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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무안공항 건설지역 문화유적 발굴조사

2001-07-06 14: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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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공항 건설지역 문화유적 발굴조사 지도위원회와 현장설명회 자료 1. 조 사 명 : 무안공항 건설지역 문화유적 발굴조사 2. 조사 지역과 유적 · 무안군 망운면 피서리 구석기 유적 · 무안군 망운면 피서리 백자 가마터 3. 조사사유 무안 국제공항 건설지역에 대한 시굴조사 결과, 구석기 유적과 백자 가마가 확인되었는데 가마 유적에서는 대부분 제사용으로 추정되는 백 자가 출토되었고, 가마의 바닥시설이 일부 확인되었다. 또한 구석기 유 적에서는 후기구석기시대의 중기, 혹은 후기의 석기일 가능성이 높은 안산암제의 격지와 소형 찌르개가 수습되었다. 이에 발굴조사를 시행 하게 되었다. 4. 조사기간 : 2001년 3월 19일 ∼ 6월 30일(예정) 5. 조사단 구성 조사 단장 : 최성락 (목포대학교 박물관장) 지도 위원 : 정양모 (경기대학교 석좌교수) 최몽룡 (서울대학교 교수) 조기정 (전남도 문화재위원) 정영화 (영남대학교 교수) 이융조 (충북대학교 교수) 배기동 (한양대학교 교수) 김영원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조사 위원 : 이헌종 (목포대학교 역사문화학부 교수) 한성욱 (송광사 성보박물관 학예연구실장) 6. 지도위원회 토의 안건 1) 다양한 작업장의 원형과 배치, 기능 등 2) 가마 운영 시기 3) 유물 국가 귀속 문제 4) 가마터와 작업장 등 유적 보존 방안 5) 기타 무안 피서리 구석기 유적 1. 조사경과 1) 시굴 조사시 석기가 수습되었던 지역인 구릉의 정상부와 해안가 와 마주하는 남쪽 사면을 발굴 조사 대상 지역으로 삼았다. 2000년도 시굴 당시 석기가 출토되었던 구릉 정상부의 평탄한 지역을 중심으로 50×40m의 구역을 설정하였다. 이 구역을 A지점으로 하여 그리드 방식 으로 분할하였으며, 가로와 세로 5×5m의 80개 pit로 나누고, 둑 넓이 를 1m 간격으로 하여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2) A지점에서 북쪽으로 10m의 간격을 둔 후, 표토층이 남아 있는 경 작지 일부분을 25×25m의 구역으로 설정하여 B지점으로 명명하였다. A지점과 같은 그리드 방식으로 분할하여 가로와 세로 5×5m의 15개 pit 로 나누고, 둑 넓이를 1m 간격으로 하여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2. 지층조사 조사지역 사면은 동남쪽이 북서쪽에 비해 완만한 지형을 하고 있으 며, 이 사면을 따라 동쪽에 Tr.1(3×36M), Tr.2(3×10M), Tr.3-1(3× 15M), Tr.3-2(5×10M), Tr.3-3(3×10M), Tr.4-1(3×10M), Tr.4-2(3× 24M) 등 네 곳을 설정하였다. 네곳의 Tr중 Tr.3-1의 북벽을 기준으로 지층의 양상을 살펴보면 다음 과 같다. 1)갈색 부식토층 : 표토하 20㎝ 정도의 두께로 유기물이 많이 함유되 어 있다. 2)적갈색사질점토층 : 표토하 20∼110㎝의 층으로 적갈색을 띠고 있 으며 모래질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토양쐐기가 시작되는 층으로 흙이 마르면 부스러져서 쉽게 바람에 날리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층의 상 부에서 구석기 시대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3)연갈색점토층 : 표토하 110∼130㎝의 두께로서 작은 쐐기가 나타나 고 있다. 4)사질토층 : 밝은 갈색의 모래층으로 표토하 130∼180㎝ 까지 형성 되어 있다. 암반의 굴곡을 따라 형성되어 있고, 조금씩 색이 다른 모래 가 층을 이루고 있다. 암반부식토와의 경계면을 따라 망간의 농집이 이 루어져 검은 띠를 형성하고 있다. 5)암반부식토층 : 흑운모화강암의 기반암이 풍화되어 토양화된 층이 다. 6)암반 3. 조사내용 피서리 유적은 저평한 구릉지대로서 함평만쪽으로 완만하게 형성된 구릉의 남쪽 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유적이 형성되기 좋은 국지 적인 지형 조건을 가지고 있어 구석기 시대의 문화층을 확인하기 위하 여 정밀 조사를 실시하였다. 