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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양주 회암사지 3차

2001-05-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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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楊州 檜巖寺址 -3次 發掘調査 -> Ⅰ. 조사 개요 사적 128호로 지정되어 있는 양주 회암사지(사진 1)는 문헌 기록에 의 하면, 이미 고려 중기 이전에 창건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말∼ 조선 초에는 왕실의 지원을 받아 중창을 거듭하면서 사역의 규모가 크 게 확대되었다. 지금까지 회암사지에 대한 조사와 연구는 문헌 조사와 더불어 사역의 일부 지역에 대한 간단한 시굴 및 실측조사만이 이루어 졌으며, 그 결과를 토대로 주로 전각배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되었다. 그러나 사역 전체에 대한 정밀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구 체적인 검증작업에 미흡한 점이 많았다. 이러한 학계의 지속적인 관심 속에서 경기도와 양주군에서는 회암사지의 정비·복원작업을 체계적으 로 시행하여 유적을 영구히 보존·보호하고 회암사지를 유적공원으로 조성함으로써 역사교육의 산 현장으로 활용하고자 회암사지에 대한 중 장기 발굴조사계획을 계획하게 되었다. 이에 경기도박물관에서는 지난 1997년도에 회암사지 사역에 대한 정 밀 시굴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시굴조사 내용을 토대로 1998년도에 8단 지를 중심으로 1차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1999년도에는 유적 의 중요성에 비추어 기전문화재연구원과 공동조사단을 구성하여 6, 7 단지를 중심으로 2차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1, 2차 발굴조사를 통하 여 확인된 건물지는 19개소에 달하며, 이와 더불어 배수시설 및 화계시 설, 내부담장지, 정료대, 석조시설 등이 조사되었다. 조사된 건물지는 牧隱의「天寶山檜岩寺修造記」에 기록된 전각배치와 대부분 일치하 는 것으로 전각배치를 둘러싼 그 동안의 논의를 검증하는 자료가 마련 되었는 측면에서 큰 의의가 있다. 또한 문헌에 기록된 중창에 관한 내용들을 발굴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점도 큰 의미 가 있다. 이번 조사는 양주 회암사지에 대한 3차 발굴조사로 5단지 서쪽지역을 대상으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조사 개요는 다음과 같다. 1) 조사기간 : 2000. 3. 8 ∼ 2001. 4. 26. 2) 조사지역 : 경기도 양주군 회천읍 회암리 산 14-1번지 일대 3) 조사기관 : 경기도박물관·기전문화재연구원 4) 조사단 구성 - 조사단장 : 장경호(경기문화재단 부설 기전문화재연 구원장) 조사부단장 : 이인숙(경기도박물관장) 자문위원 : 황수영(전 동국대학교 총장) 최영희(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명예교수)      한병삼(문화재관리국 문화재위원) 김정기(한국문화재보호재단 발굴조사사업 단장)     정재훈(한국전통문화학교 석좌교수) 정영호(한국교원대학교 박물관장) 홍윤식(동국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김동현(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조유전(국립문화재연구소장) 김병모(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 최병현(숭실대학교 사학과 교수) 책임조사원 : 김용철(경기도박물관 학예연구실장) 김무중(경기문화재단 부설 기전문화재 연구원 조사팀장) 조 사 원 : 송만영(경기도박물관 학예연구사) 정해득(경기문화재단 부설 기전문화재연 구원 연구원) 조사보조원 : 이만기(경기도박물관 연구원) 박경신(숭실대학교 사학과 대학원 수 료) 김국환(컴퓨터 그래픽 담당) 송 호(실측 담당) 한편, 2차 발굴조사의 지도위원회의는 6단지의 건물지가 노출되지 않 은 상황에서 실시되었기 때문에 이번 회의 자료에는 6단지에서 조사된 건물지에 대한 내용을 함께 실어놓았다. Ⅱ. 3차 발굴조사 지역 및 조사 과정 3차 발굴조사 지역인 5단지 서쪽 지역의 전체 면적은 1,200㎡(363평) 가량으로(도면 1), 방안상 N2W3, N2W2, N2W1 지역이 조사 대상이 된 다. 이 지역에 대한 97년도 시굴조사에서는 4개소에 대한 시굴갱 조사 를 실시하여 5단지 중앙 축선상 전면부의 門址를 비롯하여 門址의 서쪽 으로 연결된 건물지 1개소와 5단지 서쪽 지역에서 남북으로 길게 연결 된 건물지 2개소를 확인한 바 있다. 