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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반성간 도로 확·포장 공사 구간 내 무촌유적 발굴조사

2002-03-29 16: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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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사개요 가. 유적위치: 경남 진주시 사봉면 무촌리 및 반성면 창촌리 일대 나. 조사기간: 2001.3.26~2002.3.26(예정) 다. 조사대상면적: 61,399㎡ 라. 조사기관: (사)경남고고학연구소 마. 조사의뢰기관: 부산지방국토관리청 2. 조사경위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이 시행하는 진성-이반성간 국도 확·포장 공사구 간 중 무촌리·창촌리 구간에 대한 시굴조사에서 平地와 丘陵群에 三國 時代부터 朝鮮時代에 이르는 여러시기의 遺構가 분포하고 있음이 확인 되었다. 이에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은 이들 유구에 대한 고고학적 자료 의 확보를 위해 우리 연구소로 구제발굴을 의뢰하여 왔다. 3. 주변환경 武村里遺蹟은 사봉면과 진성면의 경계구역에 해당된다. 이 곳은 남쪽 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반성천(南江으로 注入)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 에 표고 100m이하의 낮은 連峰들이 형성되어 있으며 이들 연봉들의 谷 下端部에 발달된 곡저평지들이 서로 연결되어 비교적 넓은 들을 이루 고 있다. 이 일대에는 이번에 조사하는 무촌리유적 외에 1993년 진주박 물관에서 발굴조사한 晋陽 武村里 加耶墓遺蹟과 원당리고분군 등이 알 려져 있으며, 조사구역의 범위를 벗어난 구릉 頂線部에도 삼국시대 封 土墳 數基가 육안으로 확인된다. 조사대상구역은 무촌리에 이르러 동쪽 구릉군쪽으로 근접하여 緩曲하 는 반성천의 東岸에 형성된 좁은 段丘性 平地와 5개의 低丘陵을 포함하 고 있으며, 遺構는 平地와 丘陵 모두에서 檢出되었다. 조사의 편의상, 丘陵群을 1地區로, 平地를 2地區로 명명하였다. 1지구 에서는 三國時代의 木槨墓, 石槨墓, 石室墓, 地上建物址 및 統一新羅時 代의 火葬墓 그리고 朝鮮時代 墓가 확인되었다. 2지구에서는 統一新羅 時代의 道路, 大形建物, 地上家屋, 馬墓, 우물 등이 확인되었다. 4. 조사내용 Ⅰ地區 1)木槨墓 36기가 검출되었으며 3구릉에서 1기가 검출된 것 외에 모두 2구릉에서 확인되었다. 평면형태는 細長方形 내지 長方形을 띠며, 斜面에 위치하 는 관계로 한쪽 벽이 유실된 것이 많다. 또 先築된 목곽묘와 後築된 橫 口式石槨墓와 중복돤 것도 다수 있다. 또 자연 경사에 의한 삭평과 유 실에 의해 대부분 잔존상태가 불량한 편이지만, 일부 보강토와 보강석 의 존재가 확인되는 예도 있다. 특히 2구릉 47호묘에서는 불에 그을려 져 탄화된 목곽의 관재가 검출되기도 하였다. 遺物은 高杯, 杷杯, 短頸 壺, 爐形器臺등의 토기류와 鎌, 刀子, 鏃등의 철기류, 그리고 유리 구슬 종류가 출토되는데, 토기류가 월등히 많다. 토기류는 양 단벽쪽에서, 철기는 중앙부에서 주로 출토되었는데, 토기들은 함안·의령지방 출토 도질토기와 비슷하다. 그리고 2구릉 51호 목곽묘에서는 방제경편들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2)石槨墓 25기가 검출되었으며, 대부분 2·3구릉에 위치한다. 평면형태는 주로 細 長方形의 것이 많은데, 2구릉 126호묘의 경우에는 兩 長壁의 가운데가 약간 부풀어 舟形을 띠고 있다. 잔존 상태는 구릉의 자연경사가 심해 양호하지 않고, 유실된 石壁이 많다. 