1) 유물의 분포 유물의 양상을 알아보기 위하여 지표조사와 시굴조사 당시의 석기와 석재 산포지를 중심으로 하여 pit 별로 노출시켰다. 유적 A지점의 중심 부인 S4E4, S4E5, S4E6, S4E7, S5E4, S5E5, S5E6 pit에서 석기가 집 중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지역 주변부에서도 석영맥암 석재가 노 출되기는 하나 빈도수가 낮고 크기가 1cm 가량 되는 작은 부스러기가 우세하다. 2) 유물의 종류 석재는 트랜치 조사시 확인되는 석영맥암이 주를 이루고 있다. 출토 된 유물 종류로는 석영맥암제의 찍개, 긁개, 새기개, 홈날, 석영제 자갈 돌로 만들어진 찍개, 화강암제 망치돌 등과 B지점에서 유일하게 출토 된 구석기 유물로 규장암제 몸돌이 있다. 4. 조사성과 무안 피서리 구석기 유적은 바다를 바라보는 완만한 구릉이 분포하 는 좋은 입지를 가지고 있지만 발굴 조사 결과 그다지 많은 유물은 출 토되지 않았다. 하지만 특징적인 몇 점의 유물들을 통하여 이 유적의 문화상을 미약하나마 추정해 볼 수 있었다. ① 우선 이 지역에서 많이 확인되는 석영맥암류의 석재로 간단한 잔 손질을 통하여 석기를 만들어 사용한 점이 특징 중하나이다. 출토된 유 물들 중 석영맥암제의 석기가 대부분인데, 이것은 구하기 힘든 다른 좋 은 석재가 없어 이 지역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 석재를 가지고 석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석영맥암제가 아닌 다른 석영제 자갈돌, 화강암제, 규장암, 안산암제 석기 또한 확인되었다. 이 곳은 석영맥암제를 주 석재로 사용하고 다른 지역의 강자갈과 석기를 만들기 좋은 다른 석재를 부 석재로 석기를 만들어 사용한 양상을 보인 다. ② 유물의 분포가 유적 구획내의 중심지역인 S4E4, S4E5, S4E6, S4E7, S5E4, S5E5, S5E6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 지역 외의 지역에서 는 유물의 분포가 매우 적다. 이것은 주위에 분포하는 석영맥암을 이용 해서 석기를 만들어 사용한 흔적으로 보여진다.보아 이 곳은 임시점거 유적으로 추정된다. ③ 위와 같은 유물 분포와 구성으로 보아 이 곳은 임시점거유적으로 추정된다. ④ 유적 주변 지표조사를 통해 석부와 홈자귀 등을 수습하였다. 이를 통해 청동기 시대의 유구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유구는 확인하지 못하였으나 석촉편과 어망추가 출토되어, 이 주변에 청동기 시대의 유구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무안 피서리 백자가마터 1. 조사경과 무안 피서리 백자 가마터는 해변에 위치한 구릉 계곡(남-북)을 중심 으로 그 좌우에 가마터와 수비공, 저장공, 생활 공간 등이 분포되어 있 다. 가마터는 구릉 경사면을 이용하여 북서쪽에서 몰아치는 바람을 피 하기 위해 서쪽 구릉에 형성되어 있으며, 수비공 등의 작업 공간은 구 릉 좌우에 분포한다. 조사는 범위가 광범위하고 유적이 많아 조사 지역내 표토층은 레벨 을 기록한 후 완전히 제토하였다. 표토를 제거한 후 각 유구의 조사는 시굴 조사에서 확인된 가마를 먼저 조사하고 작업 공간 등을 조사하였 다. 가마터는 여러 기가 운영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1기만 남아 있 으며, 水飛孔 2기, 貯藏孔 5기, 생활 유구 5기 등이 조사되었다. 또한 유 적 주변에 소형 가마와 원형 유구들이 다수 분포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후대의 개간과 경작으로 주변 부분이 유실되어 성격이 불분명한 것이 많다. 그리고 작업 공간과 생활 공간의 배수로가 유적 전면에 축조되 어 있으나 대부분 경작으로 유실되어 부분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출토 유물은 백자를 중심으로 요도구인 개떡형 도지미·가마 축조용 망생이 벽돌·물레 부속 도구·굽깍음대 등과 생활 용기인 옹기와 연질 도 기, 常平通寶 등이 있다. 백자는 대부분 문양이 없으나 일부 청화백자 가 있다. 2. 