 자연석 을 이용하였다. 적심석은 지름 약 100㎝내외이며, 크기가 다양한 할석 을 원형으로 채움하였다. 정면, 측면의 주칸거리는 250㎝이며, 퇴칸은 150㎝ 가량이다. 제4건물지의 부속시설로는 담장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확인되었다. 담 장지는 건물의 기단 남쪽으로 약 2.5m 떨어진 곳에 기단과 나란하게 설 치되어 있다. 담장의 너비는 150㎝가량으로, 담장의 양쪽 바깥면은 40 ∼50㎝가량의 자연할석을 세로쌓아 면을 맞춘 형태로 현재는 1단만 잔 존한 상태이다. 내부에는 소형의 할석을 채운 형태이다. (5) 제5건물지 제1건물지 남쪽 기단에서 남쪽으로 약 3m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정면 4칸, 측면 3칸의 건물지이다. 건물의 기단은 30∼50㎝ 가량의 할석을 사용하여 세로쌓기한 구조이며, 현재는 1단만 확인되었다. 현재 건물 의 기단은 사면에 약간씩 잔존한 상태로, 이를 통해 건물의 규모를 추 정할 수 있다. 제5건물지의 규모는 정면이 11.5m, 측면이 11m로 방형 에 가까운 형태를 보인다. 적심석은 기단의 바깥면에서 안쪽으로 약 70∼80㎝가량 들여서 축조 된 구조이다. 기단면에 인접해 위치한 적심석과 적심석 사이에는 할석 을 사용하여 안쪽으로 면을 맞추어 적심석 사이를 보강한 구조도 관찰 된다. 적심석의 지름은 130㎝ 가량으로 원형의 형태를 하고 있다. 적심석은 20∼30㎝ 가량의 할석과 기와편을 사용하여 축조한 구조이며, 일부는 40∼50㎝가량의 비교적 큰 할석을 원형으로 돌려 채움한 후, 그 사이에 는 소형 할석과 기와편을 채움한 것도 관찰된다. 정면과 측면의 주칸거 리는 240㎝ 가량이다. (6) 제6건물지 조사지역의 동쪽부에 위치한 건물지로, 경사면에 위치하여 건물의 적 심과 기초석의 높이 차이가 있다. 잔존한 적심석과 초석으로 추정되는 건물의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1칸 전퇴이다. 건물의 초석은 상면이 고른 크기 80∼100㎝ 가량의 거대한 자연석을 사 용하여 시설하였다. 건물 북쪽편의 초석과 초석사이에는 벽체의 하부 기초로 추정되는 시설이 확인된다. 하부기초시설은 너비 60㎝ 가량으 로, 크기 20∼40㎝의 할석을 가로쌓기와 세로쌓기를 혼용하여 축조하 였으며, 양 바깥쪽의 면을 정연하게 맞추었다. 내부에는 소형 할석과 기와편 등을 채움하였다. 확인된 적심석은 지름 100㎝ 가량으로, 30㎝내외의 할석을 사용하여 원 형으로 채움하였다. 정면과 측면의 주칸거리는 330㎝, 퇴칸은 170㎝ 가 량이다. 2) 가마터 조사지역의 동쪽부분에서는 2기의 가마유구가 확인되었다. 제6건물지 에서 남쪽으로 약 9m 떨어진 지점에 2기가 나란하게 위치한다. 가마는 상부가 삭평된 상태로 확인되어 정확한 구조를 알 수 없으나, 평면형태는 말각방형의 형태를 취한다. 가마의 내부에는 천장시설이 함몰되어 있으며, 명갈색 사질토가 퇴적되어 있다. 가마는 연소실·소성 실·굴뚝부로 크게 나뉘는데, 확인된 유구는 연소실과 소성실의 일부만 잔존한 상태이다. 가마의 벽체와 바닥면은 경화되어 회흑색을 띠고 있 으며, 벽체 바깥부분도 소성흔적이 확연히 관찰된다. 잔존한 가마의 규모는 길이 2.5∼3m 가량이다. 2. 출토유물 옥천 삼양리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도·자기류, 기와류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도·자기류로는 주로 청자류와 분청자기류가 대부분이며, 조선 시대 백자편은 일부만 확인되고 있다. 기종은 주로 잔, 접시, 대접 등이 다. 기와류에는 주로 수지문과 방곽문이 시문된 기와류가 다수를 차지하 며, 명문으로는 '官'자명과 '舍'자명의 명문기와가 다수 수습되었다. 한 편 연화문막새를 비롯한 막새류도 일부 수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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