조사 지역인 5단지 서쪽 지역은 오 래 전부터 밭으로 경작되고 있었지만, 지표상에 초석들이 노출되어 있 었으며, 5단지의 석축단 일부도 육안으로 쉽게 식별이 가능하였다(사 진 2). 이번 발굴조사는 5단지 내 건물지의 노출과 함께 확인된 건물지의 전반 적인 전각 배치 양상을 파악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보광전지 와 더불어 5단지의 노출된 건물지에 대한 내부조사는 4차 발굴조사에 정밀하게 실시할 계획이다. 조사는 97년도 시굴조사시 사용하였던 20m 방격(Grid)을 그대로 적용하여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97년도 시굴조사시 설치했던 시굴갱 외에 추가적으로 시굴갱 조사를 실시하 여 정확한 토층을 파악한 후, 제토 단위 및 방법을 결정하였다. 시굴갱 의 확장 조사는 건물지의 윤곽이 확인되면 전면 제토하는 방법으로 실 시되었으나, 가급적 상부 유구 및 상부 유구의 구지표면까지 조사를 실 시하였다. 1, 2차 발굴조사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회암사의 폐사 직 후 폐기된 건물지 잔해 위에 건물을 조영한 흔적이 보이고 있는데, 대 체로 기존의 기단을 그대로 이용하면서 초석 배치를 새로 하거나, 구들 시설을 마련한 것들이 일부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유구들은 회암 사 폐사 직전의 건물지와는 중복되어 있지만, 시기적인 차이는 크지 않 아 대체로 회암사의 폐사 시점에 맞추어 발굴작업을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6단지 내에서 건물지 6개소(지장료지, 향화료지, 서승당지, 천랑 지, 보광전지, 기타 건물지 1개소), 5단지 내에서는 건물지 4개소(서료 지, 동료지, 열중료지, 정문지)를 확인하고 건물지 노출작업을 실시 중 에 있다. 이 외에도 사역의 서쪽을 감싸는 석축단 시설 및 계단지, 정료 대, 배수로, 암거 등이 확인 조사되었다. 6·5단지에서 확인된 층위는 2 차 발굴조사까지 확인된 층위와 대동소이하다. 지역마다 층위의 두께 에 다소 차이는 있지만, 크게 5개층으로 구분된다. 가장 위에 있는 토층 부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Ⅰ층은 지표층으로 현재의 지표면이다. 그 아래의 Ⅱ층은 황색 모 래층으로 산 위에서 흘러내려 유적 상부에 재퇴적된 층이다. 두께는 10 ∼20㎝ 정도이며, 백자편 및 와편 등 유물이 소량 출토된다. Ⅲ층은 흑 갈색 내지 암갈색의 사질점토부식토층으로 두께는 10∼20cm 정도이 다. 현재 노출되고 있는 건물지의 문화층으로 추정되며, 건물지와 관련 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Ⅳ층은 지역마다 다소 차이가 있는데, 근본적으로 건물지의 사용과정에서 퇴적된 층이다. 약 5∼10㎝ 가량의 두께이며, 이 층의 상면에 건물지 폐기시의 와편이나 목탄편들이 분포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Ⅴ층은 건물지의 구지표층이다. 대체로 황색 내 지 황갈색의 마사토를 인위적으로 깔아 구지표면을 형성한 것으로 보 인다. Ⅲ. 관련 문헌 및 전각배치 牧隱의「天寶山檜巖寺修造記」에는 고려말 나옹이 회암사지를 262칸 으로 중창했을 때의 전각배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어 참 고가 된다. 「予案普光殿五間面南, 殿之後說法殿五間, 又其後舍利殿一間, 又其後 正廳三間, 廳之東西方丈二所各三楹, 東方丈之東羅漢殿三間, 西方丈之 西大藏殿三間, 入室寮在東方丈之前面西, 侍者寮在西方丈之前面東, 說 法殿之西曰祖師殿, 又其西曰首座寮, 說法殿之東曰影堂, 又其東曰書記 寮, 皆面南, 影堂之南面西香火寮, 祖師殿之南面東曰知藏寮, 普光殿之 東少南曰 檀林, 東雲集面西, 西雲集面東, 東雲集之東曰東把針面西, 西雲集之西曰西把針面東, 穿廊三間接西僧堂, 直普光殿正門三間, 門之 東廊六間, 接東客之南, 門之西悅衆寮七間, 折而北七間曰東寮, 正門之 東面西五間東客室, 其西面東五間曰西客室, 悅衆寮之南曰觀音殿…..」 목은의 기록을 보면, 건물지의 기술 순서에 있어 정형성이 있는 것으 로 보인다. 먼저 가장 중심 건물지인 보광전지를 기점으로 8단지까지 의 남북 중앙축선상에 위치하고 있는 건물지를 먼저 언급하고 이들 중 앙축선상에 배치된 건물지를 중심으로 8단지에서 7단지, 6단지 순으로 좌, 우의 건물지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좌, 우의 건물지를 설명할 때 도 먼저 동쪽 건물지를 설명하고 난 후에 서쪽 건물지를 설명하는 것 이 윈칙으로 지켜지고 있다. 여기에서는 목은의 회암사 건물지의 설명 순서를 염두에 두면서 1·2차 발굴조사시 확인되었던 부분을 제외한 6단지와 5단지를 중심으로 검토 해 보기로 한다. 먼저 2차 발굴조사시 조사된 6단지 내의 건물지와의 전각배치 양상을 살펴보면 영당지 남쪽에 面西하여서는 향화료지가 위 치하고 있으며, 조사전의 남쪽에 面東하여 지장료지가 위치하고 있다. 즉 이들 건물지들은 보광전을 중심으로 볼 때, 북동쪽에는 향화료지가 그리고 북서쪽에는 지장료지가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보광전 지 좌, 우측의 건물지가 어떤 것인지 문헌상에 명확하지 않아 건물지 비정에 어려움이 있다. 