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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송학동고분군 발굴조사 개요(2차)

2001-09-27 10:40:00
조회 2776
1.유적명 : 고성 송학동 고분군 2.소재지 : 경상남도 고성군 송학리 473-5번지 3.조사기간 : 시굴조사-1999.11.15 ~ 2000.3.9 1차 발굴조사-2000.7.10 ~ 2000.10.3 2차 발굴조사-2001.6.7 ~ 2001.10.5 4.조사단 : 동아대학교 박물관(단장-심봉근) 5.조사경위와 경과 송학동 고분군은 古自國을 대표하는 대형분으로 그 가운데 제1호분은 외형이 일본의 전방후원분과 유사하다는 견해가 발표되어 한일 고고학 계와 사학계에서 뜨거운 관심사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지난 1999년 말부터 고성군에서는 송학동고분군의 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제1호분을 비롯한 그 주변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고분에 대한 시굴조사를 실시하여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유적정비의 방향을 설정하 는 자료로 활용키로 하였다. 그 과정에서 본교 박물관이 시굴조사를 실 시한 결과 제1호분은 전방후원분이 아니라 3기 이상의 대소형 고분이 서로 중복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당시 문화재 위원들로 구성된 지도위원회에서는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하고 제1호분에 대한 정밀 발굴조사를 통해서 보다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는 의견 이 제시되어 2000년 7월부터 현재까지 2차에 걸쳐 발굴조사가 진행되 고 있다. 제1차 조사에서는 제1A호 분구에 조성된 11기의 수혈식 석곽 에 대한 조사와 채색된 제1B호분의 횡혈식 석실분이 확인되었으며, 그 하부에서 보다 이른 시기의 유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 다. 이번 제2차 조사에서는 1B호분의 내부 정밀조사와 함께 1A호분 사 이에 축조된 1C호분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1C호분의 상면에서는 그 하부에 보다 선행하는 단계의 유구 흔적이 나타나고 있 어 그 성격을 확인 중에 있다. 6. 조사내용 이번 조사대상인 제1호분의 기본적인 축조형태는 독립된 구릉 정상부 를 남-북으로 일단 삭평한 뒤 그 위에 주변 하상이나 구릉에서 운반해 온 흑색이나 적갈색 혹은 밝은 황갈색 등의 점토와 산토를 이용하여 유 사판축 상태로 정상부가 평탄한 분구를 조성하고 그 위에 다시 석곽 또 는 석실을 설치하는 순서를 취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축조수법 은 다른 가야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축조수법이라 할 수 있다. 분묘는 남-북으로 뻗은 구릉 위에 모두 3기의 원형 분구(1A호분,1B호분,1C호 분)를 가진 것들이 서로 중복해서 연결된 상태로 배치되고 봉토하 생토 층에서는 보다 이른 단계의 목곽묘 또는 목관묘가 위치하고 있는 실정 이다. 지금까지 조사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1A호분 과거 후원부으로 알려졌던 남쪽의 1A호분은 송학동 고분군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해당한다. 상부는 흑색 점토를 이용하여 원형 분구를 만든 후 정상에 모두 11기의 수혈식석곽을 매치하고 있다. 석곽의 배치 는 중앙에 장축이 동-서 방향인 대형급에 속하는 세장형 석곽 4기를 나 란히 배치하고, 그 외곽으로 7개소의 소형 석곽이 둘러싸는 형태로 되 어 있다. 