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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댐 수몰지구내 문화유적 4차 발굴조사 및 지석묘 이전복원

2001-06-05 14:58:00
조회 2062
진안 망덕 청동기시대 유적 I. 조사경위 용담댐 수몰지구내 망덕유적은 용담댐 3차 조사시 골재 채취장에서 신 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와 청동기시대의 지석묘가 지표조사에서 확 인된 곳이다. 조사 초기단계시 신석기 시대의 빗살문토기는 분포범위 와 유물 개체수가 극히 적으며, 토사채취로 인해 유물이나 유구가 완전 히 파괴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석묘는 망덕마을 취락지와 망덕마을을 통과하는 지방도 795번 도로 변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의 지석묘는 철 거된 집 폐기물로 피복되어 있었으나 철거되기 이전엔 집 뒷뜰과 장독 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발굴조사는 2개소로 나누어 실시하였으며 총 23기의 지석묘 및 석관묘가 확인되었다. II. 조사내용 망덕유적은 망덕 동북쪽의 진안천에서 내려온 금강본류와 진안 부귀산 에서 내려오는 금강지류인 정자천이 합류되는 곳으로 넓은 충적지가 발달된 것이다. 가지역의 지석묘는 정자천의 동안으로 금강본류를 사 이에 두고 있으며 지석묘의 장축방향이 현재의 하천방향과는 다르다. 지석묘와 석관묘가 자리하고 있는 지대는 자갈과 모래가 있는 하상층 위에 밤갈색의 사질층이 형성되어 있으며 이 사질층 상부에 유적이 위 치하고 있으며 구릉과 하천사이 중 대체로 높은 곳에 해당한다. 나지역 은 마을 안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잔자갈이 많이 섞인 하상층 위에 10㎝ 내외의 얇은 구지표층(흑갈색점사질토)에 지석묘가 축조되어 있다. 망덕유적은 망덕마을 입구 도로변 쪽을 가지구, 망덕마을 안쪽을 나지 구로 구분하였다. 가지구에서는 18기의 지석묘 및 석관묘가, 나지구에 서는 5기의 지석묘가 조사되었다. 지석묘가 자리하고 있는 곳은 원래 집 뒤뜰로 이용되었던 탓으로 인해 지석묘의 적석 및 묘역석, 그리고 상석의 파손이 심하게 이루어져 있었다. 1. 가지역 가지역에서는 총 18기의 지석묘와 석관묘가 조사되었다. 지석묘는 상 석이 존재하는 것이 7기, 상석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 1기, 상 석은 없으나 묘역이나 적석이 확인되는 것은 4기, 묘역이 있는 석관묘 가 4기, 묘역석이나 적석이 없는 석관묘나 석곽묘가 각각 1기씩 있다. 지석묘나 석관묘의 장축방향으로 분류를 하면 1호∼4호가 한 그룹을 이루며, 5호∼7호, 8호∼14호, 15호∼18호가 각각 그룹을 형성하고 있 다. 장축이 1호∼14호는 동서방향이며 그 나머지는 동서 축에 벗어난 등고선방향과 일치하고 있다. 1그룹은 석관묘 2기(2, 3호)와 상석이 있는 지석묘가 2기(1, 4호) 있으 며 1호와 4호는 단독장이다. 1호는 반파된 상석이 ½정도 남아 있는 지 석묘로 상석 상면에는 다수의 성혈이 확인되었다. 상석은 동서 각각 1 개의 지석으로 유지되었으며 지석 안쪽으로 천석을 사용한 석곽묘가 자리하였다. 상석과 주변의 훼손이 심하여 묘역의 확인이 어려웠다. 2, 3호의 석관묘는 방형의 묘역을 형성하고 있으며 2호의 묘역 동변과 3호 의 묘역 서변이 연접되어 있으며 2호와 3호의 묘역석을 덮은 판석형의 할석으로 보아 동시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또 내부 구조나 바닥 에 토기를 깔았던 속성, 동서토층상관 등으로 보아 2기의 석관묘는 같 은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석관묘는 판석형의 대형석재를 이 용하여 벽을 축조한 것으로 먼저 석관묘 조성지역을 넓고 완만한 경사 를 이루게 판후 석관이 들어서는 곳만 직립을 굴광한 후 개석을 덮고 그 위에 흙을 덮은 후 방형의 묘역을 두른 것으로 조사되었다. 3호의 묘 역 동변 line을 훼손하고 들어선 4호 지석묘와는 선후관계가 확인된다. 