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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서부택지개발지구 발굴조사

2002-10-23 13:36:00
조회 2487
경산 서부택지개발지구 발굴조사 Ⅰ . 조사개요 1. 조사기간 : 2001. 10. 8 ~ 현재 2. 조사지역 : 慶尙北道 慶山市 玉谷洞 151番地 일원 3. 조사면적 : 총 28,674㎡(약 8,670평) 4. 조사기관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부설 문화재조사연구단 Ⅱ. 調査地域의 位置와 周邊環境 西部地區는 행정구역상 慶山市 玉谷洞 일원에 해당한다. 본 지구는 백천지구의 北西쪽이며, 南川의 西岸에 접하여 있다. 최근에 慶山市內 에서 南川을 건너기 위해 새로 놓은 ‘서옥교’에서 大邱 時至地區 방면 의 월드컵도로와 연결되는 왕복 4차선의 신도로가 개통되어 있다. 본 지구는 南川의 西岸쪽 ‘서옥교’에서 京釜線 鐵路 아래로 지나가는 ‘옥곡 지하차도’ 입구까지의 신도로변 南쪽으로 펼쳐진 충적평야지대(속칭 ‘옥곡들’)이다. 地區界의 北쪽은 상기한 신도로변까지이며, 南쪽은 들 판 가운데를 東西로 가로지르는데 백천지구의 北쪽 경계선과 거의 일 직선으로 연결되는 지점까지이다. 그리고 東쪽 경계는 南川의 江岸까 지이며, 西쪽 경계는 경부선 철로변까지이다. 南北 최대 길이 약 900m, 東西 최대 너비 약 450m이며, 총 면적은 89,000평(295,000㎡) 정 도이다. 서부지구내 본 발굴조사 지역은 Ⅰ區域이 北端 中央部에, Ⅱ區 域이 中央部 東便에 각각 위치하여 서로 약 1500m 정도 떨어져 있다. 조사지역의 지리적 환경은 南川의 柏泉洞 下流地域 범람원에 속하면 서도 聖岩山에서 東쪽으로 뻗어 내려오는 여러 枝陵의 末端部와 각각 접하여 있어 합류선상지형 충적평야지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조사지역을 포함한 慶山 西南部地域의 고고학적인 유적은 주 로 지표조사를 통하여 밝혀져 있다.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 확인된 유적 들은 통합 慶山市域의 中央部에서 北部,東部地域에 밀집분포하고 있 는 유적군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매우 빈약한 편이다. 이는 지리적 환 경으로 볼 때, 이 지역은 비교적 험준한 山地들과 峽谷平野地帶로 형성 되어 있기 때문에 유적의 立地的 환경이 다른 지역보다는 열세한 영향 도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南川의 兩岸을 따라 주로 분포하 고 있는 支石墓群으로 보아 이른 시기부터 사람들이 생활하여 왔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南川邊 일대에서 확인되는 支石墓는 上流流域에 三省里, 俠 石里 山田里와 中,下流流域에 본 서부지구내의 지석묘 1기를 비롯하여 玉谷洞, 玉山洞 그리고 大邱市의 壽城區 沙月洞,新梅洞,梅湖洞,時至洞 등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南川邊과 얼마 떨어지지 않 은 좁거나 넓은 들판 한가운데 遺存하는 입지적 공통성이 있다. 이들 중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것은 시지택지개발지구내의 時至洞支石墓群 과 梅湖洞支石墓群이다. 