중앙에 배치된 4기의 석곽은 다시 2기씩 짝을 이루고 있는데 중앙에 위치한 1A-1호는 길이 10m, 폭 1.4m로 규모면에서 가장 큰 것 으로 보아 이 분구의 주인공으로 추정된다. 이들 석곽들은 주로 점판암제 판석을 눕혀서 축조한 후 그 위에 장대 석 수매를 조합하여 개석을 삼고 있으며 바닥에도 소석을 깔아 놓았 다. 그리고 석축 뒤편의 보강토와 개석 상면의 이음새 부분에는 전체적 으로 적갈색 산토를 채워 밀폐시키고 그 위에 다시 흑색 점토를 덮어 다진 뒤 잔디를 심어 마감하였다. 그 중 중앙에 위치하는 대형석실은 일제시대에 鳥居龍藏에 의해 조사된 것이며 주변의 소형석곽에서도 일 부 도굴 흔적이 확인되고 있지만 대부분 세장형으로 한쪽 장벽이 붕괴 되었기 때문에 원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많았다. 그런데 이들 석곽 의 축조 순서가 어깨선 확인과정에서 서로 중복되어 나타났기 때문에, 동시에 매장된 순장의 가능성보다 추가장에 의한 것으로 판단된다. (2)1B호분 1B호분은 과거 전방부로 알려졌던 부분이다. 봉토는 역시 흑색 점토를 이용하여 조산하였는데 표토층에서 2m 깊이에서 장축이 동-서 방향인 대형 석실(1B-1호)이 나타났다. 그리고 서남쪽 외곽 상부에 추가장한 남-북 방향이 석곽묘(1B-2호)가 배치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이 고분은 묘실이 가야 묘제의 전형으로 알려진 수혈식 석곽이 아니고 서쪽 단벽 중앙에 연도와 그 끝에 묘도를 갖춘 횡혈식 석실분으로 밝혀 져 주목되었다. 즉 석실은 얇은 판석을 눕혀 평면 장방형으로 사벽을 축조하고 그 위에 장대석을 걸쳐 평천정 개석으로 삼는 형태는 일반 가 야지역 석곽묘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서쪽 단벽 중앙에 연도를 두고 그 내외 양쪽으로 석문을 배치하여 석실과 연도 사벽과 천정부에 붉은 채색으로 도장한 것은 가야지역에서는 처음 확인된 사실이다. 조사당 시 사벽면에 도장된 채색이 내부 습기로 대부분 탈락되었지만 당초에 는 벽면에 점토를 먼저 바르고 그 위에 붉은 채색이 전면에 걸쳐 도장 되었던 것이다. 특히 연도부이 좌우 문주석과 상하 지방석과 중방석, 그리고 석실의 남쪽 장벽 상단부에 등간격으로 박혀 있는 휘장막 설치 용으로 추정되는 철못 등의 특징은 가야지역 고분 연구에 중요한 자료 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동쪽 단벽부에는 70cm의 높이에서 폭 40cm, 두께 6cm 가량되 는 목제 선반을 흔적이 뚜렷히 나타나고 있다. 특히 석실 축조 단계부 터 목제 선반 설치를 염두에 두고 축조한 것임을 보여주는 40cm 폭의 홈이 양장벽 측면에 확인되고 있다. 경상대 박물관에서 보고된 의령 운 곡리 제1호분에서는 판석으로 만든 선반이 동일 위치에서 확인된 바 있 기 때문에 향후 이러한 특징도 고분연구에 충분히 감안되어야 할 것으 로 판단된다. 석실의 규모는 길이 670cm, 폭 200cm, 높이 158cm이고 연도는 길이 315cm, 폭 100cm, 높이 148cm이다. 그리고 상면의 해발고도는 31.08m 이다. 석실의 폐쇄는 입구에 판석을 세우고 그 바깥에 자연석을 쌓아 보강하 고 있는데, 율석이 깔린 석실 내부에서 유대장경호, 대호, 유공광구소 호, 고배 등 토기류와 함께 철촉, 철부, 철겸과 같은 무기류나 농구류, 재갈편이나 雲珠와 같은 마구류, 꺽쇄와 같은 목관 부속구 등의 금속기 들이 출토되었다. 이 중 운주의 경우 중앙에 琉球列島에서 반입된 것으 로 보이는 조개의 아랫부분을 이용하여 장식하였다는 점에서 대외 교 역품으로서의 성격이 주목된다. 그밖에 장신구류는 곡옥, 관옥을 비롯한 다양한 옥제품들이 출토되었 는데, 이 중 주목되는 점은 소가야지역 재지계 토기와 함께 신라계와 백제계, 그리고 일본 스에끼가 같이 출토되어 당시 주변지역과의 교류 관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3)1C호분 남-북으로 배치되어 있는 전기한 두 고분이 봉분 일부를 파괴하고 그 사이에 1C호분이 축조되어 있다. 