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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회암사지(2차)

2001-05-08 00:00:00
조회 2208
<양주 회암사지 2차 발굴조사> ·조사기관 : 경기도 박물관·경기문화재단 부설 기전문화재연구원 ·조시기간 : 2000. 1. 31 ∼ 2000. 6 . 29(8월 종료예정) ·조사지역 : 경기도 양주군 회천읍 산 14-1 번지 일대 ·조사성과개요 2차 발굴조사 지역은 회암사지 7단지 일부와 6단지 전체를 포함하는 지 역으로 전체 면적은 5,600㎡(1,697평) 가량이다(도면 2). 또한 1차 발굴 조사시 8단지와 7단지 일부 구역이 부도탑 해체·복원을 위한 중장비 이 동을 위하여 조사가 실시되지 않았는데 이번 2차 발굴조사시에 아울러 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의 7단지와 6단지는 대 부분 산 위에서 흘러내린 퇴적 토가 두텁게 덮여 있었지만, 7단지 석축 및 보광전 건물 지는 지상에 일부 노출되어 있었으며, 특히 보광전 건 물 지는 외곽으로 보호철책이 둘려져 있었다. 또한 6,7단지 동, 서 양 끝단에는 자연석으로 쌓은 석축 단이 3단으로 마련되어 있어 사역의 거 대함을 웅변하고 있다. 한편, 조사지역의 동편으로는 경기북부지역에 대한 집중호우시의 流水로 인하여 깊게 패어져 있었는데, 이로 인해 건 물 지의 초석 및 기단석이 일부 노출되어 있었다. 이번 회암사지 6·7단지에 대한 2차 발굴조사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 과 같다. 첫째, 6·7단지 내에 위치한 전각 배치는 고려말 목은이 회암사의 전각 배치에 대하여 기록한 부분과 일치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즉 7단지에 서 조사한 건물지 9개소 가운데 가건물지 성격의 유구를 제외하면, 문 헌에 보이는 사리전, 시자료, 입실료 건물지가 7단지 북측에 위치하고 남측에는 설법전지를 중심으로 서쪽에 조사전지, 수좌료지, 그리고 동 쪽에 영당지, 서기료지가 위치하고 있다. 6단지에서는 조사가 완료된 것은 아니지만, 보광전지를 중심으로 북서쪽에 지장료지, 동북쪽에 향 화료지가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전각 배치는 그간 학계에서 논의되었 던 것에 비해 건물지들이 각각 한 단씩 북쪽으로 이동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둘째, 6·7단지 내, 건물지의 중복관계로 보았을 때, 건물지 및 기타 유 구의 축조와 관련하여 최소한 4단계로 구분이 가능함을 확인하였다. 1 단계는 고려시대 말의 중창과 관련된 건물지 내지 유구들로 모두 치석 되지 않은 자연석을 사용하였으며, 아직까지는 그 이전에 축조되었다 고 생각되는 유구들은 관찰되지 않았다. 그러나 고려시대 중기에는 회 암사가 있었다는 기록을 염두에 둘 때, 앞으로 관련 건물지의 발견 가 능성은 충분히 있다. 2단계는 조선시대 성종대의 중창과 관련된 건물 지 및 기타 유구가 축조되는 단계로 6·7단지에 보이는 대부분의 건물지 들이 이에 해당한다. 8단지의 대장전 건물지 내부 기단토 내에서 귀목 문 막새기와가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비록 이들 건물지들이 고려말에 초축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조선 성종대에 치석된 장대석으로 외장 을 바꾸는 형태의 중창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다음 3단계는 2단계의 건물지들이 사용되면서 필요에 의해 일부 건물 지들이 용도 변경되거나, 부속건물지들이 추가되는 단계이다. 마지막 으로 보광전지 위에 세워진 건물지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회암사가 화 재로 인해 폐사된 이후에 새로운 건물지가 축조되는 단계이다. 이는 회 암사가 폐사된 이후에 스님들이 법당을 유지하기 위하여 기존 건물지 의 석재를 사용하여 새로운 건물지를 축조하거나, 아니면 최근의 불당 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셋째, 회암사의 폐사 시기와 관련하여 1·2차 발굴조사 내용을 종합하 면, 회암사지의 대부분의 건물지가 화재로 인하여 폐기되어 폐사의 직 접적인 원인은 집단방화로 추정된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선조 28년(1600)에 "회암사 옛터에 큰 종이 있는데, 불에 탔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적어도 1600년 이전에 화재로 인해 소실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명종 21년(1566)의 기록에는 松都의 유생들이 淫祠를 태 워버린 이후 유림들이 회암사를 태우려한다는 소문에 대해서 명종이 걱정하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회암사의 폐사와 관련될 것으로 판 단되는 사건은 명종대 유생들에 의한 회암사 방화와 선조대 임진왜란 에 의한 회암사 소실 등으로 압축된다. 따라서 회암사의 폐사 시점은 1566년부터 1600년 사이의 어느 시점이 아닌가 판단된다. 그런데 이번 2차 발굴조사에서의 유물의 출토 맥락, 특히 청동불 내지 석불의 얼굴 만이 잘려진 채로 담장지 아래에서 출토되었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유생들의 방화가 보다 더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넷째, 보광전지 주변에서 출토된 청동금탁에는 149자의 명문이 남아 있 어 이를 통해 보광전의 重修와 관련된 내용을 확보하게 된 점은 이번 발굴조사의 성과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보광전에 기록된 王顯妃는 조 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청동금탁이 만들어진지 2년 후인 태조 5년에 功 德主인 이득분의 거처에서 병환으로 薨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청동금 탁 제작 배경의 일단을 파악할 수 있다. 다섯째, 6·7단지에서 조사된 건물지 및 담장지, 석축단, 배수시설 등은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잘 남아 있어 향후 회암사지의 상부구조를 밝히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동방장지, 수좌료지, 시자료지에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상태로 조사된 구들시설은 이 시기 구들의 구조와 변화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획기적인 자료로 판단된 다. 또한 회암사지 하부에 축조된 상하수시설은 회암사가 보다 체계적 이고 종합적인 계획 하에서 조성되었음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들 건물지들의 전각 배치가 고려 말 ∼ 조선 초의 것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고려∼조선초 사찰 건축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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