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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생극간 국도 확포장공사 구간내

2002-09-11 09: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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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城-笙極間 國道 擴·鋪裝 工事區間內 遺蹟 指導委員會 會議資料 Ⅰ. 調査槪要 유 적 위 치: 충북 음성군 음성읍 하당리, 신천리 일원 음성-생극간 국도확포장공사구간내 조 사 기 간: 1차 - 2001. 11. 01.∼2001. 12. 31. 2차 - 2002. 05. 20.∼2002. 06. 27. 3차 - 2002. 07. 15.∼2002. 09. 10. 현재. 유 적 성 격: 청동기시대 주거지 및 고려시대 이후 분묘유적 조 사 면 적: 약 31,400㎡ 조사의뢰기관: 대전지방국토관리청 Ⅲ. 調査內容 발굴조사는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유구를 중심으로 표토를 제거하여 유 구의 윤곽선을 확인하였으며, 이번 음성-생극간 국도 확·포장공사구간 내의 문화유적 발굴조사로 현재까지 청동기시대 주거지 6기를 비롯하 여 삼국시대 이후 석곽묘 2기, 고려시대 이후 토광묘 6기, 석렬유구 1 기, 수혈유구 3기가 조사되었다. 유물은 청동기시대 무문토기를 비롯하 여 60여점이 출토되었다. 세부적인 유구 성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靑銅器時代 住居址 주거지는 현재까지 6기가 조사되었다. 먼저 주거지의 입지를 살펴보면 인근의 진천 사양리(중앙문화재연구원 2001)와 청주 용암유적(한국문 화재보호재단 2000)은 능선 정상부를 중심으로 일렬로 배치되는 양상 을 보인다. 이에 반해 이번에 조사된 주거지는 능선 정상부 외에 능선 사면에서도 확인되고 있는 특징을 보인다. 주거지의 장축방향은 1∼3·5 ·6호 주거지는 등고선 방향과 평행하며, 이에 반해 4호 주거지는 직교 되게 만들어졌다. 주거지의 평면 형태는 2∼5호 주거지는 자연 경사로 인하여 일부분이 삭평되어 평면 형태를 알 수 없지만 잔존하는 형태로 보아 1·6호 주거 지와 마찬가지로 장방형으로 추정된다. 다음으로 주거지 내 爐址는 圍石式爐址 및 무시설식의 형태이다. 노지 의 위치는 주거지 내에서 한쪽으로 치우쳐 확인되며, 위석식노지의 경 우는 평면 형태가 “ㅁ”자의 형태를 띠고 있다. 무시설식노지는 1·2·5호 주거지에서 확인된다. 礎石은 1·6호 주거지에서 확인되는데, 1호 주거 지는 주거지 중앙에 3개의 초석이 일렬로 배치되며 6호 주거지는 장축 방향을 따라 양장벽에 치우쳐 2열로 베치되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 음으로 柱穴은 6기의 주거지에서 모두 확인되며 주로 4벽을 따라 나타 나고 있다. 주혈의 기능은 벽체시설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추정된다. 마지막으로 貯藏施設은 3호 주거지를 제외하고 나타나는데 그 형태는 방형, 또는 타원형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번 조사된 주거지의 양상은 다음〈표 1〉과 같다. - 표 1은 첨부 파일을 참조 하세요 ① 6호 주거지 주거지는 조사대상 구간인 남쪽에 위치한 교차로가 건립될 능선에서 확인되었고, 능선 정상부는 해발 164m 정도이다. 6호 주거지는 해발 161.80∼162.20m에서 위치하며 동쪽으로 약 10 m 정도 떨어져 5호 주 거지가 위치하고 있다. 6호 주거지 윤곽은 현 지표를 약 30∼40㎝ 제거후 적갈색 풍화암반층에 서 확인되었다. 