그리고 지석묘와 관련한 주거유적은 상기 시 지동과 매호동의 지석묘 주변에서 3기가 발굴조사되었고, 최근에 京釜 線 慶山~淸道間 철로개량공사구간내 유적으로 三省里 支石墓群의 남 서쪽 들판의 한정된 구역내에서 5기가 조사되었다. 이와 같이 이 지역 의 청동기시대 주거유적은 현재 조사가 미진하나 本 西部地區와 마찬 가지로 지석묘와 인접하여 확인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남천 변을 따라 분포하고 있는 지석묘군 주변에서 많이 확인될 것으로 예상 된다. Ⅲ. 調査經緯 및 經過 本 發掘調査 地域은 한국토지공사 경북지사에서 추진하고 있는 경산 서부․백천 택지개발지구중 서부지구내에 위치한다. 서부지구는 본 재 단의 시굴조사(2001. 4. 4~5. 29)결과, 2개 구역에서 매장문화재가 확 인되었다. 즉Ⅰ區域은 靑銅器時代 住居址와 그 관련 유구인 溝狀遺構 를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敷石遺構 등이 확인되어 약 3,200평이 발굴조 사 대상지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Ⅱ區域은 지표조사시 확인된 支石墓 上石과 이를 중심으로 직경 약 10m 범위 내에 石棺墓 4~5기 정도가 분 포하고 있었으며, 그 주변으로 高麗~朝鮮時代의 부정형 竪穴遺構와 集石遺構 등이 확인되어 약 3,500평이 발굴조사대상지로 선정되었다. 이중 Ⅱ區域은 2001년 9월 文化財廳의 발굴조사 허가심의위원회에서 支石墓 上石과 그 주변에서 확인된 石棺墓에 대해서는 영구보존하기 로 방침이 정해져 그 범위를 제외한 면적으로 허가가 내려졌다. 이에 韓國土地公社 慶北支社는 지석묘 및 그 주변 석관묘를 중심으로 약 450 평을 공원구역으로 설계를 변경함으로써 당초 Ⅱ區域 발굴면적은 3,500평에서 3,050평으로 축소되었다. 이에 따라 本 財團은 450평을 제 외한 전체 발굴조사 대상면적(6,250평)에 대한 발굴계획서를 한국토지 공사 경북지사에 재차 제출한 후 발굴조사 계약을 맺었다. 發掘調査는 2001년 10월 8일에 착수하였는데, 조사순서는 토지공사측 에서 사업계획상 우선을 요하는 지역인 Ⅰ區域을 집중적으로 실시하였 다. 그런데 Ⅰ區域에서 試掘調査 당시에 예상한 유구 기수보다 많은 수 의 遺構가 확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구역의 北쪽과 南쪽 외부로도 범위 가 일부 확장됨을 확인하였다. 이로 인하여 조사단의 당초 계획된 발굴 조사 일정이 다소 지연되었으며, 특히 Ⅰ區域은 西部地區內로 진입하 는 주도로가 통과될 예정이기 때문에 토지공사측 또한 공사일정의 지 연과 변경이 불가피하였다. 그래서 2002년 5월 10일 Ⅰ區域의 당시까 지 조사된 내용에 대한 1차 지도위원회를 개최하여 구역외부로 확장되 는 지역에 대한 조사방향과 주도로구간의 처리문제, 그리고 유적의 성 격 등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당시 Ⅰ구역에서 조사된 청동기시대의 유 구는 주거지 27동, 수혈 17기, 집석유구 2기, 굴립주 2기이었으며, 미조 사된 유구는 구상유구를 비롯하여 구역의 남서 모서리쪽에 수전(논)층 약 200평 정도가 남아있었다. 그리고 Ⅰ구역의 북쪽 확장지역(110× 50m)과 남쪽 확장지역(80×50m)의 탐색 피트에서 주거지 및 수혈유구 가 각각 5기, 6기가 확인되어 있었던 상태이다. 지도위원회의 결과, 사업시행자와의 관련사항으로 Ⅰ구역의 남․북 확장구역은 사업지구로 인하여 훼손이 불가피한 지역이므로 본 조사 와 연계하여 발굴조사하도록 결정되었다. 