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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시 교산동 건물지 제2차 발굴조사

2001-06-05 10:09:00
조회 2075
1. 조사목적 및 경위 하남시에서는 1999년 세종대학교박물관이 실시한 ‘하남시의 역사와 문 화유적’ 정밀지 표조사에서 확인된 교산동 소재 대형건물지에 대한 보존 및 관리대책 을 수립하고자, 1999년 7월 9일 우리 연구원에 발굴조사를 의뢰하였 다. 이에 동년 8월 23일부터 2000년 2월 29일까지 교산동 78-3번지 일 대 약 2,900여평에 대하여 시굴 및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1차 조사 결 과 지표상에 드러난 건물지외에 각 기단 내부에서 최소 3∼4회 이상의 중복된 건물지가 확인됨에 따라 단기간에 전체 건물지를 조사하기에 불가능한 상황임을 인식하고, 조사지역을 3지역으로 구분하여 연차 조 사계획을 수립하였다. 금번 조사는 이러한 연차 발굴조사계획에 따른 것으로 2000년 5월 31일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동년 7월 3일 중앙부 평탄지와 서쪽건물지 그리고 외곽지역에 대한 트렌치조사를 통하여 유 적의 범위를 확인하고, 본격적인 정밀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2. 조사단구성 조사단장 : 장 경 호(기전문화재연구원장) 지도위원 : 한 병 삼(문화재청 문화재위원, 6분과위원장) 지도위원 : 김 정 기(한국문화재보호재단 문화재조사연구단장) 지도위원 : 김 병 모(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 지도위원 : 임 효 재(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지도위원 : 조 유 전(국립문화재연구소장) 지도위원 : 최 몽 룡(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지도위원 : 최 병 현(숭실대학교 사학과 교수) 지도위원 : 최 정 필(세종대학교 박물관장) 책임조사원 : 김 무 중(기전문화재연구원 조사2팀장) 조 사 원 : 고 재 용(기전문화재연구원 연구원) 조 사 원 : 정 해 득(기전문화재연구원 연구원) 조사보조원 : 진 수 정(기전문화재연구원 연구보조원) 조사보조원 : 조 성 호(기전문화재연구원 연구보조원) 외 3. 조사방법 및 내용 금번조사는 연차발굴 조사계획에 따라 서쪽건물지와 그 외곽 및 중앙 부 평탄지를 중심 으로 진행하였다. 우선 시굴조사가 완료된 상태의 트랜치 및 Grid에 대 한 공중촬영을 실시한 후 각 그리드 사이에 50∼100㎝ 폭의 둑을 제외 한 나머지 부분을 확장하여 전면조사를 실시하였다. 서쪽 및 남쪽의 담 장지에 대하여는 한변 10m의 Grid를 설치하여 전면 굴토작업을 실시하 였다. 상부의 표토 및 교란층을 제거하고 조사를 진행한 결과, 중앙부 평탄지 에서는 남동쪽에서 성격미상의 적석유구가 확인되었고 서쪽건물지에 인접한 지점에서 석축연못 및 배수로가 확인되었다. 당초 기와가마일 것으로 추정하였던 소성유구는 평면 역사다리꼴로서 소성실이 연소실보다 낮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기와요지 로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천장부분은 결실되어 거 의 바닥만 남아있는데 연못지 상부에 매립된 층위에서 가마 벽체편 및 소토 등이 소토층이 확인됨에 따라 정지작업시 삭평되어 연못지에 매 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 연못지의 북쪽지역에서 선조문기와, 토기대각 등이 출토되는 소할석으로 축조된 건물지가 확인되었는데 적 심의 상태가 거의 바닥만 남아있는 상황으로 볼 때 마당의 높이는 당초 보다 상당히 낮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서쪽건물지는 초석열의 방향 및 주칸거리에 따라 7∼9동의 건물지가 중복됨이 확인되었다. 기단을 부분 절개한 결과 내부에서 다른 건물지 의 부재들로 추정되는 큰 할석들이 확인되어 상층에서 확인된 건물지 보다 선행하는 건물지가 있음이 명백해졌다. 