먼저 보광전지의 동쪽으로는 약간 남쪽에 치우 쳐서 전단림이 위치하고 있고 여기에 건물지 4개소가 분포하고 있는 것 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조사 결과, 여기에는 건물지 1개소가 위치하고 있어 조사결과와는 큰 차이를 보여준다. 그리고 보광전지의 서쪽 건물 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통상적으로 보광전 동쪽 건물지에 대한 언 급 다음에는 서쪽 건물지에 대한 언급이 순서이기 때문에 서승당지와 천랑지가 보광전지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서 승당지와 천랑지가 서로 접해있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보광전지의 서 쪽에서 노출된 2개소의 건물지가 서승당지와 천랑지에 해당됨이 분명 하다. 5단지의 전각 배치는 문헌상에는 모두 6개소의 건물지가 있는 것 으로 기록되어 있다. 보광전의 정면에는 正門 3칸이 있고 이를 중심으 로 동쪽에는 廊 6칸이, 그리고 門址의 서쪽으로는 悅衆寮 7칸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설명이 중복된 감이 있지만, 廊 6칸의 북쪽 으로는 5칸의 동객실과 서객실이 서주 마주보면서 배치되어 있으며, 열 중료 북쪽에도 열중료와 직교되게 동료 7칸의 건물지가 배치되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만 조사 결과와 다소 차이가 나는 것은 열중 료의 칸수가 현재 노출된 건물지의 칸수와 차이를 보여주는 정도인데, 고려말 이후의 중수 내지 중창의 가능성을 고려하면, 크게 문제될 것 은 없다. 또한 열중료에서 북쪽으로 꺾여 동료 7칸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조사결과 정면 5칸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이 외에 정면 6칸 건물지 1개소가 동료지의 서쪽에서 확인되었는데 문헌에는 언급이 없 지만 동료의 대칭 건물지인 서료일 가능성이 크다. 서료에 대한 기록 이 없는 것은 2가지 가능성이 있다. 먼저 목은이 기록할 당시 동료만이 있었으나 후대에 중수되어 2개의 건물지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고, 두 번째는 기록할 당시에 서료가 있었으나 기록이 누락되었을 가능성 이 있다. 조 사결과를 놓고 보면 중수의 가능성은 희박하며, 목은이 기록할 당시 기 록이 누락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 각각의 건물지 를 중심으로 소략하게 설명되어 있어 공간배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 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보다 구체적인 검토는 5단지 동쪽에 대한 조사 가 완료된 이후, 6단지와 5단지에서 발견된 건물지 전체를 대상으로 대 조해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Ⅳ. 조사 내용 1. 유구 현재까지 조사 결과, 6단지 내에서는 총 6개소의 건물지가 확인되었으 며, 5단지 내에서는 총 4개소의 건물지가 새롭게 확인되었다(사진 3). 6 단지 지역에 대한 조사는 대부분 조사가 완료되어 내부구조를 중심으 로 설명하고자 한다. 다만 5단지는 현재 작업이 진행중이기 때문에 정 확한 내부구조를 알 수 없어, 지금까지 밝혀진 건물지의 외형적 특징 을 중심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1) 香火寮址(사진 4) 6단지의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건물지로 보광전지를 중심으로 북서 쪽의 지장료지와 대칭을 이루는 곳에 위치하고 이다. 북쪽으로는 영당 지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보광전 동쪽 건물지가 있고, 서쪽은 답석이 깔려 있다. 건물지의 서쪽 기단내 초석열 외곽으로는 점토로 다진 출입 로가 마련되어 있는데 출입로의 북쪽과 남쪽 끝에는 각각 7단지 및 보 광전 동쪽 건물지로 연결되는 작은 계단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건물지 는 정면 3칸(주간거리 3.2m), 측면 1칸(주간거리 동쪽 3.4m)으로 전체 적으로 남북으로 세장한 장방형 건물지이다. 기단은 치석된 장대석을 이용하였으며, 기단의 남북 길이는 9.6m, 동서 길이는 6m이다. 초석은 건물지의 외곽을 향하여 원형주좌를 둔 방형석을 사용하였는데, 크기 는 길이 80cm, 폭 75cm 가량이다. 초석간 고맥이 시설은 잘 다듬은 장 방형 석재를 이용하였다. 내부시설로는 구들 시설이 확인되었다. 남쪽에 설치된 아궁이는 치석 된 방형에 가까운 석재들을 쌓아 만들었는데 구들골로 연결되면서 비 스듬히 경사져 올라간다. 석재 사이에는 점토를 발라 틈을 메워 놓았다 (사진 5). 