조사유구 유구는 가마 1기와 수비공 2기, 저장공 6기, 생활 유구 5기와 다수의 소형 가마, 소형 원형 유규, 다량의 배수로 등이 조사되어 전통 도자의 공방 구조와 도자 제작 과정을 알 수 있는 다량의 귀중한 자료를 제공 하고 있다. 1) 가마 조사 지역의 서쪽 구릉 북서쪽에 위치하며 동-서 방향의 반지하식 連 室 登窯로 燃燒室(봉통부)과 燔造室(燒成室), 排煙部로 구성되어 있 다. 크기는 총 길이 17m, 경사도 30∼40°로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특 히 이 가마는 기존 가마의 퇴적층에 축조되어 있으며 사용하면서 부분 적으로 축소 또는 중복되는 부분이 있다. 또한 북서풍을 막기 위해 봉 통부의 북쪽은 斷崖面으로 축조하였으며, 남쪽에는 인위적인 계단을 불규칙하게 만들어 연소실과 각 가마의 출입에 용이하도록 하였다. 봉 통부는 길이 280㎝, 너비 110∼170㎝이다. 번조실은 6칸으로 추정되며 길이 100∼310㎝, 너비 230∼470㎝로 뒷칸으로 갈수록 너비가 매우 커 지고 있다. 배연부는 모두 14개의 排煙路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길이 210㎝, 총너비 570㎝, 각 배연로 너비 15∼25㎝, 배연로 벽 너비 15∼ 20㎝이다. 굴뚝 구조는 상부가 파괴되어 알 수 없다. 각 칸은 지름 20∼ 30㎝의 원형 불창살 기둥을 8∼13개씩 세워 구획하고 있다. 燔法은 번 조실 바닥에 원형의 개떡형 도지미가 전면에 깔려 있어 도지미를 깐 후 포개어 구웠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가마 바닥에는 많은 모래가 깔 려 있는데 이는 가마의 급한 경사를 보완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추 정된다. 퇴적층은 가마의 전후 좌우에 형성되어 있는데 가마 남쪽과 전면인 동쪽 부분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퇴적층 조사는 전면부인 봉통부 동쪽과 번조실 남쪽 등 2곳을 조사하였다. 동쪽 퇴적층은 최대 깊이 200㎝로 매우 깊은데 층위는 크게 3개층으로 구분된다. 즉, 조사 가마 축조 이전의 퇴적층과 조사 가마 운영시에 쌓인 퇴적층, 조사 가마 폐 기 후 타 가마의 퇴적층으로 나눌 수 있다. 이를 통해 조사된 가마 이외 의 다른 가마가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퇴적물은 백자와 초벌구 이 편, 옹기, 개떡형 도지미, 가마 벽편, 번조시에 사용하였던 모래, 숯 등으로 형성되어 있다. 번조실 남쪽 퇴적층은 기존 시굴 조사시의 트렌치를 연장하여 조사하 였다. 퇴적은 구릉경사면을 따라 형성되어 있으며 최대 깊이 100㎝로 조사 가마 이전의 가마 폐기물로 형성되어 있다. 층위는 크게 4개층을 이루는데 1층은 최하층으로 25㎝내외로 가마벽 편 등 가마 축조 폐기물 로 구성되어 있다. 2층은 가마 번조 후의 폐기품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10㎝내외의 초벌구이층과 15㎝내외의 가마 내부 폐기물과 모래층, 15㎝내외의 숯 등으로 형성되어 있다. 3층은 20㎝내외의 가마 폐기물층 이며, 4층은 15㎝내외의 모래로 형성되어 있다. 2) 水飛孔 수비공은 모두 2기가 조사되었는데 1기는 점토와 백토 수비를 겸용하 였으며 1기는 점토 수비만을 하였다. (1) 수비공 가 점토와 백토를 겸용한 수비공으로 조사 지역의 동쪽 구릉 북동쪽에 위치하며 길이(남-북) 18.7m, 너비 9.5m, 중심부 깊이 140㎝로 매우 큰 규모이다. 층위는 5개층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최하층인 1층은 일반 부식토로 이루어져 있으며 퇴적층의 부식으로 암모니아성 냄새가 강하 다. 2층은 서쪽 부분만 형성된 층으로 적갈색 모래를 중심으로 약간의 숯과 백자 실패품, 초벌구이 편 등으로 형성되어 있다. 특히 층 하부는 상부에 비해 매우 미세한 모래가 퇴적되어 있다. 적갈색 모래는 적갈 색 백토 원료를 수비한 후에 쌓인 모래로 추정되는데, 적갈색 백토는 회백색 백토에 비해 번조 온도가 낮다. 이를 통해 이곳 가마가 초기에 는 후기 보다 저급품을 생산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3층은 흑갈색 점토 와 적갈색 점토가 중앙부를 중심으로 수비공 전면에 오목하게 형성되 어 있는데 이들 점토들은 점토 수비 후에 쌓인 층이다. 특히 퇴적층 상 면에는 많은 양의 유물이 깔려 있었다. 이들 유물은 수비 후 실패 백자 와 도지미, 가마벽 편 등 가마 폐기물을 버린 것으로 수비 후의 회백색 점토층을 흑갈색으로 부식시킨 요인이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적갈 색 점토층이 형성된 곳은 1층과 2층이 형성되지 않은 부분으로 바닥면 생토층의 철성분이 흡수되어 적갈색을 띠고 있다. 