주거지 표면은 갈색사질토로 채워져 있었고 또한 장·단 벽 윤곽선과 인접하여 숯과 고열을 받은 흔적이 띠를 이루며 확인되었 다. 주거지의 장축은 북동-남서(N-50°-E)방향이며, 등고선 방향과 평행하 다. 주거지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며, 규모는 길이 1206㎝ 너비 500㎝ 최대깊이 80㎝이며 평면비는 2.41 : 1이다(약 18.2평). 조사는 4분법의 방법으로 실시하였다. 주거지내 토층 상태는 최대 5개층으로 채워져 있 었다. 토층은 크게 갈색사질토층과 적갈색사질점토층+흑갈색사질토 층으로 구분되었고, 장벽과 단벽부근에서는 사선방향으로 흑갈색사질 토, 숯, 고열을 받아 붉게 변색된 층이 확인되었다. 윤곽선에서 약 10∼30㎝ 내려가서 10∼25㎝ 크기의 할석이 장벽과 인 접하여 5매씩 확인되었다. 이러한 할석은 주거지 바닥에서 확인된 초 석 및 기둥시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거지 내부시설로서 노지는 위석식노지가 3기 확인되었다. 1호 노지 는 주거지 중앙에서 북동쪽으로 조금 치우쳐 위치하며 남쪽으로 135㎝ 떨어져 2호 노지가 위치한다. 또한 2호 노지에서 남쪽으로 125㎝ 떨어 져서 3호 노지가 위치하고 있다. 노지의 평면형태는 1·2호 노지는 “ㅁ” 자형이며 3호 노지는 남쪽과 서쪽 할석이 파괴된 상태이다. 3기의 노 지 내부에서는 고열을 받은 흔적 및 숯이 확인되었다. 기둥구멍은 장 벽 및 단벽에 연접하여 만들어졌고 평면 형태는 원형, 타원형의 형태이 다. 주거지 바닥은 장벽과 인접하여 2列 9柱의 礎石이 서로 대칭을 이루며 생토 위에 20∼30㎝ 정도 규모의 할석을 올려놓은 형태로서 상부는 편 평하게 마연되었다. 또한 초석과 인접하여 소공이 확인되었다. 9개 초 석 사이 간격은 각각 80∼120㎝이며, 2열의 간격은 약 300∼320㎝이 다. 또한 초석은 장벽과는 약 50∼100㎝ 정도 떨어져 위치하고 있다. 저장시설은 주거지 북동쪽에서 저장공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북동쪽 에 위치하고 있다. 저장구덩이는 직경 50∼80㎝ 최대깊이 15㎝ 정도의 규모로 이루어졌고 북쪽모서리에 3개 동쪽모서리에 1개의 저장구덩이 가 위치하고 있다. 또한 주거지 동쪽 단벽에서 3호 노지방향으로 100 ㎝, 서쪽 단벽에서 1호 노지방향으로 150㎝ 정도 떨어져 용도미상의 소 공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무문토기 저부를 비롯하여 10여점이 출토되었다. 특히 무문토 기는 저장공 및 노지 주변에서 확인되었고 석제품은 반월형석도 및 석 검편, 석부, 미완성 석제품이 상부에서 뜬 상태로 주거지 중앙 및 동쪽 단벽부근에서 확인되었다. 위와 같이 주거지 내부시설로 보아 공간이용은 노지를 기준으로 남서 쪽은 일상생활 공간, 북동쪽은 작업 또는 저장공간으로 분리할 수 있 다. 2. 石槨墓 석곽묘는 지금까지 2기가 조사되었다. 이중 1호 석곽묘는 고려시대 이 후의 석곽묘로 추정되며, 2호 석곽묘는 삼국시대 석곽묘로 추정된다. 먼저 석곽묘의 입지는 능선 하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1·2호 석곽묘는 등고선 방향과 대체로 평행하게 축조되었다. 2기의 석곽묘 벽석은 한 쪽 벽면이 파괴된 상태이다. 석곽묘 벽석 축조 양상은 1호 석곽묘는 세 로쌓기 및 가로쌓기를 혼용하여 사용하였다. 또한 2호 석곽묘는 1단은 일부 눕혀쌓기로 나머지는 세로쌓기 및 가로쌓기를 혼용하여 사용하였 다. 다음으로 蓋石은 1호 석곽묘에서 확인되는데 개석은 동쪽으로 치우쳐 2매가 함몰되어 확인되었다. 棺臺 및 護石은 2호 석곽묘에서 확인되 며, 호석은 내호석 및 외호석으로 구분된다. 유물은 2호 석곽묘에서 관 정이 출토되었다. 이번 조사된 석곽묘의 양상은 아래〈표 2〉와 같다. - 표 2도 첨부 파일을 참조 해 주십시오. ① 2호 석곽묘 석곽묘는 6호 주거지와 마찬가지로 조사대상 구간인 교차로 부지에 위 치하며 해발 155.70∼158.15m 사이에서 확인되었다. 