양쪽 봉분을 절토하여 봉토를 축조하 였기 때문에 유사판축 형태는 수평방향으로 퇴적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토층에서 확인되는 축조순서나 위치, 구 조로 보아 1호분 내에서는 가장 마지막 단계에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 으며, 봉분 역시도 3기 가운데 가장 높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상부는 도 굴로 인한 극심한 파괴 흔적이 뚜렷하며, 그 과정에서 장대석으로 도 니 개석 수매가 내부에 박혀 있었다. 이러한 현상으로 처음 시굴조사 과정에서 2기의 수혈식 석곽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것으로나 파악되 었으나 이번 조사에서 1기의 횡구식 대형석실임이 밝혀졌다. 석실은 1B1호 횡혈식 석실과 같이 서쪽에 묘도를 나란히 배치한 평면 장방형으로 바닥에는 전체적으로 율석을 깔았다. 율석은 시상대를 중 심으로 밀집 분포하는데 북쪽 장벽에 이어진 장방형의 1기와 동쪽 단 벽 전체를 이용한 시상대 1기가 각각 확인되었다. 여기에서는 각종 유 물들이 출토되었는데, 그 특징으로 보아 북쪽 장벽에 나란히 배치된 시 신은 이 고분의 주인공으로 판단되며, 유물의 배치상태로 보아 머리를 동쪽으로 두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서쪽 단벽에 나란히 배치된 시신 1 기는 대도의 손잡이 방향으로 보아 머리를 남쪽 방향으로 두었던 것으 로 판단된다. 또한 상부 율석을 제거하며 하부 구조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동쪽 단벽 율석 하부에서는 판석들을 눕혀 전체적으로 장방형을 이루는 하루 시 상대가 새롭게 확인되었는데 이 일대가 함몰되면서 함몰부위에 많은 율석을 깔아 전체적으로 수평을 이루게 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나 이 역 시도 다시 함몰도니 상태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러한 함몰 현상은 서기 실 서쪽 부분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최초 수평을 이루 었던 석벽 기단부가 내려앉으면서 석실이 전체적으로 훼손되었던 것으 로 판단된다. 이러한 함몰 현상에 주목하여 상면 율석을 일부 제거하고 하부 토층을 조사한 결과 셕실 하부에 2기의 토광이 별도로 축조되어 있었음이 확인 되었다. 동쪽의 토광 1기는 단벽 아래로 이어지는 장방형으로 폭 139cm, 잔존 깊이 50cm이며, 서쪽 토광은 보다 규모가 큰 것으로 현재 부분적으로 성격확인을 위한 조사가 진행 중에 있다. 1C1호분내에서 출토된 유물의 배치상태와 내용은 도면 5에 나타나고 있는 바와 같다. 토기류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물들은 도굴된 상태지만 파편이나 바닥면 에서 확인된 철기를 비롯한 금속기류, 각종 옥종류 들이 있다. 토기류 는 횡구부 남쪽 부분에 회청색 경질발형기대와 호형토기류가 배치되었 고 고배류와 토제 병, 적갈색 연질 단경호 등이 내부에서 출토되었으 며 철기류는 양 시신의 옆에 부장된 대도를 비롯하여 목관 측면에 철 모 1점이 각각 부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옥종류는 대부분 동쪽 시상대 주변에서 확인되었으며 이 시상대에 부장된 대도에는 은실로 감은 손 잡이와 은으로 만든 칼집 끝부분 장신구가 확인되었다. 북쪽 장벽에 배치된 시신대에는 주인공의 머리부분에서 청동제 고배 와 용도 미상의 철제 침종류들이 위치하고 있으며 귀에 부착되었던 금 제 이식 2점과 시신의 허리띠를 매었던 것으로 보이는 교구와 허리띠 에 매달렸던 은제 초구 소도자, 금제 초구 소도자 등이 제 위치를 유지 하며 출토되었다. 