그리고 3층 형성 후 서쪽 부분에 4층의 백토를 수비하면서 사용한 배수로가 수비공 외부로 연결되어 축조되어 있다. 동서 길이 670㎝, 너비 20㎝ 내외로 배수로 내 부에는 백자 실패품과 도지미, 가마벽 편 등 폐기품으로 채워져 있다. 이들 퇴적물은 배수로 축조시의 인위적 또는 배수로 폐기후의 자연 퇴 적물로 추정된다. 4층은 회백색 모래가 중앙부를 중심으로 수비공 전체에 오목하게 형 성되어 있다. 회백색 백토 원료를 수비한 후에 쌓인 모래로 추정되는 데, 회백색 백토는 적갈색 백토에 비해 번조 온도가 높은데 이를 통해 4 층 시기에 고급의 제품이 생산되었으며 이 시기가 이 가마의 중심 시기 로 추정된다. 그리고 층 하부의 모래는 부분적으로 적갈색을 띠고 있는 데 이는 5층을 형성하고 있는 황갈색 점토층의 철성분이 내려 앉아 나 타난 현상이다. 5층은 적갈색의 생토층이 흘러 내려와 형성된 점토층으 로 30㎝ 내외 두께로 일정하게 퇴적되어 있다. 층 상부가 5㎝ 내외로 좀 더 적갈색을 띠며 하부는 약한 흑갈색을 띠고 있다. 그리고 수비공의 북쪽과 서쪽 부분에 소형 구덩이가 형성되어 있는 데 작업 출입로 또는 수비공 내부에서의 작업 순서에 의한 배수 방향으 로 추정된다. 4층에서는 특히 많은 양의 모래가 퇴적되어 있는데 이는 유약 제작과 가마 번조실의 급경사를 조절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대량의 모래가 필요하였음을 간접적으로 알려 주고 있다. (2) 수비공 나 점토 수비공으로 조사 지역의 동쪽 구릉 남동쪽에 있으며 서쪽에 점 토 저장공이 연접하여 있다. 수비공 내에는 남북으로 2개의 구덩이가 있는데, 전체 길이 580㎝, 너비 210㎝이며 북쪽 구덩이 길이 390㎝, 남 쪽 구덩이 길이 170㎝ 이다. 바닥에는 수비 후의 점토와 숯 찌꺼기가 깔 려 있다. 퇴적층 2층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하층인 1층은 70㎝로 전체 가 규석질의 회색 또는 적갈색 모래로 구성되어 있는데 수비공 가 모래 에 비해 불순물이 많이 섞여 있으며 거칠다. 2층은 생토층이 흘러 내려 와 형성된 층으로 10㎝ 내외 이다. 3) 貯藏孔 저장공은 모두 6기가 조사되었는데 점토 저장공 1기와 태토 저장공 1 기, 백토 저장공 2기, 유약 원료 저장공 1기, 조사중 저장공 1기 등이 다. 특히 태토와 점토 저장공은 모두 구덩이를 판 후 점토를 두텁게 발 라 벽을 만들고 불을 먹여 축조하였는데, 이는 습기의 발산을 억제하 여 저장 원료의 점력을 유지하고 성형이 용이하도록 원료를 숙성시키 기 위한 방법으로 추정된다. 또한 태토와 점토 저장공에는 1매의 판석 이 벽면에 붙여 바닥에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출입시의 디딤돌 또는 반 죽을 위한 작업판으로 추정된다. 저장공 주변은 백토 건조장과 소형 가 마들이 축조되어 있는데 소형 가마는 백토를 건조하기 위한 가마로 추 정되며, 가마에서 먼저 1차 건조 후 백토 건조장에서 2차 건조하여 점 토와 혼합하여 태토를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 粘土 貯藏孔 점토 저장공으로 추정되는 구덩이로 조사 지역의 동쪽 구릉 남동쪽 에 있으며 북쪽에 수비공 나가 연접하여 있다. 부정타원형으로 동서 길 이 660㎝, 남북 너비 580㎝, 깊이 60㎝이며 벽선에 4개의 기둥 구멍이 있다. 또한 저장공 동쪽의 지표상에는 지름 20㎝ 내외의 불먹은 바닥 이 일직선상이 있는데 그 간격은 180㎝-330㎝-200㎝ 이다. 서쪽 지표상 에도 역시 3개가 있는데 간격은 240㎝-430㎝로 서로 일치하지 않고 있 으며 기능도 기둥 자리 등으로 추정되나 정확하지 않다. 또한 이들과 저장공과의 관계도 불분명하다. 층위는 모두 3개층으로 1층은 수비후 퇴적층으로 약한 흑갈색이 중심 으로 부분적으로 황갈색 점토와 회백색의 점토 원료가 섞여 있다. 2층 은 황갈색 모래층으로 수비공 나의 모래층이 흘러내려온 것으로 추정 되며 3층의 영향으로 황갈색이 되었다. 3층은 동쪽 부분만 형성되어 있 으며 생토층이 흘러 내려와 형성되었다. 점토 수비공과 연접하여 있고 점토 덩어리가 부분적으로 퇴적되어 있어 점토 저장공으로 추정된다. 저장공 남쪽에는 소형가마 1기가 있는데 몸통부는 길이 55㎝, 너비 50㎝이며, 봉통부는 길이 50㎝, 너비 54㎝이다. 바닥과 벽은 고온에 의 해 단단하게 소결되어 있다. (2) 胎土 貯藏孔 태토 저장공으로 조사 지역의 동쪽 구릉 아랫부분 중앙부에 위치한 다. 