석곽묘에서 북동 쪽으로 약 15m 떨어져 6호 주거지가 위치하고 있다. 석곽묘는 표토를 약 30㎝ 제거 후 할석이 확인되었다. 유구는 적갈색풍화암반층을 굴착 하고 만들어졌고, 내부는 갈색사질토로 채워져 있었다. 유구의 장축은 동-서(N-84°-E)방향이며, 등고선 방향과 비교적 나란하 게 축조되었다. 석곽묘의 평면 형태는 외호석, 내호석이 일부 잔존하 고 묘광은 장방형이며, 묘광 규모는 길이 462㎝ 너비 307㎝ 최대깊이 90㎝이며, 평면비는 1.50 : 1이다. 석곽묘는 수혈식으로 추정되며, 규모 는 길이 318㎝ 너비 156㎝이며, 평면비는 2.03 : 1이다. 벽석은 도굴갱으로 인하여 남쪽 장벽이 일부 파괴된 상태이며, 1단은 일부 눕혀쌓기로, 나머지는 가로쌓기와 세로쌓기를 혼용하여 축조하였 고, 벽석사이의 공간은 작은 할석을 이용하여 메꾸었다. 조사 과정에 서 벽석 일부는 토압에 의해 내부로 함몰된 상태였다. 벽석은 북장벽 이 최고 7단 남아 있으며 깊이는 바닥에서 최고 100㎝이며, 벽석모서리 는 각지지 않고 둥글게 만들어 축조하였다. 관대는 북장벽과 동단벽으로 치우쳐 설치되었고, 규모는 길이 278㎝ 너 비 85㎝이다. 관대는25∼60㎝ 정도의 할석을 이용하여 2단으로 쌓았 다. 호석은 내호석과 외호석이 일부 확인된다. 내호석은 석곽묘 북쪽 과 동쪽에서 일부 잔존하며, 20∼40㎝의 할석을 이용하였고 석곽묘 북 장벽보다 높은 곳에 만들어졌다. 외호석은 동쪽 및 남쪽에서 확인되며 20∼60㎝의 할석을 이용하여 돌아가고 있다. 또한 남쪽부분의 외호석 은 석곽묘 남장벽 보다 아래에 설치되어 돌아가고 있다. 유물은 관정 이 관대에서 흘러내린 상태로 출토되었다. 3. 土壙墓 토광묘는 지금까지 6기가 조사되었으며 대부분 고려시대 이후에 조영 된 것으로 판단된다. 토광묘의 입지는 대부분 사면에 주로 분포하고 있 으며, 밀집도는 비교적 낮은 편이다. 또한 대부분이 삭평이 심한 상태 로 규모를 알 수 있는 경우는 1기에 불과하다. 토광묘의 장축방향은 1 ∼5호 토광묘는 능선 방향과 직교하며, 6호 토광묘는 능선 방향과 평행 하게 조영되었다. 유물은 3호 토광묘에서 토기 1점이 출토되었다. 이번 조사된 토광묘의 양상은 아래〈표 3〉과 같다. - 표 3도 첨부 파일을 참조 해 주십시오. ① 3호 토광묘 토광묘는 조사대상 구간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사면인 해발 148.90∼ 149.40m 사이에서 확인되었다. 3호 토광묘 북동쪽으로 10m 떨어져 1 호 석렬유구가 위치하고 있다. 묘광의 윤곽은 현지표를 약 30∼40㎝ 제거 후 확인되었으며, 남쪽부분 이 자연 경사로 인하여 삭평된 상태였다. 유구는 적갈색풍화암반토를 굴착하고 만들어졌고 내부는 흑갈색사질토가 채워져 있었다. 묘광의 장축은 남-북(N-15°-W)방향이며, 등고선 방향과 직교하게 조영 되었다. 묘광의 잔존하는 규모는 길이 128㎝ 너비 86㎝ 최대깊이 43㎝ 이다. 윤곽선에서 약 15㎝ 내려간 결과 토기의 구연부가 노출되었으며, 약 43 ㎝ 하강하여 묘광의 바닥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묘광 내에서는 토층상 의 변화는 없이 흑갈색사질토가 채워져 있었고, 벽면은 약간 경사져 만 들어졌고 바닥은 생토를 그대로 정지하여 사용하였다. 유물은 묘광 북쪽에서 바닥에서 약 20㎝ 뜬 상태로 토기 1점이 출토되 었다. Ⅳ. 調査成果 이번 발굴조사는 도로공사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문화유적의 훼손을 방지하고, 학술적인 자료를 남기고자 실시하였다. 