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로고

현장소식

이천 설성산성 2차 발굴조사

2002-09-06 10:12:00
조회 2282
이천 설성산성 2차 발굴조사 지도위원회 1. 조사지역 :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선읍리 산 115-1번지 (경기도 기념물 제 76호) 2. 조사기관 : 단국대학교 매장문화재연구소 3. 종합고찰 이번 2차 조사는 설성산성에서 가장 넓은 평탄지가 있는 건물지 5(지 표조사시 부여된 명칭)와 그 주변지역에 대하여 실시되었다. 이 지역 은 중앙의 평탄지를 중심으로 주변 완경사 지역에 계단식 건물지의 흔 적이 보이고 있고, 주변에 수량도 풍부하여 지표조사시부터 산성의 중 심적인 시설이 들어서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 따라서 조사 전부 터 설성산성의 축조시기 및 변화상을 밝힐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찾 을 수 있을 것을 기대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대규모의 건물터를 비롯한 산성의 중심적인 시설로 볼 수 있는 유구는 노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굴립주형 건물터를 비롯하 여 저수시설, 저장시설들이 출토되어 설성산성에서 생활 모습을 추정 하여 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이번 발굴에서 출토된 유 물은 대부분 백제시대의 것들로 1차 발굴 조사(서문지 주변)에서 주로 신라 유물이 출토되었던 상황과 비교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적어도 이번 발굴 지역은 백제에 의하여 활발히 활용되었던 사정을 잘 보여주 고 상대적으로 신라는 그리 중요시 여기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 나 그 동안 설성산성에서는 백제토기가 꾸준히 출토된 바 있었지만 이 와 관련되는 유구가 출토되지 않아서 초축국을 백제로 추정하는데 장 애가 되었다. 하지만 이번 발굴조사에서 백제문화층과 더불어 백제시 대의 건물터가 출토되어 초축국을 백제로 볼 수 있는 근거들이 축적된 것은 커다란 성과이다. 1) 유구 이번 조사에서 출토된 유구 중 먼저 가장 주목되는 것은 건물터이다. 모두 6개소의 건물터가 출토되었는데, 모두 암반층이나 풍화암반층을 굴착하여 조성한 일종의 수혈주거지이다. 평면 형태는 교란이 심하여 짐작하기 곤란하다. 다만 주변에는 둘러져 있는 기둥구멍이나 굴광선 의 형태로 보아 대체로 원형이나 타원형, 육각형 등으로 추정되지만, 토층의 교란이 심하고 여러 개의 기둥 구멍이 중복되었던 관계로 분명 하지 않다. 건물지 내부에는 풍화암반 위에 적갈색 점토를 다져서 만 든 바닥 위로 황갈색 점토+굵은 모래층, 흑갈색점토 +모래, 부토층 순 으로 퇴적되어 있었다. 건물터는 지표에서 최대 80cm 이상 풍화암반 을 굴착하여 수혈을 조성한 후 그 위에 적갈색 점토와 모래를 섞어서 다져서 바닥을 축조하였다. 주변에는 풍화암반을 원통형으로 굴착하 여 기둥구멍을 만들거나, 암반 상면을 다듬어 그 위에 그대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붕에는 풀을 사용하여 덮 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나A확-1·2 건물지는 다량의 불에 탄 평기와편 이 건물지 주변에 산포되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기와를 사용하 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기와들은 두께가 얇아서 초석을 사용하지 않 은 건물에 충분히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모든 건물지 주변에 기와가 산포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전체 건물에 기와를 사 용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이 경우 나A확-1·2 트렌치의 건물은 지휘소 와 같은 특수한 성격의 건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각 건물지에서는 난방이나 취사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구들시 설이 노출되었다. 가장 형태가 잘 남아 있는 것은 건물지 2의 것이다. 전체 형태는 '一'자형으로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고 있다. 양 측벽은 할 석을 세워서 만들고 그 위에 판석형의 석재로 덮었다. 