저장공을 중심으로 8자형의 소형 점토·백토 저장공과 소형 가마, 백 토 건조장이 조합을 이루어 형성되어 있다. 태토 저장공은 원형으로 크 기는 지름 300㎝내외, 현 깊이 60㎝이다. 구덩이를 판 후 황갈색 점토 를 10∼40㎝로 벽을 만든 후 불을 먹여 축조하였다. 동쪽 벽면 바닥에 는 1매의 판석을 설치하였으며 하부 벽면과 바닥면에는 점토와 백토를 혼합한 백자 태토가 두텁게 깔려 있다. 층위는 2개층으로 형성되었는 데 하층인 1층은 폐기후 인위적으로 백자 실패품과 도지미, 가마벽 편 등의 가마 폐기품으로 메꾸었으며, 2층은 생토층이 흘러 내려와 형성되 었다. 소형 점토·백토 저장공은 태토 저장공의 북서쪽에 연접하여 위치하 며 형태는 8자형으로 두 저장공이 함께 축조되었다. 서쪽 구덩이는 바 닥에 백토 덩어리가 많이 남아 있어 백토 저장공이 확실하나 동쪽 구덩 이는 주변과 바닥에 소량의 점토편만 남아 있어 점토 저장공으로 추정 된다. 길이는 120㎝이며, 벽과 바닥은 5∼10㎝ 두께의 황갈색 점토로 축조한 후 불을 먹여 마무리하였다. 서쪽 백토 저장공은 길이 80㎝, 너 비 60㎝이며, 동쪽의 점토 저장공은 길이 90㎝, 너비 70㎝이다. 퇴적층 은 경작으로 깍여 나가 10㎝의 단일층만 남았는데, 저장공 폐기 후 생 토층이 흘러 내려와 형성되었다. 소형 가마는 태토 저장공의 북동쪽에 연접하여 축조되었는데 전체 길 이는 170㎝로 몸통부는 길이 100㎝, 너비 80㎝이며 봉통부는 길이 70㎝ 너비 80㎝ 이다. 봉통부를 중심으로 바닥에 숯이 깔여 있으며, 바 닥과 벽은 고온에 의해 2∼4㎝ 두께로 단단하게 소결되어 있다. 백토 건조장은 태토 저장공 서쪽 부분에 형성되어 있는데 대부분 유 실되고 일부만(50㎝×50㎝) 남아 있다. 백토 아래의 바닥에는 황갈색 모래가 깔려 있다. (3) 白土 貯藏孔 가 조사 지역의 서쪽 구릉 아랫 부분 중앙부에 위치하며 두개의 저장공 이 남북으로 함께 축조되었으며 그 북쪽에 백토 건조장이 있다. 저장공 은 먼저 원형의 저장공을 축조한 후 그 남쪽에 포물선 형태의 반원형 이 추가로 축조되었다. 이는 수비된 백토의 양이 많아 남쪽 부분을 추 가로 확장하여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쪽 원형 저장공은 지름 260㎝, 깊이 70㎝이며, 반원형은 최대 지름 210㎝, 남북 길이 140㎝, 깊 이 30㎝이다. 벽체는 15㎝ 내외의 점토로 축조한 후 불을 먹였다. 퇴적 층은 2층으로 형성되었으며 하층인 1층은 폐기 후 생토층이 흘러 내려 퇴적되었다. 2층은 인위적인 퇴적층으로 백자 실패품과 가마벽 편 등 가마 폐기물로 채워져 있는데 남쪽 추가 저장공에는 형성되지 않았다. 이는 추가 저장공의 깊이가 낮아 1층으로 저장공이 모두 퇴적되었기 때 문이다. 저장공 서쪽 벽면 바닥에는 부정방형 판석이 설치되어 있는데 크기는 40㎝×35㎝×23㎝이다. 벽면 하부와 바닥에는 백토가 깔려 있 다. 백토 저장공은 저장공 북쪽에 연접하여 있는데 건조장의 북서 모서리 에 동서에 각 1개의 석재로 마무리한 후 그 사이 목재를 끼워 넣은 시설 이 있는데 출입구로 추정된다. 동서 길이는 340㎝ 남북 너비 280㎝이 다. (4) 白土 貯藏孔 나 조사 지역의 서쪽 구릉 아랫 부분 남쪽에 위치하며 북쪽 부분에 소형 가마가 있다. 또한 저장공 서쪽에는 유약 원료 저장공이 연접하여 있 다. 크기는 지름 260㎝, 깊이 40㎝이며, 벽은 10㎝ 내외의 점토로 축조 한 후 불을 먹였다. 저장공 서쪽 벽면 바닥에는 장방형 판석이 설치되 어 있으며 크기는 40㎝×27㎝×17㎝이다. 벽면 하부와 바닥에는 백토 가 깔려 있다. 층위는 3개층으로 하층인 1층은 백토 위에 아주 얇게 깔 린 숯으로 용도는 알 수 없다. 2층은 저장공 폐기 후 생토층이 흘러 내 려 오목하게 형성되어 있다. 3층은 인위적으로 백자 실패품과 가마벽 편 등의 가마 폐기물로 채워졌다. 저장공 북쪽의 소형 가마는 일부 단단하게 소결된 부분이 있으나 대 부분 유실되어 윤곽만 남아 있다. 크기는 길이 115㎝, 너비 60㎝이다. (5) 유약 원료 저장공 조사 지역의 서쪽 구릉 남쪽 부분 중앙부에 위치한다. 남쪽에 백토 저 장공 나가 연접하여 있다. 형태는 부정형으로 현재 조사중이다. 층위 는 2층으로 최하층인 1층은 남쪽부분에만 형성되었는데 저장공 폐기 후 생토층이 흘러 내려 형성되었다. 2층은 유약용 백토 원료가 대량 퇴 적되어 있어 유약 원료 저장공으로 추정하였다. 저장공 남쪽에 인접하여 소형 가마 형태의 타원형 구덩이가 있는데 소결 흔적이 없으며 정확한 용도는 현재 조사중이다. (6) 저장공 조사 지역의 동쪽 구릉 남쪽 중앙부에 위치한다. 주변에 소형 백토 저 장공 2기와 백토 건조장 2기, 소형 가마 1기가 1조를 이루어 분포한다. 