바닥면은 암반면을 그대로 이용하 거나 川石, 板石 및 割石 등을 한 겹 깔기도 하였다. 석곽의 축벽형태를 살펴보면, 장벽은 대부분 下一段은 세워쌓고, 下 2· 3段石은 긴모와 작은모로 눕혀 쌓았다. 또 短壁은 거의가 一枚의 板石 만을 세워 마무리한 경우가 많다. 이 외에도 下一段石에서부터 작은모 와 긴모를 번갈아 가며 쌓아 올라간 것도 있다. 유물의 출토양상은 목곽묘의 경우와 같이, 토기류는 兩 短壁쪽에서, 철 기는 중앙 부분에서 출토되었다. 토기류들의 관찰내용 중 특이한 점은 토기를 부장할 때 木櫃에 넣었던 것 같다. 그것은 2구릉 82호묘 북단벽 부근에 고배, 대부완, 발형기대, 파배, 연질옹 등이 列을 지은 듯이 정 연하게 놓여져 있는 모습에서 관찰할 수 있으며, 이 주변에서 관정과 꺽쇠가 출토되었다. 이와 같은 列을 지은 듯이 정연하게 놓여 있는 모 습은 2구릉 60호묘와 3구릉 82호묘에서도 관찰되었다. 그 밖에 2구릉 126호 묘에서는 곡옥 3점과 환옥 110여점, 金製 耳  2점 이 출토되었다. 석곽묘에서 출토된 토기들은 목곽묘에서 출토된 토기 들과는 달리 固城지방 출토품과 비슷하다. 3)三國時代 高床建物 1·5구릉에서 5棟이 검출되었다. 1구릉에서는 3棟이 검출되었는데, 이 중에는 柱穴의 직경이 50cm이고 기둥의 직경이 30cm인 3칸×2칸 건물 이 주목된다. 5구릉의 高床建物은 각각 3×2칸, 2×2칸의 규모로 丘頂 의 平地에 위치하며 모두 周邊을 展望하기 좋은 곳이다. 4)橫口式石室墓 2구릉에서 5기가 검출되었다. 主稜의 平坦部와 그 斜面에 분포하는데 2 구릉 2호묘의 경우 현실은 長方形이고 연도의 입구는 약간 벌어지는 형 태이다. 벽석들은 6∼8단까지가 잔존하는데 할석을 눕혀서 쌓았다. 南 長壁쪽에 치우쳐서 屍床(길이 270cm, 폭 90cm 정도의 규모로 川石들 을 한 겹 깐 것으로)을 마련하였는데 여기서 蓋杯 4점, 방추차, 컵형토 기, 철도자 편이 출토되었다. 2구릉 3호묘에는 2차례의 埋葬行爲가 있 었는데 제 1차는 할석을 깔아 만든 屍床에 매장하였으며 제 2차는 별도 의 시설없이 암반면을 그대로 이용하여 매장하였다. 5)火葬墓 2구릉에서 통일신라기의 화장묘 3기가 확인되었다. 통일신라시대 화장 묘는 암반에 藏骨器가 들어 갈 정도의 竪穴을 굴착한 뒤 藏骨器를 넣 은 것으로 藏骨器의 組立은 연질옹에 인화문 蓋를 덮거나 2구릉 21호묘 처럼 할석 1매를 위에 덮어 器蓋를 대신한 예도 있다. 6)朝鮮時代 墓 1·2·3구릉에서 182기가 확인되었다. 조선시대 묘는 구조면에서 감실이 없는 경우와 감실이 있는 경우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고, 유물이 출토 되는 위치에 따라 어깨선 부근에서 출토된 것과 감실에서 출토된 것으 로 나눌 수 있다. 감실이 있는 무덤은 비교적 규모가 크고 내부에 보강 토가 잔존해 있는 것이 많으며, 감실이 없는 것은 소형분들로 어깨선 부근의 내부에서 유물이 주로 출토된다. 감실이 있는 무덤 중 1구릉 18 호묘는 묘광바닥에 길이 151cm,폭 43cm범위로 숯을 깔고 이 위에 시신 을 안치하였다. 이 밖에 특이한 구조를 가진 것으로 3구릉 10호묘를 들 수 있다. 여기서 는 풍화 암반을 파내어 1차 묘광을 마련한 후 이를 되매운(埋土)다음 이埋土에서 2차 묘광을 파내어 시신을 매장한 것으로 埋土가 다른 무덤 에서의 補强土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유물들은 대개 백자 및 청자 대접·접시와 청동 숟가락, 청동 수저, 철 제 가위가 함께 놓여진 채 출토되는데 대접들이 서로 포개어져 개배의 형태를 이루거나 대접에 접시가 덮힌 채로 출토된 것이 많으며 청동 숟 가락이나 철제 가위는 백자 및 청자 대접·접시의 아래나 주변에서 출토 된 것이 많다. 이 외에 銅盒이나 銅 이 백자대접·청동 숟가락과 함께 출토되었다. 이 밖에 2구릉 1호묘는 구릉 頂部의 평탄한 부분에 위치하며 평면형태 타원형으로 풍화 암반을 20∼30cm정도의 깊이로 굴착한 뒤 백자 대접 을 正置하고 백자 호를 씌워 놓은 것이 있다. 