구들골은 총 6열이 확인되었는데, 건물지 중앙에서 모여 동 쪽 계단지 부근의 굴뚝으로 연결된다. 특징적인 것은 북서쪽 2번째 초 석열에서 구들장이 사라지고 전돌이 깔려 있는 구간이 확인되는데 건 물지 내부로 들어가는 출입구 시설을 위해 구들골이 동쪽으로 휘어지 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래둑의 간격은 40cm, 구들골의 간격은 30cm이 다. 구들장은 북서쪽을 중심으로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편평한 할석 을 이용하였다. 한편 건물지의 중앙 고래둑 위에 원형의 구멍이 뚫린 석재 2매가 일정 한 간격을 두고 놓여져 있는데 후대에 교란된 것으로 보인다. 2) 知藏寮址(사진 6) 6단지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건물지로 북쪽으로는 수좌료지가 있 으며, 남쪽으로는 천랑지가 위치하고 있다. 또한 남서쪽으로는 서승당 지가 위치하고 동쪽은 답석이 깔려 있다. 건물지의 동쪽 기단내 초석 열 외곽으로는 전돌이 깔려 있는데 이 곳의 남쪽과 북쪽 끝 부분에는 각각 작은 계단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건물지는 정면 3칸(주간거리 3.2m), 측면 2칸(주간거리 동쪽 3.7m, 서쪽 1.2m)으로 전체적으로 남북 으로 세장한 장방형 건물지이다. 기단은 치석된 장대석을 이용하였으 며, 기단의 남북 길이는 13m, 동서 길이는 7.3m이다. 초석은 건물지의 외곽을 향하여 원형주좌를 둔 방형석을 사용하였는데, 크기는 길이 80cm, 폭 75cm 가량이다. 초석간 고맥이 시설은 기와를 쌓아 만들었 다.내부시설로는 구들 시설이 확인되었다. 남쪽에 설치된 아궁이는 치 석된 방형에 가까운 석재들을 쌓아 만들었는데 구들골로 갈수록 비스 듬히 경사져 올라가는 형태를 하고 있으며, 석재 사이에는 점토를 발 라 틈을 메워 놓았다(사진 7). 구들골은 총 5열이 확인되었는데, 건물 지 북쪽 중앙에서 모여 동쪽 계단지 부근의 굴뚝으로 연결된다. 고래둑 의 간격은 50cm, 구들골의 간격은 30cm이다. 구들장은 북동쪽에 약간 남아 있는데 편평한 할석을 이용하였다. 3) 普光殿址(사진 8) 6단지의 가장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건물지로 회암사지에서 가장 중심 이 되는 건물지이다. 북쪽에는 설법전지가 위치하고, 서쪽에는 천랑지 가 위치하며, 동쪽에도 대형의 방형 건물지가 위치하고 있는데 사방으 로 답석이 깔려 있다. 특징적인 것은 동쪽 및 서쪽 건물지 사이의 답석 중앙에 징검다리와 같은 장대석을 놓아 건너가도록 배려하고 있는 것 이다.발굴전 보광전지의 외곽은 팬스를 둘러 보호하고 있었다. 지표면 으로는 이미 초석 및 기단 등이 노출되어 있어 보광전지의 규모 및 구 조는 부분적으로 알려져 있었다. 2차 발굴조사시에는 표토를 제거하여 초석을 드러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으며, 본격적인 내부 조사는 4차 발 굴조사시에 이루어질 계획이다. 牧隱의『天寶山檜巖寺修造記』에 의 하면 건물의 규모는 정면 5칸으로 기록되어 있다. 보광전지의 평면형태 는 건물의 남쪽에 월대가 붙은 "凸"자형이다. 기단은 치석된 장대석을 이용하였으며, 월대를 제외한 기단의 남북 길이는 21m, 동서 길이는 24.9m이다. 월대는 남북 길이 6.23m, 동서 22.5m이다. 계단은 남쪽과 동쪽, 서쪽 등 3군데에서 발견되었으며, 북쪽은 기단 안쪽으로 폭 약 1m 정도 구간에 전돌을 깔아 通路로 사용하였다.한편 보광전지의 북동 쪽 기단 내에서 온돌시설을 갖춘 후대 유구가 조사되었는데 총 5개의 구들골을 갖춘 건물지로 보광전이 폐 기된 이후에 만들어진 건물지이다. 고래둑은 폭 약 15cm의 정도의 장 방형 석재를 이용해 만들었으며, 구들골의 폭은 약 20cm 정도이다. 이 건물지는 회암사의 폐사 직후에 보광전의 잔해 위에 지어진 건물지로 생각되는데, 시기차는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발굴당시 보광전지 동쪽과 서쪽 공간에서는 깊이 약 1m가 넘는 와적층 이 노출되었는데 보광전지 상부에 놓았던 기와들로 추정된다. 여기에 서 지붕 상부에 올려놓았던 각종 잡상편과 토수 등이 발견되었으며, 총 149자의 명문이 새겨진 청동금탁 2점이 출토되었다. 금탁에 대해서 는 이미 2차 발굴조사 지도위원회 당시 소개하였기 때문에 설명은 생략 한다. 4) 보광전지 동쪽 건물지(도면 2, 사진 9) 6단지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2차 발굴조사시 가칭 "6단지 다 건 물지"로 명명한 건물지이다. 북쪽으로는 서기료지가 위치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보광전지가 있고, 북서쪽에는 향화료지가 위치하고 있다. 또한 북쪽 및 동쪽 기단 외곽을 따라 배수로시설이 노출되었는데 건물 지 남쪽으로 연결된다. 건물지는 평면구조상 "日"字形이며 규모는 정 면 5칸(주간거리 3.8m), 측면 5칸(주간거리 3.0∼4.6m)이다. 출입구 시 설은 동쪽과 서쪽에 각각 마련되어 있는데 출입로 바닥면은 불다짐하 여 단단하게 만들었다. 