저장공은 현재 조사 중으로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으나 원형의 형태 로 보아 백토 또는 태토 저장공으로 추정된다. 크기는 지름 300㎝ 내외 이며, 벽은 20㎝ 내외의 점토로 축조한 후 불을 먹여 마무리 하였다. 내 부의 최상층은 생토층이 흘러 내려 형성되었으며 그 아래층은 인위적 인 잡석들로 채워져 있다. 이들 잡석은 불먹은 할석과 잡석 그리고 백 토 원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형 백토 저장공은 저장공 남북에 각 1기가 있으며 주변에 각 1곳의 백토 건조장이 있다.남쪽 건조장은 수비가 완료되지 않은 백토가 깔려 있고, 북쪽은 수비가 완료된 백토가 깔려 있다. 북쪽 백토 저장공은 지 름 75㎝ 내외이며, 벽은 5∼10㎝ 내외의 점토로 축조하여 불을 먹여 마 무리하였다. 현재 조사중에 있다. 남쪽 백토 저장공은 지름 100∼110㎝ 이며, 벽은 5㎝ 내외의 점토로 축조하여 불을 먹여 마무리하였다. 대부 분 유실되어 거의 바닥만 남아 있다. 소형가마는 저장공의 북동쪽에 연접하여 있으며 몸통부는 길이 110㎝, 너비 103㎝이며, 봉통부는 길이 70㎝, 너비 74㎝이다. 깊이는 30㎝의 단일층으로 소량의 백자 실패품과 도지미 등의 가마 폐기품으 로 채워 형성하였다. 4) 생활 유구 도공들의 생활 유구는 5기가 조사되었으나 경작으로 파괴되어 대부 분 윤곽만 남아 있다. (1) 생활 유구 가 조사 지역의 서쪽 구릉 중앙부에 위치한다. 온돌 구조를 보이고 있는 생활 유구으로 온돌 구조는 유실되어 바닥부만 남아 있는데 4조의 고래 로 추정된다. 아궁이 가마 부분은 상태가 양호하며 봉통부는 전면에 숯 이 깔려 있다. 건물 내부의 온돌 크기는 동서 총길이 270㎝, 남북 너비 230㎝이며, 소결 상태의 윤곽만 남은 온돌 고래의 너비는 25㎝ 내외이 다. 아궁이 가마는 길이 130㎝, 너비 60㎝∼70㎝, 깊이 15㎝ 이다. 아궁 이의 남쪽 부분에는 소토 바닥이 형성되어 있어 건물의 중복 관계가 추 정된다. (2) 생활 유구 나 조사 지역의 서쪽 구릉 중앙부 서쪽에 위치한다. 남쪽부는 일부만 유 실되었으나, 동쪽부는 대부분 유실되었다. 건물 내부에는 불규칙하게 4 개의 기둥 구멍이 있다. 내부 가장자리는 壁溝로 처리되어 있으며, 중 앙은 아궁이 시설이 불규칙하게 남아 있다. 길이는 남북 길이 900㎝, 동 서 잔존 너비 380㎝이다. 벽구의 너비는 북쪽 130㎝, 서쪽 40㎝ 내외이 다. 내부 퇴적층은 백자 실패품과 도지미, 가마벽 편 등 가마 폐기물오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상평통보 1점이 내부 퇴적층에서 출토되었다. (3) 생활 유구 다 조사 지역의 서쪽 구릉 남쪽부 서쪽에 위치한다. 현재 조사중이며 건 물 폐기 후 백자와 옹기, 가마 폐기물 등이 흘러 내려 내부가 채워져 있 다. (4) 생활 유구 라 조사 지역의 동쪽 구릉 중앙부 동쪽에 위치한다. 부정원형의 수혈 건 물로 내부 동쪽 부분에 생활옹기 1개체분이 폐기되어 있어 생활 유구 또는 유약 작업방으로 추정된다. 그외에도 내부에는 백자 실패품과 가 마벽 편, 도지미 등의 가마 폐기물이 인위적으로 채워져 있다. 일부 바 닥에는 판석이 깔려 있다. 건물 서쪽부는 동쪽에 비해 약간 낮게 단을 주어 축조되어 있어 출입구로 추정된다. 동서 길이 470㎝∼550㎝, 남 북 너비 450㎝∼500㎝ 이며, 서쪽 추정 출입구의 크기는 180㎝×190㎝ 이다. 퇴적층은 단일층으로 깊이 15㎝이다. (5) 생활 유구 마 조사 지역의 동쪽 구릉 남동쪽에 위치한다. 현재 조사중으로 내부에 소형 가마 3곳이 확인되고 있으며, 백토 저장공과 대형 옹기 저부가 내 부에 있다. 노출된 소형 가마 1기는 남북 길이 110㎝, 동서 너비 50㎝ 로 벽과 바닥은 단단하게 소결되어 있다. 백토 저장공은 지름 65㎝ 내외, 깊이 20㎝ 내외, 벽은 3㎝ 내외의 점토 로 축조하였는데 크기도 작고 벽체도 얇으며 특히, 다른 저장공에 비 해 고온으로 처리 되어있다. 바닥에는 백토 덩어리들이 소량 깔려 있 다. 저장공 내의 퇴적층은 단일층으로 생토층이 흘러 내려 형성되었으 며 바닥에는 약간의 백자 편이 있다. 유약 보관통으로 추정되는 대형 옹기의 저부편은 현 최대 지름 45㎝, 현 깊이 15㎝, 바닥면 지름 34㎝ 이다. 3. 출토유물 출토된 유물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백자로 발과 접시, 제기, 잔, 종지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병과 향로 등이 소량 출토되었다. 