형태로 보아서는 태실묘 와 비슷하다. Ⅱ지구 2지구에서는 먼저, 北端에서 基壇 建物址, 環壕狀 溝, 地上家屋의 기둥 흔적들이 검출되었고, 남쪽으로 가면서 溝狀竪穴, 粘土採取場, 木材積 載用 수혈, 地上家屋의 기둥흔적으로 추정되는 수십개의 밀집된 주혈 군 및 우물 등 생산활동 및 일상생활과 관련된 유구들이 검출되었다. 또 중앙부에서는 口字形配置의 高床建物址, 대형 폐기장, 馬墓가 확인 되었고, 南端에서는 地上家屋의 기둥흔적으로 추정되는 수십개의 중복 된 주혈, 燒成竪穴, 溝狀竪穴, 道路, 우물, 크고 작은 부정형한 원형수 혈, 공방지, 기와가마 등이 조사되었다. 1)基壇 建物址 Ⅰ지구 1丘의 가파른 남쪽 사면이 끝나고 평지가 시작되는 지점에 위치 한다. 구릉에서 연결된 경사면을 평탄하게 정지하면서 기단을 쌓고 治 石이나 기와장을 이용해 담장 혹은 격벽을 만들어 공간을 구분하고 있 으며 각각의 건물은 초석을 한 개씩 놓아 기둥을 세웠다. 건물의 북벽 을 따라서 배수로를 연결한 석렬이 정연하게 나타나는데 건물사이를 좁은 공간을 통과해 넓은 공간으로 흘러가게 만들어졌다. 출토된 유물 은 건물축조에 이용된 기와편들과 건물지 上面과 주변에서 폐기된 다 량의 가와편 및 토기편이 있으며 이를 통해 건물의 축조시기와 폐기된 시점을 추정할 수 있다. 2)環壕狀 溝 基壇建物址 남쪽에 위치하며 東에서 西로 발굴구간을 가로질러 溝가 이어진다. 평면 형태는 한갈래에서 두·세갈래로 갈라지다가 다시 한갈 래로 모여들고 주변에는 동시기에 축조된 얕은 수혈 및 주혈군이 소수 분포한다. 溝와 주변주혈의 내부에서는 5세기대 도질 고배편, 대호편 및 연질토기 파수편이 출토되었으며 1지구 구릉군의 목곽묘나 석곽묘 와 동시기로 추측된다. 3)粘土採取場 口字形健物址의 남쪽과 북쪽에 분포되어 있으며 일정범위에 걸쳐 동일 한 성격의 수혈 만으로 밀집되어 적게는 3∼4기, 많게는 10여기가 집 중 분포한다. 평면형태에 따라 지름 2m미만의 원형인 것과 지름 5m이 상 대형의 부정형한 형태인 것으로 구분되는데, 3∼4기의 부정형한 대 형수혈 무리에 1기의 원형수혈이 포함되어있는 분포상의 특징이 있다. 이것은 수혈의 축조과정과 관련된 것으로 맨처음 원형의 수혈을 수직 으로 파내려가 생토층에 끼여있는 흑회색 점토층을 찾고 나면 이를 따 라 옆으로 파들어 가면서 흑회색 점토를 채취한다. 그 과정에서 무른 점토로 이루어진 생토층이 상하로 쉽게 허물어져 내리므로 자연적으 로 부정형한 형태로 수혈이 옆으로 확장되어 원형수혈→부정형 수혈 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4)木材積載用 수혈 粘土採取場 주변에서 2基가 조사되었다. 1024호는 밀집된 粘土採取用 竪穴群 속에 위치하며 지름 3m가량의 원형수혈 내부에 잎사귀와 잔가 지가 달린 굵은 나무가 1m50㎝∼2m 깊이로 빼곡하게 쌓여있다. 낮은 지대의 깊은 수혈 속에 적재되어 습한 조건에서 보존된 상태이기 때문 에 부식되지 않은채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솔잎과 같은 잎사귀의 형 태로 보아 樹種은 침엽수이다. 1016호는 粘土採取用 竪穴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며 길이 8m, 폭 6m, 깊이 1.5m에 달하는 대형의 타원 형수혈 바닥에서 동일한 樹種으로 파악되는 나무가 출토되었다. 1016호는 粘土採取用 竪穴群 및 그 주변에서 확인된 바 없는 대형이라 는 점과 木材들이 水平으로 積載되어 있었고 1024호는 좁은 수혈 내부 에 목재를 수직으로 積載하고 있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5)地上家屋 粘土採取場의 남쪽에 위치하며 얕은 수혈 및 구상수혈을 포함하여 수 십개의 주혈이 집중되어 있다. 