기단은 치석된 장대석을 이용하였으며, 기단의 남북 길이는 21.5m, 동서 길이는 21m로 방형의 건물지이다. 초석은 원 형주좌를 두른 방형석을 사용하였는데, 크기는 길이 90cm, 폭 100cm 가량이다. 건물지 내부에는 남북에 각각 밖으로 개방된 공간이 대칭되 어 배치되어 있다(사진 10). 개방된 공간의 규모는 정면 2칸 측면 1칸 가량으로 바닥에는 답석이 깔려 있고, 낙수를 처리하기 위한 배수 홈 이 별도로 확인되었다(사진 11). 한편, 북쪽의 개방된 공간 내부에서 청 동 도가니와 함께 슬래그(Slag) 등이 출토되었다.건물지 내부 시설로 는 건물지 내부 벽체에 잇대어 단상을 마련 한 흔적이 확인되었다(사진 12). 이 단상은 출입구를 제외한 동, 서, 남, 북 네 벽체에 둘러져 있으며, 개방 공간 벽체에 잇대어 안쪽에도 단 상이 확인된다. 이 외에 건물지의 북동쪽 기단내에서 동서로 긴 장타원 형의 후대 유구가 확인되었는데 깊이 약 30cm 정도의 수혈 유구로 동 쪽과 서쪽 벽면을 따라 목탄이 가득차 있었다. 건물지의 바닥면을 파괴 하고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 폐사 이후 만들어진 후대 유구로 판단된 다. 한편 건물지의 남동쪽 조사과정에서 바닥면보다 하단에서 정연히 깔린 선대의 석열이 노출되었는데(사진 13), 4차 발굴조사시 에 정밀조사가 이루어질 계획이다.문헌기록에서 보면 보광전 동쪽으 로 건물지 4개소가 횡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보광전 동 쪽 지역이 건물지 4개소가 위치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공간이 되지 못 하기 때문에 이들 건물지의 위치가 고려말 중창시에 보광전 동쪽에 바 로 인접하여 위치하고 있었는지 의문이다. 5) 西僧堂址(도면 3, 사진 14) 6단지 가장 서쪽에 위치하는 건물지로 2차 발굴조사시 가칭 "6단지 나 건물지"로 명명된 건물지이다. 북서쪽에는 지장료지가 위치하고 있으 며, 동쪽으로는 천랑지가 위치하고 있다. 또한 북서쪽 기단 밖으로는 7 단지로 올라가는 계단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건물지는 정면 8칸(주간 거리 4.1m), 측면 4칸(주간거리 2.8m)으로 전체적으로 남북으로 세장 한 장방형 건물지이다. 기단은 치석된 장대석을 이용하였으며, 기단의 남북 길이는 31.8m, 동서 길이는 14.3m이다. 초석은 건물지의 외곽을 향하여 원형주좌를 둔 방형석을 사용하였는데, 크기는 길이 90cm, 폭 75cm 가량이다(사진 15). 초석과 초석 사이 벽채부는 전돌을 쌓아 만들 었으며, 북쪽에서 5·6번 초석 사이는 천랑지와 연 결된 통로시설로 사용되었다. 건물지의 내부에서는 "ㅌ"자 형태의 침 상 시설 2개를 남북으로 마주보게 배치한 형태의 구들시설이 확인되었 다.아궁이는 남쪽과 북쪽에 각각 2개씩 마련되어 있는데 북쪽과 남쪽 의 구조에 있어 차이가 있다. 먼저 북쪽은 중앙의 2칸을 수혈형식으로 파고 벽면에 석재로 쌓아 부엌공간을 마련하였으며 여기에 아궁이을 설치하였다(사진 16). 남쪽의 것은 동서 각각 1칸을 이용해 아궁이를 만들었는데 5단지에서 불을 지필 수 있도록 하였다. 아궁이의 평면형태 는 육각형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으며(사진 17), 정방형의 치석된 석 재를 쌓은 다음 틈새에는 점토를 발라 마무리하였다. 연기는 중앙에서 모여 서쪽 기단밖에 마련되어 있는 굴뚝으로 빠지게 시설하였다. 한 편, 남쪽 아궁이의 연도는 상하로 시설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상부의 것은 "ㅌ"자 형태에서 외곽의 "ㄷ"자 구들(구들골 2개)로 연결되어 있 고, 하부의 것은 중앙의 "­"자 구들(구들골 4개)과 연결되어 있다. 고래 둑은 기와를 쌓아 만든 부분(사진 18) 과 장방형 석재를 놓아 만든 부분이 혼재하는데 폭은 30cm 정도이다. 구들의 구조는 "亞"字 방처럼 바닥보다 높게 설치된 형태이며 구들 외 곽으로는 바닥에 전돌을 깔고 그 위에 목재로 마감하였다. 구들 이외 의 바닥 공간은 사람들이 출입할 수 있도록 바닥을 불다짐하여 단단하 게 만들어 놓았다.한편 서승당의 서쪽에서 구들을 파괴하고 만든 후대 수혈 유구가 확인되었는데 평면형태는 말각방형에 가깝다. 유구의 서 쪽 벽면에는 전돌을 이용하여 부뚜막처럼 만든 시설이 확인되었는데 墓幕으로 판단된다. 6) 穿廊址(사진 19) 서승당지의 동쪽에 연결된 건물지로 2차 발굴조사시 가칭 "6단지 가 건 물지"로 명명된 건물지이다. 건물지의 북쪽으로는 지장료가 위치하고, 동쪽으로는 보광전지가 위치한다. 서쪽의 서승당으로 부터 동쪽의 보 광전까지 연결되는 출입로 시설이 특징적인데 보광전으로 가기 위해서 는 기단 밖에 마련되어 있는 계단 시설을 통해 건너가도록 되어 있다. 건물지는 정면 5칸(주간거리 3.8m, 출입로 주간거리 4.4m), 측면 1칸 (주간거리 4m)의 장방형 건물지이다. 기단은 치석된 장대석을 이용하 였으며, 기단의 남북 길이는 21.3m, 동서 길이는 6.5m 이다. 초석은 건 물지 외부에서 보았을 때 원형주좌를 둔 것처럼 외부에서 보이는 면만 원형으로 깎은 방형석을 사용하였는데, 크기는 길이 70cm, 폭 65cm 가량이다. 