서쪽건물지 외곽의 단애면에서는 서쪽건물지 외곽에서부터 남쪽건물 지 모서리 부분까지 연장되는 점토단일층의 성토면 위에 축조한 토석 혼축의 담장지가 확인되었다. 남쪽 담장의 경우도 남동모서리에서 확 인되었던 외곽의 석축이 서쪽에서도 확인되었다. 1. 유 구 금번 조사결과 성격미상의 적석유구, 석축연못 및 배수로, 소성유구, 선대건물지 등 이 확인되었다. 조사지역 위치에 따라 중앙부 평탄지, 서쪽건물지, 서 쪽담장지, 남쪽담 장지 및 주변의 순으로 조사상황을 기술하도록 하겠다. 가. 중앙부 평탄지 건물지의 중앙부분에 해당한다. 적석유구와 석축연못 및 배수로, 소성 유구가 확인되었 다. 또한 연못지 북쪽에서 작은 천석으로 이루어진 적심석이 일부 노출 되었는데 내부에서 선조문기와편과 연질토기편이 다량 수습되어 가장 빠른 시기의 건물지일 것으로 추정된다. 각 유구별 조사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적석유구 남측건물지와 인접해 있고 전체건물지의 배치상 동·서건물지의 중앙 에 위치하고 있다. 규모는 동서 10m, 남북 12m이며, 유구를 구성하는 석재는 30∼40cm의 할석들이 대부분이나 초석으로 추정되는 대형석재도 일부 확인된다. 유구의 상부에는 배수로로 추정되는 석렬이 남동쪽에서 서북쪽으로 가 로지르며 연못지 쪽으로 이어지는 양상이나 확실하게 연못지와의 연 결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적석유구를 이루고 있는 대형석재의 거리 가 일정하고 일부에서는 기단으로 추정되는 석렬도 확인되었으나 정확 한 성격은 알 수 없다. (2) 석축 연못지 서쪽건물지와 인접하여 노출되었는데, 현재 북쪽과 동쪽의 일부 석축 만 노출시켰다. 상부 윤곽을 통해 볼 때 한변 10m 정도의 방형으로 추 정된다. 저수시설 상부에 1m 가량 매 립된 소토층이 확인되는데 지면을 평탄하게 하기 위해 인접한 소성유 구의 천정부와 건물지를 를 삭평하여 매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못은 생토면을 굴토하고 내부에 석축을 쌓은 구조로 되어있지만 현재 상부 는 대부분 매립과정에서 파괴되어 내부로 밀려내렸고 3∼4단의 하부석 축만이 잔존하는 정도이다. 저수시설 안쪽으로는 지름 1.5m 정도의 성 토면이 확인되는데 연못내에 조성되는 假山과 같은 것으로 추정된다. 수습된 유물은 대부분 백자편들과 옹기편들이며 제기류도 일부 출토되 었다. N2W1의 저수시설 내부를 조사하던 중 석축의 무너진 틈에서 원 형철판이 수습되었는데, 석축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유입된 유물인지 는 확실치 않다. 또한 19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는 청화백자 및 제기류들 과 일본인의 이름이 굽바닥에 명기된 일제사기들, 소총탄환 및 맥주병 등의 교란유물만이 내부에서 수습됨에 따라 저수시설의 사용시기가 길 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폐기시점 역시 근세로 추정된다. (3) 소성유구 시굴조사에서 확인된 소성유구는 조사결과 거의 파괴되고 바닥부분 만 남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경사도는 연소실 쪽이 높고 소성실 이 낮은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소성실 을 둘러싼 외벽 및 바닥은 매우 단단하게 소결된 벽체로 되어 있다.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은 와편이 대부분인데, 대부분이 잔편이기 때문 에 소성유구가 파괴되면서 유입된 유물일 가능성이 있다. 또한 소성유 구와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던 소성유구 남쪽의 대옹은 단면조사 결과 소성유구와 관계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밖에 저수시설 북편에서 기단으로 추정되는 석재들과 함께 작은 할 석군이 적심석처럼 모여있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所日’銘 선조문와편 과 파상문 토기편이 상당수 출토됨에 따라 나말∼여초의 건물지로 추 정된다. 나. 