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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창원리 나한상 출토지 긴급 수습 발굴조사

2001-10-22 14:47:00
조회 2060
영월 창원리 나한상 출토지 긴급 수습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1. 발굴조사 지역 : 강원도 영월군 창원2리 1075번지 2. 발굴조사 범위 : 강원도 영월군 창원2리 1075번지(田 332평) 3. 발굴조사 기간 : 2001. 9. 25 ∼ 2001. 10. 17. 4. 조사내용 1) 조사방법 조사지역인 1075번지 밭에서 경작 중이었던 옥수수, 들깨 등의 수확 을 기다리기에는 조사에 어려움이 있어 경작자와 협의한 후 모두 제거 했으며, 유적의 조사 전 현황을 사진촬영 했다. 조사를 위한 그리드 설 정은 산사면 중앙에 B.M을 박은 다음 북편(편동 40。방향)으로 10m간 격의 말목을 30m까지 박고 동·서 10m로 지역의 범위 내에서 말목을 설 정했다.. 우선 유적의 지층을 파악하기 위해서 폭 2m, 길이 8m의 트렌치를 남- 북 방향으로 넣어서 토층을 확인하고 유구를 노출시킨 다음 나한상이 집중적으로 출토된 지역을 중심으로 확장조사를 실시했다.. 2) 층위 나한상이 출토된 경작지는 산 사면에서 북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 고 내려가는 계단형 지형이다. 현재의 지형은 경작자에 의해서 사면을 깎아 낮은 곳에 매립하였기 때문에 평탄정리가 되어 있다. 산 사면에 인접해서는 깊이 얼마 되지 않은 곳에서 유구가 바로 노출되었고 남쪽 매립지역은 2m이상 제토되어야만 원 지표층이 나타났다. 충위는 유적 의 지형에서 가장 양호하게 남아있는 W10 Grid 내 남-북 트렌치의 남 벽으로 파악하였다.. 제 1층 : 지표층, 흑갈색의 부식토층으로 두께는 약 10cm임. 제 2층 : 암갈색 점토층, 두께는 약 10∼15cm이고 자연퇴적층임. 제 3층 : 적갈색 소토층, 두께는 약 20∼30cm이고 건물지의 상부에 사 용된 소토 덩어리와 숯이 혼입된 층으로 다량의 기와와 자기편 이 출토됨. 제 4층 : 황갈색 점토층, 두께는 약 25cm이고 약간의 숯가루가 보이 나 자연퇴적층임. 제 5층 : 황색 점토층, 두께는 20∼30cm임.(생토층) 제 6층 : 갈색 점토층(생토층) 3) 유구 (1) 나한전지 건물지는 나한상이 집중적으로 출토된 지역의 북쪽에 인접해서 노출 되었는데, 지표하 20∼50cm내에서 확인되었다. 건물의 방향은 편동(북 →동 30。)이고 평면상으로 전면 3칸, 측면 2칸(약 9평)으로 파악되었 다. 건물지 남편의 하부구조는 양호한 상태로 노출되었으나, 북편의 하 부구조는 일부 삭평되어 사라진 상태이다. 건물지 하부구조의 석재는 인근지역에서 많이 보이는 치석되지 않은 석회암질의 자연석을 거의 사용하였다. 전면과 측면 초석(약 50∼60cm)간의 간격은 동일하게 220cm로 규칙 적이며, 초석외곽으로는 기단석열이 돌아가는데, 후면에는 1∼2열로 연결되면서 남편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동편의 측면은 1열로 연결 된다. 후면의 초석과 기단석열이 드러나기 전에는 지붕에 얹혀져 있던 기와가 그대로 주저앉아 덮여 있었고 그 밑으로는 적갈색 소토덩어리 가 5∼10cm정도의 두께로 깔려 있었다. 건물지 중앙에는 확실한 초석 이 보이지 않으나 20∼25cm정도 되는 돌이 초석간격으로 바닥에 깔려 있다. 건물지 바닥 상면에는 전체적으로 소토덩어리가 깔려 있었고 바 닥에는 건물지 마루로 추정되는 목재가 일정한 간격으로 숯이 되어 노 출되어 있다. 아울러 나한상 10여 점이 목재 위에서 동-서 방향으로 거 의 파괴되고 불 먹은 상태로 노출되었으며, 건물지 동편 기단 외곽으 로도 나한상 10여 점이 한 곳에 집중되어 노출되었다. 바닥에서는 건물 이 화재로 소실되기 전까지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시대 백자 편들과 건물에 박았던 못 등의 철제가 일부 출토되었다. 건물지 후면부 서편 모서리 초석에서 서편으로 170cm 떨어진 곳에 초 석이 노출되었고 다시 서편으로 260cm 떨어진 곳에 초석의 기초석인 적심석(지름 80cm)이 노출되었으며, 양초석 사이에는 수키와를 1열로 엎어놓은 상태로 연결하였다. 조사 과정에서는 건물지의 초석으로 보 고 전면 5칸으로 판단했지만, 건물지의 초석간격과 일정치 않고 기단석 열도 연결되지 않아 건물지 옆의 다른시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2) 배수시설 건물지의 서편에서 북쪽으로 자연경사면을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도 록 조성되었다. 이 배수시설은 지표에서 30∼40cm정도 깊이에서 확인 되었는데, 석벽과 덮개돌이 짜임새 없이 허술하게 만들어졌다. 