내부시설로는 기단 약 1m 안쪽에 기단을 따 라 치석된 장대석을 배치하였는데, 장대석 위에 폭 15cm 내외의 목재 가 불탄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장대석 위에 목재를 이용하여 단상을 마련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천랑지의 것으로 보이는 유물로 남동쪽 기단 안쪽에서 철제 호미와 청동 발 2점이 출토되었다. 7) 正門址(사진 20) 조사지역 내의 동쪽에서 확인된 건물지이다. 牧隱의「天寶山檜巖寺修 造記」에 의하면 "直普光殿正門三間"이라 하였는데 현재의 위치와 일 치하고 있다. 북쪽 정면에는 보광전지가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4단지로 내려가는 계단이 마련되어 있고, 서쪽으로는 열중료지가 위치 한다. 조사지역이 보광전지를 기준으로 서쪽부분에 국한되어 있어 1/2 정도만 노출되었다. 건물지의 규모는 정면 3칸(주간거리 3.5m), 측면 2 칸(주간거리 3.4m)으로 바닥면에는 전돌이 전면에 깔려 있으며 특별 한 내부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남쪽과 북쪽 기단은 치석된 장대석을 이용하였다. 초석은 건물지 내부를 향하여 원형으로 깎았으며 건물지 내부의 초석은 원형주좌를 둔 방형석을 사용하였다. 8) 悅衆寮址(사진 21) 정문의 서쪽으로 연결된 건물지로 북쪽으로는 동료지와 서료지가 연결 된다. 건물지는 동쪽의 정면 5칸 건물지와 서쪽의 정면 4칸의 건물지 가 연결된 평면형태를 보여주는 동서 방향의 세장한 건물지이다. 초석 배치에 있어 양 건물지가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실제 2개소의 건물지 인 것으로 추정된다. 문헌에는 열중료의 규모를 7칸으로 기록하고 있 어 고려말 이후 중수가 이루어지면서 2동의 건물지로 개축되었을 가능 성이 있다.서쪽 건물지의 규모는 정면 4칸(주간거리 3.2m), 측면 1칸 (주간거리 3.4m)이며, 동쪽 건물지는 정면 5칸(주간거리 .4m), 측면 2 칸(주간거리 북쪽 3.6m, 남쪽 1.8m)이다. 초석은 모두 건물지 외부에 서 보았을 때 원형주좌를 둔 것처럼 외부에서 보이 는 면만 원형으로 깎은 방형석을 사용하였다. 초석의 크기는 차이가 있 는데, 서쪽 건물지의 초석 크기는 길이 75cm, 폭 60cm 가량이고, 동쪽 건물지의 초석은 길이80cm, 폭 80cm이다. 내부시설로는 구들 시설이 확인되었는데 동쪽 건물지의 아궁이와 서쪽 건물지의 아궁이는 건물 지 중앙에 인접해 있으며, 벽체를 통해 구분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굴 뚝은 각각 건물지 동서 끝부분에 마련되어 있다. 구들골은 서쪽 건물지 가 6열, 동쪽 건물지가 7열이 확인되었으며 고래둑의 간격은 30cm, 구 들골의 간격은 20cm이다. 9) 東寮址(사진 22) 서료지의 동쪽에서 발견된 건물지로 북쪽에는 천랑이 위치하고 있으 며 북동쪽에는 보광전이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답석이 깔려 있는 데 석등의 좌대로 보이는 석재(가로 100cm×세로 100cm의 규모에 중 앙에는 폭 30cm 정도의 정방형 홈이 있음)와 함께 정료대가 약간의 간 격을 두고 확인되었다. 남쪽으로는 열중료지의 북동쪽 부분과 연결되 어 있으며 남서쪽 기단 밖 모퉁이에는 구멍 5개가 뚫린 집수구가 있다. 한편 건물지 동쪽 기단상에는 전돌을 깔아 통로로 이용하였는데 전돌 이 깔린 지역의 북쪽과 남쪽으로는 작은 계단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북 쪽 계단시설은 지장료지, 시자료지를 지나 8단지까지 연결되어 있으 며, 남쪽계단 시설은 열중료지와 연결되어 있다. 건물지는 정면 4칸(주 간거리 3.8m), 측면 2칸(주간거리 2.6m)으로 남북으로 세장한 장방형 의 건물지이다. 기단은 치석된 장대석을 이용하였으 며, 기단의 남북 길이는 19.8m, 동서 길이는 8.2m 이다. 초석은 건물지 외부에서 보았을 때 원형주좌를 둔 것처럼 외부에서 보이는 면만 원형 으로 깎은 방형석을 사용하였는데, 크기는 길이 80cm, 폭 80cm 가량이 다. 내부시설로는 구들 시설이 확인되었다. 아궁이는 현재 조사중에 있 기 때문에 분명치 않지만, 건물지의 남쪽에 마련되었던 것으로 생각된 다. 구들골은 모두 9열이 확인되었는데 북쪽에서 모여 북동쪽의 굴뚝으 로 연결된다. 고래둑의 간격은 30cm, 구들골의 간격은 20cm이다. 10) 추정 西寮址(사진 23) 문헌에는 서료라는 건물지명이 없다. 다만 보광전의 남동쪽에 있는 건 물지가 동객실, 서객실로 명칭되었던 것을 고려해 볼 때, 잠정적으로 동료의 대칭되는 명칭으로 "서료"라는 건물지명을 사용하지만 분명치 않다. 5단지 북서쪽에서 발견된 건물지로 북쪽 6단지에는 서승당지가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 약간의 공간을 두고 동료지가 있다. 서쪽으 로는 정료대가 쓰러져 있으며, 남서쪽에는 서쪽 석축단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위치하고 있다. 