백자와 함께 일상 생활에서 다양한 용도로 널리 사용된 다량의 옹기와 소량의 연질 도기가 확인되며, 가마 도구인 개떡형 도지미와 망생이 벽 돌, 물레 축, 굽깍음대 등이 수습되었다. 출토 유물은 조사 지역과 유구 를 중심으로 정리되었는데, 대량 생산의 가마 구조와 퇴적층의 규모를 고려할 때 매우 많은 유물이 퇴적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자는 기종별로 크게 鉢과  匙, 祭器, 盞, 종지로 나누어지며 그 중 에서도 발과 접시, 제기 등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특히 제기는 가마 운영 시기인 조선 말기의 특징적 유물이다. 그릇은 기술적으로는 세련 된 제작기법을 보여주고 있으나 대량 생산을 주목적으로 운영되어 기 벽이 두껍고 무게가 있으며 태토와 釉面이 거친 편이다. 태토는 일부 정선된 것도 있으나 대부분 잡물이 섞인 조질토이며 부분적으로 기포 가 있다. 유약은 투명성으로 굽 안바닥면까지 전면에 시유되었다. 유색 은 약간 어두운 회청색 또는 회갈색으로 대부분 빙렬이 있다. 또한 유 약이 얇게 시유된 그릇은 투명성이 약하며, 酸化 번조로 유색이 황갈색 을 띤 것도 일부 있다. 백자 중에는 청화 안료로 명문과 무늬를 그린 것 이 전체의 10% 정도를 차지한다. 명문은 가형 鉢과 접시에 많으며 무 늬는 가형 鉢과 나형 종지에서 확인되고 있다. 명문은 [壽] [福] [一] [二] [川] [月] [鳳] 등이 있으며 무늬는 아주 간략화된 草花文이다. 무늬는 구연부에 한 줄의 靑畵線帶를 돌린 후 그 아래 2∼3곳에 빠른 필치로 추상적인 초화문을 그렸다. 燔法은 대부분 포개구이(常燔)를 하였으나 일부 盞 등은 例燔도 있었 던 것으로 추정된다. 번조는 가마 바닥에 많은 양의 모래를 깐 후 경사 진 개떡형 도지미를 놓고 그위에 그릇의 크기에 관계 없이 포개어 구웠 다. 도지미 바로 위에 놓인 그릇의 굽바닥에는 백색 모래를 깔았으며, 그 위의 그릇은 내외면에 모래 빚음을 받쳤고, 최상의 번조품은 내저면 에 받침 흔이 없다. 그리고 일부 초벌 구이 편이 확인되고 있으나 대부 분 성형→ 건조→ 施釉 후 저화도에서 초벌 없이 1회 번조로 완성하였 다. 유약은 저화도에서도 쉽게 용융되는 염분이 성분이 많은 규사를 함 께 사용하여 태토는 연질 번조되고 있으나 유약은 완전 용융되고 있다. 백자는 출토 위치와 층위, 유구에 관계없이 대부분 同形 同質로 큰 변 화가 없다. 단순한 기형과 포개구이를 중심으로한 저화도 번조, 태토 와 유약의 質, 둔중한 기형과 무게, 빠른 필치로 아주 간략하게 그린 청 화 등에서 질보다 양에 중점을 둔 대량 생산 위주의 粗質白磁의 특징 을 알 수 있다. 또한 옹기와 연질 도기는 대부분 구연이 전으로 성형된 저장용과 운 반용, 조리용 등으로 당시 생활 용기로서 수요가 많았던 이들의 다양 한 형태를 알 수 있다. 이는 이 시기의 옹기와 연질 도기의 세부 형태 와 태토, 문양 등의 특징을 자세히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그 리고 이곳 출토 옹기의 태토는 백자 태토와 유사하여 일부 옹기도 제작 하여 생활 용기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常平通寶가 생활 유구 "나"에서 1점되었는데, 시굴 조사에서도 백자 접시 안에 놓인 채로 9점이 출토되어 생활의 일면을 보여 주고 있다. 1) 백자 鉢 크기와 기형에 따라 가형, 나형, 다형으로 나누어진다. (1) 가형 발 內底曲面式으로 측면선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구연부에서 직립하 고 있다. 높이가 높고 내저면의 면적이 좁은 편이며 굽은 직립형이다. 대부분 모래 빚음이 내외면에 7∼12개 있으나 일부는 내저면에 빚음이 없는 것도 있다. (2) 나형 발 내저곡면식으로 측면선은 완만하게 올라가다가 직립하지만 가형보다 는 기형이 낮다. 내저면의 면적이 넓으며 내외면 10∼16곳에 모래 빚음 을 받쳐 구웠다. 굽은 오목형이다. (3) 다형 발 內底圓刻式으로 측면선은 외저부에서 각을 이루며 꺽여 올라가다가 구연부에서 약간 외반하고 있다. 내저원각의 지름은 모두 굽 지름 보 다 1㎝ 정도 크다. 내외면 8∼15곳에 모래 빚음을 받쳐 구웠다. 2) 백자  匙 측면선은 사선으로 처리되었으며 구연부 외반형과 내만형, 직립형으 로 구분된다. 대부분 내외면 8∼11곳에 모래 빚음을 받쳤으나 일부는 최상에서 번조하여 내저면에 빚음흔이 없는 것도 있다. 또한 일부는 내 저면에 받침흔이 없고 굽바닥도 백색 모래 받침을 한 것이 있어 例燔品 의으로 추정된다. 