서쪽건물지 1차 조사에서 중복되어 노출된 건물지는 초석열의 배치와 기단열의 방 향을 검토한 결과 건물지는 5차에 걸쳐 중복된 최소 7동에서 최대 9동 의 건물지임이 확인되었다. N2W3와 N3W3 트랜치 서벽에 인접한 초석열이 가장 앞서는 시기의 건물지로 판 단된다. 시굴조사에서 확인된 상층의 건물지들은 별개의 건물로 보는 가에 따라 건물지 개체수는 5동에서 7동 사이로 유동적일 것으로 판단 된다. 또한 건물지의 내부에 대한 탐색트랜치조사 결과 하층에서 할석 군이 나타남에 따라 전체 건물의 수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조사된 건물지는 2m, 3m, 4m 내외의 주칸거리를 가지고 있으며, 2m 내외의 주 칸거리를 가지는 건물 지가 2동, 3m 내외의 주칸거리를 가지는 건물지가 4동, 4m의 주칸거리 를 가지는 건물지가 3동일 것으로 추정된다. 서쪽건물지 최상층에 나타 난 초석열은 N2W2 및 N2W3구역에서 초석 및 적심석이 확인되지 않음에 따라 각각 5칸과 9칸의 독립된 건물 지로 판단된다. 서 쪽건물지 최남단에서 확인된 초석열은 남쪽건물지와 연결되지 않고 서 쪽건물지의 일부로 추정된다. 다. 서쪽담장지 서쪽건물지의 외곽 경사면으로서 바깥쪽으로 급경사를 이루고 있으 며, 경사면 아래는 현재 경작지로 사용되고 있다. 전체적인 지형이 남 쪽보다 북쪽이 낮고 서쪽 건물지와 담장지 사이가 낮은 지면을 가짐에 따라 건물지와 담장지 사이는 50cm에서 100cm가량 와편이 포함된 부 식토로 퇴적된 상태이다. 담장지는 정상부의 높이가 남쪽담장에 비해 낮은 점으로 미루어 원래 성토면이 일부 삭평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정상부 일부만 성토하 고 대부분 자연지형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축조당시의 지면은 황 갈색 점토층으로 판단되며 자연 지반층 위에 황갈색 점토로 성토한 뒤, 그 바깥면을 일정한 규칙없이 할석과 섞어서 보강한 토석혼축의 축 조방식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할석층 최상부에서 성토 이후에 축조되 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담장열이 확인되며 N2W4에서는 현재 5열의 석 렬이 확인되었으나 담장열의 연장으로 추정되는 2개열을 제외한 나머 지 3열은 N2W4에서만 확인되고 있어 나머지 석렬의 정확한 성격은 확 인되지 않았다. 최상부 담장열은 서쪽건물지를 따라 남향하다가 남쪽 담장과 만나는 모서리 지점까지 연장됨이 확인되었고, 담장지 아래에 는 담장의 지붕재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와편이 나란히 노출되었 다. 서쪽과 남쪽의 모서리부분은 토지소유주에 의해 이미 훼손된 상태 이며 하부에서 남쪽담장 앞 건물지의 기와편이 단면상에서 확인되고 있어 서쪽담장과 연결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서쪽담장지에서는 나말 ∼여초기의 파상문토기편과 백자편 등이 함께 출토되고 있어 담장지 의 사용시기와 관련될 것으로 추정된다. 라. 남쪽담장지 금번 조사에서는 서쪽건물지의 연장선상에 있는 2개 트랜치를 조사하 였다. 1차 시굴 조사시 절개조사한 중앙부보다 서쪽의 지형이 낮은 점으로 미루어 상 부가 이미 파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결과 정상부의 석렬이 경 사와 함께 낮아지고 있어 원래 축조된 높이인 것으로 판단된다. 단면 조사결과 황갈색점토층과 적갈색 점토층 및 암석이 포함된 사질층을 교대로 성토하여 축조하였다. 상부는 담장열로 추정되는 석렬이 지형을 따라 서쪽으로 점차 낮아지 는 양상으로 연결되고 토루의 외면은 토사의 흘러내림을 방지하기 위 한 석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곳에 따라 1∼3단의 석축이 확인되지만 무너져 내린 곳도 있다. 경사진 성토면과 석축은 남서모서리부분에 이 르러서 서쪽담장지와 비슷한 높이를 가지는 양상이지만 연결부분이 파 괴되어 연결여부는 현재 확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북편으로 측면 1칸, 정면 3칸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는데 동쪽이 높고 서 쪽이 낮은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축조되었다. 