유구를 이루는 석재는 대부분 불 먹은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내부 폭은 27cm, 깊이는 14cm 이다. 건물지가 대부분 유실되어 건물지 내부에 어 디에 위치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다만 토층으로 보아 중앙에서 서쪽으 로 약간 치우친 위치가 아닐까 한다. 건물지 3·4·6에서도 유사한 형태 의 시설이 출토되었다. 건물지 4는 유구가 모두 유실되었으나 암반 상 면에 홈을 파서 측벽을 세웠던 흔적 및 아궁이가 확인되었다. 전체형태 는 'ㄱ'자형으로 남북으로 긴 '一'자에서 남쪽 끝이 직각으로 꺾어지면 서 아궁이 있다. 북쪽 끝에 굴뚝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 내부 에서 구들시설의 위치는 동쪽 부분에 치우쳐 있었다. 건물지 3과 건물 지 6은 일부 시설이 남아 있다. 건물지 3은 토층둑에 일부가 가려져 있 고, 건물지 6은 구들시설을 제외한 건물 유구가 모두 유실되었다. 대체로 '一'字형을 기본으로 한쪽 끝에서 'ㄱ'자로 꺾어져 아궁이가 있고 그 반대편에 굴뚝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할석을 세워서 측벽 을 구성하고 그 위에 넓적한 돌을 덮개돌로 올려놓았다. 암반면이나 풍화암반을 정리하고 측벽석은 홈을 파서 측벽석을 세웠던 것으로 보 인다. 내부에 물에 탄 소토가 퇴적되어 있고 바닥의 암반면과 측벽과 덮개돌로 사용된 석재는 불에 그을린 자국이 뚜렷하였다. 아궁이 주변 에서는 조리용과 배식용으로 사용되던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이 같은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 시설은 난방과 취사를 위한 것으로 추정하여 볼 수 있다. 이 같은 구들시설은 이미 구의동유적이나 아차산 보루에 서 유사한 온돌시설이 발굴된 적이 있다. 앞으로 좀더 검토를 해보아 야 하겠지만, 이번에 출토된 구들시설도 이들과 연관 속에서 살펴보아 야 할 것이다. 이상의 정황을 고려하면 이 건물지들은 설성산성에 주둔한 군인들의 막사로 추정된다. 이와 비교되는 비슷한 시기의 수혈건물지로 구의동 고구려유적을 들 수 있다. 구의동 유적의 건물지도 원형의 수혈주거지 로 지름은 약 7.6m 정도이다. 남쪽에 방형 출입구가 있고 벽을 따라서 22개의 기둥구멍이 노출되었으며 각 기둥구멍의 간격은 70∼80cm로 일정하였다. 내부에는 배수시설, 온돌시설, 저수시설이 있고, 온돌시설 은 동북부에 치우쳐 남북으로 길게 설치되어 있었다. 아궁이 주변에서 는 생활토기들이 출토되었다. 설성산성 수혈건물지는 각각의 크기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지름이 5m∼10m 사이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벽을 따라서 주공이 있으 며 주공 간격은 50cm∼70cm 정도로 비교적 일정하다. 내부에는 온돌 시설이 중앙부에서 한쪽으로 치우쳐서 있고 주변에서 생활용 토기가 출토되는 것도 유사하다. 다만 설성산성에서는 내부에 저수시설이 없 다는 것인데, 공동 저수시설이 있으므로 건물 내부에 마련할 필요가 없 었을 것이다. 이 건물지는 크기와 형태가 구의동 유적의 건물지와 비교됨으로 수 용 인원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한다. 구의동 유적이 10여명 내외로 추정 되고, 아차산 4보루 발굴 결과 고구려 군대의 최소단위도 이와 유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백제도 고구려와 같은 문화적 맥락을 가지고 있 다는 점을 고려하면 설성산성의 건물지도 대체로 10명 내외의 병사가 수용되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즉, 백제의 최소 단위 부대가 하나의 건 물지를 차지하였고 이들이 모여서 상급단위의 부대를 형성하였던 것으 로 보인다. 이번에 발굴된 건물지는 6개소이지만 그 이외에도 건물지 로 볼 수 있는 유구가 있고, 시굴조사 결과 나B·나C 지역에 걸쳐서 구 들유구의 흔적이나 건물지 흔적이 다수 노출되고 있다. 따라서 가지구 에서 나지구 전체에 걸쳐비슷한 규모의 수혈건물지가 아직도 다수 존 재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구들은 차기 조사를 통해서 발굴 될 예정이다. 일반적으로 한강 유역의 고대 산성에서 출토되었던 건물지는 기단과 초석을 갖춘 형태의 건물지들이었다. 이러한 건물지 중 가장 올라가는 것은 신라시대의 것이다. 그 동안 한강 유역에서 백제가 초축하였을 것 으로 추정되는 산성이 수기 조사되었고 백제 토기도 출토되었다. 하지 만 백제의 건물지는 출토된 적이 없었다. 