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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성(牧羊城) - 남만주 노철산록, 한 및 한 이전 유적조사 보고서

2019-11-26 17:40:02
조회 170

책 개요

 

제목 : 목양성(牧羊城) - 남만주 노철산록, 한 및 한 이전 유적조사 보고서

저자 : 하라다 요시토(原田淑人)

역자 : 박지영, 복기대

판형 및 페이지 : 210 X 295 mm / 248 페이지

발행일 및 가격 : 20191125/ 가격 35,000

ISBN 978-89-6246-410-8 94910

 

 

책 소개

 

요동반도 고대사 연구의 출발점

지금은 볼 수 없는 생생한 사진 자료와 도판 자료 수록

 

목양성1900년대 만주 고고학연구자료 국역총서의 두 번째 책으로 1928년 가을, 일본의 동아고고학회가 관동청박물관과 협력하여 수행한 관동주 노철산록 목양성지 및 그 부근 고묘의 발굴에 관한 연구보고이다.

목양성 유적은 요동반도의 최남단인 여순의 서쪽, 노철산 기슭에 위치한다. 이 지역은 남으로는 바다를 건너 곧장 산동반도로, 북으로는 중국 동북부 지역으로 올라갈 수 있는 요충지로서 구석기 시대 이래 수많은 유적이 존재하며, 목양성은 이 지역 고대사 연구의 출발점이 되는 곳이다.

목양성은 현재는 확인할 수 없는 당시의 모습을 충실히 보여주는 기록으로서 가치가 있으며, 성지발굴과 분석을 통해 이 지역을 서한시대 요동군 답씨현 자리로 비정한 결과는 현재도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짧은 조사 기간과 제한된 사료 검토 등, 재검토의 여지도 분명 존재한다. 조선과 만주지역까지 확장된 일본제국의 역사연구라는 정치적 관점을 걷어내고, 오늘날의 진보된 연구 방법으로 다시 정리한다면 요동지역 및 한국 고대사 연구의 쟁점들을 보완해갈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서평

 

요동반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여순(旅順)은 예로부터 발해를 건너 산동반도 지역으로 건너가거나 거꾸로 산동반도나 한반도의 서해 방면에서 만주지역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특히 산동반도로 건너가게 되면 이른바 중국의 강남지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요충지이다. 이러한 자연적 조건으로 인해 이 지역에는 구석기 이후 시대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거쳐간 흔적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전기 신석기인 쌍타자 1기문화(雙坨子1期文化)부터 후기 청동기시대인 쌍타자 3기문화까지 계속하여 이어져 있고, 그 후에도 차이나계 및 고구려를 비롯한 많은 유적들이 남아 있다. 이 책에서 다룬 목양성(牧羊城) 유적을 대표로 하여, 비자와(貔子窩), 강상(崗上), 누상(樓上), 후목성역(後牧城驛), 영성자(營城子), 고구려 석성 등등이 그것이다.

근대에 접어들면 이 지역은 국제적 관심을 끌기 시작하여 1800년대 후반 러시아가 남진하자 주변국의 각축을 불러일으켰다.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은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의 지휘 아래 러시아군을 제압하고 마침내 이 지역을 차지하게 되는데, 그 결과 러시아는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잃었고 일본은 만주와 중국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확보하게 되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러일 전쟁은 근대 동북아시아의 판도를 바꾼 것으로, 일제의 대한제국 강점과 만주지역 침략에 이어지는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러일전쟁 이후 일본은 본격적으로 만주지역을 조사하고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목양성에 관한 조사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진행되었다.

목양성 유적은 요동반도의 최남단인 여순의 서쪽에 위치한다. 노철산(老鐵山) 서북 기슭의 구만(鳩灣)에 조가탄(刁家疃)과 유가탄(劉家疃) 두 마을이 있는데, 그 동쪽 구릉에 둘러싸인 포구 지역이다. 이곳은 발해와 요동만을 가르는 중심점이 되기도 한 지역으로, 이 노철산의 동쪽은 요동만이 되고, 서쪽은 발해가 되는 것이다. 남으로는 바로 장산군도(長山郡島)를 지나면 산동반도뿐만 아니라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북으로는 대련(大連)을 거처 요양(遼陽), 심양(瀋陽) 그리고 그 이북까지, 해양은 물론이고 육상으로도 교통의 중심지인 곳이다. 이 포구는 현재와 같이 청대에도 사용되었을 것이고, 일본은 러일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일대의 유적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목양성은 다른 유적보다 먼저 발견되었다고 여겨진다.

이 유적에 대한 관심은 도리이 류조(鳥居龍蔵)로부터 시작하여, 하마다 고사쿠(浜田耕作)가 일찍이 답사를 수행했다. 이들 기초 조사를 기반으로 1928년 가을 일본의 동아고고학회(東亞考古學會)가 본격적 조사를 주도하였다. 당시 대련에 설치되었던 일본의 관동청 박물관과 공동으로 관동주 노철산록 목양성지 및 그 부근 고묘에 대한 구체적 발굴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조사에는 일본 외무성 문화사업부와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지원했으며 당시의 여순 사령관이었던 육군 소장 야마다 가쓰야스(山田勝康)의 원조 아래 여순요새 구역내의 원만한 학술조사가 가능했다.