대부분 할석재의 다듬지 않은 초 석을 사용하였으 나 중앙부의 초석 중 1개는 상부가 원형으로 가공되어 있어 원래 위치 가 아닌 외부에서 유입된 초석으로 판단된다. 또한 서쪽칸의 경우 바닥 면에 할석이 깔려있는데 동서 방향의 경사도 차이에 따라 이를 조정하 기 위함인지 건물지 용도에 따른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조사과정에 서 파상문토기편과 함께 도기편·자기편이 다량 출토되었다. 2. 유 물 이번 조사에서 출토된 유물은 시굴조사 출토유물과 같은 양상을 보이 고 있다. 기와류 의 경우 어골문, 사선문기와 외에 선조문기와류가 상당수 출토되었고, 귀면문·연화문 등의 수막새류, 시굴조사에서 수습되었던 ‘○達’·‘○達伯 士’銘외에 수 점의 銘文瓦가 출토되었다. 자기에서는 백자류가 역시 다 수를 이루지만 청자편과 연질도기편도 상당량 출토되었다. 또한 저수 시설에서는 청화백자 및 제기류를 비롯하여 시기와 용도를 알 수 없는 금동 제 고리가 부착된 원형철판을 비롯하여 철촉, 철도자 등 철제유물도 소 량 출토되었다. 가. 기와류 기와류의 출토양상은 시굴조사와 비슷한 양상이며, 막새기와의 경우 라말∼여초의 것으로 판단되는 귀면문이 2점, 연화문이 3점 출토되었 다. 명문와는 ‘所日’, ‘謀’, ‘○達伯士’, ‘○達’, ‘衆舍’ 등이 출토되었다. 이 중 ‘○達’, ‘○達伯士’는 시굴조사에서도 출토된 바 있는 명문와로서 건물지의 성격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所日’銘의 경우 선조문 와편과 연질도기편이 다량 출토되는 평탄지 북서지점의 건물지 라는 점이 주목된다. 한편 시굴조사시 동쪽건물지에서 출토되었던 ‘廣州客舍’명 기와는 금번 조사에서 확인되 지 않았다. 나. 자기류 백자가 다수를 이루는데 제기 저부편이 상당수 출토되었으며 저수시 설 내부에서는 청화백자와 제기류가 일부 출토되었다. 고려백자와 해 무리굽청자가 일부 포함된 청자류도 소량 출토되었다. 다. 토기류 나말∼여초의 것으로 보이는 주름무늬병편, 소형기대편, 파상문토기 편과 호편이 출토 되었고, 명문이 각자된 경질토기편이 출토되었다. 라. 기 타 석재로 만들어진 뚜껑이 출토되었고 저수시설에서 손잡이로 추정되 는 부분이 금도금된 원형철판이 수습되었으며 그 밖에 철촉과 철도자, 철정, 편자 등이 출토되었다. 이상의 하남 교산동 서쪽건물지와 그 주변부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를 다음과 같이 요약 할 수 있다. 첫째, 교산동 건물지 중앙평탄지에서 확인된 연못지는 평면 방형으로 추정되며, 초축 시기는 좀더 조사를 진행하여야 할 것이나 폐기시기는 19세기후반의 청화백자류와 제기 및 일본사기들이 내부에서 수습되는 점으로 미루 어 조선후기에서 근대까지로 판단된다. 둘째, 서쪽건물지의 경우 현재 노출된 초석열의 배치와 방향에 따라 9 동의 건물지가 중복된 양상임이 확인되었고, 건물지 내부절개조사에 서 건물지의 일부로 추정되는 할석군이 확인됨에 따라 상층건물지보 다 선행하는 건물지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셋째, 서쪽 및 남쪽의 담장지는 방향 및 높이로 판단할 때 서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으나 현재 연결부분이 훼손되어 그 양상을 알 수 없다. 서쪽담장 성토면의 경우 황갈색점토의 단일층인 반면 남쪽 담장의 경우 점토층과 사질층이 번갈아가며 성토된 점으로 미루어 맨 아래층을 제외한 상층의 성토면은 초축이후에 시기를 달리하며 보축 된 것으로 판단된다 넷째, 1차 조사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지금까지 조사결과 유적의 상한연 대는 주름무늬 병, 선조문기와, 파상문 대옹편, 연화문 및 귀면문 수막새 등으로 보아 9세기를 넘지 못할 것으로 추정되며, 하한은 청화백자, 제기 등으로 보 아 19세기 정도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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