음성은 우리 나라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선사시대 이래로 고구려·백제·신라 삼 국의 세력이 교차하는 지역으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반면 이 지역에 대한 고고·역사학적 조사가 미진하여 그 성격을 밝히 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으나 이번 발굴을 계기로 이 지역이 선사시대 이래 이 지역에 살던 조상의 삶과 문화상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를 축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하당·신천리 유적에서는 청 동기시대 주거지 6기, 삼국시대 이후 석곽묘 2기, 고려시대 이후 토광 묘 6기, 석열유구 1기, 수혈유구 3기가 조사되었다. 유물은 청동시대 무 문토기를 비롯하여 60여점이 출토되었다. 조사성과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지금까지 6기가 조사되었는데 금강상류 지역 인 진천 사양리유적(중앙문화재연구원 2001), 청주 용암유적(한국문화 재보호재단 2000)에서 조사된 주거지와 비교하여 평면형태, 노지형태, 초석시설, 저장시설 등에서 유사성을 띤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것 과 같이 입지상에서 조금 차이를 보이며 이러한 입지를 고려하면 공사 구간 외의 능선 정상부 및 사면에서도 청동기시대 주거지가 잔존할 가 능성이 높다. 조사된 주거지 중 위석식노지가 한 주거지(6호)에서 3기가 확인된 예 는 금강유역권에서는 대전 대덕 태크노밸리유적 9호 주거지(중앙문화 재연구원 2002 조사)에서 확인되는 정도이다. 또한 장방형의 위석식노 지는 금강유역권에서 대부분 조사되는데 그 양상으로 보아 음성지역 도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음성지역에서 장방 형의 주거지가 조사된 것은 금강 상류지역의 청동기 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축척된 것으로 보여진다. 2. 석곽묘는 2기가 조사되었는데 1호는 비교적 소형의 석곽묘이며, 2호 는 비교적 규모가 큰 석곽묘이다. 특히 2호 석곽묘는 호석(내·외호석) 이 확인되었으며 인근의 중원 루암리고분(충북대학교박물관 1993)에 서 조사된 호석시설의 석실분과의 연관성을 가지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6세기 중엽 신라가 중원지역을 점령하고 한강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한 루트상과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3. 토광묘는 지금까지 6기가 조사되었다. 토광묘는 대부분 자연 경사 로 인하여 삭평된 상태이며 대부분 능선 사면에 조영되었다. 토광묘는 출토되는 유물이 거의 없으며 그 시기는 고려시대 이후에 조영된 것으 로 판단된다. 4. 석렬유구는 현재 건물지로 추정되지만 건물지의 내부시설이 확인되 지 않아 뚜렷하게 건물지로 단정하기가 어려운 상태이다. 특히 석렬유 구는 교각 공사로 인하여 일부가 파괴된 상태이며 출토되는 유물 또한 수량이 적은 상태이다. 그러므로 차후 이와 유사한 유구가 조사되면 유 구의 성격이 밝혀질 것으로 판단된다. 5. 수혈유구는 현재까지 3기가 조사되었다. 수혈유구내에서는 시기를 알 수 있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시기는 미상이다. 1·2호 수혈유구는 인근의 대전 오정-대화동유적(중앙문화재연구원 2002 조사), 청주 송 절동유적(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00)에서 조사된 수혈유구와 유사한 형 태이다. 차후 이와 같은 자료가 축척되면 유구의 분석 및 연구를 통하 여 유구의 성격이 규명될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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