그 주변에는 등자 2점과 운주, 행엽 4점 등이 마구류 가 출토되었는데, 그 외에도 철촉이나 철부 등이 토기 부장지역에서 출토되었다. (4)기타 이상 살펴본 3기의 고분 외에도 제 1차 조사과정에서 확인된 남쪽 트렌 치 제1A호 봉분 하층에서 확인된 목관묘에 대한 정밀조사를 실시되어 이를 둘러싼 봉분을 확인하였다. 이 목관묘는 1C호분 상면에서 확인 된 이른 시기의 목관과 시기적으로 관련될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1B 호분 주위에는 원통형 토기류를 중심으로 고배류와 각종 토기편들이 확인되어 기존이 횡구식고분이나 대형마운드를 가진 봉분 주변에서 출 토되었던 각종 토기류와의 비교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7. 조사의의 가. 이번 조사에서 송학동 제1호분에 남-북으로 배치된 3군 (1A1~11,1B1~2,1C)의 유구에 대한 성격이 보다 분명하게 확인되었 다. 이 3기의 고분이 서로 시기적 차이를 가지고 연접된 것이며 기존에 이론이 있었던 전방후원분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나. 이러한 중복현상은 경주지역의 황남대총이나 나주 복암리 고분과 같이 어떠한 의식을 가지고 축조하였을 가능성이 예상되며 이와 연관 하여 검토할 필요성이 지적된다. 다.송학동 고분군이 대부분 남-북 또는 동-서로 각각 2기씩 짝을 이루 고 분포하고 있다는 점과 최근 보고도니 나주 복암리 고분에서 시기를 달리하는 유구들이 중복되어 나타난다는 점, 복암리 출토품 가운데 유 공광수소호는 송학동고분 출토품과 그 특징이 유사하다는 점, 축조시 기에 있어서도 대차가 없을 것이라는 점 등도 이 고분을 이해하는데 주 목할 사항이라고 판단된다. 라. 송학동 고분군에서 나타나는 분구는 가야지역이 일반적 봉토와는 차이가 있으며, 주변의 동해면 내산리고분, 고성읍 율대리고분 등이 모 두 같은 축조수법을 가지고 있다. 동일 수법이 보이는 영산강 유역이 나 일본 구주, 관서 지방과의 상호 교류관계가 주목된다. 마. 유구의 형태는 수혈식 석곽, 횡혈식 석실, 횡구식 석실 등 다양한 편으로 이러한 묘제의 유입배경 또한 규명되어야 할 사안이다. 특히 채 색된 석실과 단벽 중앙에 연도를 배치하는 구조와 형태는 영산강유역 의 장성 영천리고분에서 볼 수 있고 최근 해남 장고산 고분이 내부에 채색되었다는 보도와 일본 석실분에서도 동일 구조와 형태가 확인된 바 있어 앞으로 이 시기 한일간 고분연구에도 크게 이바지 할 것으로 생각된다. 바. 1B1호 횡혈식 석실의 경우 동쪽 단벽면에서 확인된 목제 선반 흔적 이 의령 운곡리 제1호 횡혈식석실분에서도 판석으로 확인된 바 있어 향 후 묘제의 특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사. 출토유물 중 토기류의 경우 고자국의 대표적인 유개고배와 개배, 광구장경호, 유공광구소호, 유대발형토기, 단경호 등의 성격이 분명하 게 밝혀질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토기류가 시기는 달리하지만 섬진 강, 남강, 황강, 마산, 고성, 거제도를 비롯한 사천만 일대를 포함하여 일본과 함께 남해안의 수로를 이용한 광할 한 분포권역을 형성하고 있 다. 이중에는 개배류와 유대장경호, 유공광구소호 등 일부 유물의 경 우 신라와 백제 또는 마한, 대가야를 포함하여 일본과도 교류한 흔적 을 나타내는 외래계 요소가 함께 나타나고 있어 당시 해로를 이용한 고 자국의 활발한 대외교류관계를 예상할 수 있다. 아. 종합한다면 이 고분은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걸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외래계적 성격은 6세기 전반대에 걸쳐 집중되는 것으 로 보아 이 시기 대회활동이 가장 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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