즉 3호의 묘역 동변 line을 파괴하여 4호의 원형묘역이 들어서 있어 2,3 호의 석관묘가 앞선 것으로 보인다. 4호의 경우 상석이 있음에도 불구 하고 매장주체부가 확인되지 않았는데 이는, 지석 안쪽에 천석을 채워 그 위에 시신을 안치하고 상석을 올려놓은 매장수법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지석묘는 6호, 8호로 상석이 다소 큰 지석에 얹혀 있는 경우 이다. 2그룹은 매장주체부가 없는 6호와 6호 남쪽 일부분에 원호상의 묘역이 있는 소형 석관묘 7호와 6호 동쪽에 인접한 묘역석이 없는 석곽묘 5호 로 이루어져 있다. 5호는 석곽내부에 천석이 채워져 있었으며 서쪽부분 이 6호의 묘역선을 파괴한 것으로 6호와 상호 연관된 것으로 보이며 6 호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7호 석관묘는 대형의 할석 1매로 볼 수 있는 개석이 확인되었다. 잔존하는 묘역이 원호상을 보이는 점 과 개석 밑의 자갈이 6호의 적석 밑에 있는 점등으로 보아 먼저 석관묘 가 축조된 후 6호가 들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석관묘는 그 규모가 매우 작음(길이51㎝)에도 불구하고 2호와 같은 형식인 두광족협의 방식으 로 석관이 축조되었고, 석검의 ½정도인 손잡이부분이 부장되어 있었 다. 3그룹은 다시 4개의 단위로 분류된다. ①단독장이며 상석이 있고 매장 주체부가 확인되지 않은 8호와 ②상석이 있고 묘역이 부가된 11, 12호 와 11호 동쪽에 연접하여 축조된 석관묘(9호)와 석곽묘(10호), ③단독 장이며 상석이 있고 묘역이 12호와 인접한 13호, ④지하식의 석곽묘가 11호∼13호 동서 축에서 북쪽으로 치우쳐 있고 묘역의 구조가 1단의 천 석 포장된 것으로 나뉘어진다. 먼저 ②의 경우, 12호의 방형계의 묘역이 11호의 원형묘역에 부가되고 있으며 상석간의 거리가 45㎝정도 안팎을 두고 있다. 이러한 연관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장주체부의 구조는 상이하다. 11호의 매장주체부 는 정확하게 적석부와 구분은 되지만 석벽체가 확인되지 않았고 12호 는 천석을 사용한 석곽묘가 확인되었다. 11호는 적석과 구분되게 천석 을 이용하여 장방형으로 1단을 두른 후 그 위에 네모난 석재를 사용하 여 개석을 하고 상석을 올려놓은 형태를 하고 있다. 즉 1단의 장방형 구 조에 시신을 안치한 후 개석과 상석을 올려놓은 것이다. 9호는 대형석 재 4매를 이용하여 축조한 석관묘로 그 내부는 소형천석으로 채워져 있 었고 바닥시설도 천석을 깔았다. 묘역은 파괴가 심하여 형태는 알 순 없지만 주변의 석재분포로 보아 묘역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0호 는 말각장방형의 묘역이 1단의 천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가운데에 천 석을 이용한 지하식의 석곽이 자리하고 있다. ③은 말각방형계의 묘역 으로 추정되는 상석이 있는 것으로 12호의 묘역과 거리가 25㎝정도로 가깝게 형성되어 있었으며 13호 적석층의 잔잡석이 12호쪽으로 일부 복개되어 있었다. 그리고 묘역선상에 대형의 석재를 배치한 점도 특이 하다. ④는 14호로, 석곽묘를 단독장으로 하고 있으며 매장주체부의 동 서 축이 북으로 쏠려있다. 방형계로 추정되는 묘역의 동쪽부분에서 13 호의 묘역석 상부를 어느정도 덮은 후 그 위에 13호와 대칭하게 묘역 을 이루고 있다. 4그룹은 장축방향이 등고선 방향을 하고 있으며 3그룹의 장축방향과 는 다르다. 15호∼18호 모두 단독으로 이루어져 있다. 15호는 4매의 대 형 지석이 상석을 받치고 있으며 지석 안쪽에는 석관형의 매장주체부 를 가지고 있다. 바닥과 벽석이 모두 납작하고 넓은 천석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는데 동서단벽의 벽석이 없으며 벽석 위에 별도의 개석을 올 려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조사 당시에 석관 내부에 천석이 채워져 있어 단정짓기는 어렵다. 16호는 방형계로 추정되는 묘역이 있는 석관묘로 얇고 납작한 천석과 할석을 이용하여 벽석을 쌓고 그 위에 길고 납작 한 천석을 개석으로 한 석관이다. 17호는 원형의 묘역을 가진 지하식 의 석곽묘로 대형석재를 이용하여 개석을 덮은 것으로 상석은 확인되 지 않았다. 18호는 장방형태로 추정되는 묘역을 가지고 있으나 매장주 체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2. 나지역 나지역의 지형은 지석묘가 자리하는 남에서 점차 북서쪽으로 하상층 이 낮아지며 지석묘군의 서쪽으로는 1m 이상의 퇴적층이 형성되어 지 금의 지면을 이루고 있다. 일단은 지석묘가 자리하고 있는 곳은 현재 의 집터 면과 거의 같은 레벨상에 있으며 하상층 위에 10여㎝의 구지표 층인 흑갈색점사질층이 형성되어 있으며 지석묘는 이 층에 축조한 지 상식의 구조를 하고 있다. 나지역은 1호∼3호의 1그룹과 4, 5호의 2그룹으로 형성되어 있다. 