배수시 설에 사용된 돌은 대부분 석회암질의 자연석이고 치석된 돌은 사용되 지 않았다. 길이는 약 8m까지 확인되었고 폭은 약 30cm가량 된다. 건 물지 하부구조의 상태와 배수시설의 위치로 볼 때 건물지와 관련된 배 수시설로 여겨진다. (3) 계단 및 보도시설 건물지 정면에서 계단식으로 형성된 보도시설로 추정되는 층계가 일 부 확인되었다. 이곳의 지형이 산사면에서 북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 루고 있기 때문에 산지 가람의 층계 형식을 따랐을 것이며, 자연석을 이용하여 불규칙적으로 조성하였지만 북쪽으로 현재 3단이 확인되었 다. 정확한 범위는 확장을 해보면 알겠지만 보도시설·층계와 더불어 다 른 건물지가 더 확인될 것으로 추정된다. (4) 조사 전 나한상출토지 토지소유자의 경지평탄정리 중에 산 사면에서 집중적으로 100여 점의 나한상이 출토되었다고 보고된 지점을 조사해 보니 이미 대부분의 나 한상은 토지소유자에 의해 수거가 되었고 소수의 나한상편만 출토되었 다. 굴삭기로 완전히 드러냈기 때문에 나한상을 매납한 굴광 윤곽이나 특별한 시설은 발견할 수 없었으며, 단지 적심시설로 추정되는 지름 180cm의 방형 유구가 노출되었지만 나한상과의 관련보다는 다른 시설 의 하부구조로 추정된다. 5. 나한상의 특징 나한이란 범어의 아라하트(Arhat)를 음역한 것으로서 아라한의 준말 이며 일체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어 중생의 공양에 응할 만한 자격을 지닌 성자(聖者)라는 뜻이다. 다른 말로 응공(應供), 응진(應眞), 이악 (籬惡), 복전(福田)이라고도 한다. 조각으로 표현할 때에는 16나한 또 는 18나한을 조성하여 봉안하는데 때로는 500나한을 조성하기도 한다. 전각의 이름은 대체로 나한전으로 불리우나 응진전, 영산전이라 부르 기도 한다. 한국에서 나한신앙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구체적인 연 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대체로 고려시대부터 널리 신앙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례로 고려도경(高麗圖經)에 광통보제사(廣通普濟寺) 의 정전(正殿)을 나한보전이라 하고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문수와 보현 보살의 삼존을 모시고 500나한을 봉안하였다는 기록을 보더라도 나한 전이 사찰의 금당으로 자리 잡을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신앙의 대상 이 되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자료라 하겠다. 현재 남아 있는 고려시대 의 나한상으로 대표적인 것은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목조희랑조사 상, 승가사 석굴 안에 있는 석조나한상, 원효사 출토 나한상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 이전의 나한상은 실제 남아 있는 예가 많 지 않고 현재 전하는 상은 대체로 조선중후기 작품들이다. 나한을 봉안하고 있는 몇 개의 사찰들을 살펴보면, 통도사는 전각 명 칭을 응진전이라 하고 1677년 지석대사가 창건한 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으며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과거불인 제화갈라(提和竭羅)보 살과 미래불인 미륵보살을 협시로 하고 16나한과 범천, 제석천왕을 봉 안하였고, 송광사와 해인사는 응진당으로 석가여래를 주불로 16나한 을 봉안하였다. 한국에서 최대의 나한전은 영천 은해사 거조암의 영산 전으로 정면 7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이다. 영산전은 1375년에 건립되 었고 나한상도 이 시기에 조성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하지 않다. 이 외에도 후대의 나한상은 수종사 팔각구층석탑내 출토의 나한상과 옥천사, 천은사, 범어사 등 많은 예가 있다. 이번 조사는 1994년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실시한 나주 불회사 석조나 한상 발굴조사 이후 두 번째로 이루어진 나한상 발굴조사이며, 이번 조 사에서 출토된 석상은 석불과 광배로 보이는 석재편 4점을 포함하여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편의 수가 총 230여 점(김병호씨 발견유물 포함)에 이른다. 