그리고 주도로구간은 사업시 행자가 각종 시설(오수관, 우수관, 가스관, 통신 등)을 설계 변경하여 유구를 훼손치 않고 원상을 그대로 보존한 가운데 공사를 실시하겠다 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기 때문에 Ⅰ구역 마무리 조사와 Ⅰ구역의 남, 북 확장구역중 주도로구간을 우선적으로 조사한 후 주도로개설을 허용 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에 동년 6월 추가확장구역(Ⅰ구역 외부 남,북쪽)에 대한 연계발굴 조사를 위해 조사계획서 제출과 동시에 기간연장(실조사일수 60일 추 가)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조사기간중 8월 동안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인하여 재차 기간연장을 10월까지 한 상태에서 현재 마지막 조사중이 다. 그 동안 1차 지도위원회시 사업시행자가 요구한 바 있는 주도로 개 설구간은 본 재단이 조사를 완료한 후 개설이 진행중이다. 이번 2차 지도위원회는 1차 지도위원회 당시에 Ⅰ구역에서 조사되지 못한 논층과 구상유구, 그리고 추가 확장구역(Ⅰ구역 외부 남,북쪽)과 Ⅱ구역에 대한 조사내용을 중심으로 한다. Ⅳ. 調査內容 1. Ⅰ區域 1) 수전(논) Ⅰ구역 남서쪽에 위치한다. 시굴조사시에 설치된 트렌치를 이용한 토 층조사에서 현 표토층에서부터 아래로 계속하여 중첩된 논층이 확인되 었다. 이는 plant-opal 분석을 통해서도 확인되었다. 이 논층들은 대부 분이 지속적인 경작으로 인해 상면이 교란된 것으로 판단되어 평면조 사는 가장 아래에 위치하는 논층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대상 면적은 약 600㎡이다. 조사는 대상면적을 시굴조사시에 설치된 트렌치를 이용하여 약 10× 10m 정도 크기의 6개 區로 나누어 단면조사와 병행하여 실시하였다. 그러나 이 논층 역시도 후대의 지속적인 경작 및 삭평 등에 의해 상면 이 상당히 교란되어 있었기 때문에 논층의 바닥면을 이용하여 경작면 을 확인하였다. 경작면은 나누어진 여섯 개의 區 중 가장 서남쪽의 제1구 및 제2구의 극히 일부(13×7m)에서만 확인되었다. 나머지 區에서는 교란 및 삭평 으로 인해 확인할 수 없었다. 확인된 논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낮아지 는 계단상으로 평면형태는 미약한 弧狀이다. 현재 8面이 확인되는데, 폭은 80cm 전후이고, 높이 차이는 1~3cm가량이다. 이 논의 조성시기는 정확한 자료가 반출되지 않아 불분명하다. 그러 나 논층 아래 점이층에 무문토기시대 주거지가, 상부의 교란층에서 인 화문이 시문된 토기편 및 기와편이 확인되는 점과 지금까지 조사된 다 른 논유적의 상황과 비교하여 삼국시대 내지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경작면 이외에 북서-남동향의 溝가 확인되는데, 북서쪽으로는 제3 구, 남동쪽으로는 제6구로 이어진다. 단면상에서 논층이 溝 매몰토 위 에 형성된 것으로 보아 확인된 논보다 선행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내부 에서는 바닥에 면해서 무문토기 잔편들만 검출되었다. 현재 논 조사를 위해 남겨둔 층 아래의 트렌치 단면과 평면에는 청동 기시대 주거지 및 수혈 유구 10여기가 확인되며, 확인된 논 면 이외에 대해서는 유구확인 및 내부 조사중이다. 2) 溝狀遺構 Ⅰ구역의 청동기시대 구상유구는 2개소에서 확인되었는데, 구역의 중 앙부에 단절된 구 1호와, 북서편에 주거지와 수혈이 확인되지 않는 곳 에 남북방향으로 길게 이어지는 구 2호가 있다. 