남쪽 구간과 마찬가지로 다른성격의 유 구들과는 구역이 구분되어 있지만 서로 중복된 例가 드물고 적심석 건 물지는 한 동 정도만 확인되며 기와출토량이 극히 소량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주혈군의 서쪽 외곽에 우물이 포함되어 있 어 남쪽 건물지에 비해 서민층의 일상생활 권역에 해당할 것으로 생각 된다. 6) 口字形 配置의 高床建物址 2지구의 정중앙에 위치하며 직경 1.5m 내외의 積心石으로 조립한 高床 建物址 4棟의 주축방향이 각기 동·서·남·북으로 향하고 있어 전체 평면 배치가 가운데 공간을 두고 사방으로 건물이 둘러선 '口'자형으로 배치 되어 있다. 이와 같은 배치는 매우 특이하며 일반 서민의 주택이 아님 을 알려주고 있다. 게다가 이 일대에서 다량의 벼루와 기와가 출토되었 는데 여기서는 벼루가 다량으로 출토된 점이 주목된다. 그리고 지붕을 기와로 이은 점도 이 건물이 서민의 주택이 아님을 말해주는 자료이다. 7)대형 폐기장 대형 폐기장은 주혈군이 집중된 구역의 남쪽 외곽에 위치하여 건물지 가 집중된 구역의 경계지점 역할을 한다. 동-서향을 주축으로 하며 서 쪽으로는 경계가 확인되지만 동쪽으로는 유적 범위 밖으로 연결되고 있어 경계를 확인할 수 없다. 평면형태는 서쪽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가면서 끝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대형 溝의 형태를 이루며 길이 45m이 상, 폭9m에 달하는 광범위한 범위에 걸쳐 있다. 폐기물은 중간 지점에 서부터 동쪽으로 갈수록 밀집도가 높고 층도 두터워지는 경향이 있고, 서쪽으로는 끝으로 갈수록 현저하게 밀집도가 떨어지고 층도 얇아지면 서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2차, 3차 평면노출과정을 거치면서 폐기물을 걷고나면 하부에 부정형 수혈 및 구상수혈, 주혈 등 주변 유구와 유사 한 성격의 유구흔적이 확인되고 가장자리에서 3호를 목적으로 한 수혈 이 확인되지 않는 점에서 별도의 수혈없이 기존 건물지 구역의 일정부 분에 폐기물을 투기함으로써 의도적인 폐기장으로 이용한 것으로 파악 된다. 내부에서 확인되는 유물은 인화문 토기편과 다양한 문양의 기와편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그외 양적으로 많지는 않지만 중앙부가 관통된 토 제품과 벼루편, 각종 부위에 해당하는 말뼈, 이빨편이 출토되었다. 유 물외에 부분적으로 할석더미가 밀집되어 있는데 주변 건물지의 적심 석 및 구조물에 사용된 후 무작위로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8)連結竪穴 粘土採取場의 남쪽에 위치하며 특징적으로 3개 또는 2개의 수혈이 계 단상으로 연결된 수혈군이 있다. 2개 또는 1개의 타원형 혹은 구상수혈 이 연결되고 그 끝에는 원형수혈이 연결되어 있는데 바닥level이 원형 수혈 쪽으로 가면서 한단 씩 낮아져 전체가 계단상으로 이어진다. 이 수혈군은 내부유물 출토상황에서 공통적으로 기와편 또는 완형에 가까 운 개체편이 할석과 함께 바닥면에서 출토되고 있고 주변에 도가니 편 이 출토된 작업장과 기와가마가 인접하고 있어 작업공정상에서 연관 된 작업장일 가능성이 있다. 9)馬墓 口자형 건물지의 주변에 위치하며 세장한 방형수혈 내부에서 하악골 에 부착된 이빨이 전체형태를 유지한 채 출토되었다. 이빨이 놓여진 상 태로 볼 때 두개골 전체가 놓여져 있었지만 모두 부식되고 이빨부분만 잔존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180㎝×60㎝×40㎝의 수혈크기를 고려하 면 한 개체 전체가 매납되기에는 협소하므로 일부분만 매납 되었다고 생각된다. 유적의 각지에서 말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빨편, 골편은 끊이지 않고 확인되고 있지만 대부분 불완전한 형태로 출토되어 거의 수거가 불가능하다. 