필자가 조사한 설봉산성이나 반월산성의 경우에도 많은 수의 백제토기가 출토되었지만 이것들을 제 작하고 사용하였던 백제인들의 거주 흔적이 발굴되지 않아 의문이었 다. 그런데 반월산성과 설봉산성에서도 신라 건물지 하부 풍화암반층 에는 많은 기둥구멍이 있었다. 다만 후대의 건물 축조과정에서 되어 삭 토되었던 관계로 건물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비교 적 형태가 뚜렷한 백제 수혈건물지가 출토됨으로써 의문의 일부를 풀 수 있었다. 앞으로 한강 유역의 산성조사에서 백제 수혈건물지에 대해 서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편, 건물지와 함께 저수시설과 토광(저장시설)의 존재도 주목된다. 특히 이번 발굴에서는 토기의 저장시설로 보이는 토광이 2기가 발굴됨 으로써 나지구 일대의 공간 배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토 광이 위치하는 곳은 평탄지가 아니라 가지구와 나C확 트렌치 건물지 일대 경사면에 집중되어 있다. 비교적 평탄한 곳은 건물지를 축조하고 경사면에는 저장시설을 설치하였던 것이 아닌가 한다. 따라서 아직 조 사되지 않은 나지구 경사면에는 다수의 토광이 존재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면 그 중에서는 이번에 발굴된 나C확-1·7호 토광과 같은 것들이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저수시설도 나C확 트렌치 경사면을 활 용하여 축조하였다. 이 저수시설은 나지구의 건물지와 관련하여 축조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나C확-7호 토광 보다 후대에 만들어졌을 가 능성도 고려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가 진행중임으로 차후 에 결론을 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성벽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조사된 성벽의 특 징은 성벽의 기저부와 뒤채움의 일부를 토축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외 벽 기저부까지 점토를 다진 것은 아니고 성벽 내부의 뒤채움 석재 하부 에만 점토를 다진 것이다. 이와 같이 성벽 뒤채움이 석축부와 토축부 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이미 설봉산성 3차 발굴조사와 반월산성 6차 발 굴조사에서도 확인되었다. 다만 이들 모두 성벽들이 백제가 축조한 성 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양식을 고유한 백제의 석성 축조 방식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d번 성벽 조사에서도 석 축 하부 점토 다짐층에서 다수의 백제 토기편이 출토되었고 건물지와 성벽의 관계로 보아 백제가 성벽을 초축하였던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결국 백제가 축조한 것으로 밝혀진 세 곳의 산성이 모두 뒤채 움에 석축부와 점토부가 공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고대 성벽의 축 조 방식에 대한 자료가 층분하지 않아서 속단하기는 어렵고 앞으로 신 라나 고구려의 축성 방식과 비교하여 검토해 볼 문제이다. 2) 유물 이번 2차 조사에서 출토된 백제 유물은 설성산성의 성격 규명에 중요 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나C확-1 트렌치의 7호 토광에서 출토 된 완형의 기대와 대부용기는 경기도 지역의 산성에서는 출토된 적이 없는 한성시대 백제토기로 주목된다. 이와 함께 공반 출토된 기형이 거 의 완전하게 보존된 많은 양의 고배와 호·옹류는 백제토기 연구에 좋 은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토기 뿐만 아니라 나A확-4 트렌치의 건물지 2 북서쪽에서 출토된 기 와는 토층, 제작 양식, 공반 출토된 백제토기 등으로 미루어 백제 기와 로 추정된다. 한성시대 백제 평기와는 풍남토성과 몽촌토성 등 왕성을 제외하고 지방에서는 출토된 예가 거의 없어서 매우 주목된다. 특히 그 중에는 방형의 인장이 찍힌 기와도 섞여 있다. 설성산성 출토 백제 기와류는 모두 정선된 점토로 만든 것으로 색조는 회백색이나 적갈색, 황갈색을 띤다. 대부분 두께가 매우 얇은 편이며, 와도로 정성을 들여 단면을 마무리하였다. 등에는 주로 격자문 및 사선문이 타날되어 있 다. 전체적으로 연질의 기와이며, 동일한 문양의 기와도 소성온도의 차 이로 인하여 각각의 경도는 차이가 있다. 인장이 찍힌 기와도 사격자문 이 시문된 연질기와와 경질기와의 두 종류가 있다. 