특히 구 2호는Ⅰ구역 서쪽 중앙부 외부에서 진입하여 북쪽 확장지역으로 이어진다. 확인된 길이는 약 100m 정도이며, 너비는 평균 1m 내외, 깊이는 15~30cm 정 도이다. 중간 중간에 작은 단절된 구들도 확인된다. 내부에는 작은 무 문토기편 소량과 함께, 흑갈색 사질점토와 목탄 입자들이 섞여 있었 다. 본 구는 현재 유물이 거의 없어 정확한 성격이나 용도는 알 수 없으 나, 상기한 논층 하부에 확인된 구와 구역 서쪽 외부에서 연결되는 것 으로 추정되며, 또한 논층의 하부 구는 남쪽 확장지역에 확인된 구와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Ⅰ구역 중심부의 청동기시대 주거 지와 수혈유구의 서쪽 외곽에 조성되어 있다. 2. Ⅰ區域 南,北 擴張區域 남북 확장구역은 Ⅰ구역과 조사는 별도로 진행되었지만, Ⅰ구역의 외 부 남,북쪽으로 이어지는 동일 지대이다. 북쪽 확장구역에서 확인된 유 구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8동,수혈유구 9기,구상유구 1기, 굴립주 1동 과 함께 고려시대 이후로 추정되는 구상유구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남 쪽 확장구역에서 확인된 유구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10동,수혈유구 13 기,구상유구 2기와 함께 고려시대 이후로 추정되는 우물지 2기가 확인 되었다. 그러면 각 시기별 유구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청동기시대 (1) 주거지 남,북 확장구역 주거지의 분포양상은 Ⅰ구역과 연계하여 볼 때, 크게 Ⅰ구역의 중앙부를 중심으로 반원상의 列狀에 분포하는 群과 북동쪽 에 별개의 군을 이루는 것으로 대별할 수 있다. 주거지의 성격은 지난 번 1차 지도위원회 당시에 보고한 Ⅰ구역 주거지와 같은 양상이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長方形(13동)과 方形(5동)의 두 유형으로 대별 된다. 장방형 중에는 장폭비가 2 : 1 이상인 비교적 세장한 형태(북-4 호, 남-5호)도 있다. 장방형과 방형 주거지는 Ⅰ구역과 마찬가지로 분 포상에서 뚜렷한 공간 구분은 보이지 않는다. 주거지들간의 중복현상 은 북-3호(선축)와 7호(후축), 그리고 남-2호(후축)와 3호(선축)에서 만 확인되며, 모두 장방형 주거지들이다. 住居址의 내부시설로는 爐址와 柱穴이 확인되며, 壁溝施設은 확인되 지 않는다. 爐址는 남-6호 방형 주거지에서만 서쪽 반 가량이 파괴되 어 확인되지 않았지만, 長方形과 방형 住居址 모두에서 확인되었다. 방 형 주거지의 노지는 모두 중앙부에 1개가 설치되었으며, 장방형 주거지 는 주축의 중앙부나 한쪽으로 편재되어 설치되었는데, 대체로 1개가 설 치되었고 일부는 2개가 설치된 것(남-5,8,9호)도 있다. 柱穴은 방형과 長方形 住居址 모두 1~2개 정도만 확인되는데, 주축 중앙선상에 주로 배치되어 있다. 화재가 난 주거지는 남-주6호에서만 확인된다. 出土遺物은 Ⅰ구역과 마찬가지로 매우 적은편이다. 토기류는 대체 로 발형토기와 호형토기가 주를 이루는데, 대체로 저부와 동체부편이 다. 일부 확인되는 구연단편에는 구순각목 형식이 주로 확인된다. 석기 류는 이단병식석검 병부편(남-5호), 석검편(북-2,5호), 편평편인석부, 주상편인석부, 석촉, 석도, 지석, 연석(남-8호), 보습(남-7호) 등이 주 로 출토되었다. 