건물지의 규모는 정면 6칸(주간거리 2.5m), 측 면 1칸(주간거리 3.3m)으로 남북으로 세장한 장방형의 건물지이다. 기 단은 치석된 장대석을 이용하였으며, 기단의 남북 길이는 17m, 동서 길 이는 5.6m 이다. 초석은 건물지 외부에서 보았을 때 원형주좌를 둔 것 처럼 외부에서 보이는 면만 원형으로 깎은 방형석을 사용하였는데, 크 기는 길이 70cm, 폭 65cm 가량이다. 한편 북쪽에서 4번 째 초석의 동서 방향으로 벽체시설을 마련하여 공간을 따로 분할하여 사용한 흔적이 있다. 내부시설로는 구들 시설이 확인되었는데 앞의 벽체시설을 중심 으로 남쪽과 북쪽에 각각 하나씩 확인되었다. 따라서 아궁이 역시 남쪽 과 북쪽에 각각 하나씩 확인되었다. 구들골은 모두 6열이 확인되었는 데, 건물지 중앙에서 모여 서쪽 기단 밖의 굴뚝으로 연결된다. 고래둑 의 간격은 30cm, 구들골의 간격은 0cm이다. 구들장은 북동쪽에 약간 남아 있는데 편평한 할석을 이용하였다. 11) 기타 유구 이외에도 5단지 내에서 정료대 2개소(사진 24)가 확인되었는데, 하나 는 서료지 서쪽 기단 밖에서 확인되었으며, 나머지 하나는 보광전지 남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집수구 시설 2개소(사진 25)가 확인, 조사 되었다. 모두가 장방형의 석재에 5개의 원형 구멍을 뚫어놓은 것으로 모두 열중료 북쪽 기단에 인접하여 확인되었다. 한편 보광전지 남서쪽 정료대에 인접하여 석등의 하대석(사진 26)으로 추정되는 석조물이 노 출되었는데, 정료대보다 선대의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5단지에서 서 쪽 석축단으로 연결된 계단시설(사진 27) 등이 확인 조사되었다. 2. 遺物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서 출토된 유물은 도자기류, 기와류, 금속류 및 석제품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으나 발굴구역이 넓지 않아 유물의 양은 많지 않다. 또한 1, 2차 발굴조사시에 출토된 유물과 비교해 보았 을 때, 큰 차이가 없다. 1) 도자기류 도자기류는 상당히 많은 양이 조사지역의 와적층 및 구지표면상에서 출토되었다. 출토된 자기류 가운데 가장 많은 출토비율을 차지하는 것 이 백자, 분청사기 순이고, 기타 청화백자, 고려 및 조선청자가 극히 소 량 출토되었다. 자기류의 기종은 대접, 접시, 발, 완 등 일상용기가 주 류를 이루고 있다. 한편 출토된 백자편 중에서 저부 바닥 내지 내면에 명문이 있는 것이 소량 출토되었는데 기존의 출토된 명문백자와는 큰 차이가 없다. 2) 기와류 회암사지에서 출토된 기와는 시굴조사 및 1·2차 조사시에 출토된 것과 큰 차이가 없는데 보광전지 주변과 서승당의 남쪽 와적층에서 다양한 형태의 막새기와들이 출토되었다. 종류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수막새(사진 28)는 봉황문 및 범자문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데 봉황문이 범자문보다 많은 것이 특징이다. 암막새(사진 29)는 범자 문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용문 및 연꽃문이 소량 출토되었다. 명문막새 (사진 30)로는 기존에 출토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막새에 "天順 庚辰", "洪武二十…月日...", "孝寧大君 宣德甲□五月" 등의 명문이 확 인되며 이 외에 "天順"·"監"이라는 명문이 있는 암막새편이 소량 출토 되었다. 기타 마루기와로 사용된 잡상편이 소량 출토되었다. 3) 금속류 회암사지 3차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금속제 유물은 크게 철제류와 청동 제류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철제 유물(사진 31)은 건물지 목조결구용 철정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못머리의 형태 및 크기에 있어서 다양한 종 류가 출토되었다. 그리고 문고리 등 건물지에 부속된 철기류들과 함께 대형 철정 및 살포와 같은 다양한 철기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한편 서 료지의 북쪽 아궁이 부분에서 쇠솥 편들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는데 조 사가 아직 진행중이라 정확한 형태 및 성격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청동제 유물은 2차 발굴조사시에 천랑지에서 명문이 음각되어 있는 청 동 발이 출토되었으며, 이번 조사에서는 용도미상의 청동기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먼저 청동 발은 천랑지 남동쪽 기단 안쪽에서 철 제 호미와 함께 발견되었는데(사진 32), 청동 발의 바닥면에는 각 각 "檜岩五百聖殿飯器養五十"(사진 33), "檜岩十六聖殿茶器養十六"이 라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다. 