철제류도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살포, 주조철부와 낫 등의 농기구류, 철제칼을 비롯한 투겁창, 화살촉 등 각종 무기류와 철제 가위, 솥 등의 생활 도구, 건축부재 등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철제유물 은 당시의 무장과 산성에서의 생활상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거의 완형에 가까운 살포가 출토되어 주목된 다. 설성산성 출토 백제토기는 현재 알려진 백제토기 편년안과 비교하 여 볼 때, 대략 4세기 후반경∼5세기 전반경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그 가운데서도 회청색 경질의 고배류, 호·옹류 등 비교적 상대편년이 용이 한 유물들은 그 중심연대를 4세기 후반으로 설정할 수 있다. 기존의 몽 촌토성Ⅱ기, 풍납토성Ⅳ기, 설봉산성Ⅱ기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 다. 하지만 이번 출토품이 토광에서 일괄 출토된 유물이기 때문에 좀 더 정확한 편년안은 앞으로 주변 유적과의 충분한 검토가 필요할 것으 로 본다. 또한 출토된 백제 토기에서는 풍납토성이나 몽촌토성의 유물과 같은 정교한 면도 있으나, 기종은 다양하지 못한 편이다. 이러한 점은 아직 발굴이 설성산성 일부 지역에 국한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왕성에 비하여 군사(행정)적 거점이라는 유적의 성격과 관련될 것이다. 설성산 성의 백제 토기에 대한 종합적 검토는 이후 계속 시행될 체계적인 발 굴 조사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될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설성산성에서 기와를 얹은 건물지가 존재하고, 기대와 같 은 비교적 고급품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보아, 한 성 백제시대의 남방진출과 지방 경영의 일개 거점일 가능성도 높다. 그 같은 정치적 이유로 이곳에 산성이 축조되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산성의 축조 시기는 출토되는 토기로 보아 일단 4세기 후반으로 추정된 다. 이천 설봉산성과 비슷한 시기에 축조되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따 라서 설성산성은 설봉산성과 연관성속에서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이 며, 한성백제시대의 지방지배체제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 가된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617개(19/31페이지)
 
현장소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수
등록일
257 경산 서부택지개발지구 발굴조사 운영자 2487 2002.10.23
256 군산 내흥동 유적 발굴조사 운영자 2325 2002.10.23
255 군산 내흥동 유적 현장설명회(10/23) 운영자 876 2002.10.23
254 경산 서부택지개발지구 현장설명회(10/22) 운영자 844 2002.10.23
253 청양 장승리 고분군 운영자 2519 2002.10.18
252 청양 장승리 고분군 현장 설명회 (10/18) 운영자 891 2002.10.18
251 학곡리 적석총 발굴조사 운영자 2505 2002.10.16
250 학곡리 적석총 발굴 조사 현장설명회(10/15) 운영자 842 2002.10.16
249 천안-병천간 도로 확,포장 공사구간내 관리자 2207 2002.10.11
248 천안 운전리 발굴현장 현장 설명회 (10/12) 운영자 882 2002.10.11
247 장흥탐진댐 수몰지구내 발굴조사 운영자 1959 2002.10.04
246 장흥 탐진댐 수몰지구내 발굴조사(10/5) 운영자 878 2002.10.04
245 부여 관북리 백제왕궁지 운영자 1963 2002.10.04
244 부여 관북리 백제왕궁지 시·발굴조사(10/4) 운영자 856 2002.10.04
243 울산권 상수도(대곡댐)사업 편입부지내 3차발굴조사 조수현 1585 2002.09.25
242 홍천지역 신석기시대 주거지 운영자 2316 2002.09.13
241 음성-생극간 국도 확포장공사 구간내 운영자 2128 2002.09.11
>> 이천 설성산성 2차 발굴조사 운영자 2283 2002.09.06
239 경기 이천 설성산성2차유적 지도위원회(9/6) 운영자 878 2002.09.06
238 인천 용유도 유적 현장설명회(9/6) 운영자 927 2002.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