그리고 토제품으로 어망추, 방추차 등이 출토되었다. (2) 竪穴遺構 竪穴遺構는 주거지 사이에 비교적 군을 이루어 분포하는데, 북쪽 확 장구역은 북-1,2호의 북쪽에 인접하여 분포하고, 남쪽확장구역은 남- 1,4호의 남서쪽에 한 군과 남-6,8호의 남동쪽에 한 군을 이루며 분포한 다. 평면형태는 장방형, 방형, 타원형, 부정형 등 다양하다. 이 중 크기 가 길이 3~4m 내외, 너비 1.5m 내외, 깊이 10~40cm 정도의 長方形 竪 穴은 Ⅰ구역에서 다수확인된 것과 유사한 형태이다. 출토유물은 미완 성 석기와 지석이 다수 확인된다. 表 1. Ⅰ구역 남,북 확장구역 청동기시대 주거지 현황표 (첨부 파일을 참조 하십시오.) 그러므로 분포양상과 형태, 출토유물 등으로 보아 Ⅰ구역과 같이 당시 취락내 공간이 구분된 작업장 등으로 이용된 것 같다. 그리고 그 외 부정형이나 타원형 수혈유구는 출토유물이 한 점도 없기 때문에 시기 와 성격이 불명확한 경우도 있다. 2) 후대 우물지 및 구상유구 우물은 모두 남쪽 확장구역의 북동쪽에서 2기가 확인되었다. 2기는 서로 10m 정도 떨어져 위치한다. 2기 모두 평면형태는 원형이며, 단면 형태는 상광하협이며, 강돌을 사용하여 축조하였다. 내부의 상부에는 무너진 우물 벽석이, 그 아래로는 떨어진 우물 벽석과 흑회색 진흙이 채워져 있었다. 2호 내에서는 경질토기편과 청자편, 기와편 소량이 출 토되었다. 우물 1호의 굴광 크기는 상부 직경 168cm, 하부 직경 90cm 정도이 며, 우물의 크기는 상부 직경 66cm, 하부 직경 65cm , 잔존 깊이 175cm 정도이다. 表 2. Ⅰ구역 남,북 확장구역 청동기시대 수혈유구 현황표 (표 2는 첨부 파일을 참조하십시오) 우물 2호의 굴광 크기는 상부 직경 240cm, 하부 직경 125cm 정도이 며, 우물의 크기는 상부 직경 90cm, 하부 직경 80cm, 잔존 깊이 188cm 정도이다. 이와 같이 2기 모두 우물의 상부는 유실되었을 것으로 판단되며, 주변 에서 이와 관련된 건물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출토유물이 적으나 2호 내부에서 청자 대접편 1점이 출토되었으며, Ⅰ구역내 건물지 잔해들과 비교할 때,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구상유구는 북쪽 확장구역에서만 확인되었는데, 구역 북단 중앙부에 서 남쪽방향으로 동쪽과 서쪽의 ‘V'자 형태로 갈라진 형태이다. 구의 流水 방향은 남에서 북으로 흘러 구역 북단 중앙부로 모여드는 형태이 다. 서쪽 구는 길이 60m, 너비 100cm 내외, 깊이 20~30cm 정도이며, 청동기시대 주거지인 북-5,7호의 상부를 파괴시켰다. 동쪽 구도 길이 60m, 너비 100cm 내외, 깊이 20~30cm 정도이며, 북단 중앙부 가까이 에서 2갈래로 나누어진다. 구 내부에는 모두 흑갈색 사질 점토가 채워 져 있었으며,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회청색 경질토기편이 바닥과 상부 에서 일부 출토되었다. 3. Ⅱ區域 Ⅱ구역은 서부지구의 중앙부 동편에 위치한다. 본 구역은 시굴조사 당시 지표조사시에 확인된 지석묘 상석과 이를 중심으로 직경 약 10m 범위내에 석관묘 4~5기가 분포하고 있었으며, 구역내에 청동기시대 집석유구와 고려~조선시대의 부정형 수혈유구와 석열, 소토유구 등 이 확인되어 약 3,500평 정도가 발굴조사구역으로 확정된 곳이다. 이 중 지석묘와 석관묘를 중심으로 약 450평 정도가 보존구역으로 설정되 어 실제 발굴면적은 3,050평이다. 이곳은 해발 약 58m 정도로 Ⅰ구역보 다는 약간 높은 지대이다. 지표면은 조사당시 주로 밭 등의 경작지로 만 계속 이용되었다. 유구는 지표하 약 30~40cm 정도로 현 경작층 바로 아래에서 확인된 다. 