서료지 북서쪽 기단 내부에서 원반형의 청 동기(사진 34)가 출토되었는데 부분적으로 표면에 금박을 입혔던 흔적 이 관찰된다. 평면형태는 중앙에 구멍이 뚫린 원반형으로 여러 개를 결 합하여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 4) 석제품 기존의 회암사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석제 유물은 대다수가 소형 석 제불상편이었는데 이번 조사에서는 석제 대좌가 출토되었다. 보광전 지 월대 서북쪽 기단밖 외곽 답석 상면에서 출토된 불상 대좌(사진 35) 는 사암 재질로 색조는 황색을 띠고 있다. 타원형의 평면 형태로 길이 30cm, 폭 24cm이며 높이는 8.5cm이다. 외곽에는 仰蓮과 覆蓮을 조각 하였는데, 복련이 앙련보다 약간 크다. 單瓣蓮花文이 가로 2cm 간격으 로 양각되어 있는데 연꽃잎의 가운데 부분이 도드라지게 표현되어 있 다. 대좌의 윗면에는 지름 0.7cm의 구멍 두 개가 19cm의 간격을 두고 뚫려 있으며, 아랫면에도 지름 1cm의 구멍 두 개가 13cm의 간격을 두 고 뚫려 있다. 상면의 구멍은 불신을 대좌에 고정시키기 위한 것으로 추정되며, 하면의 구멍은 대좌를 고정시키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보광전 동쪽 건물지에서 출토된 청동 도가니(사진 36)가 여러 점 출토되었는데 도가니 내부에는 응고된 청동흔이 관찰된다. Ⅴ. 조사성과 및 토의 사항 먼저 5·6단지 내에 위치한 전각 배치는 고려말 목은이 회암사의 전각배 치에 대하여 기록한 부분과 상당 부분 일치하고 있음을 확인하였으나, 일부 건물지의 배치와 규모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어 후대의 중 창 내지 중수와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 부분은 4차 발굴조 사 과정에서 선대 유구에 대한 정밀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밝혀낼 과제 로 생각된다. 또한 3차 발굴조사까지 확인된 구들시설이 있는 건물지 는 모두 13개소에 달하며, 또한 이들 구들시설들은 구조 및 평면형태, 그리고 굴뚝 및 아궁이의 구조에 있어 매우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 기 때문에 향후 구들 문화 연구의 기초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향후 회암사지 발굴조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발굴조사에 서 뿐만 아니라 외적인 부분에서 몇 가지 논의가 필요하다. 1. 회암사지에 대한 조사 연구는 전각배치 및 건축학적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고고미술사, 조경사, 불교사상사 등 폭넓은 분야에서 다양하 게 이루어져야 함을 이번 조사과정에서의 遺構, 遺物을 통해 재차 확인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조사가 진행됨과 동시에 관련 전공자들의 지속적 인 관심과 연구성과가 있어야 할 것이고 이를 통해 조사 방향이 새롭 게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4차 발굴조사부터는 이전의 조사와는 달리 예산 규모가 크고, 조사 면적도 넓기 때문에 관련 전공자의 확보 가 시급한 실정이다. 2. 현재까지의 조사 진행은 전체의 40% 가량으로 노출된 건물지는 23 개소에 달한다. 이들 건물지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유구들이 노출될 당시부터 훼손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조사된 유구에 대한 지속적인 보 호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8단지의 북쪽 지역의 산 사태 가능성과 더불어 여름철의 집중호우로 인한 유적 훼손의 가능성 이 크기 때문에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따 라서 조사가 진행되더라도 조사가 끝난 지역에 대한 정비작업이 우선 되어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지도위원회의를 통해 정비 방향이 결 정되어야 할 것이다. 3. 향후 발굴 조사는 2001년 4차 발굴조사(5단지 동쪽지역, 4단지 전 역), 2002년 5차 발굴조사(3단지 전역), 2003년 6차 발굴조사(1, 2단지 전역), 2004년 7차 발굴조사(사역 외곽부)로 잠정 계획되어 있다. 앞으 로 발굴조사가 충실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발굴조사 방향이 재설정되 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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