굽은 오목형과 평저형이 있다. 3) 백자 祭器 제기는 굽이 높고 내저면이 편평한 것이 특징으로 굽 높이에 따라 2종 류가 있다. 즉, 굽 높이가 4㎝이상은 가형, 4㎝ 이하는 나형으로 분류하 였다. (1) 가형 제기 위로 올라갈수록 굽 지름이 좁아지고 있으며 대부분 내저면 9∼12곳 에 모래 빚음을 받쳤으며 굽바닥에는 백색 모래를 받쳐 포개구이의 최 하에서 번조하였다. 일부는 굽를 12각으로 깍아 성형하였다. (2) 나형 제기 굽이 가형 제기보다 낮으며 1㎝ 내외의 것도 있다. 내외면 7∼12곳에 모래 빚음을 받쳐 포개구웠다. 4) 백자 盞 평저굽 형식이 일부 있으나 대부분 오목굽이다. 내저면에는 받침흔 이 없고 굽바닥에 백색 모래 받침이 있는 例燔品이 상당량 확인된다. 5) 백자 종지 내저원각식의 가형과 내저곡면식의 나형으로 크게 구분된다. (1) 가형 종지 내저원각식으로 내저원각 지름이 굽지름보다 약간 넓다. 내외면 7∼ 12곳에 모래 빚음을 받쳐 포개구웠으며 굽은 오목형이다. (2) 나형 종지 내저곡면식으로 측면선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나 아래로 갈수록 약간 꺽여 굽이 몸체에 비해 작다. 대부분 포개구이의 최상에서 번조하여 내 저면에 받침흔이 없다. 대부분 굽바닥에 8∼10개의 모래 빚음을 받쳤으 며 일부 백색 모래를 받친 例燔品도 있다. 4. 조사성과 피서리 가마터는 조선시대 말기에 운영된 지방 백자 가마로 당시의 가마 구조와 도자 제작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가마는 연소실과 번 조실, 배연부 등 가마 구조가 매우 양호하게 남아 있으며 작업장과 퇴 적장 등의 가마 부속 시설들도 잘 남아 있어 우리 나라 전통 도자 가마 의 생산 구조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가마는 대량 생산을 위한 대규모 가마로 뒤쪽으로 가면서 가마의 너비 가 매우 넓어지고 있다. 또한 급경사에 의한 底火度 燔造品을 생산하 여 가마의 급경사를 조정하기 위해 다량의 모래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저장공 주변에 대부분 소형 가마가 축조되어 있어 저장공과 하나의 조합을 이루며 있는데 이것은 백토 건조와 유약을 만들기 위한 규석(모래) 등을 굽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소형 가마가 모두 전체적 으로 소결은 되어 있으나 유리질화는 되어 있지 않다. 출토 유물은 백자를 중심으로 요도구인 개떡형 도지미와 가마 축조 용 망생이 벽돌, 생활 용기인 옹기 등이다. 백자는 대부분 문양이 없으 나 일부 청화백자가 있다. 청화백자의 문양은 아주 간략한 초화문이 중 심을 이루며 [壽] [福] [鳳] [二] 등의 銘文이 있다. 기종은 발과 접 시, 잔, 종지, 제기 등이 출토되며 특히 말기 백자의 특징적 유물인 굽 이 매우 높은 제기가 다량 출토되고 있다. 번법은 모래 빚음을 그릇 내· 외면에 다량으로 받친 후 포개어 구웠다. 그리고 이곳 출토 옹기의 태 토는 백자 태토와 유사하여 일부 옹기도 제작하여 생활 용기로 사용하 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옹기와 연질 도기의 기형과 태토, 문양 등 은 이 시기의 특징을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따라서 뒤로 가면서 매우 넓어지는 가마 바닥과 급경사 등의 특징적 가마 구조와 底火度 번조와 두터운 기벽, 높은 굽의 제기 등 출토 유물 의 특징은 이 가마가 조선 말기에 운영되었음을 확연히 보여 주고 있 다. 즉, 가마 구조와 출토 유물의 특징에서 피서리 가마터의 운영 시기 가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무안 피서리 가마터는 가마의 구조뿐만 아니라 국내 가마터 조사 중 가장 다양한 작업 공간이 조사되어 그 의의가 매우 크다. 이들 구조는 순천 후곡리 가마터와 장성 대도리 가마터, 곡성 송강리 가마터 등 전 남 지역 가마터 작업장과 경기도 광주 번천리 가마터, 군포 산본동 가 마터 등의 작업장과 비교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우리 나라 전통 도자 제작 유구를 복원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파악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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