경작층을 제거한 후 유구가 확인되는 면은 크게 점토층과 역석층으 로 대별되며, 구역 전체로 볼 때 역석층은 구역의 동쪽과 서쪽에 형성 되어 전체 2/3정도를 차지한다. 유구는 구역의 중앙부와 북쪽에 형성되 어 있는 점토층에서 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Ⅰ구역과 비교할 때 적은 수로 분포한다. 본 구역에서 확인된 유구는 청동기시대, 원삼국시대, 그리고 고려시 대 이후로 대별된다. 각 시기의 유구는 현 경작층 바로 아래 동일 평면 상태에서 확인되어 층위 구분이 불가능하나, 부분적으로 고려시대 이 후 유구의 잔해들이 前時期의 유구를 덮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므 로 고려시대 유구는 후대 경작으로 인하여 대부분 파괴되어 현재는 구 역내 여기저기에 석재, 적심석, 소토흔 등 일부 건물지 잔해만 남아있 어 그 성격 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현재 구역의 남쪽 에 담장지가 무너진 듯한 길이 30m, 너비 5m 정도의 석열이 확인되어 있는 것이 가장 잘 남아 있는 형태로 현재 조사중이다. 석열 사이 사이 에 경질토기편, 자기편, 기와편 등이 소량 출토된다. 현재까지 확인된 청동기시대 유구는 석관묘 1기,주거지 10동,수혈 5 기, 집석유구 1기이며, 원삼국시대 유구는 옹관묘 3기이다. 그러면 각 시기별 유구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靑銅器時代 (1) 石棺墓 시굴조사시에 확인되었으나 본 구역의 보존지역(지석묘)에서 제외되 어 인접하여 위치한다. 석관묘는 현 경작층 바로 아래인 20~30cm 정 도에서 확인되었다. 석관묘는 자갈층에 조성되었으며, 누대에 의한 경 작으로 자갈층은 망간,철 등의 성분으로 심하게 응결된 상태이었다. 현 재 석관묘는 동서 장축방향으로 조성되었는데, 시굴조사 당시 동쪽 1/2 가량이 파손되어 서쪽부분만 남아있다. 석관묘는 길이는 알 수 없으나 너비 75cm 정도의 묘광을 파고 그 안에 석관을 조립하였다. 석관은 청 석판석으로 조립하였는데, 조립방식은 남아 있는 서쪽 부분으로 보아 바닥에 청석판석을 깔고, 그 위에도 청석판석으로 양장벽을 단벽보다 25cm 정도 돌출시킨 평면 ㅍ 자 형태로 조립하였다. 토광과 석관 벽 사 이에는 강돌로 채워 보강하였다. 석관내부 크기는 잔존 길이 74cm, 너 비 24cm, 높이 30cm 정도이다. 석관의 양 장벽은 긴 판석을 이용하였 는데, 잔존하는 남쪽 벽석은 현 길이 100cm, 너비 30cm, 두께 3.5cm 정 도 이다. 석관내부는 상부에 덮었던 청석판석이 함몰되면서 잘게 부서 져 흑각색 사질점토와 잔 자갈과 함께 채워져 있었다. 석관의 남장벽 은 후대 토압으로 북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상태이다. 석관 내에서 출토 된 유물은 없었다. (2) 주거지 본 구역의 주거지는 Ⅰ구역과 비교할 때 매우 적은 수에 해당하며, 그 분포양상은 북서쪽에서 4동, 중앙부에 2동, 동편에서 3동으로 3개 군을 이루고 있으나, 나머지 1동(7호)은 중앙부 서편의 석관묘 바로 동 쪽에 인접하여 위치한다. 이 중 동편의 3동은 서로가 중복된 상태로 현 재 조사가 진행중이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장방형(7동)과 방형(3동)으로 대별된다. 본 구 역의 주거지는 얕은 경작층 바로 아래에서 확인되는 점과 조선시대 건 물지의 영향으로 인하여 상부가 대부분 결실되었었으며, 바닥까지 손 상을 입은 것도 많다. 