1928년의 조사에 실제 관여한 학자들은 교토제국대학 문학부 교수 하마다 고사쿠 외에 조교인 시마다 사다히코(島田貞彦), 미즈노 세이이치(水野清一), 그리고 도쿄제국대학 문학부에서 하라다 요시토(原田淑人)와 고마이 가즈치카(駒井和愛), 다자와 긴고(田澤金吾), 야와타 이치로(八幡一郎) 등이 참여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중화민국 북경대학교 조교였던 장암(莊嚴)도 이 조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직접 발굴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교토제국대학 교수 하네다 도오루(羽田亨), 마쓰무라 료(松村瞭) 등은 견학차 현장을 다녀갔고, 훗날 기마민족설의 제기로 유명해진 에가미 나미오(江上波夫)도 참관했다. 이처럼 당대의 쟁쟁한 학자들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서도 목양성의 유적으로서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당시의 조사에서 이들이 주목한 것은 목양성이 고대로부터 만주가 산동반도와 교류한 중심지였으리라는 점, 그리고 문헌 기록에 나오는 서한(西漢)시대 요동군(遼東郡) 답씨현(沓氏縣) 자리가 이곳일 것이라는 점이었다. 특히 서한과 동한시대에 이 지역이 한의 영토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에 방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이 지역이 한나라 영역이 되어야 한반도에 낙랑군이나, 현토군이 설치된 것이 합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조사를 통해 확인된 성벽 및 그 안팎에서 발견된 여러 유물, 특히 교류의 흔적으로 보이는 다양한 화폐들은 이 유적의 시대를 특정하는 데 중요한 근거로 활용되었다. 그 결과 당시의 조사에서 일본인 학자들은 그들의 목적에 부합되는 결론을 도출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목양성 발굴 보고서를 통해 그들의 조사과정을 다시 복기해보면 시대를 단정하거나 혹은 지리를 비정하는 데에 재검토의 여지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이 발굴은약 20일에 지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진행된 것이다. 그 사이에 목양성 발굴외에 다른 지역 조사까지 발굴팀을 나누어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조사 과정은 발굴이 집중적이고 면밀하게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반증해주는 것이다. 이들이 연대를 편년한 견해는 오로지 확인된 화폐를 근거로 한 것이고, 성벽이나 다른 유물들은 화폐로 편년한 연대를 보완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발굴과 구덩이 파기를 구분하지 않은 수준에서 땅을 파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나온 화폐로 연대를 추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태도이다. 활용한 문헌자료의 분석 방법에도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대부분의 문헌 자료는 유기적인 구조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요동군에 국한된 기록 외에도 당시의 시대 상황에 맞춘 폭넓은 사료의 검토가 요구된다. 이곳을 서한의 요동군 답씨현으로 결론지은 것은 앞서도 말했지만 동북아시아 고대사 최고의 아킬레스건인 낙랑군을 한반도에 비정함에 따라 요동군이 낙랑군 서쪽에 위치해야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후한서동이열전, 사기흉노열전등 요동군 설치와 관련된 시대 상황을 알 수 있는 사료들을 검토하면 이러한 위치 비정은 분명 재검토의 여지가 있다. 이는 당시 고고학 연구 방법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조선과 만주지역까지 확장된 일본제국의 역사연구라는 정치적 관점이 사료의 올바른 해석을 방해한 점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목양성을 비롯한 만주지역의 고대 역사유적에 대해 일본이 수행한 1945년 이전의 연구 자료는 해당 지역에 대한 최초의 발굴 보고서로서 연구의 기준점을 제시한 자료이므로 무턱대고 무시하거나 간과할 수는 없다. 또한 현재는 확인할 수 없는 당시의 모습을 충실히 보여주는 기록으로서도 가치가 있다. 이 최초의 보고서들을 재검토하고 오늘날의 진보된 연구 방법으로 다시 정리한다면 요동지역 및 한국 고대사 연구의 쟁점들을 보완해갈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에 의해 수행된 만주지역 연구는 모든 보고서가 간행되거나 유물이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목양성과 함께 동아고고학회에서 동방고고학 총간으로 출간된 비자와(1929)영성자(1934), 만선원시분묘연구(三上次男, 1961), 남만주조사보고(鳥居龍蔵, 1910) 등은 각 지역에 대한 최초의 조사 보고서였다. 이 자료들은 요동반도 지역의 고대사 및 해당 지역 연구의 초기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검토해야할 자료임에는 틀림없으며 현재 우리 학계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조사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문제점이 존재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향후 비판적인 검토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목양성의 번역은 이상과 같은 문제의식 아래 1945년 이전에 간행된 일본의 만주지역 고고학 연구자료로서 국역 총서의 하나로 기획된 것이다. 총서 제1권인 통구(通溝)에 이은 두 번째 간행이며, 통구에서와 같이 박지영 교수의 일본어 번역에 본인의 현장 답사 경험을 보탠 결과물이다. 이어서 만선원시분묘연구, 남만주조사보고등 관련 자료들도 조건이 허락하는대로 계속 출간하여 연구의 토대를 제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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