10)우물 口자형 건물지의 北쪽에서 3基, 南쪽에서 3基 총 6基가 확인되었다. 축 조방식과 규모에 따라 2가지 형태로 구분되는데, 첫 번째는 우물의 수 혈을 축조하고자 하는 우물 벽석에 沿하여 垂直的으로 내려 판 것으로 壁石의 後面이 수혈벽에 바로 닿아 있으며 지름이 1m50㎝ 이하이다. 두 번째는 수혈깊이의 절반가량을 우물벽석 지름 보다 크게 파내려가 다가 서서히 우물지름에 가깝게 좁혀드는 방식으로 굴착한 2段 竪穴이 며 下部는 壁石의 後面이 수혈벽에 바로 닿아 있지만 上部는 수혈벽과 우물 벽석 사이에 넓은 공간이 생기고 여기에 수혈 굴착時 파낸 생토층 을 되매워 보강하였다. 두 번째의 경우 점토층→잔자갈층→모암반층 순서로 된 생토층을 관통하여 모두 모암반이 드러나는 깊이까지 파내 려가 평탄한 암반벽이 바닥이 되므로 우물 깊이가 대체로 깊고 우물水 는 아래에서 湧水되지 않고 생토의 잔자갈층에서 集水되는 방식이다. 조사된 4基의 바닥에서는 축조방식과 상관없이 동일하게 완형토기가 2 ∼3점 똑바로 놓인 채 출토되고 있어 우물과 관련된 祭祀行爲가 있었음 을 알 수 있다. 우물의 축조시기는 이 바닥 출토 토기들을 통해 첫 번째 방식으로 된 것은 8∼9세기이며, 두 번째 방식으로 축조된 것은 이보다 빠를 것으 로 추정된다. 11)道路 발굴조사 구간내에서 확인된 도로의 총 길이는 약 20m이며 조사가 진 행되면 총 길이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도로를 개착하기 위해 生 土를'凹'자 형태로 굴착(폭8m)해낸 후 가운데 부분을 路盤으로 정지한 후 그 양쪽 가장자리를 파내어 側溝를 만들었다. 路盤 위에 조성된 路面의 형태는 2종류가 보이는데 첫 번째 구조의 노 면은 전체 노면 중 중앙에 집중되어 할석과 잔자갈 및 기와·토기편이 깔려있는데 장기간의 노면 사용으로 인해 할석이 놓인 부분에는 수레 바퀴자국 등으로 움푹 패여 있다. 이에 비해 두 번째 구조의 노면에는 잔자갈과 기와·토기편 만 빈틈없이 깔려있다. 5. 조사성과 유적은 지형에 따라 구릉(1지구)과 평지(2지구)로 나누어 지는데 이를 따라 유구의 종류도 서로 달라 丘陵에서는 무덤이, 平地에서는 주거와 생산관계 유구들이 검출되었으나 각각의 年代는 서로 다르다. 즉 구릉 의 무덤에는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무덤이 전무하다시피하나 평 지에서 검출된 대부분의 유구는 그 연대가 통일신라시대이다. 1) 統一新羅期의 集落 統一新羅期의 조사가 부족한 것이 학계에 지워진 숙제였는데 武村遺跡 에서는 道路, 粘土採取場, 口字形 配置 建物群, 우물, 瓦窯, 地上建物 址 등 다양한 유구가 검출되었으며 서로 有機的인 결합을 보이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2) 村主의 居宅 혹은 地方官廳址 集落 가운데에 존재하는 口字形으로 配置된 4棟의 建物群은 평범하지 않은 존재이다. 이 건물의 성격규명이 앞으로의 과제이다. 村主級 人物 의 居館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地方官衙跡으로 보아야 할 것인 가는 자료의 증거를 기다려야 할 필요가 있으며 여기서 다량의 벼루가 출토되었다. 3) 平地와 丘陵群간의 不整合 평지에서 다량의 統一新羅期 유구가 검출된 것에 비하여 구릉군에서 는 이에 상응하는 무덤이 검출되지 않았다. 한편 구릉군에서는 삼국·조 선시대의 무덤이 많은데 비해 평지에서는 그들의 生活유구가 보이지 않은다. 삼국시대 무덤의 출토품들은 固城地方과 연관성을 보이며 조선시대 무 덤에서는 2~3점의 유물이 부장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容器類와 수 저가 set되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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