또한 시굴조사시에도 일부분이 파괴되었다. 이 로 인하여 주거지 내부시설의 전체적인 양상을 파악하기에 어려운 점 이 많다. 현재 남아 있는 상태로 살펴볼 때, 노지는 장방형 주거지(현재 2,7 호)에서 확인되는데, 한쪽으로 편재되어 무시설식으로 설치되었다. 주 혈은 현재 정확한 양상을 알 수 없으나 확인되는 것은 주축 중앙선상 에 1~2개가 배치되어 있다. 특히 방형 주거지중 5호는 중앙부에 길이 직경 25cm, 깊이 20cm 정도의 수혈과 그 양 쪽에 직경 15cm 정도의 주 혈이 배치되어 있다. 출토유물은 매우 적은 편이며, 특히 방형 주거지에는 작은 무문토기 편만 소량 잔존할 뿐 유물이 전무한 상태이다. 장방형 주거지에도 토기 는 발형,호형토기 저부 및 동체부 위주로만 소량 남아있을 뿐이고, 석 기는 석도와 주상편인석부 등 몇 점만 출토되었다. (3) 竪穴遺構 竪穴遺構 5기는 모두 본 구역의 中央部에 방형 주거지 주변에 분포한 다. 평면형태는 장방형(2,3호), 타원형(5호), 부정형(1,4호) 등 다양하 다. 長方形 竪穴은 형태가 비교적 정연하며, 크기는 길이 3m 내외, 너 비 1.5m 내외, 깊이 10~37cm 정도로 Ⅰ구역의 수혈유구와 유사하다. 그런데 본 구역의 수혈유구에는 아주 작은 무문토기편 소량만 내부토 에 섞여 있고 유물이 없다. 그리고 내부에 별다른 시설이 확인되지 않 는다. 그러나Ⅰ구역과 형태상으로 유사한 점이 많아 비슷한 성격의 작 업장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다른 부정형,타원형 수혈은 정확한 용도나 성격을 파악할 수 없다. 表 3. Ⅱ구역 청동기시대 주거지 현황표 (첨부 파일을 참조 하십시오.) (4) 集石遺構 구역의 중앙부에 10×5cm 정도의 잔자갈이 남북방향으로 길이 245cm, 너비 120cm 정도로 깔려 있다.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다. 상부 잔자갈 사이에는 무문토기 저부편이 다량 섞여 있다. 집석유구의 하부 를 트렌치를 설치하여 조사한 결과 별다른 시설은 없었고, 두께 15cm 정도의 자갈층만 확인되었으며, 간간이 무문토기편이 포함되어 있었 다. 表 4. Ⅱ구역 청동기시대 수혈유구 현황표 (첨부 파일을 참조 하십시오.) 2) 原三國時代 甕棺墓 옹관묘 3기는 발굴조사시에 확인되었다. 모두 본 구역의 북서쪽 모서 리인 황갈색사질점토층에 조성되었으며,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 다. 옹관은 모두 타원형의 토광을 파고 동서 장축방향으로 매납하였 다. 옹관의 조합방식은 모두 합구식이나 주옹에 막음옹을 사용한 것 (1,2호)과 동대형의 옹 2개를 이은 것(3호)으로 나눌 수 있다. 옹관으 로 사용된 토기는 모두 와질토기이며, 주옹의 기종은 저부가 저구형으 로 돌출된 양이부포탄형옹(1호)과 구연부가 짧게 外折하는 장동형옹 (2,3호)이며, 막음옹의 기종은 완형토기(1호)와 옹의 상반부를 깨트리 고 저부만 사용한 것(2호)으로 나눌 수 있다. 옹관의 전장은 각각 96cm, 70cm, 65cm 정도인데, 1호의 경우는 주옹과 막음옹 사이가 약 7cm 정도가 떨어져 있다. Ⅴ. 調査結果 및 意義 이번에 보고한 내용은 경산 서부택지개발지구내 2개 區域 발굴조사구 역중 1차 지도위원회에서 보고하지 못한 Ⅰ구역의 논유구와 구상유구, 그리고 Ⅰ區域 남북 확장구역과 Ⅱ구역을 중심으로 한 것이다. Ⅰ區域 의 남,북 확장구역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유구는 주거지 18동,수혈유구 22기,굴립주 1기가 그리고 추정 고려시대 이후의 유구 는 우물지 2기,구상유구 1기가 확인되었다. Ⅱ구역에서 청동기시대 유 구는 석관묘 1기,주거지 10동,수혈유구 5기,집석유구 1기, 원삼국시대 유구는 옹관묘 3기, 그리고 고려시대 이후 유구는 석열(담장지?), 적심 석, 소토유구 등 건물지 잔해만 확인되었다. 