두 그룹의 장축방향은 서로 대칭하며 남북방향에 가깝다. 1호는 파괴된 상 석편이 일부 보이고 적석부나 매장주체부의 파괴가 심하여 형태를 분 간하기가 힘들다. 다만 묘역의 북변 1변만 남아 있었으며 2호가 이 묘 역선상 밖에 벽석을 연접하여 석곽을 축조하고 있다. 2호는 상석이 반 파된 체 이동되었으며 매장주체부는 할석형의 얇은 판석을 바닥과 벽 의 기단으로 마련한 후 천석을 이용하여 1∼2단 정도의 벽석을 축조한 석곽묘이다. 적석부는 천석을 사용하여 1∼2단 정도 깔았다. 3호는 판 석형 석재를 이용하여 소형의 무덤을 만든 것으로 2호의 묘역 동변에 연접하여 벽석을 세웠다. 3호 내부는 무문토기편 다수와 자기편 소수점 을 포함한 흑갈색의 교란토가 채워져 있었다. 2그룹은 4호와 5호가 일직선상을 이루고 있지만 묘역의 형태를 정확하 게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가 심했다. 다만 4호의 묘역 남변만이 일직선상으로 확인되어 방형계의 묘역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4호 와 5호는 상석이 잔존하고 있었으나 깨지거나 이동된 양상을 하고 있었 으며 매장 주체부 내에는 잡석이 채워져 있었다. 4호와 5호의 적석부 나 매장주체부에 사용된 석재는 구분이 되는데 4호는 할석형의 산돌이 많고 5호는 매장주체부의 바닥석 이외에는 천석을 사용하였다. 4호의 매장주체부는 석곽으로 작은 할석을 이용하여 벽을 축조하였으 며 단벽은 냇돌을 1단 세운 후 상부는 할석으로 적석하여 묘역선상까 지 높이 차를 두고 적석하였다. 5호의 매장주체부는 잔자갈 하상층 위 에 판석형의 할석을 3열로 깐 후 양측렬에 벽석을 세운 것으로 나지역 의 매장주체부는 모두 지상식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3. 출토유물 망덕유적에서 발견 조사된 유물은 석기류와 토기류로 매장주체부내와 적석부, 그리고 주변 채집유물이 있다. 매장주체부의 부장유물은 석기 가 주류이며 토기는 적석부와 주변, 그리고 석관의 바닥시설로 이용된 것이 있다. 석기는 석검, 석촉, 석착 등이 있으며 적석부에서 깨어진 석검편도 확인되었 다. 채집유물 중에는 신석기시대의 갈판, 미확인 석기가 있다. 토기는 적석내와 석관묘의 개석주변, 석관묘의 바닥시설, 지석묘 묘역 주변에 무문토기편이 일괄 또는 편 등으로 분포하고 있었으며 가지역-4그룹 주변과 11호와 13호의 적석부 하층에서 빗살문토기편이 몇 점 수습되 었다. III. 조사성과 용담댐 수몰지역내에서 확인 조사된 유적 중 지석묘가 가장 많이 발굴 조사 되었다. 인근지역의 여의곡 유적은 지석묘와 같은 무덤유적과 생 활 및 생산관련 유적 등 금강 상류지역의 독자적인 청동기 문화를 가 진 집단이 존재하고 있음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로 제시되고 있다. 이 와 더불어 망덕 유적도 당시 이 지역의 청동기인들이 축조한 지석묘와 석관묘 유적으로 단위별로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지석묘나 석관묘는 기본적으로 원형, 방형계의 묘역을 갖추면서 그 중 앙에 매장주체부를 두고 있으며 묘역이 열을 지어 서로 연접하거나 부 가되는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매장주체부와 묘역부 사이에 적석을 하 였다. 특히 적석내와 개석상부에서 확인되고 있는 토기편, 석기편 등 은 장송의례와 관련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지석묘와 석관 묘가 동일 공간내에 배치되고 있는 점과 석관묘도 지석묘의 묘역과 비 슷하게 방형의 묘역을 갖추고 있는 점이 특색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매장주체부의 성격이 다양화된 점도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지석묘의 매 장주체부로 널리 사용되었던 천석의 석곽묘 뿐만아니라 석관묘, 위석 형, 無매장주체부 등 다양화되게 매장구조를 수용하고 있다. 방형계나 원형계의 묘역을 갖추고 열을 짓는 지석묘 유적으로는 여의 곡유적·모곡유적(전북대학교박물관)과 안천면 안자동·수좌동(국립전주 박물관)유적에서도 확인되며 방형의 묘역을 갖춘 석관묘는 여의곡유적 의 이형무덤과 매우 유사하다. 지석묘와 석관묘에서 출토되는 토기는 청동기 시대 중기단계의 송국리 형 토기문화가 확산되는 시기로 볼 수 있는데 시기를 잠정적으로 기원 전 4-5세기 전후 한 시기로 추정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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