따라서 그 수량으로 볼 때 이 나한상들은 오백나한이 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한상들은 대부분 화강암질로 재작되었는데, 상당수가 심하게 부식 되거나 파손되어 있는 상태이며 그 과정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나한상의 크기는 높이 30cm, 어깨 폭 20cm 정도의 작은 상들이 대부 분이며 4∼5점을 제외하곤 전부 좌상이다. 두발의 형태는 승려형이 주 류를 이루고 있으며 두건을 쓴 예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전자의 경우는 이마부분에 희미하게 나타나는 소발의 형태도 속해져 있으나 부식이 심하여 구분 짓기 힘들며, 후자의 경우 어깨부분에서 끊어지는 두건과 숄처럼 어깨에서 상완까지 내려와 얼굴을 가리고 있는 형태가 구분되어져 나타난다. 그 외에도 독특하게 삼산관을 쓰고 있는 상호가 보이는데 삼산관 중앙에 희미하게 무엇인가가 새겨져 있어 이것은 보 살상의 상호로 추정된다. 얼굴의 모습은 천편일률적인 모습을 하고 있 다. 즉, 동글납작하며, 눈은 일직선으로 표현하였고, 입은 꾹 다문 채 튀어나와 있다. 때론 입가의 주름을 이용해 표정을 연출하고 있기도 하 다. 몇몇 예의 입술이나 상호에는 주칠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어 원래 채색이 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목은 움추린 듯 짧게 표현되었 고, 어깨는 둥글고 무릎의 표현은 선각으로 약식화 되어 있다. 옷은 좌 측 옷깃이 위로 올라온 형태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좌측 팔에서 무릎 으로 가사가 흘러내린 형태가 가장 많이 보인다. 그 외에도 대의를 열 고 그 안에 승기지가 보이며 복부에서 허리끈으로 매듭을 묶은 형태, 숄이 머리에서 덮혀 양 팔로 흘러내린 형태도 보인다. 손 모양은 가슴 이나 복부에서 모아 양 소매 속에 넣은 것이 가장 많고 그 외에도 손을 드러내어 양 무릎부근에 얹어 놓은 형태, 합장인의 자세 등도 보인다. 또한 가슴에 원숭이를 안고 있거나 염주나 정병, 보주 등의 지물을 취 한 경우도 있는데 특히 양손에 보주를 안고 있는 형태도 있다. 이러한 정형적인 특징 외에도 독특한 모습을 한 나한상들이 간혹 보인다. 그 좋은 예로는 쌍신불(伏陀密多尊者)을 들 수 있다. 목에서 파손되어 상 호는 알 수 없으나 앙련좌에 등을 대고 합장인의 자세로 서있는 상으 로 그 주름선이 화려함을 알 수 있다. 전반적으로 조각의 선이 굵고 거칠며 때론 선각에 가까운 평면적인 느 낌마저 준다. 뒷부분에 대한 배려가 없는 편이다. 6. 조사단 의견 영월 창원리 나한상 출토 유적은 94년 전라남도 나주시 불회사 인근에 서 파불된 나한상이 발굴조사된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두 번째로 이루 어진 조사이다. 특히 나한상과 나한상을 봉안했던 나한전터가 함께 발 굴된 점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의의가 크다할 수 있다. 이번 조사는 나한상이 집중적으로 출토된 주변의 긴급 수습조사의 성 격을 가지고 있어 전면적인 조사가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주변의 확장 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나한전터와 배수시설, 계단 및 보도시설의 확인 은 나한상의 성격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나한전터의 발굴조사결과 출토된 유물은 나한상뿐만 아니라, 당시 사 용했던 자기와 나한전의 상부시설인 기와가 다량으로 출토되어 상대편 년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일단 자기를 살펴보면, 조선초기에 사용되었던 분청사기와 백자가 주 류를 이루고 있다. 분청사기는 인화문과 귀얄문이 보이고, 백자는 내저 원각이 돌아가고 기벽이 얇은 세립의 모래받침과 태토비짐눈 받침을 하는 것이 다수를 차지한다. 기와에서는 고려시대 양식인 어골문과 연 판문 등의 흔적이 변형되어 나타나는 조선초기의 형태와 중기이후의 회청색의 경질이면서 등문양이 거의 사라지는 형태도 함께 확인되고 있다. 나한상의 모습에서는 얼굴과 옷주름의 사실적인 조각과 섬세한 표현을 통해 볼 때 고려후기에서 조선초기의 양식으로 이어지는 형식 을 보여주고 있으며, 일부지만 나한상 하단의 조각이 축약되면서 선이 굵어지는 형태도 있어 후에 추가로 제작된 양식으로 추정된다. 결과적 으로 유물의 상대편년을 비교할 때 영월 창원리 나한상 출토 유적의 편 년은 상한이 15세기말에서 하한을 17세기이후로 추정되며, 중심연대 는 16세기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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