지금까지 서부지구내 2개 구역에서 발굴조사된 유구에 대한 조사결과 및 의의를 요약하면 다음 과 같다. 첫째, 서부지구내 특히 Ⅰ구역과 남,북 확장구역의 청동기시대 유구 는 주거지 46동, 수혈유구 43기, 굴립주 3기, 집석유구 2기, 구상유구 1 기 등 총 95기가 조사되었다. 이와 함께 Ⅱ구역에서 조사된 청동기시 대 유구와 그리고 Ⅰ구역의 논층 하부의 유구를 종합하면 전체 120여 기 이상에 이르러, 이는 경산지역만 국한할 때 청동기시대 유적으로서 는 가장 많이 확인된 단위유적이라 할 수 있다. 본 유적의 청동기시대 주거지 및 수혈과 이와 관련된 유구의 연대 는 1차 지도위원회에서도 밝혔듯이 청동기시대 전기로 비정할 수 있으 며, 보다 세부적인 연대와 단계설정, 그리고 유구의 성격은 보고서 간 행시 전체 유구의 정밀한 분석과 함께, 탄소연대측정,고고지자기 분석 등의 결과와 종합하여 구체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둘째, Ⅰ구역에서 확인된 논은 層序上으로 삼국시대 내지 통일신라시 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논 면은 발굴조사에서 Ⅰ구역의 남서 모서리 일 부에서만 확인되었기 때문에 전체 규모는 알 수 없었고, 평면형태는 어 느 정도 밝힐 수 있었다. 이번 논 조사는 경산지역에서 고대 논이 처음 으로 밝혀졌다는데 의의를 두며, 이를 통해 주변지역의 문화재 조사시 논 조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셋째, Ⅱ구역의 석관묘 1기는 시굴조사시 본 구역의 지석묘 상석 주변 에서 확인된 석관묘군 범위내에 속하지만 보존지역에서 제외된 곳이기 에 조사에 의의가 있었다. 그러나 동쪽부분이 파괴된 상태로 조사되었 고, 또한 내부 출토유물이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본 유적의 주거지 와 상호 비교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다만 석관묘 동쪽으로 2m 정도 떨 어져 주거지 7호가 조성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주거지보다는 다소 늦은 시기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넷째, Ⅱ구역의 원삼국시대 옹관묘 3기는 모두 발굴조사시에 확인된 유구이다. 옹관은 모두 소형으로 와질토기를 이용하였다. 연대는 사용 된 옹관토기의 형식으로 보아 목관묘 단계인 기원후 1~ 2세기 해당할 것으로 판단된다. 다섯째, 끝으로 본 유적은 청동기시대가 중심이며, 당시 이곳에 대규 모 취락이 형성되었던 곳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이번 본 유적에 대한 조사자료는 앞으로 慶山地域의 청동기시대 주거지 연구는 물론 大邱地 域에서 조사된 월성동, 서변동, 시지동,동천동 유적 등 인근 내륙지역 의 주거지들과, 蔚山 옥현,야음동, 浦項 초곡리,대련리,원동 등 해안지 역의 주거지들과의 다각적인 분석을 위한 계기를 마련하였는데 큰 의 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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